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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란(중국식이름 요堯)

설레임의 하루 2009. 4. 20. 12:50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 삼태극      http://cafe.daum.net/mookto/GXTn/17

 

              

 

 구련 = 그란(글안) =거란(요=중국식)

거란족의 원래이름은 고구려시대 내몽고지역 구련성에서 비롯되어 구련이라한다.

거란제국을 선포한 야율아보기의 조상 고섭나는 고구려 구련자사였다.

구려의 연개소문이 죽은 후, 고씨정권이 멸망하고 당시 지배지역인 내몽고지역에서 번성하여 구려영역을 다스리던

한민족 왕조 (916~1125)로서 정복왕조의 하나이다.

 

 창시자는 고려계(東夷系)로써 유목민이었던 구련족의 야율아보기(재위 916∼926)이다.

거란족은 4세기 이후 지금의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 시라무렌강(江) 유역에서 구려의 자치국으로써 영향을

받아 서서히 발전,유지하였는데,9세기말 당이 쇠약해지자 구려 계승을 선언하고 구련(구란)제국을 발흥(勃興)하였다.

 

  질라부(迭刺部=조의선인내부)의 실력자 가문의 후손인 야율아보기는 원칙과 화합을 중히여겨 신뢰를 쌓았고

이를 기반으로 지배원로족장들(韓人)의 지지로 거란제부(契丹諸部)의 통합에 성공하고 군장(君長)이 되었다가

916년에 칸에 즉위하여 서울을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遼寧省 巴林左旗)에 정하였는데 이가 요의 태조(太祖)이다.

태조시대에 서쪽으로는 돌궐족인 탕구트·위구르 등 제부족을 제압하여, 외몽골에서 동투르키스탄에 이르는 지역을

평정한후 고구려계승은 구련이라며 발해와 일전을 벌여 926년6월 발해(渤海)를 정복함으로써 구려의 고지역80%를

회복하였다.

(나머지 20%은 신라지역으로 후일 후 고려의 지역임)

 

요나라 무덤서 1000년된 황금색 브래지어 발굴

소작
황금브래지어

중국 고고학자들이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 아오한치(敖漢旗)에 소재한,

최소한 1000년 이상된 요(遼)나라(916~1125년)무덤에서 황금색 실크

브래지어와 실크 위에 말들이 그려진 그림 조각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아오한치 신후이의 한 마을에서 발굴된 이 황금색 브래지어는 우아하게

디자인되었고, 스타일과 기능 모두 현대 여성들이 착용하는 것과 아주

유사하며, 면으로 패드를 대었다고 발굴에 참여한고고학자들은 밝혔다.

아오한치박물관의 사오 궈티옌 관장은 “이 황금색 브래지어는 재질이 좋은

실크로 만들어졌고, 오늘날의 브래지어들과 꼭같이 어깨끈과 뒷끈이 있다”고 밝히고 “브래지어 컵 속의 면 패드 대부분은 이미 부식됐다”고 말했다.



사오 관장은 같은 무덤에서 발굴된 실크 위에 말들을 그린 그림 조각에

대해 “요나라 무덤들에서자주 발굴되는 회벽에 수채로 그린 프레스코화들 달리, 이것은 독립적인 족자 그림으로 무덤 주인이 좋아하던 소장품이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유목민족으로서 송나라도 크게 위협한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무덤에서 거란족의 가까운 친구인말 그림이 발굴된 것은 처음이며 그들의 생활상도 보여주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고 사오 관장은 밝혔다.

(연사에 요의 소작은 황금내의를 입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 브래지어는 소작의 브래지어였다고 판된된다)

 


 

요나라(거란)  최고의 여걸 소작

 

요나라라 하면 몽골,스키타이족..즉  한민족의 국가입니다.

우리나라 고구려시대 자치성의 하나였던 국가로 전통적인 강력한 기마 군대의

나라였습니다.

요나라 최고의 명장......소작!   이분을 아는분이 별로 없어서 소개합니다.

그녀는 누구인가? 소작은 마치 소설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처럼 가여리지만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가기도 하였고 풍부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상상속 인물과도 같은 여인입니다.

그녀가 요나라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그녀의 화합력과 지혜

때문입니다.

 

원래 요나라도 구려시대 돌궐,가한등 다른 한민족과 다를바 없이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진 세력을 통합하여 만들어진 국가입니다.

 

그런 국가에 그녀는 여러 족장과 노장들과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말에

경청하고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는 타협가였습니다.

그런 그녀의 능력에 족장과 노장들 역시 경의를 표했고 자연스레 그녀는

요나라 최고의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요나라와 대립중이었던 송나라는

요에게 당한 수모를 갚기 위해 요와의 주이동로에 방어진을 구축하고 대원정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소작은 절대 침공 불가지역으로 여겨왔던 송의 방어진을

모조리 부숴버리고 송의 수도로 진격하여 포위에 성공합니다.

 

송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그 시기에 오히려 그녀는 송과 화의를 맺길 권유하고 송의 유지를 선언합니다. 이는 송나라가 존재함으로 인해 요나라는 스스로를 견제할 수 있으며 송을 망하게 할 경우 그 뒤에 이어지는 재앙(권력 다툼이나 송의 재건운동)을 미리 막은 선견지명을 보였습니다.

 

송의 유지를 선언한뒤 그녀는 얼마 안가 세상을 하직하였고 요는 무리하게 고려와 여러차례 전쟁을 벌이다가 국력이 소진하여 나라가 멸망하였는데 당시 거란의 왕족들이 신흥국이었던 몽고군에게 쫓겨 최후의 길로 향한곳이 고려땅이었고 

이 고려땅에서 흡수 소멸되었는데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에 의해 패주되어 원주,

제천지역으로 도망가면서 이곳에서 완전히 흩어져 화전민으로 남습니다.

(생김새가 고려인이나 몽고인과 똑같기때문에 병장구만 버리면 끝남:

이전에 고려를 침공했던 소손녕은 소작과 친인척관계였슴)

 

요나라의 소작은  원나라의 기황후, 청나라 서태후처럼 강력하고 현명한 리더쉽

으로 한세기를 풍미했던 위풍당당한 고려여인들이었다.

특히 소작과 기황후, 서태후는 전쟁보다는 타협을 지향하는 리더쉽으로 나라를 유지한 지도자들이었다.

참고: 연사, 고려사등 4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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