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 이야기

농경신 자청비를 아시나요?

설레임의 하루 2009. 4. 8. 04:30

*출처:한겨레 문화생활   글쓴이-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제주도 토박이 여신 자청비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간 강인한 여성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 모습은 제주 해녀의 억척스런 삶과도 닮았다. 위는 화가 강요배가 그린 <여신 자청비>(1999년).

 자청비, 억척스런 운명 개척의 본보기

우리 신화에는 여신들이 유독 많다. 바리데기를 비롯해 당금애기·원강암이·자청비·감은장애기·청정각시·백주또·삼승할망·마고할멈·명월각시·오늘이…. 하나같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신들이다. 하지만 누군가 가장 멋진 여신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내 마음은 자청비 쪽으로 기울 것이다.

자청비는 제주도 무가 <세경본풀이>의 주인공이다. <세경본풀이>는 농사를 관장하는 세경신의 내력을 풀이하는 신화다. 그런데 <세경본풀이>의 첫머리를 보면 세경신은 자청비만이 아니다. 세경신이 셋인데 상 세경이 문도령, 하 세경이 정수남이고, 자청비는 중 세경신이다. 그러나 셋 가운데 진짜 주인공은 자청비다. 물론 <세경본풀이>는 세경신이 된 천상과 지상의 세 남녀 사이에 얽힌 애증의 드라마지만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자청비다. 자청비 때문에 청중들은 이 드라마 앞으로 모여든다.

우리나라 고전 서사의 상투적인 문법에 따라 <세경본풀이>에도 집안은 넉넉하나 늙도록 자식이 없어 고민하는 부모가 등장한다. 김진국 대감과 조진국 부인이 그들이다. 문법에 따르면 다음에 이들이 해야 할 행동은 당연히 기자치성(祈子致誠)이다. 그리고 이때쯤 나타나야 하는 것이 도우미 스님. 동쪽에 있는 동개남은중 절의 화주승은 우리 절에 정성을 들이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권한다.

그런데 부부가 정성을 들이는 과정에서 두 가지 오류가 발생한다.

하나는 수륙 불공을 드리러 가다가 먼 동쪽 대신 가까운 서쪽 서개남무광 절에 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쌀 백 근을 드려야 하는데 달고 보니 한 근이 모자란 것이다.

<세경본풀이>는 두 가지 오류 때문에 아들 대신 딸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제주 무가 ‘세경본풀이’ 보면
온갖 시험과 시련을 넘어
천상의 문도령과 혼인
지상에 오곡을 뿌린 여신이라

 

이런 상황 설정은 물론 여성을 결여된 존재로 인식하는 남성중심적 문화 탓이지만 <세경본풀이>는 이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딸이면 어떠냐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딸의 작명 사연에 잘 드러난다.

김진국 대감은 묻는다. “부인님아, 아기씨 이름은 자청하여 태어났으므로 자청비(自請妃)로 이름 석 자 짓는 게 어떠합니까?”

(안사인 창본) 스스로 청해 태어났다는 이 아버지의 발언 속에 이미 <세경본풀이>의 여성 인식과 자청비의 능동성이 함축되어

있다.

이제 남은 이야기는 자청비가 얼마나 씩씩하게 자신의 운명을 운전해 나갔는가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운전하기와 세경신되기의 관계다.

먼저 자청비의 운명을 시험하는 존재는 하늘 옥황의 문도령이고, 문도령으로 표상되는 남성지배 사회의 통념들이다.

자청비는 주천강 연못에 빨래하러 갔다가 마침 지상의 거무 선생한테 글공부를 하러온 문도령과 마주친다.

버들잎을 띄워 건네는 물 한 바가지. 너무도 익숙한 고전적 첫 만남이다.

다르다면 하늘 남자와 땅 여자의 신화적 만남이라는 것. 이 첫 만남에서부터 자청비의 능동성은 발현된다.

자청비는 문도령과 함께 글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한다. 당연히

‘계집의 글공부’를 막아서는 부모에게 글 모르면 제삿날 지방도 못쓴다고 반박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자청비는 자청도령으로 변장하고 글공부를 하러 간다. 이 대목 역시 남성지배문화의 소산이다.

그러나 자청비는 온전히 남자 대접을 받지 못한다. 글공부를 하는 도중 자청도령은 끊임없이 정체성을 의심받는다.

글방 선생은 자청도령의 젖을 만지고 옷을 벗기고, 문도령과 달리기·씨름·오줌멀리싸기 시합을 하게 하는 등(강을생 창본)

시험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자청비는 그때마다 기지를 발휘한다. 말하자면 남성들의 횡포에 맞서 남성들의 시험을 통과한다.

이 통과의례의 최종 관문은 이야기의 후반에 나오는 하늘나라 시아버지의 시험이다.

‘내 며느리 될 사람은 구덩이에 숯불을 피워놓고, 불 위에 칼날이 선 다리를 놓고 건너가야 자격이 있다’는 것.

자청비는 물론 이 시험에도 합격한다.

여기서 잠시 남녀의 결혼에 의해 지상에 곡물의 종자가 생겨나는 곡물기원신화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세경본풀이> 역시 문도령과 자청비가 결혼한 뒤 자청비가 천상에서 오곡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수신화와 연결돼 있는 오래된 곡물기원신화를 보면 시험을 당하는 것은 남성이다.

여전히 모계사회 형태를 간직하고 있어 문화인류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윈난의 모소족 신화를 보면, 홍수 뒤 유일하게

생존한 남성은 짝을 찾아 천상으로 올라간다.

이 남자는 하늘나라 공주와 결혼하게 위해 며칠 만에 산을 개간하여 메밀을 뿌리고 수확을 하라는 등 갖은 시험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서야 지상의 남자는 천상의 공주를 데리고 내려올 수 있었다.

이때 농사를 지을 종자를 가지고 오는 것이 바로 공주였다.

이런 오래된 곡물기원신화의 처지에서 보면 <세경본풀이>에는 남녀의 관계가 역전돼 있다.

오곡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은 여전히 여성이지만 자청비는 땅에 속한 존재고 시험을 당해야 하는 존재다.

이런 관계의 역전은 아무래도 남성중심문화의 결과일 것이다.

대개의 판본에서 자청비가 상 세경신이 아니라 중 세경신으로 좌정한 것도 이런 탓이다.

 

자신을 학대한 수렵신과 독살당한 남편을 살려내니
제주 어멍·할멍의 능동적 삶은 자청비의 조화가 아니런가

 

자청비의 운명을 가로막는 다음 남자는 정수남이다.

정수남은 자청비와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자청비네 하인이다.

문도령이 서수왕 따님아기에게 장가가라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첫날밤을 겨우 보낸 다음 날 머리빗 반쪽을 징표로 남기고

가버린 뒤, 하루는 이를 잡고 있는 정수남에게 쏘아붙인다.

“더럽고 누추하게 두툽상어처럼 먹어 놓고, 일도 없어 바지허리를 뒤집어 놓고 이 사냥만 하느냐?

”(안사인 창본) 남의 머슴들처럼 산에 가서 나무라도 좀 해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홉 마리 소와 말을 끌고 산에 간 정수남은 소와 말을 매어두고 며칠을 늘어지게 자다 일어나 죽어가는 우마를 구어

먹어 버린다.

그리고는 돌아와 문도령이 시녀들을 거느리고 단풍놀이 온 것을 구경하다가 잃어버렸다,

문도령이 모레 다시 올 테니 만나러 가자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 1914년께 제주 해녀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학수고대하던 문도령 소식에 이성을 잃은 자청비는 정수남을 따라 나선다. 이때부터 정수남의 상전에 대한 온갖 학대가 시작된다. 계급보다 성적 위계가 우선이라는 말은 틀린 게 아니다. 억지로 고사 지내게 하여 고사 음식 혼자 먹기, 말안장에 소라껍질 넣어 자청비는 걸어가게 만들기, 점심으로 싸온 메밀 범벅 사기 쳐서 혼자 먹기, 옷 벗고 꽁무니 보이며 물마시게 하기. 이런 수모를 당하고서도 ‘물에 비친 네 그림자가 바로 문도령이 시녀 거느리고 노는 것’이라는 정수남의 말을 듣고서야 속은 것을 깨닫는다. 이젠 노골적으로 손을 만져보자, 입을 맞춰보자, 허리를 안아보자고 달려드는 정수남을 갖은 꾀로 피하는 자청비. 마지막엔 하룻밤 지낼 움막을 짓자면서 밤을 새우고, 동이 틀 무렵 화가 난 정수남을 무릎에 눕혀 잠을 재운 뒤 청미래덩굴로 귀를 찔러 죽인다.

이 흥미로운 대결담은 단지 남성의 여성에 대한 학대와 여성의 저항 이야기만도, 사랑하는 남녀의 결연을 방해하는 나쁜 남자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어딘가 낯익은 정수남의 모습에 실마리가 숨어 있다. 소와 말을 잡아먹는 대식가! 그렇다. 정수남은 <송당본풀이>의 소천국을 닮았다.(18회 참고) 소천국과 좀 다른 점에 있다면 지독한 게으름뱅이라는 것. 오히려 노동을 거부한다고 해야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는 소천국과 마찬가지로 수렵신의 성격을 지닌 존재다. 아니, 본래는 수렵신적 성격을 지닌 존재였다가 후에 말과 소를 번성케 하는 하 세경신, 곧 축산신으로 변형된 존재로

보인다. 축산신을 모시는 7월의 ‘마불림제’라는 의례도 이런 변형과 더불어 생성됐을 것이다.

자청비와 정수남의 갈등에는 수렵에서 농경으로의 변모라는 제주도 생활문화가 배어 있다.

아직도 자청비에게는 적지 않은 시련이 남아 있다. 종을 죽였다고 집에서 쫓겨나고, 천상의 베를 짜는 주모할머니의 수양딸이 됐다가 다시 쫓겨난다. 그 밖에 다른 이야기가 남아 있지만 제한된 지면이 글을 붙잡는다.

중요한 것은 이 수난의 과정에서 자청비가 두 가지 긴요한 행위를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가 자기가 죽였던 정수남을 다시 살려낸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나라에 변란이 일어나 독살 당한 문도령을 살려낸

일이다. 

바리데기처럼 서천꽃밭에서 환생꽃을 가져다가 소생시키는 것이다.

 

죽은 남자들을 되살리는 자청비의 모습은 그녀가 통과의례를 거쳐 마침내 세경신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농경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뿌린 곡식이 싹이 터 잘 자라게 하는 일이다.

생명을 되살리는 자청비의 능력이야말로 씨앗을 땅속(죽음)에서 소생시키는 농경신의 직능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제주도 토박이 여신 자청비의 씩씩한 모습 위로 제주도 여성들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남자 없이도 잘사는 여성’, 제주도 어멍·할멍들의 능동적 삶이 자청비를 빚어내지 않았다면 누가 그런 조화를 부렸겠는가.

그네들의 멍든 가슴에 찾아오는 4·3을 앞둔 봄날, 연모하는 자청비를 만나러 그 섬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