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초기삼국의 위치와 한사군의 위치

설레임의 하루 2009. 3. 4. 02:36

*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보이는 흔적   글쓴이: 운영자

 

 

 

 

 

*초기삼국의 위치와 한사군의 위치

 

이 지도를 그릴 때 삼국과 대방, 낙랑의 상대적인 위치를 정한 조건은 대륙사서 [삼국지],[양서], [구당서], [신당서]

등의 기록으로 비정되는 3세기 조위의 대방군과 낙랑군의 위치를 먼저 정하고, 다음으로 삼국사기와 [후한서],

[삼국지]의 동옥저전과 예전, 한전을 검토하여 삼국과 낙랑, 대방과의 접촉기록을 바탕으로 비정한 것입니다.


- 대방은 하북성 중부에서 남부 황하 하류까지 정도에 위치


- 낙랑은 대방의 동북으로 인접하며 난하로부터 서쪽으로 북경 정도까지 위치


- 고구려는 난하를 사이에 두고 낙랑과 접하며 대방과는 직접 만나지 않는 위치


- 신라는 대체로 낙랑의 서북에 인접해 있었고 대방과는 직접 만나지 않는 위치


- 백제는 북으로 올라가면 신라의 서쪽과 만나고, 동으로 낙랑과 인접하는 위치에 있고, 동남으로는 대방과 인접하면서 충돌이 전혀

  없는데 대체로 지금의 북경의 서남쪽에 위치


- 신라와 고구려는 단단대령(今칠로도산)을 사이에 두고 동에는 고구려, 서에는 신라가 위치하였고 태백산과 북명(예맥)이란 지명이

  양국의 기록에 동시에 나타나므로 태백산은 단단대령에 있는 산으로 보아야 함.


- 신라와 고구려의 강역은 그 선대의 예맥의 고지에 해당하고 대륙국가의 군현인 대방과 낙랑은 과거 조선구지이자 삼한고지에

  해당하는 것임.

 
- 말갈은 부여계로 보이는데 산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마한도 비슷하게 삼국과 두루 접촉하는

  비슷한 기록들이 있음.

 

일제시대 이래로 현재까지도 한일양국 학계의 통설? 정설은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의 강역을 요동 이남으로만 놓고 보기 때문에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이 미리 설정된 강역에 맞춰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여 초기 3세기 동안의 기록을 위사로 간주하여 불신하고,

삼국의 건국연대조차도 무려 3세기 정도나 인하하여 고대사를 해석해 오고 있다.

 

한일양국 학계는 지금도 한의 4군을 요동 이남으로 비정하면서 낙랑군과 대방군이 4세기 초반까지 반도의 서북지방에 있었다는

억설을 굽히지 않고 있고, 중국은 고구려사를 자국의 변방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이런 한일양국 학계의 허황한 설을

가져다 그걸 바탕으로 동북공정을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륙사서의 대방군과 낙랑군에 대한 기록을 검토해본 결과 3세기 조위의 대방군은 하북성에 있었고, 낙랑군 역시 그에

인접해하북성의 동부에 있었음을 간단히 밝혀내게 되었는데, 조위의 대방군과 낙랑군은 그 선대의 후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후한 역시 전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말을 바꾸면 한의 4군은 지금의 요하 이동에 설치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 군의 위치비정은 놀랍게도 한일양국 학계가 불신하는 바로 그 삼국사기 초기기록으로 탄탄하게 뒷받침된다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각급학교에서는 매국매족적인 한사군 재반도설이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무차별 주입되고

있는 중이다.

학계의 그릇된 역사관에 따른 교육의 폐해는 국민성을 그르치고 국가와 민족의 장래까지도 암울하게 만들게 될 것이고, 인국으로부터의 역사침략에 이어 영토까지도 침탈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학계의 잘못을 바로 잡고 그릇된 역사관을 불식시키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기록의 올바른 해석을 제시하여, 삼국이 모두

대륙에서 건국하였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국가를 유지하였으며, 조선의 고지는 대륙이었고 따라서대륙국가의 군현도 대륙에 있었다는

역사적 진실을 모든 국민들에게 시급히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