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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김씨 왕족은 흉노족의 후예

설레임의 하루 2011. 10. 13. 23:28

출처:역사복원신문

 

 

신라 김씨 왕족은 흉노족의 후예 (1/4부)

조선연방의 일원인 흉노족과 신라 김씨와의 관계는?
 
성훈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1/09/03 [17:49]
     본 시리즈는 4부에 나뉘어 동영상과 함께 연재됩니다. 아래는 제1부입니다.
 
 
2009년 하반기에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흉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였던 김일제(金日磾, bc134년~

 

bc86년)가 신라 김씨의 조상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근거로는 ad 1796년 경주에서 발견된 ‘문무대왕릉비’와 1954년 섬서성 서안에서 출토된 ‘대당고김씨부인묘명

 

(大唐故金氏夫人墓銘)의 명문이 소개되었다.

문무왕비문에는 문무왕의 조상은 “투후로 하늘에 제사지냄이 7대를 이어져....1

 

5대조인 성한왕(秺侯祭天之胤傳七葉...15代祖星漢王)”라고 밝히고 있으며, 또한 ‘대당고김씨부인묘명’은

 

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한나라에서 투후 벼슬을 받았던 김일제가 신라 김씨의 조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역사스페셜이 방영되자 대부분 사람들은 감숙성에 있던 흉노족의 후손이 어떻게 한반도 신라 김씨의

 

조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고, 그나마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은 김일제의

 

후손이 멀리 한반도 경주까지 왔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의구심과 해석은 신라를 한반도 경주에 놓고 보는 식민사학의 이론으로는 잘 이해가 안되는

 

점이 많았다. 

그러나 아래 글을 읽어보면 김일제가 신라 김씨의 조상이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초기신라는 한반도가 아닌 산서성 임분시 일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나라와 신라 땅은 그다지 멀지 않았기 때문에 김일제의 후손들이 난을 피해 요동(임분일대)으로

 

도망가 거기서 신라 김씨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 섬서성 서안에 있는 김일제의 묘비석. 흉노 휴도왕의 태자 김일제는 신라 김씨의 시조이다.     © 역사복원신문


조선연방의 일원인 흉노의 태자 김일제  

우리는 흔히 흉노와 조선을 별개의 민족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한단고기 단군세기>에 따르면,

 

“3대 가륵단군 b.c 2177년 열양(列陽)의 욕살 색정(索靖)에게 명하여 약수(弱水)로 옮기게 하고 종신토록

 

갇혀 있도록 했다.

 

뒤에 이를 용서하시고 그 땅에 봉하니 그가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
는 기록이 있어 흉노는 초기부터 조선의

 

제후국으로 조선과 밀접한 관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1세 소태단군 b.c 1289년 개사원의 욕살 고등(高登)이 많은 군대를 손에 넣고 서북(흉노)의 땅을

 

차지하고는 우현왕(右賢王)으로 임명해 줄 것을 청했다.”
라는 기록이 있고, 고등의 손자인 우현왕 색불루는

 

정변을 일으켜 단군조선의 22대 단제(檀帝)로까지 등극한다.

 

이와 같이 흉노는 곧 조선의 일부로 한 몸이었던  것이다. 

신라 김씨의 조상이 되는 김일제(金日磾, bc 134년~86년)는 흉노족 휴도왕(休屠王)의 태자였다.

 

부왕이 한무제(漢武帝) 때 곽거병(霍去病)과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중국으로 끌려와 처음엔 말을 키우는

 

노비(馬奴)로 살다 한무제의 눈에 띄어 마감(馬監)이 된다.

 

그리고 한무제를 암살하려는 자를 무제 앞에서 격투 끝에 체포한 공으로 제후인 ‘투후(秺侯)’라는 벼슬까지

 

받는다.

김일제는 한 무제로부터 김씨(金氏) 성을 하사받는데, 본시 휴도왕이 금인(金人)을 만들어 제천(祭天)한

 

까닭으로 김씨 성을 주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마지막의 사관논찬과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신라인이 소호김천씨의 후손이기

 

때문에 성을 김씨라고 했다”는 이유가 잘 설명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무제는 죽을 때 김일제 등 3명의 고명대신(顧命大臣)에게 어린 소제(昭帝)를 잘 보필해달라는

 

유지를 내린다. 즉 김씨가 한나라 조정의 권력핵심에 들어간 것이었다.

 

죽어서는 곽거병과 함께 한무제의 묘역에 안장되기도 한다.

 

김일제의 투후(秺候) 벼슬은 자손들에게 세습되어 7세를 전한다.
 

▲ 섬서성 서안에 있는 한무제의 묘역에 있는 김일제의 묘.

    그의 후손들이 한나라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로 한족인 곽거병의 묘에 비해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다.

    김일제는 김씨의 시조이다.     © 역사복원신문



이러한 김씨 집안의 대략적인 내력이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에 기록되어 있다.

 

김씨부인은 이구라는 당나라 사람의 후처로 들어가 장안에서 살다 서기 864년에 3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는데, 신이 살던 섬서성 서안에서 발굴된 그녀의 묘비명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있다.
 
" 태상천자(太上天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내셨으니 이름하여 소호씨금천

 

(少昊氏金天)이라 하는데, 이분이 곧 우리가 받은 성씨(김씨)의 세조(世祖)이시다.
(중략)

 

먼 조상의 이름은 일제(김일제)이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전한)에 투항하시어 무제(武帝)

 

아래서 벼슬하시었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한무제께서) 그를 발탁해 시중과 상시에 임명하고 투정후에 봉하시니, 이후 7

 

대에 걸쳐 벼슬하였고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경조군(서안)에 정착하게 되니 이는 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중략)


한(漢)나라가 덕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난리가 나서 괴로움을 겪게 되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 피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은 요동(遼東)에 숨어살게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김씨 부인의 먼 조상이 흉노 휴도왕의 태자인 김일제이고, 김일제는 소호금천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1954년 섬서성 서안에서 발견된 김씨부인(신라인)의 묘비. 신라 김씨의 기원이 적혀있다.     

곧 (2부)에서 그 의문이 풀립니다.

기사입력: 2011/09/03 [17:49]  최종편집: ⓒ 역사복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