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다음블로그-인류시조성전건립회 글쓴이-한얼원 http://blog.daum.net/looktrue/11416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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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는 한국 땅만 지배할 통치권을 인정받았다. 한반도 속의 대한제국 땅만을 지배할 통치권을 열강으로부터 승인받았다. 일제는 러.일 전쟁 승리와 동시에 1904년 2월 한국정부를 위협하여 ‘한일의정서 (韓日議政書)’를 체결했다. | ||
종주권을 인정받고, 8월에는 제2차 영․일 동맹 조약을 체결하여 영국으로부터도 한국 땅에 대한 식민지배 통치권을 인정받았다. 또 9월에는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마지막으로 러시아로부터도 같은 권리를 인정받게 되었다. 공사와 주한일본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를 앞세우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신협약안(新協約案)을 체결하고 1905년 11월 18일 발표하였다. 조선 통감부는 조선의 관헌감독권, 병력 동원권 등 국정 3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명실 공히 조선을 보호한다는 미명으로 최고 감독기관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 ||
1909(순종3)년 9월 일제와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만주 철도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 일대를 청나라에 넘겨주었던 것이다. 1910년 일제는 대한의 전국 영토를 13도 21부 218군 2도(島) 88읍 2259면으로 확정 발표했다. 지배할 통치권을 승인 받은 후 본래 대륙의 광활한 조선 영토를 한반도 속으로 축소한 일본의 만행을 영원히 감추어 은폐하기 위한 10개년 계략을 세우고, 중국과 공모하여, 한국의 고대 역사를 말살, 왜곡, 변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도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게 된다. 는 대한제국을 영원히 멸망시킬 목적으로 먼저 전통적 민족문화와 고대역사를 말살, 왜곡, 조작한 조선사 교육으로 한국인을 일본사람으로 동화하여 민족존립자체를 말살하는 과업을 제1 국책으로 삼아 [반도조선사편수회]를 설치했다. 3국을 한반도 속으로 축소하여 편찬된 조선사와 한반도 속의 지명과 얽어 맞추어 한반도 땅을 일본 영토로 편입시켜 대한제국을 영원히 멸망시키는 과업이었다. 즉 민족독립사상의 탄압, 역사문화 말살, 왜곡, 찬탈, 황민화 교육을 강화하여 ‘한민족을 일본인으로 동화하는 정책’으로 대한제국 존립 자체를 망치는 악질적인 통치정책기관이 바로 중추원이다. (현행 국사)를 만들었다는 [조선사편수회 회의록]과 [조선사 편찬지침]이 대한민국 정부문서 보관소에 소장돼 있습니다. 한국인은 누구나 일제의 음모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개년 계략을 세우고 1910년 11월부터 1911년 12월말까지 1년 2개월 동안 한국의 국내는 물론 중국 각처를 수색하여 단군조선 삼한의 고사서등 51종 20여만 권의 사료를 색출 수거하여 없애고, 무려 7천여년의 우리역사를 단절하고, 왜곡의 전초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자가 아니고 친일 정객 이완용, 박영효, 이윤용, 권중현 등 역적을 임명하여 한국의 역사 왜곡 작업에 착수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무단정치를 철회하고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한다는 미명으로 조선국민을 일본 사람으로 동화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조선사편찬위원회]의 훈령을 발표했다. 또 1925년 6월 조선총독 훈령보다 일본왕의 명령에 의한 일왕 칙령 제218호로 격상을 높이고 [반도조선사편수회]의 이름을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로 고쳤다. 즉 중국 대륙에 건국되었던 신라, 백제, 가야의 대국을 한반도 속으로 축소시키는 노골적인 이름의 [반도조선사편수회]를 [조선사편수회]로 고쳤던 것이다. 동원하여 1910년 11월부터 1911년 12월말까지 1년 2개월 동안 한국의 국내 각처에 산재한 단군 조선 삼한의 고대 사료 등 51종 20만권을 불태워 없애거나 일본 왕실로 가져갔다. 색출 수거하기 위해 1922년 동경제국대학의 이케노우치(池內宏), 요시다(吉田東伍), 구 로이다 가쓰미(黑板勝美), 미우라(三浦周行), 와세다대학의 츠다(津田左右吉), 경도제국대학 이마니시(今西龍), 경성제대 교수 쇼우다(小田省吾), 편찬 실무자 스에마쓰(末松保和)등 8명의 관계자들이 연 122일 동안 중국을 출장가서 장기체류했다. 15명이 연200일 동안 중국 대륙 각처를 누비며 수많은 조선 사료(史料)를 수거하여 한국으로 가져왔다. 일제는 그 얼마나 많은 한국의 고대 사료를 가져왔는지 도저히 알 수 가 없다.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일본의 사학자이며 평론가인 하라타사카에루(原田榮)씨가 저서하고 1981년 4월 25일 발행한 [역사와 현대]에서, 1923년 7월 조선사편수회 구로이타(黑板) 고문이 대마도에 사료 탐방했을 때 한국과 관계가 있는 문서, 고기록 등이 대주구 번주(藩主․영주) 종백작가 (宗伯爵家)에 있는 고문서류 6만 6천 469매, 고기록류 3천 576책, 고지도 34매 등을 은폐 또는 분서(焚書)했다. 라고 밝혀져 있다. 황실령 제34호에 따라 황실이 관장하던 업무를 이관하는 이왕직관제를 새로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 1911년 1월 9일 이왕직도서과(李王職圖書課)로, 이관했다. 같은 해 3월 30일에는 조선총독부 취조국(取調局)으로, 이관하고 같은 해 6월 19일에는 이왕직장서각으로 이관되었다. 이들 도서는 1915년 창경궁(昌慶宮) 안에 일본식 건물의 장서각을 지었다. 기록류가 1만 1730책, 주자(鑄字)가 65만 3721개 71분(盆), 판목 7,501장, 기타 부속품이 12종이었다. 그 후 한국의 고대역사를 말살하고 반도조선사(현행국사)를 편찬한 후 왜곡된 국사의 증서를 영원히 감추어 은폐하기 위해 이 도서들은 일본왕실로 옮겨졌다. 훼손시키고 돌아왔다. 일본은 고사서는 불태워 없애고, 비문은 훼손하고 심지어 비를 옮겨서까지 우리역사를 말살, 왜곡했다. 지금 한국의 고대사는 오직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2사서 외에 없는 사유는 일제에 의해 불태워 없애거나 일본으로 가져간 명백한 증거입니다. 사망)선생은 일본 왕실문고에 우리나라의 고대사 특히 단군관련 사서들이 대량으로 소장돼 있다, 라고 주장하고 해방 후부터 이들 자료를 되찾아야 된다고 정부당국에 수차례 호소했으나 끝내 호응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1998, 9, 26 한겨레 보도] 수탈해간 우리 고대사를 되돌려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일본 왕실문고에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목록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우리나라 고대 사료의 반환을 촉구해야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일본 정부는 조건 없이 되돌려 주지 않는다면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폭로하여 세계적 동참을 호소해야 마땅할 것이다. 증서가 있으므로 일본왕실문고에 소장된 [한국의 고대사서를 반환하라]는 제목으로 국제사법 제판소에 제소를 해서라도 되돌려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 ||
♦ 일제는 하북성의 점제현신사비를 평양으로 옮기었다. 1875~1931)은 1903년 동경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 한 후 한국에 들어와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를 다스렸던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의 4국 영토를 한반도 속으로 축소하여 [조선반도사]를 왜곡, 변조한 조선사편수회의 핵심위원이었다. 사위원에 임명되어, 신라 천년의 왕도를 경주로 얽어 맞추기 위해 먼저 경주를 답사하여 각 유적물을 변조 조작하기 시작했다. 1914년 동경제국대학 교수 재직 중에 백제의 도읍지는 한성(漢城:서울)으로 지정하고 신라 천년의 도읍지는 경주(慶州)로 또한 가락국의 도읍지는 김해로 얽어 맞춘 인물이다. 漢山考), 신라사연구, 백제사연구, 가야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 조선고사의 연구 (朝鮮古史の硏究) 조선사의 간(朝鮮史の栞) 등 가짜 위서(僞書)를 가장 많이 발표했다. 한편 안정복(安鼎福)이 주석을 단 중종본(中宗本)의 삼국사기 원문을 조작 변조한 작업을 주도 했던 인물이며 황국신민화에 앞장섰던 대표적 인물이다. 중국에 출장가서 중국 각처를 누비며 수많은 조선 사료(史料)를 수거하고 심지어 광개토호태 왕비문, 모두루비문, 점제현신사비(棕蟬縣神祠碑)의 비문을 훼손시킨 장 본인이다. 본래 중국 하북성의 산해관 좌측 갈석산에 세워졌던 점제현신사비를 평안남도 온천군으로 옮겨 놓고 삼국사기 중요 지명의 열대패 삼수고(洌帶浿三水考) 논문을 발표하여,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한반도 속의 평양에 존재했다는 학설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 ||
조선사 편찬 시책을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국의 고대 역사, 전통적 문화를 알지 못하게 불태워 말살하면 민족정신 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선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무능,악행을 과장하게 들추어내서 편찬하라, 선조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되는 하나의 기풍이 조성될 것이다. 그러면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되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 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조선인들이 일본사람으로 동화되는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이 조선사를 만들어 주는 목적이며,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무려 7,166년의 역사는 짤라 없애고] 제1편「삼국이전」을 「신라통일이전」으로 정하고 제2편「신라통일시대」,제3편 「고려시대」, 제4편 「조선시대전기」, 제5편 「조선시대중기, 제6편 「조선시대후기」로 결정했다. ① 조선반도사는 편년제(編年制)로 한다. ② 전편을 상고 삼한, 삼국, 통일 후의 신라, 고려, 조선, 조선근세사의 6편으로 한다. ③ 민족국가를 이룩하기까지의 민족의 기원과 그 발달에 관한 조선 고유의 사화, 사설 등은 일체 무시하고 오로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기록에 있는 사료에만 의존한다.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 7쪽, 47쪽) 로 참여했다. 1934년 7월 30일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열린 제8회 조선사편수위원회의 때 육당 최남선은 삼국유사의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이라 개찬한 사실에 대하여 지적했으나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또 숙신(肅愼)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아직도 남아 있는 민족이다. 나는 조선사의 기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발해(渤海)의 역사도 우리 조선사에 중요한 나라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어떻게 선택할 방침인가? 인류학 민족학의 연구범위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발해 역사는 조선사와 관계가 없기 때문에 발해 역사는 생략하겠다. 또한 심의과정에서 정만조(鄭萬朝)·이능화(李能和)·어윤적(魚允迪) 등이 단군(檀君)·기자(箕子) 등 건국신화는 민족정신 발휘 상 중요하며, 삼국 이전을 고대조선으로 하고 신화는 첫 부분에 넣어야 할 것과, 강문(綱文)에 우리글을 넣을 것 등을 제안했으나 일본인 위원들의 독단으로 원안 그대로 결정되었다. 통일이전」으로 정하고 제2편「신라통일시대」, 제3편 「고려시대」, 제4편 「조선시대전기, 제5편 「조선시대중기」, 제6편 「조선시대후기:조선왕조 실록」으로 정했다. '조선사편수회' 에서 본래 7편으로 정했으나 6편으로 줄인 것은 「삼국이전과 삼국시대」를 줄여 「신라통일 이전」으로 통합했기 때문이라 했다. 교과서 편찬에 관한 문교부의 위촉을 받은 28명의 국사학자와 국사담당 교사들은 12차례 회의 를 갖고 다음과 같은 세부지침을 세웠다. 기자·위만조선에 관란 사실(史實)은 고조선에 포함 취급하되 '기자, 한씨, 위만, 위씨 조선 등 용어는 쓰지 않는다. 기자동래(東來) 기자운운은 교과서에 수록하지 않는다.(중략)... ① 주몽 ·온조 ·박혁거세는 부족사회의 부족장으로 다루고, ② 사료에 기록되어 있는 건국연대(BC 57,37,18)는 표시하지 않으며, ③ 삼국이 고대국가로서 발전한 것은 고구려,백제, 신라의 순으로 정하고, ④ 삼국이 고대국가로서 발전하기 시작한 때는 태조왕 ·고이왕 ·내물왕때부터 또는 몇 세기부 터라고 편찬 한다. 고대국가의 성격을 정의한 사학계에서는 BC 57,37,18년설을 부인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 삼국의 시조를 삭제한 이유는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의 건국 시조가 여러 사람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고 이유를 달았다. [1986년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徐 熙乾] (2), 국사편찬위원회에서 [2005년 3월 1일 발행된 현행 고등학교 국사]는 그 구성 형태와 근본적 내용은 똑 같습니다. 또한 일제가 조선사를 만든 목적의 요결문과 조선사 편찬 지침과 똑같이 현행 국사는 철저한 식민지사관의 망국적 치욕의 국사로 곧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근간으로 현행 [국사교과서]를 편찬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유구한 우리나라의 고대사가 도대체 어찌하여 오직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 밖에 없게 되었으며, 일제는 무슨 목적으로 남의 나라 국사를 만들어 주었겠는가? (今西龍)등 20여명의 일인 학자들과 한민족의 반역자 이완용의 후손 이병도,신석호․ 홍희같은 한인역적들이 참여하여 1938년(소화13년) 3월에 드디어 24,409쪽에 달하는 『반도 조선사』 34권이 완간 했던 것이다. 1, [환인의 환국 BC 7199년)]부터 ⇒ 2, [환웅의 배달국시대] ⇒ 3, 3황5제의 진단국시대 ⇒ 4, [단군왕검의 고조선 삼한시대)] ⇒ 5, [해모수의 북부여 후 삼한시대의 마지막 변한왕 계왕(稽王) BC 17년] 까지 무려 7천년의
우리나라 역사는 짤라 없애 버리고, 세계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이 우리나라를
강탈한 왜적이 남의 나라 역사를 말살, 왜곡, 조작, 유린해서 국사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교육하고 있는 민족이 도대체 세계에서 어느 나라가 또 있겠는가? 또한 조국을 배신한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가 만든 국사교과서에 대하여 오늘날 까지 단 한번의 비평과 검증도 없이 모두 수용하고 청년학도들에게 그대로 교육하고 있는 민족이 도대체 제 정신이 있는 민족인가? 왜독에 중독되어 넋을 잃은 얼빠진 민족인가? | ||
박병역 기자, truelook@hanmail.net | ||
(인터넷신문의 선두주자 뉴스타운 Newstown / 메디팜뉴스 Medipharm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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