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간도(백두산) 이야기

1885년 청일전쟁후 영국중재 한반도 분할안

설레임의 하루 2009. 4. 24. 07:57

*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글쓴이: 운영자  http://cafe.daum.net/dobulwonin/GBua/88 

 

 

 

1885년 청일전쟁후 영국중재 한반도 분할안


19세기 당시 세게제일의 열강 영국의 일본확대 묵인,프랑스,독일,러시아,미국의 아시아 확보노력,

당시 명치유신이후 경제력 ,군사력 세계5위의  열강으로 편입된 일본제국주의의 영토팽창 과시욕이 어우러져....   

 

전쟁의 시작


○ 일본의 경복궁 침입 명성황후살해 1895년
○ 일본의 풍도해전, 청나라와 성환전투승리


전쟁의 경과


○ 평양대전, 청과 황해대전으로 일본 해군력의 과시


전쟁의 확대


○ 미국의 침략으로 아시아 전초기지 확보 야욕
○ 급속한 경제력 확장으로 일본의 군사 행동 가속화

 전쟁의 시작


○ 일본군의 경복궁 난입(7.23) - 친일파로 구성된 신정권을 수립,

    일본의 꼭두각시였던 박영효 정권은 중국과 체결한 모든 조약의 폐기를 선언함.

○ 풍도해전(7.25) - 일본 군함이 중국의 병선과 군함을 불의 습격함.

    청군을 수송하던 영국국적의 ‘고승호’도 격침, 청병 1000명 투항을 거부, 전원 순장.

○ 성환전투(7.28) - 성환에 주둔하고 있던 ‘십사성’의 청군, 일본군의 포위공격을 받고 패배,

    공주에 주둔하고 있던 ‘엽지초’도 북으로 철퇴함 → 서울 이남 지역에 청군이 사라짐.

 전쟁의 경과


○ 평양 접전(9.12)
▲ 평양에 집결된 2만명의 청군 병력들이 수동적으로 일본군이 공격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음.

   일본군은 북진하여 평양으로 공격해 오면서 포위작전을 개시

▲ 청군 총지휘자인 ‘엽지초’가 처음부터 겁을 먹고 저항을 포기하고 도망갈 생각만 하여

   있어서 큰 혼란을 일으킴 → 청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엽지초’는 중국경내로 달아남


○ 황해 해전(9.17)
▲ 평양 대전의 패배후 ‘정여창’제독이 거느린 북양함대와 일본해군이 황해에서 대결전을  치름.  

   제대로 된 함포한발 못 쏘아보고 청군함대 격침.

▲ 청나라의 북양해군은 해군 경비의 많은 부분을 서태후의 환갑행사를 위해 사용→ 전투준비 소홀 및 사기 저하

▲ 실제 전투 경험이 없고 공론만 하는 무능한 ‘유보섬’이 북양함대를 장악함.

▲ 결국 전투에 참가한 14척의 청나라 군함중 5척의 군함이 일본군함(총 12척)에게 격침되고 다른 군함들도 많이 피격됨.

   일본측의 피해는 1척이 격침되고 일부 몇 개의 군함만이 피격되었음

 

승전에 따른 전후보상으로 만주철도부설권 및 만주국정권수립 ,상해지조차 등 중국대륙중앙진출 발판을 마련.

 

*<역사영토의식>의 무지가 부른 어이없는 국토축소


실학자들이 고사서 해석을 근거로 주장한 조선의 국경.

청나라의 치밀한 사전 조사와 우격다짐에 무시되었다. 



일본의 경제적 실리 꼬득임과 청국의 이익에 의해 주장된 말도 안되는 지리해석.청나라 북경어 豆滿 (또우만)이 土門(투먼)과

어찌 같을 수 있는가?

당시 조선대신 李重夏는 청나라 대신의 이미 몇달전에 미리와서 몇달에 걸친 사전답사지식에 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