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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족의 군장 징기스칸의 계승!

설레임의 하루 2009. 4. 21. 11:34

*출처:블로그-한국사랑  글쓴이-지성

 

 

 

 

고대 12환국을 재현한 코리족 징기즈칸의 몽골제국-21세기 한국의 꿈이다
● '고리족의 군장 징기스칸의 계승!'

역사속에 존재하는 최고의 정복자는 칭기즈칸임을 현대의 누구나 인정한다.

그는 정복자이자 문명 창조자였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세계 정복에 이르게 하였을까?

그는 왜 자신의 삶을 정복 전쟁에 혼신을 쏟게 했는가?
 
몽골족은 혈통을  중시하는 유목 기마민족이다. 그들은 따라서 협동심과 조직적인 전투역량을 가중 중요시한다.

탱그리는 바로 단군의 몽골식 발음이다.

탱그리는 곧 하느님을 뜻하고 그들은 비록 몽골초원에 살았지만 여전히 단군조선의 영광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부여족의 일파가 고주몽을 선두로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웠다.

그런데 남아있던 부여족의 적장자인 부여본부족은 항상 고구려와 적대관계를 유지하였는데 그 부족 명칭이 부여를 뜻하는 '

부리얏트'족이다.

이 부리얏트족은 광개토대왕의 고조선 고토회복인 다물정책으로 정복되는데 광개토대왕은 이 부리얏트족을 비록 형제의 부족이나

적장자로 고구려보다 우위부족임을 주장하는 그들을 몽골초원으로 이주시켰는데 이 부족이 바로 징기스칸의 조상이 된다.

아버지 예수게이는 이 부족의 추장이었는데 징기스칸이 태어날 무렵 가장 힘이 약한 부족이 되어 있었다.

징기스칸의 본명은 태무진이다. 


 
징기스칸의 부족인 몽골은 앞서도 이야기하였지만 북부여 즉 '부리얏트'족 후손이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시조 볼테치노는 탱그리(단군-하느님)의 천명을 받아 태어났으며 10대를 지나 '알랑고아'란 모계로 이어지고

알랑고아에서 다시 12대가 지나 징기스칸이 태어났다.

1대를 30년이라 보면 약 700년 전이 바로 볼테치노 시대이다.

징기스칸이 1155년에 태어났으므로 징기스칸의 시조 볼테치노가 4세기 후반의 인물이고 이때가 바로 고구려의 가장 위대한 군주인

광개토대왕의 통치시기이다.

바이칼 호수는 밝알호수이며 부르칸산 혹은 불칸산은 밝은산 이므로 태양사상즉 밝음의 광명사상과 통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 강역의 중앙인 만주에 자리 잡은 진한이 삼한의 중심국으로서 단군왕검이 직접 다스렸다.

그리고 요서와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번한과 마한은 각기 단군을 보좌하는 부단군이 다스렸다.

진한의 대단군만이 병권을 장악하고, 번한과 마한의 부단군은 대단군의 명을 받들었다.

이를 일컬어 삼한관경(三韓管境)이라 한다.

징기스칸은 고조선의 삼한관경을 본 받아, 정복한 그 영토를 광명의 나라 한국이라 명명하고 자신들의 아들들에게 분할 통치하게

하였다. 

 

자신의 통치영역을 넷째아들에게 물려주고, 원수 메르킷 부족의 피를 받은

 

첫째 아들 주치에게도 다른 아들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유럽의 카스피해와 아랄해 북방의 영토 분할하여 통치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킵차크 한국이다.

 

둘째아들 차가타이에게는 중앙아시아를 나누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차가타이 한국이며

 

셋째아들 오고타이에게는 일리강 유역과 천산산맥 부근의 몽골고원 분할하여 주었고 이것이 일한국 혹은 오고타이 한국이다. 
 
징기스칸은 질서를 잡고 치안유지와 균등한 징세(徵稅)제도를 중시하여 오히려 점령국 국민들을 차별하지 않고 신앙의 자유를

허용함으므로써 어떤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홍익인간'의 이념에 충실했다고도 할 수 있다.

징기스칸은 단군이 통치하던 고조선의 영역을 회복하고 고조선의 '홍익인간' 사상을 실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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