최초의 나라 한(환)국/고조선(한단고기)

우리의 '웅녀'가 중국의 '백의신녀'로?

설레임의 하루 2009. 8. 21. 04:06

*출처:다음블로그-김명곤의 세상이야기     2009/06/22 06:49 | Posted by 김명곤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아시나요? 



 동북공정은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주도하고, 동북 지역의 3성인 요령성과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성 위원회가 참여하고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중국은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55개의 소수민족이 만든 국가이고 현재의 중국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므로, 고조선과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대한민국이나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가 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사업들이 동북공정의 이름 아래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중 깜짝 놀랄 프로젝트 하나를 소개할까요?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왕칭(汪淸) 방향으로 1시간쯤 차를 몰고 가다 백초구(百草溝)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천성호(天星湖)의 서쪽이 나옵니다.

이곳의 만천성(滿天星) 선녀봉(仙女峰)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풍경이 빼어난 곳에 만든 구역인 경구(景區)가 있습니다. 이 선녀봉 경구의 산 꼭대기 근처에 높이 18m에 무게가 500t이나 되는 
거대한 '백의신녀상(白衣神女像)'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백의신녀는 과연 누구일까요?
 

왼손에 쑥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 마늘을 들고 있는 이 신녀는 다름아닌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단군의 어머니 '웅녀(熊女)'입니다.

안내판의 설명문에는 “백의신녀는 조선민족 고대신화에 나오는 시조모”라며 곰이 사람으로 변해 환웅과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한 뒤 “이들의 자손이 고대 조선민족”이라고 설명하고, “그녀는 중국 조선민족 부녀(婦女)의 근로·용감·선량·미려(美麗)를 표현하고 있다”고 써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백의신녀’의 의상은 중국 옷에 가까웠고, 안내판 어디에도 ‘웅녀’나 ‘단군’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국 당국이 이 '백의신녀' 석상을 세운 것은 2001년 9월로, 2002년 2월에 ‘동북공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등산길 곳곳에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의 모형이 세워져 있고, ‘동굴’을 연상케 하는 터널도 있다고 합니다.  ‘단군신화 테마 파크’가 길림성의 선녀봉에 세워진 셈이지요.




중국은 일찍이 신장, 위구르 지역을 대상으로 한 '서북공정'이나 티베트 지역을 대상으로 한 '서남공정'에서 보여주듯이, 소수민족의 불만을 잠재우고 한족 중심의 대동단결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국책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

 티베트의 성지에 걸려 있는 "중화인민공화국만세!" 깃발.


동북공정은 서북공정과 서남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시행된 것이고, 현재도 장기적인 계획 아래 시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신화공정(神話工程)을 아시나요?


그런데 '동북공정'이나 '서북공정'이나 ‘서남공정’보다 더 은밀하게 진행되면서도 더 무섭고 위험한 공정이 있습니다.

바로 ‘중원공정’으로 중화문명의 핵심 지역인 중원의 고대 문명에 대한 발굴과 역사적 정립을 목표로 하는 거대한 공정입니다.



이 중원공정의 핵심 사업이 ‘신화공정’인데,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중국 고대 신화의 시조신인 '황제 헌원씨'와 '염제 신농씨'를 역사화하는 것입니다.

본래 중국에서는 황제(黃帝)를 중화민족의 정통 시조신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래서 유교의 도통도 ‘황제-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공자-맹자...’로 이어온 것으로 오랫동안 전해졌습니다. 

황제는 <황제내경>이라는 한의학 서적을 지었다고도 하고, 성(性) 지침서인 <소녀경>에도 나오고, 특히 우리 민족과 관련된다고 믿고 있는 치우(蚩尤)를 동아시아 최초의 전쟁에서 물리치고 화하(華夏)족 중심의 중국을 건설했다는 전설상의 신입니다.

               황제릉 헌원묘당 안에 모셔져 있는 황제 석상.



그런데 1980년대부터 황제와 함께 염제(炎帝)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편입하여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라는 의미의 ‘염황지손(炎黃之孫)’ 또는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신화공정은 황제나 염제의 궁궐터나 사당을 복원하고, 초상이나 동상을 만들어 역사상의 실제 인물로 만들고자 하는 사업입니다. 

그 한 예로 이 거대한 인물 두상을 보십시오.


황허(黃河) 유역의 허난(河南)성 퉁멍(同盟)산 기슭에 2005년 10월에 완공된 이 두개의 인물상은 높이 106m로 현존하는 세계의 조각상 중에서 가장 높은 인물상입니다.

동상이 들어선 산 기슭에는 두 인물상 외에 15만㎡의 광장까지 조성했습니다. 이를 세운 황허 경승지 관리위원회 측은 "이 조각상은 전 지구에 퍼져 있는 염황 자손들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자랑했고, 중국 언론들도 "세계의 중국인 모두가 이제는 '원래 우리 조상의 모습이 이렇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얼굴 모습만을 올린 이 조각상은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보다 8m가 더 높고, 소련이 제2차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해 세운 '어머니 러시아상' 가운데 가장 높은 것과 비교해도 2m가 더 높습니다. 눈 길이가 3m이고, 코 길이가 8m에 얼굴 면적만 1000㎡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런 신화공정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중국의 역사는 대략 5000년쯤으로 보는데, 황제가 역사적 인물로 등장하면 1만년 이상의 역사로 확대됩니다. 그러다 보면 중국의 주변 국가의 역사는 전부 중국 역사에 귀속되게 됩니다.



치우천황을 아시나요?

황제의 역사화 작업에서 중국이 가장 고민했던 인물이 ‘치우’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치우는 염제를 보좌했던 장군으로 나옵니다. 염제가 황제와 싸워 패하자 남쪽으로 쫓겨 내려갑니다. 치우는 염제에게 다시 한번 황제와 싸우자고 건의했으나 염제가 이를 거부합니다. 이에 치우가 홀로 황제와 전쟁을 벌입니다.

중국 신화에 따르면 황제와 치우가 수십 번 전쟁을 했으나 결국  '탁록 전쟁'에서 황제가 승리했고, 치우가 죽은 자리에서 붉은 피가 하늘로 치솟았다고 합니다.

죽은 치우는 한을 품은 신이 되어 치우가 노하면 가뭄이 들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가뭄이 들면 치우사당에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빌었고, 장수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치우 사당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의 신화에서는 치우가 황제에 반발한 동북쪽 지역의 반란군의 괴수로 등장해 왔습니다.  이마에 뿔이 돋아 있고, 구리로 된 투구를 썼고 흉측한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치우가 80년 후반 무렵부터 우리나라에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사를 다룬 <한단고기>라는 책이 계기가 되었죠. 

이 책에는 단군시대 이전의 환웅시대와 환인 시대의 역사가 연대기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환인시대는 7대, 환웅시대는 17대, 단군시대는 42대에 걸쳐 흘러 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우리의 역사는 1만6000년쯤 위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영토는 동북아와 중원 전반에 걸치게 됩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정식 역사서가 아닌 위서(僞書)로 취급되는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을 역사라고 주장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어쨌든 1980년대 후반에 이 책이 소개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민족주의 열풍이 일었는데, 바로 이 책에 치우가 등장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환웅시대의 14대 임금인 ‘자오지 환웅’이 중국의 황제라는 인물과 싸워 수십 차례나 그를 물리쳤고, 황제는 멀리 도망갔습니다.

그 뒤로 자오지 환웅은 나라를 잘 다스리며 천수를 누렸는데, 그 분이 바로 ‘치우천왕’이란 것입니다.

중국 신화에서는 치우가 황제에게 패배하고 원통하게 죽었지만, <한단고기>에서는 치우가 황제를 이기고 중원을 다스렸습니다. 

이같은 내용에 열광한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치우천왕을 복원하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뒤 2002년의 월드컵 대회 때에는 붉은악마들이 치우의 형상을 마스코트로 삼았습니다.



그 뒤로 치우천왕을 그린 만화와 판타지 소설도 등장했습니다.

                                 <라이파이>의 작가 김산호 선생이 그린 치우천황.


이런 한국의 치우천왕 복원 운동을 감지했는지 신화공정의 사업내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염황과 동등한 지위로 치우를 신격화시키면서 자신들의 영웅으로 미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중화민족에 저항하는 동북아의 반란군 괴수쯤으로 폄하하던 치우를 염제, 황제와 함께 중화민족의 조상으로 받들어 모시는 상징적인 프로젝트가 '귀근원(歸根苑)'과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의 건립입니다.
 



곧, ‘뿌리로 돌아가는 정원(歸根苑)’에 ‘중화민족의 3명의 조상을 모신 사당(中華三祖堂)’을 치우와 황제의 탁록전쟁 전설이 어려있는 하북성 탁록현에 세운 것입니다. 1992년부터 건립이 시적되어 1997년에야 마무리 된 이 공정은 한반도에서 일고 있는 고대사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기류에 대한 대응으로 시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베이징(北京)의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톈즈호텔(天子酒店)'은 염제와 황제와 치우의 모습으로 건물 자체를 디자인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10층 높이의 이 호텔은 거의 실제 조각상과 흡사하게 만들어져 외국인 뿐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호텔 측에서는 "자신이 숭배하던 우상의 ‘몸속’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면서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세 분의 성인(三聖)' 주는 복과 장수의 기운을 받아가길 바란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 호텔은 인물 형상을 이용한 건축물 중 세계 최대 규모로 기네스 기록에 등재 신청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자, 이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근원으로 돌아가고, 신화를 조작해서 역사화하고, 민족 영웅들을 거대한 기념관과 조각으로 우상화하고, 곳곳에 역사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이 모든 공정들의 배후에는 주변 소수 민족들을 통합하여 '강한 중국'을 건설하려는 '중화민족주의'의 뿌리 깊은 이념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신화의 전문가인 김선자님이 이 모든 비밀스러운 공정들을 오랫동안 추적하여 상세하게 밝혀낸 역작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라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분노에 찬 저자의 다음과 같은 경고가 실려 있습니다.



"기원의 신화가 품고 있는 독을 역사라는 우물에 뒤섞을 때, 그 위험성은 가공할 수준이 된다. 젊은 세대가 역사의 우물에 풀린 기원 신화라는 독에 중독되어 있는 한, 비뚤어진 민족주의자들이 자꾸만 그 치명적인 독을 우물에 풀어 어린 학생들에게 마시도록 권유하는 한, 동아시아 삼국의 열린 사고를 가진 학자들이 각자의 국사를 해체하고 열린 시각으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자고 아무리 외쳐도 동아시아 공동체는 환상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