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 이야기

닮은듯 다른 웅녀이야기

설레임의 하루 2009. 4. 8. 04:22

*출처:다음블로그-잡종교배 글쓴이-조현설

 


 



지난 1995년 우리 전래 민속과 문화의 뿌리를 추적한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글 주강현)를 연재해 독자들의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한겨레>가 우리 신화의 원류를 찾아가는 기획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를 시작한다.

주지하듯이 신화는 한 민족의 원형질과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코드이다.

이런 신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의 시선도 서구 신화- 동양신화­ 중국신화를 거쳐 우리 자신의 과거로

돌아오고 있지만, 단편적 이야기로 소개되는 신화의 깊은 의미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 주간 기획은 그런 우리 신화의 숨은 매듭들을 찾아내고 풀어내 실타래 전체의 모습을 드러내보고자 하는 노력이

될 것이다.

이 노정이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 우리 문화컨텐츠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단군신화속 웅녀는 어디 갔을까


△ 곰의 슬픈 전설이 깃든 충남 공주의 곰나루 솔숲 위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공주/김태형 xogud555@hani.co.kr



충남 공주의 곰나루에 가면 곰사당이 있다.

30여 년 전 곰나루 부근에서 발굴된 도무지 곰 같지 않은 돌곰을 모신 사당이다.

연전에 방문했을 때는 관리가 제대로 안된 탓인지 잡초가 무성하고 사당 안에는 덩그러니 돌덩이 하나만 놓여

있었다. 

곰나루 전설의 슬픔이 사당 안에도 무성한 것 같았다.

어떤 남자가 나무하러 갔다가 암콤에게 잡혀 굴에서 동거한다.

몇 해 동안 남자와 곰 사이에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난다.

자식을 낳은 후 안심하고 곰이 굴을 비운 사이 도망쳐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뒤늦게 알게 된 곰이 따라와 자식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지만 남자는 가버린다.

곰은 두 자식을 물에 던지고 자신도 몸을 강물에 던진다. 곰이 죽은 후부터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사당을 지어 곰을 위로해 주자 그런 일이 그쳤다.

익히 알려진 곰나루 전설이다. 그러나 이 전설에는 문면에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 적잖이 숨어 있다.

우선 곰과 나무꾼이 동거하고 거기서 자식이 태어난다고 하는 것이 수상하지 않은가.

남자의 도망과 곰의 자식 살해와 자살도 뭔가 석연찮다.

마치 최근 자주 듣게 되는 삶을 비관한 부모자식의 동반자살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단순히 한을 품고 죽은 원귀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원혼전설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이 웅녀의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사람되기·자식낳기를 갈구한 단군의 대리모 웅녀 죽음을 통해 새 생명을 낳은 북방 에벤키족 시조신화 정체성 잃고 

밀려나는 곰 자식을 죽이고 자살을 택한 ‘곰나루 전설’ ‘봉화산 암콤’처럼 재생과 창조의 힘을 잃어버린 채 절망하고 

몸을 던질수밖에‥

실마리는 의외의 장소에서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어떤 사냥꾼이 사냥하러 갔다가 암콤에게 잡혀 굴에서 동거한다.

몇 해 함께 사는 동안 곰은 새끼 한 마리를 낳는다. 그 후 사냥꾼은 암콤이 굴을 비운 사이 도망을 친다.

뒤늦게 알게 된 곰이 새끼를 안고 따라오자 사냥꾼은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넌다.

화가 난 곰은 새끼를 두 쪽으로 찢어 한 쪽을 사냥꾼에게 던진다.

남은 쪽은 곰으로 던져진 쪽은 에벤키 인으로 자라났다.

이 이야기는 곰나루에서는 너무도 먼 북방 흥안령 일대에 거주하는 에벤키족들의 기원신화, 혹은 시조신화이다.

그런데 놀랍지 않은가? 에벤키족 기원신화와 공주의 곰나루전설이 쌍둥이처럼 닮았다니.

운명의 갈림길인 강가에서 에벤키족의 웅녀는 아이를 찢어 사냥꾼에게 던지고 우리의 웅녀는 제 몸을 던져 다른

길을 선택하지만 강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진행은 동일하다. 본래 같은 이야기였다고 믿고 싶을 정도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내밀한 곡절이 있는 것일까? 실마리인가 했더니 또 다른 수수께끼다.


 서울 중구 남산 단군사당에 모셔진

단군상. 김태형 기자

이쯤에서 가장 유명한 웅녀, 단군신화의 웅녀를 만나보자. ?삼국유사?에 그려진 웅녀는 굴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빈다. 물론 호랑이도 같이 빌었다. 환웅은 신령한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먹고 백일동안 해를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된, 아니 여자가 된 곰은 이번에는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빈다. 신 환웅이 사람으로 변하여 곰과 짝을 이뤄 아들 단군을 낳는다. 이것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웅녀의 이야기다.

그런데 웅녀의 이야기라니?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아이를 낳게 해주세요.

두 가지 기원과 두 가지 소원성취가 웅녀가 출연하는 이야기의 전부인데 이게 과연 웅녀의 이야기일까? 웅녀의 이야기라면 고소설 ?박씨전?의 박씨부인처럼 웅녀가 주인공이 되어 활약하는 이야기여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다.

단군신화는 환웅이 단군을 나라 고조선을 세우고 다스리는 그들의 이야기이지 웅녀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웅녀는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를 지니지 못한 인물이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허스토리’가 없는 여성이다. 그렇다면 웅녀의 허스토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단군신화의 웅녀와 에벤키족 시조신화의 웅녀, 곰나루의 웅녀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이제 남은 마지막 단서는 영남 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봉화산의 암콤>이라는 구전 전설이다.

봉화산 꼭대기 커다란 소나무 아래 암콤이 살고 있었다.

암콤은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이어서 백일기도를 올려 예쁜 소녀가 된다.

이 웅녀는 사냥할 때 곰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길을 잃고 쓰러진 사냥꾼을 구해준다. 

웅녀의 강요로 둘은 굴속에서 동거한다. 1년 후 웅녀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냥꾼은 처자식이 그리워 도망친다.

사실을 알게 된 웅녀는 사냥꾼을 찾아 헤매다가 소나무 아래 목을 매 죽는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①1997년 공주 곰나루에서 발견된 곰 석상 ②곰나루 앞을 흐르는 금강 ③공주 곰사당

④에벤키족이 사냥한 곰의 뼈와 내장을 풍장(風葬)한 모습 ⑤1970년대 서울 중구 남산 단군사당에 모셔진 단군·환인·

환웅(왼쪽부터)의 모습. 웅녀는 이 제단에 없다. 현재는 단군상만 모셔져 있다.

 

이 봉화산의 웅녀는 자살을 한다는 점에서는 곰나루의 웅녀와 같다.

웅녀에게 발목을 잡힌 남자가 굴속에서 동거한다는 점에서는 에벤키족의 웅녀, 또는 곰나루의 웅녀와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소나무 아래 사는 암콤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려 여자가 된다는 전반부의

이야기다. 이 암콤의 소원과 변신은 단군신화에 그려진 웅녀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봉화산의 암콤> 이야기에는 에벤키족 시조신화, 단군신화, 곰나루 전설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그러나 이들 이야기들의 얽힘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은 단군신화에서 소원을 빌던 웅녀가 곰나루의 웅녀, 그리고

에벤키족의 웅녀와 절대로 무관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 식구들이었을 이 곰들의 이야기는 어째서 이렇게 서로 다른 얼굴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오랜 기억의

편린들을 간직한 채 전승되고 있었을까? 거기에는 오랜 역사적 내력과 신화의 변모가 감춰져 있다.

에벤키 시조신화에서 웅녀는 주인공이다.

수렵민족이었던 이들에게 곰은 사냥감이면서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었고 곰에 대한 신앙은 이들에게 곰과 자신들이

한 핏줄이라는 관념을 낳았다.

곰에 대한 숭배와 의례를 정당화하는 시조신화에서 곰은 당연히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곰은 남자를 나포하여 굴에서 동거하면서 새끼를 낳고, 남자와 분리되는 순간 새끼를 나누는 창조적 행위를

감행한다. 

몸을 반으로 나눔으로써 새끼는 죽지만 죽음을 통해 피와 살을 나눈 두 몸으로 재창조하고 있지 않은가.

창조적 행위를 통해 스스로 에벤키족의 시조가 되는 웅녀, 이것이야말로 허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웅녀는 단군신화라는 새로운 신화 체계 속에 포획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린다.

단군신화에 포획된 웅녀가 바로 에벤키의 시조모 웅녀라고 단정할 만한 확증은 없지만 몇 가지 유력한 방증은 있다. 

에벤키족이 우리와 동일 어족에 속한다는 점, 현재 바이칼에서 아무르강에 걸친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이들이

본래는 고조선이 있었던 황하 하류와 화북 일대에 거주하다가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

더구나 곰나루 전설과 이들 시조신화의 유사하지 않은가.

에벤키족은 고조선이라는 고대국가의 한 구성원으로 통합되면서, 다시 말해 환웅의 짝으로 상징화되면서 자신들의

민족 이야기인 웅녀 이야기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동시에 여신 웅녀의 이미지는 남신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아들을 낳기를 간걸하는 타자의 이미지로 전환된다.

단군을 낳은 단군신화의 웅녀는 어디로 갔을까?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단군을 낳기 위해 잠시 자궁을 내어준 대리모 같다.

단군을 낳았다는 진술 이후 웅녀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고조선 건국신화에서 웅녀는 건국의 정당성을 위해 동원된 존재지만 웅녀는 웅녀를 시조모로 섬기는 에벤키족들

에게는 여전히 신성한 어머니였을 것이다.

현재의 에벤키족들이 시조신화를 전승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생각해 보라.

고조선에 편입되어 동화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했거나 고조선의 해체 이후 그 잔류집단이 북방의 유목민으로

돌아갔을 때, 혹은 그 일부만이 고조선의 유민으로 남하했을 때 전승할 입과 힘을 잃은 에벤키족의 웅녀 이야기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되었을까?

 

창조와 재생의 능력을 잃은 여신 웅녀는 강물 앞에서 절망하고 자살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곰나루전설>이나 <봉화산의 암콤> 전설은 그저 ‘배신한 남성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자살한 어떤 여성의 이야기’

 식의 통속적 서사만은 아니다. 웅녀의 잃어버린 신화가 묻혀 있는 신화의 유적이다.

발굴되어야 할 유적이다.

 

필자 조현설 씨는 1962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8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티베트· 몽골· 만주· 한국의 건국신화에 관한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제8회 나손학술상을 받았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연구교수이다.

저서로는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문학과지성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