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한겨레 문화생활 글쓴이-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 (사진설명) 여러 역사 속 영웅신화와 민담, 그리고 몇몇 창조신화에서 호랑이는 패자가 아니라 승자다.
<삼국유사>가 묘사하듯 곰에게 밀려나는 호랑이 이야기는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사진은 지금도 우리 민족의 정서 속 ‘영물’로 남아있는 백두산 호랑이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단군의 어미는 곰이 아니라 호랑이?
저 태백산 신단수 아래쪽 깊은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는 어디로 갔을까? 쑥과 마늘만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피하라는 환웅의 금기를 어겨 인간되기에 실패했던 단군신화의 범은 어떻게 되었을까? 승자는 신화 속에 국모 (國母)로 남았지만 패자는 종적이 묘연하다.
범의 행방은 고조선 건국신화의 또다른 수수께끼다.
그런데 여기 <삼국유사>의 강력한 전승력에 밀려 잊혀진 또 하나의 단군신화가 있다.
<한국불교전서> 조선시대 편에 실려 있는 ‘묘향산지(妙香山誌)’의 단군신화가 그것이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단수 아래 살았다. 환웅이 하루는 백호와 교통하여 아들 단군을 낳았다.
그가 요 임금과 같은 해에 나라를 세워 우리 동방의 군장(君長)이 되었다.”
<삼국유사>와 유사하지만 여기서는 곰이 아니라 호랑이가 단군을 낳는다.
곰과 범, 대체 어느 쪽이 진짜 단군의 어미인가? 환웅과 백호의 결혼이라는 낯선 단군신화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중국 스촨(四川), 윈난(雲南) 등지에 거주하고 있는 ‘이족’의 별명은 호랑이족이다.
이족은 자신들을 로로라고 하는데 이족 말로 ‘로’는 호랑이라는 뜻이다.
호랑이 민족답게 이들은 자신들의 피와 뼈를 호랑이의 피와 뼈로 여기고, 집집마다 돌 호랑이를 조상신(虎祖)으로 모시고
있다.
이들은 3년마다 한 번씩 한 해의 첫 번째 달인 호랑이 달에 치르는 마을 제사에서 호랑이춤을 춘다.
문화인류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유명한 춤은 바로 자신들을 낳은 어머니 호랑이를 기념하는 춤이다.
‘묘향산지’ 단군신화 보면 환웅이 백호와 교통하여
단군을 낳고 그가 곧 동방의 군장이 되었나니…
호랑이와 문화적 한 몸을 이룬 민족답게 이들은 창조신화에도 호랑이를 등장시킨다.
창조신 켓조가 자녀신들을 만들어 천지를 창조한 후 천지간의 만물을 만들 때 질료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호랑이다.
켓조의 아들들이 호랑이를 잡아 호랑이의 왼쪽 눈은 해, 오른쪽 눈은 달, 수염은 햇빛, 이빨은 별, 호랑이 기름은 구름, 배는
바다, 피는 바닷물, 창자는 강, 갈비는 길…, 이런 식으로 만물을 조성하고 있다.
신의 주검에서 세계가 만들어지는 사체화생(死體化生) 신화의 특이한 사례라고 할 만한데 그 주검이 호랑이인 것은 이족의
호랑이 숭배 문화의 산물이다.
단군신화의 호랑이를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이족 호랑이 숭배 문화와 창조신화를 거론한 까닭은 그것이 고조선 신화의
호랑이와 직접적 친연 관계가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원시사회에서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었을 호랑이가 어떤 형상으로 신화에 나타날 수 있는가를 잠시 엿보려는
것뿐이다.
이족의 신화와 문화가 말하는 것은 호랑이가 다른 신성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혈연관계를 맺는 동물조상신으로,
때로는 창조신으로 신화에 출현한다는 것이다.
△ 호랑이를 묘사한 조선시대 민화. <한겨레> 자료사진. |
손진태가 도쿄에서 간행한 <조선민담집>(1930)을 보면 남매혼 홍수신화의 변이형으로 보이는 자료가 실려 있는데, 이 홍수신화의 오누이는 일반형과는 달리 결혼을 못하고 늙어간다.
그때 어디선가 호랑이가 사내 하나를 데리고 와서 누이와 결혼을 하게 한다.
그래서 인류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근친상간 회피심리가 이런 변이형을 만들어냈겠지만 하필 호랑이가 남자를 데리고 왔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이 신화에서 호랑이는 분명 인류를 재창조하는 창조신의 직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족 신화에서 조상신인 호랑이가 창조신으로도 나타난다면 우리 신화에서 창조신의 모습을 지닌 호랑이가 조상신으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고려건국신화의 일부인 <고려사>의 호경 이야기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왕건의 6대조인 호경(虎景)은 어느 날 고을사람들과 평나산에 사냥을 갔다가 날이 저물어
굴에서 자게 된다. 그런데 범 한 마리가 굴을 막고 으르렁거린다.
굴 안의 일행들은 어쩔 수 없이 갓을 벗어던져 제물이 될 사람을 결정하기로 했다.
범이 호경의 갓을 물자 호경은 싸우려고 나간다.
그때 마침 굴이 무너져 오히려 굴속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호경이 죽은 이들의 장사를 지내주고 산신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자칭 평나산 주인이라는
과부 산신이 나타난다.
바로 굴을 막고 으르렁거리던 호랑이였다. “그대와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함께 신정(神政)을
펼치려 하오니 이 산의 대왕(大王)이 되어주소서.” 말이 끝나자 산신도 호경도 사라진다.
그 광경을 본 고을 사람들이 사당을 세워 호경을 대왕으로 모신다.
산신인 호랑이와 백두산 성골장군 호경이 짝을 맺은 신인혼(神人婚) 이야기인 셈인데 여기에는 모종의 변형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여산신인 호랑이가 호경에게 평나산의 대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나산의 호랑이는 스스로 산신이면서 왜 호경에게 대왕의 자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는지 의문스럽다.
이에 대해서는 호랑이가 동물신에서 인격신으로 변형되면서 인간의 모습을 지닌 산신과 산신의 동반자인 호랑이로 분화되는 과정을 반영한 것이라는 종교심리학적 해석이 가능하다.
또는 굴에 남아 있다가 함께 죽었던 아홉 사람 때문에 평나산을 구룡산(九龍山)으로 개명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평나산 산신을 모시던 집단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산신 신앙의 중심이 호랑이 여산신에서 남산신 호경대왕으로 바뀐 내력이
신화에 반영된 것이라는 문화론적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이때 바뀐 집단은 왕건의 집안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창조의 신 호랑이가 금기 깬 패배자 호랑이로…
치우친 눈 바로 세워보라 보이는가, 천의 얼굴 호랑이
△ 호랑이를 묘사한 조선시대 신선도. <한겨레> 자료사진. |
그러나 호경신화에서 좀더 중요한 대목은 구룡산 산신이 된 호경이 옛 부인을 잊지 못해 밤마다 꿈처럼 찾아와 합방을 했다는 부분이다. 평나산 호랑이 여산신과 호경의 결합이 구룡산 호랑이 남산신과 호경의 옛 부인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신인혼으로 변형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변형의 목표는 강충이라는 아들을 낳기 위한 것이고, ‘호경-강충-보육-진의(숙종)-작제건-용건-왕건’으로 이어지는 고려 왕통을 신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변형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바로 비록 인격화되기는 했지만 산신인 호랑이가 조상신이라는 점이다. 창조신 호랑이가 조상신으로도 우리 신화에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기실 고려 건국신화의 조상신 호랑이는 고조선과 문화적 친연관계가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동북지역 민족의 시조신화에서 익숙한 존재이다. 예컨대 아무르강 하류 하바로브스크 부근에 거주하는 아크스카라족의 호랑이 시조신화가 그렇다. 언젠가 한 처녀가 산 속에서 호랑이와 사귀어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아크스카라’라고 했다. 호랑이의 소생이란 뜻이다. 아크스카라는 자라서 뛰어난 사냥꾼이 되었고, 장가를 들어 자식을 많이 낳아 아크스카라라는 한 씨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곰 시조신화를 가지고 있는 에벤키족(1회 참조)의 한 지파인 아크스카라족은 호랑이 시조신화를
지닌 민족이다. 곰과 마찬가지로 호랑이 역시 고조선 건국신화의 일부가 되기 전에는 이 같은 자기 신화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묘향산지>의 단군신화에 보이는 흰 호랑이와 환웅의 결합은 전혀 이상할 게 없지 않겠는가? 아크스카라족의 ‘호랑이-처녀’의 결혼이 단군신화에서 환웅과 백호의 결혼으로 변형되고, 그것이 후대의 고려 건국신화에서 ‘호랑이 여산신-호경장군’, ‘남산신 호경대왕-옛 부인’의 형식으로 반복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에게 환웅과 백호의 혼인이 낯설다면 그것은 순전히 환웅-웅녀 커플로 이뤄진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최초의 물음들로 돌아가 보자. <삼국유사> 중심의 주류적 전승에서 호랑이는 금기를 깬 패배자이지만 <묘향산지>의
단군신화에서 호랑이는 환웅과 짝이 되어 단군을 낳는 승리자다.
게다가 두 단군신화를 견주어 보면 더 오래된 것은, 신화의 형태로 보아 <묘향산지> 쪽이다.
<삼국유사>에 보이는 ‘곰의 인간되기’에는 이미 동물신보다 후대에 발생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인격신 개념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 오래된 단군신화의 백호가 단군의 진짜 어미인가.
수수께끼를 던져 놓고 답이 없다고 발뺌을 하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밝히기 어려운 진짜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위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단군신화가 지닌 각각의 의미이다.
그리고 당장 필요한 것은 금기를 깬 호랑이와 호랑이를 시조로 모시던 집단을 역사의 패배자로 여기던 우리의 사시(斜視)를
교정하는 일이다.
창조신 호랑이, 고조선의 국모 호랑이, 고려 왕가의 시조 호랑이, 그리고 산신 호랑이. 이런 교정된 시각으로 봐야 무수한
산신도에 좌정하고 있는, 천의 얼굴을 지닌 호랑이를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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