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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요나라)은 우리와 한 핏줄

설레임의 하루 2009. 4. 20. 12:53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 삼신할머니        http://cafe.daum.net/mookto/GXTn/32

 

 

 

우리는 거란에 대하여 학교국사에서 고려시대에 소손녕등이 몇십만 대군으로 1차, 2차에 걸쳐서 고려를 침공한,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민족 오랑캐 정도로 배워 알고 있다.

그리고 현재 방영중인 한국방송2티비의 '천추태후'에서도 거란의 침공을 다루면서 마치 우리와는 상관없는 우리와 철천지 원수인

외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복장도 북방 유목민족의 야만적 냄새가 풍기도록 꾸며서 등장시키고 있다.

 

이것은 이 드라마를 제작하는 연출자나 작가모두 사대주의 노예사관에 따라 리조와 일제가 기초를 다진 것을  친일반민족세력이 이어

받아 만들어 놓은 현행 학교국사책을 배워온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작가는 이 드라마 내용을 '고려사'나,'고려사절요'을 보고 꾸몄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료들은 모두 리조정권때 이성계의 위화도 반란을 정당화하고 이조개창이 필연이며, 고려는 별볼릴 없는 조정이었다는

기조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황제국 대륙고려를 형편없는 사대주의 나라로 깎아 내리는 것이 이 들 사료 편찬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위대한 황제국

대륙고려의 역사는 유린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고려성종이,   한대륙 서쪽 구석에 쳐 박혀 있던 문약한 송나라를 상국으로 모시고 스스로 제후국으로 낮추었다고 날조조작한

것이고, 차이나족을 어버이로 받든 리조는 우리와 한 형제인 거란 요제국을 무식하고 야만적인 오랑캐로 사서에 묘하사고 있다. 

더구나  반도식민노예사관에 따라, 거란과의 1차, 2차 전쟁을 모두 한반도 구석에 설정해 놓고 친절하게 오늘날의 북한 평안도

어디라고 설명하는 기가막힌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거란은 신시배달국 치우천황을 모시고 있고, 무당문화에서도 우리와 같고, 한겨레만이 할 수 있었던  제천행사를 행했다는

외에 차이나족 역사자료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와 같은 형제다.

지금은 이름이 바뀐 체 한대륙에서 소수민족으로 차이나 말을 쓰며 생활하고 있지만 우리의 갈래겨레임이분명하다.

 

칸민족, 즉 조선족, 만주족, 거란족, 몽골족, 부리아트족은 언어의 연금술사들이다.

녹도문자를 위시하여, 칸자(한자)는 물론이고 필요에 따라 부족의 독립성이 필요하다 싶으면 언제든지독자적인 언어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요나라의 태조 야율아보기(872∼926)역시 神冊 5년(920)에 한자의 筆劃과 구조를 참고하여 자기

부족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契丹文字를 창제하였다.

야율아보기가 만든 거란문자는 소위 거란대자인데 한자와 같이 1자가 한 낱말을 표시하는

표의문자였다.

그러나 거란어는 칸민족 고유의 교착어로서 중국어와는 체계가 달랐기 때문에 거란대자로는

자신의 언어를 표기하는 데 아주 불편했다.

그래서 태조의 동생인 迭刺가 새로운 표음문자를 만들게 되었고 이것이 소위 거란소자다.

이와 같이 거란문자에는 거란대자, 거란소자 2종류가 있는데 문제는 각 언어의 해독은 고사하고,

현재 거란대자와 거란소자의 구별조차 잘안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중국에 앞서, 같은 칸민족인 우리나라가 솔선해서 연구에 앞장서야 할텐데도 불구하고,

연구실적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할 말을 잃는다.

遼는 자신의 문자를 만들었지만, 한자를 완전히 폐지하지는 않았다.

거란문자는 요대를 통하여 한자와 함께 병용되었으며, 금이 요를 멸망시키고도 잠시 금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뒤에 금이 칙령으로 거란문자의 사용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그 이후로 거란문자는 죽은

글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미해독 거란문자

 

깨어있는 푸른역사  http://cafe.daum.net/mookto

 

 

거란(고란/고랸/고리안/고랴/고리아/코리아)어

                                                                                  출처: http://www.khaan.net/

 

 

 

고구려의 후계자를 뜻하는 거란(契丹) 또는 고리안(契丹)의 말로 아보기는 우리 말의 아버지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요나라를 세웠던 거란족의 태조 야율 아보기는 아버지 야율이라는 의미가 된다.

아버지 또는 아보기라는 말에는 단순히 생리적으로 나를 낳아준 부모라는 의미보다는 나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 주는

지도자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또한 고구려에 동맹, 동예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듯이 요에는 요천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이렇듯 거란과 우리는 공통점이 너무나 많다.

거란족 역시 우리와 똑같은 바이칼, 단군 조선의 한 핏줄이다.

뿐만 아니라 거란족은 훗날 실위족, 몽골족의 조상이 된다.

중국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거란족의 언어는 우리의 직계 조상인 북부여의 언어와 같았다
고 한다.

즉 <위서 두막루전>을 보면 "두막루국은 옛 북부여였으며 본래는 예맥의 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위서 실위전>을

보면 "실위국은 고막계와 더불어 같은 말을 썼다.

거란, 두막루국도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고, 또 <북사 실위전>을 보면 "실위국은 거란의 무리다.

말은 고막계, 거란, 두막루국과 더불어 같았다"고 하고 있으며, <신당서 유귀전>을보면 "달말루는 스스로 북부여 후예라고

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거란어가 한국어, 몽골어와 같은 계통이라는 사실은 역사기록으로도 명백하다.

 

 

위서 권100 열전 제88 실위전   위서 권100 열전 제88 두막루전
북사 권94 열전 제82 실위전     신당서 권220 열전 제145 동이 류귀전

이런 이유에서인지, 현재 중국학계 쪽에서는 거란어를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언어와 같은 교착어 계통인 거란어를 고립어인 중국어식으로 해독하려 고 드니 해독이 안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거란어의 해독 과제는 당연히 우리나라와 몽골 학자들의 몫이 된다고 할 것이다

 


거란족의 한 후예로서 현재의 다워얼족이 흔히 거론되는 데, 다워얼족의 기원에 관해서는 한 가지 설은 17세기 중엽에

현 러시아 국경과 헤이룽장성 지역 그리고 현 러시아 지역의 징치리(精奇里)강 하구에서 발원하여 이동하다가 수(隋),

당(唐)과 원(元), 명(明)대를 거치면서 헤이룽장 이북에 정착한 토착민족의 후예라는 토착설과, 다른 한 가지 설은,

그들의 언어와 역사, 전설 그리고 많은 문화와 풍습이 거란족과 상통하므로 거란족의 일파라는 거란 후손설이 있는데

거란 후손설이 유력하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노인을 공경하며 서로간의 협동심이 강하며 손님접대를 잘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의상으로는 동 ·하복이 있는데, 공히 긴 외투이고 겨울에는 죽옷을 걸친다.

특징으로는 남자는 모자와 허리띠를 매고, 여자는 장신구를 달아 멋을 낸다.

절기로는 설날(春節), 단오절, 양력 정월 16일의 흑회일(黑灰日)을 지낸다.

결혼은 일부일처제이고 씨족외 혼인이 원칙이다.

결혼은 주로 꽃이 피는 봄에 하며 신랑은 일반적으로 해가 뜰 때 신부를 맞 이하는 풍습이  있다.

장례는 주로 토장(土葬)을 한다.

다워얼족은 풍부한 민간 구두문학을 가진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에 유전하는 이야기는 신화와 사회생활 이야기, 그리고 농민혁명 등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이1644년 러시아가 헤이룽장성 북부지역을 침입함으로 이들은 대거 넌강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후에

청대에 이르러 청장년 수비 대를 조직하여 동서 변경을 지키게 함으로써 현재 일부가 신장의 타청(塔城)현에도 살고

있는 인구분포가 형성되었다.

넌강 중상 류에 정착하게 됨으로 자연히 농경문화가 발달되었고, 강과 산악지대에서는 수렵이 행해지고 풍부한

목초지에서는 방목이 이루어 지고 있다.

현재 정착지대의 집들은 대부분 벽돌로 지어졌고 때때로 초가집도 보인다.

이 곳에 사는 조선족들은 주로 논농사를 짓고 쓰는 말이 다를 뿐, 외부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아서는 구분하기 힘들다.

주식으로는 주로 쌀을 먹는데, 특이한 것은 우유를 넣은 더운 쌀밥, 우유를 넣은 밀, 빵을 먹는다.

그리고 우유와 개고기를 넣은 밀죽을 영양식으로 노인들에게 대접한다.

이 지역에 있는 다 른 소수민족들과 같이 흡연과 술, 그리고 차를 줄겨 마신다.

이 곳은 방문하는 손님들에게는 반드시 담배, 술, 우유차나 유제품 을 권한다.

야기는 19세기 후반에 쓰여진 소년과 의사로서, 봉건사회에 반항하는 영웅 이야기를
매우 박진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다.

노래의 형태로 많이 남아 있 기 때문에 기쁜 모임에서 술을 마신 후 주로 불리워진다.
민간예술은 주로 여성의 섬세한 손으로 만들어지는 자수나 수공예 장식품이 많다.



 

[거란 여인의 장신구]


 

[거란족 여자의 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