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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58마리 생물도감 펼친듯 7000년전 메시지 "서프라이즈"

설레임의 하루 2009. 3. 8. 21:40

 *출처:울산=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40대 남성, 강원 

 

 

고래 58마리 생물도감 펼친듯 7000년전 메시지 "서프라이즈"

울산 반구대 암각화
근래 보기 드문 겨울 가뭄에 걱정들이 많다. 지금 태백 정선 등 식수까지 고갈된 강원 남부지역 주민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드문 겨울 가뭄에 걱정들이 많다. 지금 태백 정선 등 식수까지 고갈된 강원 남부지역 주민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몹쓸 가뭄이 어느 곳에선 뜻하지 않는 혜택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울산에 있는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다.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 상류 깎아지른 절벽에 새겨진 그림이다.

해양동물과 육상동물이 함께 그려진 선사시대의 기록. 세계가 인정한 귀중한 암각화다.

이 암각화는 일년 열두 달 중 8개월가량 물속에 잠겨야 하는 신세다.

암각화가 발견된 건 1971년. 이 일대를 수몰시킨 사연댐이 조성된 지 6년 후의 일이다.

7,000년을 부서지지 않고 견뎌온 암각화가 물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전에 발견됐다면 댐이 지어지지 않았을 텐데  반구대암각화의 비극이다.


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강구되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댐을 없애는 게 가장 좋지만 울산 시민의 식수원이라 간단치 않다.

터널을 뚫어 물길을 돌리는 안도 논의됐지만 막대한 예산 때문인지 실행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이 물 속의 암각화를 긴 가뭄 덕에 아주 가까이서 실제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암각화가 있는 하천의 바닥으로 내려섰다.

좁은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7,000년 전의 메시지를 읽어 내린다.


다른 바위에 비해 유독 붉은 빛이 진한 한 개의 바위면. 고래, 호랑이, 사람의 얼굴 등 많은 무늬가 새겨져 있다.

가까이 다가서도 그림들이 아주 선명해 보이진 않는다.

물이끼까지 껴서 선들의 윤곽은 더욱 흐릿하다.


암각화의 그림을 자세히 보기 위해선 암각화 진입로 초입의 '반구대 암각화 전시관'을 찾아야 한다. 지난해 문을 연 전시관이다.

전시관의 정상태 자문위원으로부터 암각화의 놀라운 가치를 전해 들었다.

암각화엔 고래와 함께 다양한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이 반구대암각화를 세계적인 유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58마리의 고래 중 작살을 맞고 있는 고래 그림이다.


정씨는 "멕시코 러시아 북유럽 등지에도 고래 암각화가 발견됐지만 고래잡이를 그린것은 전 세계에서 이것 하나뿐"이라고 했다.

곧 반구대암각화는 인류 최초의 고래 잡는 그림이다.


작살 맞은 고래 위에 있는 새끼를 업고 가는 고래 그림도 눈여겨 볼 만하다.

아다시피 고래는 숨을 쉬는 포유류다.

어미 고래는 갓난 아기 고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30초에 한 번씩 물 위로 쳐 올린다고 한다.

이런 광경은 지금도 배 위에서는 쉽게 관찰되지 않는 모습이다.

수중카메라로나 볼 수 있는 광경을 어떻게 보고 그려냈는지 미스터리다.


당시의 고래 관찰력이 대단했다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58개의 고래 그림 중 어느 것 하나 대충 새긴 게 없다.

흰수염고래, 귀신고래, 향고래 등 종류별 고래의 특징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로선 첨단 중의 첨단인 '부구'란 도구를 이용해 잡은 고래를 배로 끌고 오는 모습도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씨는 "반구대 암각화 그림은 처음에 고래 그림이 그려지고 이후 다른 동물들이 그 위에 덧그려졌다"고 설명했다.

다른 그림을 그리면서도 고래 그림을 훼손하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암각화가 그려진 곳은 높이 3m, 길이 10m 정도의 바위 면. 인근의 다른 바위에도 충분이 그림이 그려질 만한데 유독 이 바위에만

그려진 건, 이 바위만이 가진 신성성 때문일 것이라 추측된다.

고래를 많이 잡게 해달라거나 잡은 고래의 혼을 빌어주는 의식으로 그려졌을 고래 그림.

그 그림이 이 곳에 그려져야만 효험이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닐까.

신라인들이 경주의 남산에 유독 불상을 새겨 놓으려 했던 것처럼, 이 바위엔 중요한 상징이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산책로를 따라 한두 시간 걸으면 또다른 암각화인 국보 제 147호 천진리 각석을 만난다.

반구대 암각화가 실제를 자세히 묘사한 정밀화에 가깝다면 천전리 각석의 그림은 뜻 모를 무늬로 가득한 추상화다. 마름모, 물결,

동심원 등 기하학적 문양이 바위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그림이 새겨진 평평한 바위 면은 묘하게도 15도 각도 기울어져 비바람을 피할 수 있다. 각석 아래 부분엔 신라 법흥왕 때 새겨진

명문(銘文)이 있다.

당시 화랑들의 이름이나 직위가 적혀 있어 신라사 연구의 중요 자료로 인정 받고 있다.
천전리 각석은 주변의 빼어난 풍경을 찾아 신라 왕족의 나들이 장소로 애용됐던 곳으로 추정된다.  

각석 앞 물을 건너면 큰 걸음을 걷던 공룡의 발자국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