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려

[스크랩] 사천성 성도의 왕건묘는 고려태조 왕건의 묘다.

설레임의 하루 2011. 9. 3. 05:08

사천성 성도의 왕건묘는 고려태조 왕건묘다.

 

[왕건묘위치]

대륙당국은 "전촉왕 왕건묘"  현지에서는 토속거주인은 "가우리(고려) 왕건묘" 라 부른다. 사천성 성도(청뚜) 시내의 영릉로에
 있는 왕건묘는 위치하며 전촉왕 왕건묘라고도 하며 현재는  영릉이라 표기되어 있다. 10세기 초 혼란기에 성도를 중심으로 전
촉(前蜀:903~925)을 세운 왕건의 묘로 永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고려태조 왕건의 묘로서 왕건이란 인물은 대륙에서 오직 하
나이다.

 

[묘의 구성]  

적사암으로 만든 묘실은 전실과 중실, 후실로 나뉘고, 전 길이 23.4㎝로 관좌양측에는 12위의 역사상(力士像)이 늘어서 있고,
동. 서. 남의 3방에는 24위의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기생상이 새겨져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의 특징을 보면 각각의 그림이
각기 다른 자태와 조형의 미를 보여주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왕건의 묘는 1942년에 발굴되었고 1961년 국무원에 의하여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었는데 무덤의 길이는
80m정도에 15m높이로 묘실이 남아 있다 .

 

[묘명의 변경]

왕건묘가 대한민국인에게 알려진 이후 왕건묘는 영릉으로 바뀌어 고려왕건의 이미지를 지우고 있다.

   

 

 [왕건묘의 내부사진]

 

 

  

 

 

 

[사천성 성도(청뚜)]

 

왕건릉안의 정경





 [성도]

 

성도는 사천분지의 서부평원으로 “천부지국”사천성의 성도이며 중국의 역사문화도시 중 하나로서 중
국 서남부의 중요한 상업무역, 금융, 과학기술의 중심지이며
교통과 통신의 중추지역이다. 성도는 국무
원에서 발표한 24개 역사문화도시 중 하나이며 전국 보호문화재 4곳을 보유하고 있다.
(두보초당, 무후사, 왕건묘, 도강언
 수력공정),성급 보호문화재19곳, 시급 보호문화재 94곳이 있다. 성
도의 주변지역으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낙산대불, 삼소사, 아미산, 구채구, 황룡사, 와룡산
자연보호구,
검문독도 등의 많은 명소가 있다.

 

폄하한 듯이 보이는 지나측 기록에의하면 왕건은 불량한 한량출신으로 전촉군주가 되었고 전촉이 망
하고 고려군주가 되었다. 정인지 고려사는 조선때 수없이 개찬
된 왜곡사서지만 여기에는 왕건당나
라 숙종의 혈통으로 나온다-  이것이 고려사에 등장하는 보육과 작제건 신화다. (안원전홈페이지 참조)


 [의의]

 1. 동시대에 있던 고려태조 왕건릉,   고려가 한반도에만 있었다면, 거론의 가치도 없건만, 고려가 대륙
에 위치했다는 사실하나만으로 왕건릉,왕건묘는 귀중한 발견이고, 귀중한 유물이다.


2. 사천성 성도(成都)에 왕건의 묘는 1942년 이곳 주민들이 일본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방공호를 파
다가 우연히 발견이 되었으며 1961년 국무원에 의해 전국중점 문물보호 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前蜀王인 王建(AD.847-918) >

3. 왕건은 성씨로는 대륙에서 일인이라 한다. 한반도에 왕건이 없으므로  성도의 왕건은 태조왕건이 분
명하다. 대륙에서는 한량군주로 폄하하고 있고, 대한민국에선 대륙고려를 인정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
지만, 재야역사가중 대륙고려 관련 연구회, 안원전등에서 왕건묘의 왕건을 태조왕건으로 인정하고 연구
를 지속하고 있다.

4. 왕건묘가 지상에 알려진 이후부터  한반도의 대한민국인의 방문이 잇자, 대륙당국은 왕건묘에서 영
릉으로 묘지명을 바꾸어 버렸다. 고려의 연관성을 없애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현지인들이 왕
건묘의 왕건을 고려인 왕건으로 부르고 있다고 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올 뿐이고....


5. 잊혀져 가기 전에 태조왕건의 릉을 복원하고자 할 뿐이고...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처음발견당시의 왕건묘

 

 

후대 영릉으로 변경함 

끝.

 

출처 : 지구조선사연구회
글쓴이 : 러브 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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