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伽倻國의 문물은 바로 일본문화의 根幹

설레임의 하루 2009. 3. 4. 02:21

*출처: 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心濟

 

 

 

 

일괄해 보건데 가야라는 북방기마민족의 유물의 특성을 그대로 답습하고있고 부여의 철기문명의 후예로 판단됩니다.

판갑의 형태로 볼때 이후에 일본무사 갑옷의 원형이 되는것으로 직관적으로 관찰이 됩니다.(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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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짚신모양 토기(부산 복천동 53호분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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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뿔잡이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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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투구(김해 대성동 18호분 출토)

형태와 기능학적으로 보아 후대 조선의 두정갑옷의 투구와 다른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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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걸이(김해 구지로 38호분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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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검 동경 곡옥(김해 양동리 55호 목관묘 출토)

일본 천황가에서는 劍.鏡.玉을 3종의 신기로 받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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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두대도(김해 대성동 2호분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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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 인물형 토기(국보 제275호, 김해 출토로 전해지며 경주국립박물관 소장)

가야 무사의 방패 갑옷 등 무구와 말갑옷 등자(발걸이) 등 마구를 연구하는데 더없는 귀중한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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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모양의 띠고리(김해 대성동 23호분에서 출토)

 

호형대구(虎形帶鉤)라고도 하며, 말을 탈 때 상의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허리에 두르는 청동혁대이다.

이것은 무덤의 주인공이 말을 타는 기마인임을 실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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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솥(김해 대성동 47호분 출토)

 

오르도스형 청동솥이라고도 하며 고대 유목 민족들이 말을 타고 이동할 때 밥을 지어먹기 위한 용도나 신성한 제기 역할을 했던

기미민족 필수의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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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창과 도끼(김해 대성동 2호분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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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제 말재갈(김해 대성동 2호분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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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거울(김해 대성동 23호분 출토)

 

중국 후한 대 제작된 사신박국경(四神博局鏡)인 이 거울은 금관가야의 활발했던 대외교역을 말해주는  하나의 물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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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갑옷(김해 양동리 78호분 출토)    

 

 

 

가야의 민족적 원류는 어디인가? 흐름으로 보면 신라계와 다르지 않고 문화 전통적 특성이 같다고 본다.

 

기마민족의 특징을 제대로 갖추고 있고 고대문물의 흐름을 보면 고조선(東胡, 凶奴는 그 일파)의 문화적 위치에서 부여의 문화적

토양을 받아 자라나고 고구려 와 백제 신라,가야는 그 특질이 다르지 않다.

기원전 이미 부여의 문명이 한반도를 통해 가야인을 통해 열도의 고문명을 형성하고 그 문물이 규슈지역으로 먼저 전파가

시작되었다고 판단이 된다.

그 후에 백제 순으로 전파되었다고 본다.

요시노가리 유적에는 가야의 철정과 철검 판갑의 형태가 매우 같은 모습으로 발굴되었다.(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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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무사의 철갑무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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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단조판갑 과 투구 (투구에 깃털을 꼽았던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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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 武人將帥들의 輕裝甲과 투구일습.

 

실제 재질은 대나무나 가볍고 강도 높은 나무를 가공하고 깎아서 가죽과 함께 제작했다.

(일본 나고야성 천수각에 있다)  가야 판갑과 발전적 형태나 선이 거의 같다.

--사진과 사진 설명- 네이버 바른소리님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