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心濟
일괄해 보건데 가야라는 북방기마민족의 유물의 특성을 그대로 답습하고있고 부여의 철기문명의 후예로 판단됩니다. 판갑의 형태로 볼때 이후에 일본무사 갑옷의 원형이 되는것으로 직관적으로 관찰이 됩니다.(운영자)
짚신모양 토기(부산 복천동 53호분 출토) 쇠뿔잡이 항아리
형태와 기능학적으로 보아 후대 조선의 두정갑옷의 투구와 다른것이 없습니다. 목걸이(김해 구지로 38호분 출토) 동검 동경 곡옥(김해 양동리 55호 목관묘 출토) 일본 천황가에서는 劍.鏡.玉을 3종의 신기로 받든다.
기마 인물형 토기(국보 제275호, 김해 출토로 전해지며 경주국립박물관 소장) 가야 무사의 방패 갑옷 등 무구와 말갑옷 등자(발걸이) 등 마구를 연구하는데 더없는 귀중한 유물.
호랑이 모양의 띠고리(김해 대성동 23호분에서 출토)
호형대구(虎形帶鉤)라고도 하며, 말을 탈 때 상의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허리에 두르는 청동혁대이다. 이것은 무덤의 주인공이 말을 타는 기마인임을 실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청동솥(김해 대성동 47호분 출토)
오르도스형 청동솥이라고도 하며 고대 유목 민족들이 말을 타고 이동할 때 밥을 지어먹기 위한 용도나 신성한 제기 역할을 했던 기미민족 필수의 도구였다.
삼지창과 도끼(김해 대성동 2호분 출토) 철제 말재갈(김해 대성동 2호분 출토)
중국 후한 대 제작된 사신박국경(四神博局鏡)인 이 거울은 금관가야의 활발했던 대외교역을 말해주는 하나의 물증이다.
철제갑옷(김해 양동리 78호분 출토)
가야의 민족적 원류는 어디인가? 흐름으로 보면 신라계와 다르지 않고 문화 전통적 특성이 같다고 본다.
기마민족의 특징을 제대로 갖추고 있고 고대문물의 흐름을 보면 고조선(東胡, 凶奴는 그 일파)의 문화적 위치에서 부여의 문화적 토양을 받아 자라나고 고구려 와 백제 신라,가야는 그 특질이 다르지 않다. 기원전 이미 부여의 문명이 한반도를 통해 가야인을 통해 열도의 고문명을 형성하고 그 문물이 규슈지역으로 먼저 전파가 시작되었다고 판단이 된다. 그 후에 백제 순으로 전파되었다고 본다. 요시노가리 유적에는 가야의 철정과 철검 판갑의 형태가 매우 같은 모습으로 발굴되었다.(운영자)
가야무사의 철갑무장도
가야의 단조판갑 과 투구 (투구에 깃털을 꼽았던 흔적이 있다)
倭 武人將帥들의 輕裝甲과 투구일습.
실제 재질은 대나무나 가볍고 강도 높은 나무를 가공하고 깎아서 가죽과 함께 제작했다. (일본 나고야성 천수각에 있다) 가야 판갑과 발전적 형태나 선이 거의 같다. --사진과 사진 설명- 네이버 바른소리님 블로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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