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관점에서 볼때 <고조선>이 와해되면서 그 군장들 중 하나가 독립국을 세운것이 <흉노국>으로 고조선의
정치체제를 답습한것으로 보입니다. 단군세기에 보이는 흉노의 분리는 국가체제가 아닌 부족체제로 분리되어
나아간것으로 보입니다.
사기나 한서 흉노전에 나타나는 東胡는 기울어가는 고조선연맹으로 비정되고 그동안 흉노의 上國의 위치를 점
하다가 흉노국 2대수장 묵특선우에게 멸망당한것으로 보이고 흉노는 시대적으로 고조선보다는 부여와의 관계
가 깊고 특히 관련 내용이 기술 됩니다. 내몽골의 호화호특시(구 수원 綏遠)에서는 기원전 7세기 이전의 유물들
이 다량으로 쏟아져 이 지역을 동서양 사가들이 흉노의 중심권역으로 비정합니다. 이지역은 상당히 중요한 지역
으로 청왕조에서도 특별히 관리하던 지역으로 歸綏라하였고 호화호특 주변에 보이는 수많은 고려지명은 고구려,
발해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이 됩니다.
고조선->동호->북흉노->서흉노->훈->터키 등으로 발전하면서 서진한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신라는 한족화를 거부한 <서흉노>와 반대로 서서히 중국화한 <동흉노>의 후예 일파들로 정리가 되며 특히 흉노
의 부족역시 모계사회의 전통이 짙게 남아서 <남흉노>의 대족성(貴姓) 연제씨의 후손이 바로 수나라 양광의 처가
,당고조 이연의 처가등으로 그 실세가 약사적으로 한족화되어 대단히 훌륭하게 그 시원을 면면히 이어져 내려
왔다고 불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으로 신라와 당이 서로 쉽게 동맹을 맺을수 있었던 혈족관계의식이 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로 내려오는 인종의 맥은 흉노와는 약간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주목할것은 남흉
노의 남진이 <후한> 이후 5호16국시대의 방아쇠를 당기고 수많이 명멸해간 단명한 중국왕조의 대부분이 흉노
일파였다는것이 사서로서 확인됩니다.따라서 <흉노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동북아와 서역과의 역사적 질서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것 입니다.
심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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