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 진달래꽃 http://cafe.daum.net/mookto/GbA8/88
수많은 소수종족으로 이루어진 차이나, 통치철학이 얕은 정권이 오래가길 바라는 것은 무리죠. 차이나 인민을 먹여살릴 능력이 없다면 마땅히 물러나고 각 성마다 독창성을 살려 분리독립시키는 것이 낫습니다.
중국 생계형 시위 급증 공산당 체제마저 위협? 중국에서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생계형 시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공산당 체제까지 위협받고 있다. 갈수록 시위방법이 과격해지고 참가자 수도 늘어나는 데다 직군도 공장 노동자에서 택시기사, 경찰까지 다양해지자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명보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4일 보도했다. 중국 경찰이 공산당사에서 시위를 벌인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시위 경찰들은 현재 650∼1000위안인 봉급을 후난성 성도인 창사시의 경찰 봉급인 2000위안 수준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3시간 정도 당사 출입문을 봉쇄한 채 집기와 의자를 부수는 등 격렬하게 항의했다. 경찰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파업은 평화적으로 진행됐지만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최대 규모 파업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지난달 3일 충칭에선 택시기사 8000여명이 사납금 인하등을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이어 10일엔 하이난성 싼야, 20일엔 광둥성 산터우, 27일과 29일엔 광둥성 둥관과 차오저우에서 잇따라 택시기사들이 파업을 했다. 대부분 사납금 문제와 불법 택시영업 단속 등에 항의하는 것이었다. 재개발변경계획에 불만을 품은 시위대는 이주대책 보장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들은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보도블록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경찰 등 60여명이 다쳤고 관용차 11대가 불에 탔다. 같은 달 6∼7일엔 저장성 사오싱에서 공장 폐쇄로 거리에 내몰린 화학공장 노동자 1200여명이 체불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도로를 막고 경찰과 극한 대치를 벌이기도 했다. 국가부주석이 3일 광둥성 광저우를 방문한 것도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지난달에는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잇따라 지방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게다가 기업 도산으로 일자리를 잃은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노동자)들이 대거 귀향하는 사태가 또 다른 사회불안 요인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 중국 당국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베이징=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
<中 실직 농민공 '절망의 기차' 타고 귀성행렬>
"귀향 농민공 동요 막아라"…100억위안 지원 맞고 '절망의 기차'에 올라 속속 귀성 행렬에 오르고 있다. 변모할 것을 우려해 지원책을 마련하는 한편 감시망 가동에 들어갔다. 없는 농민공이 내년까지 2천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비공식 통계로 농민공의 수는 2억1천만명에 달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 10월 초부터 시작됐다. 버스 정류장에는 귀향하는 농민공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중국 농민공들은 매년 춘제를 한달 앞두고 귀향길에 오르기 시작했으나 올해는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상당수가 경기침체의 한파로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귀향 열차는 '절망의 기차'로 불린다. 추가 투입하기로 하는 등 춘제 비상 수송체제에 들어갔다. 사회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랴부랴 100억위안(2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것이다. 주로 농기계 구입 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있도록 직업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위해 농민들의 농지 소유권 이전 보호를 강화하기로 했다. 비농업 분야 육성과 지원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속추적제도'를 도입하는 등 감시망도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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