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풍습

3000년전 한반도 청동기시대 겨울난방 빵빵했다.

설레임의 하루 2009. 3. 14. 15:26

출처: 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글쓴이: 운영자

     

     

    3000년전 한반도 청동기시대 겨울난방 빵빵했다.

    3000년 전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실내 온도는 몇 도였을까?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청동기인들처럼 집을 지은 뒤 난방 온도를 실험했다.

     

    <복원도〉 사상 첫 실험이었다. 겨울철 실내 온도는 섭씨 24도 이상이었다.

    에너지관리공단 권장 겨울철 실내 적정온도(18~20도)보다 높은 수치다.

     

    충청문화재연구원(원장 박순발)은 19일 “지난 겨울부터 충남 아산의 한 발굴현장에서 초기 청동기 시대(서기전 10세기 무렵)

    집을 짓고 고고학 실험을 하고 있다”며 난방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첫째 주거지 내부의 사계절 온·습도 변화 파악. 둘째, 곡물이나 과일 따위를 오래 저장하기 위해 집 안에

    땅을 파서 마련한 ‘청동기판(版) 냉장고’인 저장구덩이가 실제로 내용물의 싱싱도를 얼마나 유지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실험고고학’(Experimental Archaeology)의 한 모습.

     

    정확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3000년 전과 똑같이 집을 지었다.

    평면도는 가로 2.5m, 세로 10m(약 8평)로, 한쪽 변이 길다(세장방형·細長方形). 단면으로 볼 때는 땅을 1.5m 파서 지은

    ‘반(半)지하집’. 바닥은 진흙으로 10㎝ 정도 다졌다. 또 청동기인들처럼 벽체·지붕은 나무로 기둥(혹은 뼈대)을 만들었고 갈대

    등으로 엮고 이었다.

     

    불 때는 곳(화덕자리)은 집 바닥에 가로 세로 30~40㎝ 사각형 모양으로 10㎝ 정도 파서 두 군데 만들었다.

    온도계는 집 가운데와 바깥에 하나씩 설치, 실내외 온도를 비교했다. 땔감은 먼저 숯을 사용한 뒤, 숯불이 약해질 때쯤 지름

    10㎝ 이상 마른나무를 서너 개 올려 지속시켰다.

    허의행 연구원은 “집을 다 지은 3월 중순부터 보름 정도 불을 땠다”며 “4월에는 불을 때지 않은 상태에서 실내외 온도 차를

    살폈다”고 말했다.

    ▲ 복원된 3000년 전 청동기시대 집. 반(半)지하식인데, 통풍 효과가 뛰어나고 비가 새는 일도 없었다고 충청문화재연구원은 밝혔다.

    충청문화재연구원 제공

     

    허 연구원은 “불을 때면서 실내 연기가 어떻게 될까 궁금했는데 모두 천장으로 빠져나갔다”며 “실험 기간 동안 비도

    여러 차례 내렸지만 지붕이 새지 않았다”고 밝혔다.

    갈대 등으로 잘 이은 천장은 통풍은 물론, 방수 효과도 높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오규진 발굴조사과장은 “마른 나무를 몇 개만 올려도 지붕을 태울 듯 불길이 높았다”며 “청동기인 들은 야외에서 만든 숯을

    실내 난방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연구원측은 3월보다 온도가 낮은 한겨울에도 땔감을 조금 더 사용하면 실내 온도를 25도 이상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고대인들이 벌거벗은 채 대충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라며 “충남 부여 송국리 유적(2500여년 전)은 마을 터 마련을

    위해 대형 토목공사를 벌일 정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