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 이야기

하늘과 땅 끊어진 사연

설레임의 하루 2009. 4. 8. 04:18
*출처:블로그-잡종교배  글쓴이-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 티벳 왕 지굼짼뽀의 일대기를 담은 티벳 탕카


 

 

 

 

 

 

 

 

 

 

 

 

 

 

 

 

 

 

 

 

 

[조현설의 우리신화의 수수께끼]

 

끊어진 하늘줄, 인간 과욕이 화근이라

 하늘로 올라가는 줄이 있다. 제주도 신화의 노각성자부줄 같은 줄도 있었고, 천 길 만 길 뻗은 박

넝쿨과 같은 <제석본풀이>의 줄도 있다.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 신단수도 하늘로 가는 통로라는 점에서 하나의 줄이다.

모두 신들이 오르내리는 길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줄이, 호랑이가 타고 올라가던 썩은 동아줄처럼 끊어졌다고 말하는 신화들이 있다.

지금 우리에겐 없는 신화를 찾아 잠시 동아시아 구전신화 쪽으로 가보자.

옛날에는 하늘이 아주 낮아 조금 높은 곳에만 올라가면 누구나 하늘에 갈 수 있었다.

천신은 매일 와서 놀고 먹는 인간들이 보기 싫어서 농사를 지으라고 곡물의 씨앗을 주었다.

한데 사흘에 한 번 먹으라는 천신의 명령을 잘못 알아들은 인간들이 하루에 세 번 먹는 바람에 지상에 똥이 넘쳐났다.

냄새 때문에 하늘이 높이 도망쳐 하늘 길이 끊어졌다.

중국 윈난(雲南)에 거주하는 이라오족의 천지단절신화다. 비슷한 이야기가 스촨(四川)의 치앙족에게도 있다.

옛날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수령의 아들과 천제의 딸이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다.

아들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수령은 13번이나 하늘에 올라가 청혼을 한다.

덕분에 둘은 결혼을 했지만 지상에 시집온 공주는 식량을 낭비한다.

그래서 화가 치민 천제가 하늘 길을 끊어 버려 인간과 신들은 따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 하늘을 향한 솟대에 줄을 동여맨 몽골인들의 성황당



두 편의 신화는 모두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가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오고가는 다정한 이웃이었다는 원초적 상황을 제시한

뒤, 그런 상황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라오족은 과식이 문제라고 하고 치앙족은 낭비가 문제라고 말한다.

요컨대 지나친 욕심이 하늘 줄을 끊게 했다는 것이다. 한 쪽에선 과식이 문제고 다른 한 쪽에선 溯컥?문제인 지구인들이

곰곰이 새겨들어야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구전신화와는 좀 다른 천지단절신화가 전해지고 있어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이 신화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시대의 한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

 

식량 욕심 중국 이라오족 아들 욕심 신라 경덕왕 권력 욕심 티베트 지굼짼뽀…

경덕왕은 어느 날 표훈(表訓) 스님에게 “내가 복이 없어 자식을 얻지 못하니 스님은 상제께 청하여 아들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시오”라고 주문한다.

표훈은 어떻게 상제에게 갔을까? 기록에는 없지만 하늘 줄을 타고 올라가지 않았을까?

어쨌든 천제를 만나고 돌아온 표훈은 “딸은 구할 수 있으나 아들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라고 아뢴다.

그러자 경덕왕은 생떼를 쓴다. “딸을 아들로 바꾸어 주시오.”

어쩔 수 없이 표훈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그렇게 할 수는 있으나 그렇게 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천제는 표훈이 지상으로 내려가려고 할 때 다시 불러 “하늘과 인간 사이를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네가 이웃 마을 다니듯 하늘을 왕래하여 하늘의 비밀을 누설시키니 이제부터 다시는 오가지 말라”고 명한다.

하늘 길이 끊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경덕왕의 아들 얻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표훈 스님의 깨우치는 말에 귀를 닫는다.

“나라가 위태로워지더라도 아들을 얻어 뒤를 이었으면 그만이겠다.”

아들에 대한 집착이 왕이 해서는 안될 막말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생떼와 막말의 힘일까?

그는 과연 만월왕후를 통해 태자를 얻는다. 그래서 “왕은 매우 기뻐했다.”

이야기가 이런 행복한 결말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비극은 이제 시작이다.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비극의 진상을 알려면 경덕왕 재위시기(742­765)를 전후한 신라의 역사를 일별해야 한다.

사실 경덕왕은 선왕인 효성왕의 친동생이었다.

동생이었지만 효성왕이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했다. 형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지만 정작 문제는 자신도 늙도록

아들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덕왕의 근원적인 불안은 여기에 있었다. 그는 아마도 아들을 낳기 위해 온갖 짓을 다했을 것이다.

그 극점에 놓인 것이 왕비를 폐하고 각간 의충의 딸을 새 왕비로 맞이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왕과 귀족들 사이에 적지 않은 정치적 알력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말하자면 이 알력이 <삼국유사>에는 천지단절 이야기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에 있는 신라 제35대 경덕왕의 능



생때에 지친 하늘은 돌아서고 종말이 찾아온건 당연한 이치

경덕왕은 하늘의 뜻을 억지로 돌려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이 여덟 살 때 죽는다.

아들 혜공왕이 왕위에 오르지만 코흘리개가 뭘 하겠는가.

정치는 어머니 만월왕후의 섭정에 맡겨진다. <삼국유사>는 그래서 정치가 엉망이 되어 도적이 도처에서 봉기했다고 적고

있다.

이 무렵에 대해 <삼국사기>는 해가 두 개 떠오르고 다리 다섯 개가 달린 송아지가 태어나고 별이 왕궁에 떨어지고 지진이

나고 흙비가 내렸다는 식의 천재지변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혜공왕은 즉위한 지 16년이 되던 봄, 정월에는 노란 안개가 끼고 3월에는 흙비가 내리더니 반란군에게 살해된다.

이 혜공왕의 살해는 신라 하대 150여 년에 걸친 왕위쟁탈전의 서막이었다.

20여 명의 왕이 교체되고 대부분 살해되는 비극적인 권력극의 서막.

아들을 낳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리라던 천제의 신탁이 실현된 것이다.

 

끊어진 하늘줄 어떻게 이을까
결론은? 욕망을 줄여라

 

그런데 <삼국유사>는 이런 비극적인 정치사의 원인을 하늘의 뜻을 억지로 바꾸려고 한 왕의 지나친 욕심에서 찾고 있다.

권력욕에서 비롯된 왕의 잘못된 청탁이 결국은 신라 하대의 비극, 나아가 신라의 종말을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경덕왕의 욕심은 표훈까지 망하게 했다.

천기를 누설한 죄를 짓게 했으니 말이다. 사제가 왕에게 휘둘리면 둘 다 망하는 법이다.


다른 나라 이야기지만 티벳의 왕 지굼짼뽀도 경덕왕을 닮았다. 티벳의 역사서인 <서장왕통기

(西藏王統記)>를 보면 지굼은 갑자기 신하 로암다제에게 싸움을 건다. 적수가 될 만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된 로암다제는 지굼이 스파이로 보낸 변화무쌍한 개에게 정보를

흘린다. “나를 죽이려면 이마에 거울을 달고 머리에는 칼을 둘둘 감고 재를 담은 주머니를 소의

등에 싣고 오면 된다.” 이 말은 왕의 귀에 들어가고 왕은 그런 이상한 차림으로 전투에 임한다.

그러나 갑자기 들려온 고함 소리에 소가 놀라 뛰자 주머니가 터져 재가 연막탄 노릇을 한다.

그 사이 머리에 감아 놓은 칼이 풀려 춤을 추다가 지굼의 머리에 연결된 신성한 하늘 줄, 곧

무탁을 잘라버린다.

바로 그때 로암다제의 화살이 이마의 거울을 꿰뚫는다.

끊어진 무탁, 죽은 지굼은 지상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

짤막하게 정리한 이 이야기에도 하늘 줄이 등장한다.

신라에서는 표훈과 같은 사제가 하늘 줄을 탔지만 티벳의 왕들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이 줄을 타고 하늘로 돌아간다. 지굼짼뽀 이전의 왕들이 모두 그랬다.

그 줄이 지굼에 와서 끊어졌다고 <서장왕통기>의 신화는 말하고 있다.

이유는 지굼의 편집증적인 권력욕에 있었다.

그는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반대파인 귀족과 장군들을 무수히 숙청한다.

그들과 연계되어 있던 티벳 전통종교 뵌뽀까지도 금지시킨다.

티벳의 천지단절신화는, 이런 과도한 권력추구가 결국 왕을 죽음으로 몰고 갔고, 아들이 13살이

되면 왕위를 물려준 후 무탁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티벳 왕들의 전통을 단절시켜버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지역, 다른 민족에 전해지고 있는 다른 이야기들에서 묘한 일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라오족이나 치앙족의 천지단절신화에서 하늘 줄이 끊어진 까닭은 인간들의 과식과

낭비였다. 정착을 하고 농사를 지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긴요한 일은 다음 해를 위해 곡식을

보관하는 것이다.

다 먹어버리면 미래가 사라진다.

그러니 인간들의 과식과 낭비는 하늘 줄을 끊어지게 만들 만큼 심각한 사태인 것이다.

이런 욕심의 과잉은 역사 시대의 왕에게도 위태로움을 초래한다.

순리를 따라도 과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왕의 자리인데 폭식을 하겠다고 나서면 어찌 되겠는가?

경덕왕의 아들을 얻기와 지굼짼뽀의 싸움 걸기는 저 폭식의 종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끊어진 하늘 줄을 어떻게 다시 이을 것인가?

천지단절신화의 발언은 간명하다. 욕망의 다이어트, 그러면 줄은 언제든 다시 이어질 거야. ??

조현설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연구교수 mytos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