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신라 금성 = 부여(조선)의 도읍 = 진한

설레임의 하루 2011. 10. 13. 23:27

*출처:역사복원신문

 

 

 

 

 

신라 금성 = 부여(조선)의 도읍 = 진한 (4/4부)

김일제 후손들이 옮겨간 요동 = 기준이 도망간 한(韓)의 땅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1/09/26 [10:38]

신라 김씨의 조상이 되는 김일제의 후손들이 옮겨간 곳은 신라의 초기도읍지 금성으로 산서성 임분시 일대이다.

 

이곳이 요동군의 땅이었기 때문에 김씨 부인의 묘비명에 “우리 집안은 요동(遼東)에 숨어살게 되었다.”라는 문구가 기록된 것이다. 


또한 이 일대는 번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이 위만에게 패해 도망가 한(韓)을 세우고 성을 기씨(箕氏)에서 한씨(韓氏)로 바꾸고 한왕

 

(韓王)이 된 곳이다. 기준은 청주 한씨의 시조이며, 기준의 41대 조상은 바로 기자(箕子)이다.  


청주 한씨 문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세조 때 문신이었던 한명회(韓明澮)로 그가 받은 군호는 상당군(上黨君)이다.

 

상당이라는 지명은 한씨를 상징하는 단어인데 한씨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청주시에 상당구가 있는데, 그곳은 원래

 

기준이 살던 땅이 아니다.  


기준이 살던 상당은 중국 산서성 장치시 장자현 일대로 임분시 동쪽에 있다.
上党,《释名》曰:“党,所也,在山上其所最高,故曰上党也。”上党地区位于今天山西省的东南部,主要为长治、

晋城两市.它是由群山包围起来的一块高地。
상당 : 상당지구는 산서성의 동남부로 장치시와 진성시 일대이다. 

▲ 위만과 기준의 행적을 지도에 표시하면 위와 같다. 위만은 패수를 건너오고 기준을 공격하자 패한 기준이 海로 들어가 한의 땅으로 갔다고 한다.   임분시 우측에 상당(장치시 장자현)이 보인다.                    ©역사복원신문

 

韓地는 옛 조선 땅으로 신라의 발생지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에게 패한 번조선왕 기준이 도망간 한의 땅(韓地)은 전국시대 한나라(하남성) 땅이 아니라, 바로 단군조선 즉

삼한(三韓)의 땅인 것이다.

삼한 중 진한(辰韓)의 땅은 신라로 발전하고, 마한(馬韓)은 백제로 발전하고, 변한(弁韓)은 가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 북부여는 삼한의 북쪽에 위치하는데 나중에 고구려로 국호가 바뀌게 된다.
패수위치 :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172§ion=sc6§ion2

<한단고기 삼성기전 상>에 “B.C 108년 한무제는 군대를 움직여 우거를 멸망시켰다. 서압록 사람인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단군이라 했다.

B.C 86년 한나라 소제 때 부여의 옛 도읍을 차지하여 동명(東明)이라고 나라 이름을 붙이니 이것이 곧 신라의 옛 땅이다.”라는

기록이 있어 ‘부여의 옛 도읍 = 진한(辰韓) = 신라의 옛 땅’이란 말이다.

여기서의 부여는 북부여가 아니라 조선의 44세 구물단군 때 대부여로 국호를 바꾼 단군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부여의 도읍은 장당경(藏唐京)으로 글자 그대로 요임금의 당나라 도읍인 평양(平陽)으로 역시 산서성 임분시 일대로 그곳에

요임금의 무덤이 있다.  

<후한서 동이전>의 기록에 따르면, “한은 세 종족이 있다. 첫째 마한이요, 둘째 진한이요, 셋째 변한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어 54국이

고...진한은 동쪽에 있어 모두 12국인데... 진(秦)나라 사람들이 괴로운 역사를 피해서 韓으로 도망가자 마한에서 동쪽 국경 땅을

쪼개어 이들에게 주었다. 이곳을 진한(辰韓)이라고 한다.”여기서 韓이란 옛 단군조선(삼한) 땅을 의미한다.

위 기록에서 나중에 신라로 발전하는 진한은 과연 어디일까? 진한은 조선의 삼한 중 천왕(단제)께서 직접 다스리던 땅으로 대부여의

도읍이 있던 곳으로 바로 산서성 임분시 일대이다.

그 결정적인 유적의 증거가 바로 신라의 초도였던 금성(金城) 유적지인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삼국사기>에 기록된 초기신라의 기록과 <환단고기>와 여러 사서에 기록된 진한(辰韓)에 대한 기록이 정확하게

일치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신라 김알지의 조상으로 언급되는 흉노출신 김일제의 스토리까지 완벽하게 성립이 되는 것이다.


▲  적색은 식민사학의 이론, 청색은 재야사학의 이론으로 둘 다 연나라를 북경으로 

     보았으므로 옳지 않은 이론이다.

   왜냐하면 위만이 건넌 강인 패수는 하남성 제원시를 흐르는 강이기 때문이다.다.                       ©역사복원신문

 

필자가 신라의 초기도읍지 금성이 산서성 임분에 있었다고 주장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의 식민사학의 이론이 한반도 경주를 금성이라 하고 있으며, 삼국의 위치를 대륙에 놓고 보는 재야의 학자들조차

명확한 위치를 비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제 후손들의 기록이 말해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금성 유적의 발견으로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김일제 후손들이 한(漢)나라의 난을 피해 옮겨간 요동(遼東) = 신라의 옛 땅 금성(金城) = 부여(조선)의 옛 도읍인 장당경(藏唐京) =

진한(辰韓) = 기준이 도망간 한(韓)의 땅
이것이 역사의 진실이며, 이를 유적으로 입증한 것이 산서성 임분에서 발견된 금성유적인 것이다.  

▲ 산서성 임분에서 발견된 신라의 초기도읍지 금성. 金城이라는 글자가 뚜렷하다.                         ©역사복원신문



기사입력: 2011/09/26 [10:38]  최종편집: ⓒ 역사복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