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중국신화-주석정리

중국신화-주석정리(국가명) - 펌

설레임의 하루 2009. 3. 22. 05:11

출처:이우혁 홈피에서

 

 

 

중국신화-주석정리(국가명)

* 박보국搏父國(과보국夸父國) : 562, 산해경 247

서방의 이형異形국으로 구영국의 서쪽, 섭이국의 동쪽에 위치

<박보>는 바로 <과보夸父>이니, 이 나라 사람들은 예전에 태양과 달리기 시합을 했던 거인 과보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체구가 무척 컸고 오른 손에는 푸른 뱀을, 왼손에는 누런 뱀을 쥐고 있다.

그 나라의 동쪽에는 푸른 잎이 우거지고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도림桃林이 있다.

도림은 바로 등림鄧林으로 옛날 태양을 뒤쫓아 달렸던 과보가 죽기 전에 던진 지팡이가 변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본래 겨우 두 그루였던 것이 자라서 얽히고 설켜 광대무변한 삼림을 이루었다.

 

* 과보족夸父族 : 과보1.HWP 참조

* 과보夸父 : 과보1.HWP 참조, 산해경 85(86 그림), 247(247 그림), 321

- 서차삼경의 첫머리인 숭오산이라는 곳에 살고 있는 짐승으로 생김새가 긴꼬리원숭이 같은데 팔에 무늬가 있고 표범의 꼬리에

던지기를 잘하며 이름을 거보擧父라 한다.

- 과보가 태양과 경주를 하였는데 해질 무렵이 되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어 황하와 위수의 물을 마셨다.

(그러나) 황하와 위수로는 부족하여 북쪽으로 대택의 물을 마시러 갔다가 도착하기도 전에 목이 말라죽었다.

그 지팡이를 버렸는데 그것이 변하여 등림이 되었다.

- 과夸는 대大의 뜻, 보父는 곧 보甫로 남자의 미칭美稱. 대인大人, 거인巨人의 뜻

- 대황大荒의 한가운데에 성도재천成都載天이라는 산이 있다. 두 마리의 누런 뱀을 귀에 걸고 두 마리의 누런 뱀을 손에 쥔 사람이

있는데 이를 과보라 한다. 후토后土가 신信을 낳고 신이 과보를 낳았다.

과보가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해를 쫓아가려고 하다가 우곡에 이르렀다.

황하를 마시려 했으나 양에 안차 대택으로 가려 했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이곳에서 죽었다.


* 후토后土 : 239, 267, 289, 293, 315

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로 유명幽冥세계, 곧 유도幽都의 통치자이며 땅의 신(土神)이다.

황제의 보좌신이며 귀신 나라의 왕으로 손에 끈을 들고 있고 사면 팔방을 모두 관리한다.


* 토백土伯 : 315, 542

- 유도의 성문을 지키는 유명한 거인으로 호랑이의 머리에 세 개의 눈이 이마에 달려 있었으며 소처럼 생겼고 아홉 번 구부러지는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었다.

그는 또 날카롭게 빛나는 한 쌍의 뿔을 흔들며 피로 물든 살찐 손가락을 펼치고는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유도의

불쌍한 귀신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 머리에는 뾰족한 뿔 한 쌍이 달려 있고 몸은 아홉 굽이로 구불구불했으며 피투성이인 큰  손을 벌리고서 유도의 검은 귀신들을

쫓아다녔다.


* 금천씨金天氏(소호小昊, 원신員神, 궁상씨窮桑氏) : 176, 198~199, 202~203

동방 상제의 보좌신인 목신木神 구망句芒의 아버지

북방 천제이자 한때는 중앙 상제였던 전욱顓頊의 숙부

동방에 새들의 왕국을 세웠으며 후에 서방 상제가 되었다.

서방 천제 소호의 탄생은 좀 특이하다.

그의 어머니 황아皇娥는 본래 천상의 선녀로서 하늘나라 궁전에서 부지런히 옷감을 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때로 깊은 밤까지도 옷감 짜는 일을 했는데, 일하기가 피곤하면 뗏목을 타고 은하수에 가서 놀다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서쪽 바닷가에 있는 궁상窮桑 나무 아래에까지 가곤 하였다.

궁상이라는 것은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큰 뽕나무인데, 이파리는 단풍잎처럼 붉고 열매는 크고 탐스러웠으며 보랏빛으로 투명하게

빛났는데 일만 년에 한 번씩 열매가 열렸다.

그 열매를 먹으면 천지의 수명보다도 더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황아는 바로 이 뽕나무 밑에 와서 노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때 세속을 떠난 듯한 분위기의 수려한 용모를 지닌 한 소년이 나타났다.

그는 스스로를 백제白帝의 아들이라 칭하였는데 - 사실 그는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빛나는 계명성啓明星, 즉 금성이었다.

- 하늘에서 그 물가로 내려와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황아와 즐겁게 놀았다.

그들은 점차 마음이 통하여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너무 즐겁게 노느라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소년은 황아가 은하에서부터 타고 온 뗏목에 뛰어올라 노를 저어 달빛 일렁이는 바다를 함께 떠돌았다.

그들은 계수나무 가지로 배의 돛을 만들었다. 그리고 향기로운 풀을 계수나무 끝에 매어 깃발로 삼았으며 옥뻐꾸기 한 마리를 새겨 돛

끝에 달아 바람의 방향을 알아내었다. 왜냐하면 뻐꾸기는 사시사철의 풍향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돛이나 지붕 위에 <상풍오相風烏>라는 새의 모양을 달아 놓는 풍습은 바로 그 옥뻐꾸기가 전해져 내려오며 변한 것이다.

두 사람은 어깨를 맞대고 뗏목 위에 앉아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를 뜯었다.

황아는 거문고에 기대앉아 노래를 불렀는데 황아가 다 부르고 나면 소년이 불러 그녀의 노래에 화답하였다.

그렇게 서로 번갈아 노래를 부르니 즐겁기 그지없었다. 그 후 황아가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가 바로 소호, 즉 궁상씨窮桑氏였으니,

그는 두 사람의 애정의 결정이었던 것이다.

신의 아들인 소호는 자란 뒤에 동쪽 바다밖에 나를 세웠는데, 그곳은 소호지국少昊之國이라 불렸다.

그 위치는 대략 귀허가 있는 곳, 득 다섯 개의 신산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그가 세운 나라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그의 신화와 각료들이 모두 가지각색의 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호의 나라는 곧 새들의 왕국이었다.

소호가 동방에 나를 세우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서방에 있는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갈 즈음에 그는 새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중重이라는 아들을 동방 천제 복희의 신하로 남겨 두었는데 그가 바로 나무의 신

구망이었다. 그리고 소호는 <해該>라고 하는 또 다른 아들을 그의 신하 금신金神 욕수蓐收로 삼아 함께 서방으로 가서 천제가 되어

서방 1만2천 리를 다스렸다.


* 뇌수雷獸(뇌신雷神) : 171, 312~313(313 그림), 산해경 281(281 그림 )

뇌택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한 괴물

뇌수는 늘 아무런 걱정도 없이 자기의 배를 두드리며 뇌택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뇌수가 배를 한번씩 두드릴 때마다 크나큰

천둥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옛날에 복희의 어머니인 화서씨가 그의 발자국을 밟은 뒤 복희를 낳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거니와,

뇌신은 실로 유명한 대신大神이었다.


* 기棄(후직后稷) : 278, 389~393

- 주周민족의 시조, 곤륜산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직택이라는 호수에 거주

- 후직의 무덤은 산과 강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으며 저국氐國의 서쪽에 있다.

- 전설에 의하면 유태씨에게는 강원이라는 딸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그녀가 교외에 나가 놀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땅위에 거대한 거인의 발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발을 그 거인의 발자국 위에 대어 보았다.

거인의 발자국과 자신의 발이 도대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 발자국이 얼마나 크던지 그녀의 발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녀가 엄지발가락 부분을 막 밟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어떤 감동 같은 것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을 했고 시간이 지나자 뭔가 이상한 것을 낳았는데 그것은 고양이도 개도 아닌 것이 그저

둥그런 살덩어리일 뿐이었다. 그 모습이 하도 기이하여 두려운 마음이 든 그녀는 그 살덩어리를 마을의 좁을 골목길에 모래 내다

버렸다.

골목길에는 소나 양들이 자주 지나다녔는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동들이 살덩어리를 밟을까 봐 조심하여 옆으로 비켜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살덩어리를 다시 들고 숲 속으로 가 그곳에 버리려 했으나 마침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베느라고 떠들썩하게 모여

있어 버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오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들판의 연못가를 지나오게 되었고, 연못의 물이 꽁꽁 얼어 있는 것을 보자 마음을 독하게 먹은 그녀는 살덩어리를 

차디찬 연못의 얼음 위에 놓아두고 그대로 떠나려 했다. 그때 참으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아득한 하늘 저편에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두 개의 날개로 그 살덩어리를 포근히 감싸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품어 따스하게 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깜짝 놀란 경원은 참지를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그 모습을 더 자세히 보려 했다. 사람의 기척을 느끼자 그 새는 휘~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날개 사이에 품고 있던 살덩어리를 떨어뜨린 채 그 새는 머나먼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살덩어리 속에서 응애, 응애!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강원이 급히 달려가 보니 달걀 껍질이 깨어진 듯이 깨진 껍질 사이로 튼튼하게 생긴 발그레한 사내아이가 자그마한 손발을 휘저으며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책에 보면 그때 그 아기는 활과 화살을

지니고 있었는데 자그마한 활에 화살을 메워 마치 하늘을 향해 쏠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높디높은 하늘에 앉아 있던 천제를

놀라게 했다고 하기도 한다.

강원은 자기가 낳은 것이 무슨 이상한 괴물이 아니라 귀여운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서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얼음판 위에서 얼른 아이를 안아 올려 자기 옷으로 따뜻하게 감싼 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기르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여러 번 버려졌었기 때문에 <기蘷>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기는 후에 주민족의 시조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농사짓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장성한

뒤에는 사람들에게 오곡을 심는 법을 가르쳤으므로 그의 자손들은 그를 <후직后稷>이라 존칭하였다.

어렸을 때 후직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그는 놀 때에도 야생의 보리와 조  그리고 콩, 고량과 각종의 박과 과일들의 씨앗을 모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것들을 땅에 심었다.

후에 오곡과 호박, 콩들은 모두 잘 자라서 열매가 살찌고 탐스러웠으며 달고 향기로와 야생의 것들보다 훨씬 좋았다.

커서 어른이 된 뒤 그는 농업 방면에 관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나서는 또 나무와 돌로 간단한 농기구 몇 가지를 만들어서 그의 고향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

수렵과 야생 과일의 채취만으로 살아가던 그 당시 사람들은 점차 인구가 늘어나 먹을 것이 모자라게 되자 생활이 무척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후직이 이루어 놓은 농업의 성과를 보고서 점차 그를 믿게 되어 농사짓는 일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새롭고 의미 있는 노동은 후직 어머니의 고향인 유태 지방에도 전해지게 되었고, 당시의 국왕이던 요임금도 후직과 그 고향

사람들이 이룬 농업의 성과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임금은 후직을 농사農師로 청했는데 그 직책은 바로 전국의 총농예사總農藝師였던 것이다.

그는 후직에게 전국 백성들을 위해 농사짓는 여러 가지 기술들을 지도해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후에 요임금을 뒤이은 순임금은 후직을 태邰지방에 봉하여 주고 그의 백성들의 농업 시험장으로 삼기도 했다.

- 전설에 따르면 신성神性을 지닌 이 영웅은 하늘나라에도 올라갔었는데 그곳에서 온갖 곡식의 씨앗들을 가지고 인간세계로 돌아와

대지 위에 그것들을 흩뿌려 수많은 농작물들이 들판을 가득 채우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들의 생활은 한층 더 행복해졌다고 전해진다.


* 끽구 : 286

힘이 무척이나 쎈 천신

황제1.HWP의 「적수 일화」 참조.


* 뇌공雷公 : 163~169

- 복희와 여와의 일화 중, 광서廣西 융현融縣 나성羅城에 살고 있는 요족의 전설

......금방이라도 큰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구름은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바람은 거세며 천둥소리가 우릉우릉 하늘에서 울리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놀랐지만 사람들은 바깥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평소와 다름없이 집밖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면 늘 이런 소낙비가 내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역시 밖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시냇물에서 걷어다가 말려 두었던 푸른 이끼를 나무껍질로 만들어진 지붕 위에 깔았다.

이렇게 하면 큰비가 내려도 지붕이 새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지붕 위에 이끼를 덮는 동안 아직 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그의 아들과 딸은 천진난만하게 집 바깥에서 놀며 아빠가 일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남자는 지붕에 이끼 까는 일을 끝내고 내려와 아이들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아버지와 자식들은 창문을 꼭 닫고 따뜻한 집안에서 가정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비는 점점 더 쏟아져 내리고 바람은 거세게 몰아쳤으며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는 더욱 맹렬해져 갔다.

마치 하늘의 뇌공雷公이 노하여 인간 세상에 자신의 위세를 떨쳐 보려는 듯, 인간에게 큰 재해를 내리려는 듯 했다.

이때 집안에 있던 사내는 큰 재앙이 곧 닥치라는 것을 예감이나 한 듯이 미리 만들어 놓았던 쇠철장으로 된 둥우리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처마 밑에 놓고는 둥우리를 열어 놓고 호랑이를 잡을 때 쓰는 쇠스랑을 손에 들고서 용감하게 그곳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의 먹구름은 점점 짙어지고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는 연이어 들려 오는데, 처마 밑에 서 있는 그 용사는 매우 침착했고 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번개가 치고 이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큰 우뢰소리가 들려 왔다. 곧이어 푸른 얼굴의 뇌공이 손에 토끼를 들고 재빠르게 지붕

위에서 날아 내려왔다. 그의 등뒤에 달린 날개는 흔들거리고 눈에서는 사납게 빛나는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처마 밑의 용사는 뇌공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얼른 호랑이 잡는 쇠스랑을 휘둘러서 단번에 뇌공의 허리를 찔러 그를 쇠둥우리 속에

넣어서는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이제야말로 네가 내게 잡혔구나. 어디 네가 무슨 재주를 더 부릴 수 있나 볼까?」

남자는 쇠우리 속의 뇌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뇌공은 상심하여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도 못했다.

사내는 그의 아들에게 뇌공을 지키고 있으라고 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기이하게 생긴 푸른 얼굴의 뇌공을 보고 매우 놀랐으나 조금

지나자 익숙해져서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사내는 뇌공을 죽여 젓갈을 담가 반찬으로 만들려고 시내에 향료를 사러 갔다. 집을 나서면서 그는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기억해라, 절대로 그놈에게 물을 주어선 안돼」

사내가 떠나자, 뇌공은 쇠우리 속에서 거짓으로 신음하는 척하며 고통스런 모습을 지어 보였다.

아이들이 달려와 그에게 왜 신음하느냐고 물었다. 뇌공이 말했다.

「목이 마르구나, 내게 물 한 그릇만 주겠니?」

그러자 계집애보다 나이다 좀더 먹은 사내아이가 말했다.

「아빠가 떠나실 때 당신에게 물을 주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물을 드릴 수가 없어요.」

뇌공은 간절히 빌며 말했다.

「물 한 그릇이 안 된다면 한 잔이라도 좋다. 난 정말 몹시 목이 마르단다.」

사내아이는 거절했다.

「안돼요, 아빠가 아시면 혼난다구요.」

뇌공은 매우 고집스럽게 계속 애걸했다.

「그렇다면 부엌에서 솥 닦는 솔이라도 좀 가져와서 몇 방울만이라도 좀 주렴, 목말라서 정말 죽겠구나」

뇌공은 말을 끝내고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좀 어린 계집아이가 뇌공이 이렇게 괴로워하는걸 보고는 연민의

감정이 일어났다.

아빠가 하루 낮 하루 밤을 꼬박 쇠우리 속에 가두어 두었는데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게 하다니, 정말 가엾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우리 저 사람에게 물 몇 방울만 주어 봐요.」

오빠 역시 그 말을 듣고는 그까짓 물 몇 방울이 뭐 대수랴 싶어 동생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오누이는 부엌에 가서 솥 닦는 솔을 가지고 와서 물 몇 방울을 따라 내어 뇌공의 입 속에 떨어뜨려 주었다.

뇌공은 물을 마시자 너무나 기뻐하며 오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얘들아, 고맙다! 내가 좀 나가야겠으니 너희들 잠깐만 이 집에서 나가 있으렴」

아이들은 당황하여 문밖으로 뛰어나왔다.

땅이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뇌공은 이미 쇠우리를 뚫고 집안에서 날아오르고 있었다.

뇌공은 자기 입 속에서 급히 이빨 하나를 뽑아 두 아이에게 주며 말했다.

「어서 이것을 땅속에 심어라. 만일에 재난을 당하면 거기서 열린 열매 속에 숨으면 된다.」

말을 마치자마자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아이들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향료를 사서 뇌공을 젓 담그려 했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쇠우리가 부서지고 뇌공이 도망쳐 버린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급히 아이들을 불러 이유를 묻고 나서야 사정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아빠는 굉장한 재난이 곧 닥쳐오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야단치지 않고 급히 재료를 준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여 쇠로 된 배 한 척을 만들어

재난에 대비했다.

두 아이도 뇌공이 준 이빨을 장난 삼아 땅속에 묻었다.

이빨을 심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진흙 속에서 부드러운 새싹이 솟아 나왔다.

이 새싹은 눈에 보이게 쑥쑥 자라나서 단 하루만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다음날 아침 다시 가보니 그 열매는 이미 무척 커져서 엄청나게 큰 호리박이 되어 있었다.

오누이는 집으로 돌아와 톱을 가지고 가서 호리박의 뚜껑을 따 보았다. 그 호리박 속에는 놀랍게도 셀 수 없이 많은 이빨들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그 이빨들을 모두 파내 버리고 호리박 속으로 기어 들어가 보았다.

그것은 두 아이가 숨기에 꼭 알맞은 크기여서, 아이들은 호리박을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가 그곳에 숨겨 두었다.

사흘째가 되자 아빠의 쇠로 된 배도 다 만들어졌다. 바로 그때 날씨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어두운 하늘에서 미친 듯이 비가 쏟아져 내렸다.

땅에는 물이 넘쳐 홍수가 나서 야생마같이 들끓는 물이 언덕을 뒤덮고 높은 산을 휘감으니, 들과 집, 숲과 마을이 모두 망망대해로

변했다.

「얘들아!」

비바람 소에서 아빠가 소리쳤다.

「어서 숨어라! 뇌공이 홍수를 일으켜서 복수하려 온다!」

두 아이는 급하게 호리박 속에 숨었고 아빠는 자신이 만든 쇠배 속에 숨어, 높게 넘실거리는 파도를 타고 이리저리 표류하게 되었다.

홍수는 갈수록 심해져 그 물길이 하늘까지 닿았다. 쇠배를 탄 용사는 비바람과 미친 듯한 파도 속에서 침착하게 그의 배를 조종해

하늘의 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가 뱃머리에 선 채 그 문을 두드리자 탕탕 치는 소리가 아홉 층 하늘을 울렸다.

「빨리 문을 열어라, 나 좀 들어가야겠다. 나를 들어가게 해줘!」

그는 바깥에서 지치지 않고 소리 쳤으며 주먹으로 하늘의 문을 시끄럽게 두드렸다.

문안에 있던 천신天神들은 두려워서 급히 수신水神에게 명을 내렸다.

「빨리 물을 빼라!」

수신이 명령대로 행하니, 순식간에 비바람이 멈추고 홍수가 끝나 갑작스레 대지에서 마른  땅이 나타나게 되었다.

홍수가 끝나 물이 빠질 때 용사가 탄 배는 높은 하늘에서부터 그대로 떨어졌는데, 쇠로 만들어진 배가 단단했기 때문에 땅에 떨어지자

그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뇌공과 용감하게 싸웠고 또 뇌공을 잡아 가두기도 했던 이 무명의 용사는 가엾게도 그의 배와 운명을 함께 하여 역시 죽어 버렸다.

그러나 호리박 속에 숨었던 그의 두 아이는 죽지 않았는데, 그것은 호리박이 부드러워 탄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공중에서 떨어질 때 몇 번 톡톡 튀어 오르기만 했을 뿐, 다친 데는 한 군데도 없었다.

하늘까지 차 오르던 홍수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대지 위에 살던 인류는 모두 죽어 버리고 두 아이만 남게 되었으니 그들이 인류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것이다.

그들 둘에게는 본래 이름이 없었는데 호리박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하여 이름을 <복희伏羲> 라 하게 되었다. <복희>란 <포희匏䖒>,

즉 <호로箶盧>를 뜻한다.

그래서 남자아이는 <복희가伏羲哥>, 여자아이는 <복희매伏羲妹>라 했으니, 바로 <호리박 오빠>, <호리박 누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비록 대지에 인류가 사라져 버리기는 했으나, 이 한 쌍의 용감한 젊은이는 열심히 일하며 즐겁고 적정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하늘과 땅의 거리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고 하늘이 문이 늘 열려 있었기 때문에, 오누이는 손에 손을 잡고

하늘사다리를 타고 하늘나라에 가서 놀곤 했다.

시간은 유수같이 흘러 어느덧 그들은 모두 어른이 되었다. 오빠는 동생과 결혼하고 싶어했으나 동생은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결혼을 해요? 우리는 친형제잖아요.」

동생은 늘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오빠가 자꾸 자꾸 원하니까 동생도 거절만 할 수 없어서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저를 쫓아오세요, 저를 잡을 수 있다면 오빠와 결혼하겠어요.」

그래서 오빠와 동생은 큰 나무를 가운데에 두고 빙빙 돌며 도망치고 쫓아가고 하게 되었다.

동생은 민첩하고 재빨라 오빠가 아무리 쫓아가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오빠는 꾀를 내었다.

동생을 쫓아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몸을 돌리니 무방비 상태에서 숨만 몰아쉬던 동생은 그만 오빠의 품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둘은 결국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부부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은 둥근 공처럼 생긴 살덩어리를 하나 낳게 되어 부부는 기이하다고 생각하며 이 살덩어리를 잘게

다져 종이로 쌌다.

이 물건을 가지고 하늘사다리를 타고 하늘나라에 가서 놀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간쯤 올라갔을 때 갑자기 바람이 몰아쳤다. 그 바람에 종이가 찢겨 잘게 다진 살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그것들이 땅에 떨어져 모두 사람이 되었다.

나뭇잎 위에 떨어진 것은 엽葉씨 성을 갖게 되었고 나무 위에 떨어진 것은 목木씨 성을 갖는 등, 살덩어리들이 떨어진 곳의 사물

이름을 성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세상에는 인류가 다시 생겨나게 되었다.

- 뇌공이 뽑아 준 이빨이 호리박으로 변하여 살아난 남매에 의해 자손이 번식하게 된다는 이야기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인류의

번식은 뇌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 도산씨塗山氏(여교女憍) : 61, 522~526

- 자태가 우아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우임금의 아내

- 우가 홍수를 다스릴 때였다. 그는 곰으로 변하여 환원산轘轅山을 뚫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인 도산씨塗山氏가 그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숭고산崇高山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가 도산씨를 쫓아 숭고산 기슭까지 이르렀을 때, 그녀는 갑자기 돌로 변하였고 돌로 변한 도산씨의 몸 속에서 그들의 아들인 계啓

(갈라져 열린다)가 튀어나왔다.


* 도철饕餮(치우蚩尤) : 322~323

- 은∙주 시대의 제기祭器들에 새겨진 그림 속의 괴이한 동물로 무섭게 생긴 머리만 있었고 몸뚱이는 없었는데 머리의 양쪽에는 한

쌍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그 날개가 마치 한 쌍의 귀와도 흡사해 사람들은 그것을 <도철饕餮>이라 불렀다.

도철이란 바로 끊임없이 먹는 것을 밝힌다는 뜻이다.

먹는 것을 그렇게 탐했기 때문에 최후에는 사람을 잡아먹던 그의 잘려진 목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즉 어떤 책에 기록된 대로 <사람을 잡아먹으려다가 먹지도 못하고 자기가 먼저 재앙을 당한>꼴이었다.

실패한 치우의 종말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 황제는 치우의 목을 잘랐으며 후대의 임금들은 상상 속의 이 머리 모양을 제기 등에 새겨 넣어 야심만만

하여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하려 하는 신하와 제후들이 경계로 삼게 했던 것이다.

그 짐승 머리의 양쪽에 달려 있던 귀처럼 생긴 날개는 아마도 치우의 등에 붙어 있었던 날개인 것 같은데, 치우는 바로 이 날개로

<공중을 돌아다니며> 위세를 자랑했던 것이다.

- 서남방의 황야에서 살던 모인毛人인데 머리에는 돼지 대가리를 쓰고 있었고 성품이 탐욕스럽고 못됐다.

재물을 모을 줄만 알았지 쓰는 데는 벌벌 떨었으며, 일하기를 싫어하였고 다른 사람들이 땀흘려 일한 대가 - 곡식 등을 약탈하였다.

그것들을 빼앗을 때에는 강한 자에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했으니, 모여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면 잽싸게 숨었다가 혼자 가는

사람을 보면 그를 공격하였다고 한다. 그 모습이 물론 청동기에 그려진 도철과 좀 다르긴 했지만 성품만은 전설 속의 도철과

비슷했다.

그러므로 그 역시 역사 속의 유명한 악당 치우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 치우蚩尤 : 55, (211 치우 그림), 212

- 고서의 기록에 따르면, 하늘나라에 사는 <치우蚩尤>라고 하는 못된 신이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몰래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을 선동하여 함께 반역을 도모하려 하였다.

그때 남방의 묘족 사람들은 완고하여 그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치우는 여러 가지 잔혹한 형벌을 만들어 내어 묘족 사람들의 자기를 다를 것을 종용했다.

처음에는 버티던 묘족 사람들도 오랜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이런 형벌들을 견디어 낼 수 없었다.

또 치우는 좋은 일을 한 사람들에게는 벌을 내리고 나쁜 짓을 한 자들에게는 상을 주었다.

이렇게 악을 조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묘족 사람들은 점차 본래의 선량한 성품들을 잃어 가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모두가 치우를 따라 난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그들의 성품이 일단 변하니까 처음부터 치우를 추종했던 무리들 보다

더욱 못되게 변하였다. 그들은 치우를 도와 상제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숱하게 많은 선량한 백성들이 그들로 인한 피해를 맨 먼저 입게 되었다.

그래서 무고하게 살해된 원혼들이 상제인 황제에게 가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황제가 사람을 보내어 진상을 조사해 보니, 묘족의 행패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한 것을 알게 되었다.

선량한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침내 황제는 하늘나라의 장수와 병사들을 모아 인간세계로 보내어 묘족들을 토벌하게 하였다.

결국 치우는 피살되고 묘족들도 죽임을 당하여, 얼마 남지 않은 묘족의 유민遺民들도 부족의 형성을 할만큼은 못 되게 되었으니,

이렇게 하여 상제는 <하늘에서 내리는 토벌>을 끝냈던 것이다.

- 치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늘나라의 못된 신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본래는 용맹스러운 한 거인족의 명칭이었다.

이 부족 사람들은 남방에 살았는데 염제의 자손이라고 한다.

고서의 기록에 의하면 치우에게는 모두 81명 혹은 72명의 형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모두 유별나게 용맹스러워 보였다.

(치우형상1.HWP 참조)

치우는 형상만 기괴했던 것이 아니라 먹는 것도 이상스러웠다.

그는 모래나 돌, 쇳덩이 등을 밥으로 삼아 매일 먹었다. 또 그에게는 여러 가지 무기들을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창, 커다란 도끼와 튼튼한 방패, 그리고 가볍고도 빨리 나는 활과 화살 등이 모두 그가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밖에도 그는 초인적인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재주가 이렇게 뛰어나고 보니 점차로 분수를 지키지 않게 되어 존귀한 상제의 자리를 찬탈해 자신이 한번 앉아 보고자 하는

야심이 생겨나게 되었다.

황제가 서태산에서 천하의 귀신들을 모두 모으게 했을 때 물론 치우도 참가하여 복종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랬으나 속으로는 황제의 실력을 한번 염탐해 보려 한 것인지 어찌 알겠는가?

그곳에서 돌아온 뒤 그는 가만히 계산을 해보았다. 황제의 위세가 물론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라고 할 수는없었다.

그러나 황제의 위세 역시 그저 그런 것일 뿐, 막상 무력으로 한번 붙어 본다면 자기가 꼭 진다고 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인 염제, 인자하지만 겁이 많아 황제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던 그 염제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중앙 천제의 자리를 빼앗아 오고 싶었다.

치우는 황제에게서 떠나온 뒤 염제에게 황제의 상황을 보고했다. 지금 황제가 겉에서 보면 기세등등하고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허장성세에 불과하다, 별 거 아니니 지금 군사를 일으켜 다시 황제와 겨루어서 예전의 패배를 설욕하고 열심히 이야기했다.

그러나 염제는 이미 늙어 기력이 쇠진한 상태였다.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땅에서 그냥 남방 천제 노릇에 만족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또다시 황제와 패권을 다투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승리하든지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일반 백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애로운 염제로서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치우의 채근에도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치우는 염제가 병사를 일으킬 생각이 없음을 알고 자기 자신이 그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우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자기의 형제들 7,80명을 불러모았다.

그들이 이미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치우의 부름에 곧바로 응했다.

모두들 자신의 최선을 다할 각오로 모였고 또 치우의 지휘에 다르기로 결정했다.

치우는 또 남방의 묘족을 소집했다. (묘족1.HWP 참조)

이 밖에도 수풀과 물가에 사는 이매魑魅 망량魍魎같은 귀신들도 치우의 편에 가담했다.

황제의 신하인 귀신들의 우두머리, 즉 신도神筡와 울루鬱壘의 삼엄한 감시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귀신들이 치우의 소문을 듣고

달려온 것이었다. 그들 역시 치우를 도와 황제의 자리를 빼앗고자 했다.

드디어 치우는 염제의 이름을 빌려 스스로 <염제>라고 칭하고서 정식으로 반항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

그는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서 남방에서부터 위풍당당하게 진군하여 순식간에 고대의 유명한 전쟁터 탁록

涿鹿에 도착했다.

탁록과 판천阪泉은 거리 상으로 불과 몇 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동일한 지역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곤륜산의 궁정에서 유유히 노닐며 태평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 황제는 치우가 군사를 일으켜 바로 얼마 전에 자기가 염제를

물리쳤던 그곳, 탁록(즉 판천)으로 쳐들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뿐만 아니라 치우가 대담하게도 <염제>의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염제를 대신해 복수를 하고 중앙 상제의 자리를

빼앗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으니, 황제의 노여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깊고 계산이 치밀한 황제는 <도덕과 인의>를 베푸는 데 뛰어났다. 고서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바로 그 인의와

도덕으로 치우를 감화시켜 <마음을 공략하고> <전쟁을 하되 피 흘리지 않는>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자 했다.

그러나 고집불통인 치우는 황제의 감화를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결국 상황은 전쟁으로 귀착이 되고 말았다.

이 전쟁은 말할 수 없이 격렬했다. 치우 쪽의 군대는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단 칠 팔십 명의 형제들과 묘족, 그리고 도깨비 등의

요괴들이었다. 황제의 군대로는 사방의 귀신들과 곰, 비휴豼貅, 호랑이 등의 맹수들, 그리고 황제를 도와 싸우려 했던 인간 세계의

몇몇 부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팽팽한 맞수로서 조금도 지지 않으려 했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치우의 군대는 과연 강인하고 용맹스러웠다.

황제에게는 한 무리의 동물 돌격대가 있었고 사방의 귀신들과 또 인간세계의 용감한 부족들이 와서 도와주었으나 그들은 모두 치우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연달아 몇 차례의 싸움에 패하게 되자 상황이 무척이나 난감하였다.

(풍후1.HWP 참조, 리매망량신괴.HWP 참조, 발1.HWP 참조, 기&뇌수 참조, 과보1.HWP참조, 치우죽음1.HWP 참조)

- 치우蚩尤가 죽은 뒤에 <태원 사람들이 치우에게 제사를 올릴 때는 소의 머리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치우의 씨족 토템이 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 리매魑魅 : 307, 리매망량신괴.HWP 참조

* 신괴神槐 : 307, 리매망량신괴.HWP 참조

* 망량魍魎 : 307, 215, 리매망량신괴.HWP 참조

상제 전욱의 불초한 세 아들 중 한 명으로 약수若水에 살면서 도깨비(망량)가 되었는데, 이 도깨비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고

붉은 눈에 길다란 귀, 검은 데 붉은 빛 감도는 몸을 하고 있었다.

또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으며 사람 목소리를 잘 흉내내어 사람들을 미혹시켰다.


* 형천型天 : 341~344, 형천1.HWP 참조, 산해경 237(237 그림)

- 형천이 천제와 신의 지위를 다투었는데 천제가 그의 머리를 잘라 상양산에 묻자 곧 젓으로 눈을 삼고 배꼽으로 입을 삼아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추었다.


* 현녀玄女 : 319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한 부인.

그녀는 득도得道한 하늘나라의 여선인女仙人인데 과보족이 합세한 치우 군대를 맞아 고전하던 황제를 찾아와서는 병법을 가르쳐

주었다.

황제가 현녀의 병법을 전수 받아 군대를 움직여 진을 치자 실로 그 변화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과보1.HWP 참조)


* 무라巫羅, 무사巫謝 : 507, 519, 580

- 서방에 위치한 갖가지 진귀한 약초가 있는 무산 巫山(운우산雲雨山, 혹은 영산靈山)에서 활동하는(신과

인간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 무산에서 자라는 온갖 진귀한 약초들을 캐어 신약을 제조하기도 한다.)

열 명의 무당(무사巫師, 무함巫咸∙무즉巫卽∙무반巫盼∙무팽巫彭∙무고巫故∙무진巫眞∙무례巫禮∙무저 巫抵∙무사巫������∙무라巫羅 등)

중 일인.

- 여자국女子國의 남쪽에 무함국巫咸國이라는 곳이 있다. 무함국은 무사巫師들이 모여서 만든 나라인데 그중 유명한 것이 무함巫咸∙

무즉巫卽∙무반巫盼∙무팽巫彭∙무고巫故∙무진巫眞∙무례巫禮∙무저 巫抵∙무사巫������∙무라巫羅 등 열 명의 무사들이다.

그들은 오른손에는 푸른 뱀을, 왼손에는 붉은 뱀을 쥐고서 등보산登葆山을 오르내리며 약초를 찾아 다녔다.


* 무라신武羅神 : 284~285

- 청요지산淸要之山의 규모가 좀 작은 황제의 비밀 행궁의 관리자

사람의 얼굴에 몸에는 표범 무늬가 있었으며 허리가 가늘었고 이는 백옥처럼 흰빛이며, 귀에는 금귀고리를 달고 있었으며 우는소리가

마치 패옥이 딩동 거리는 소리와 같아서 무척 듣기가 좋았다

- [산해경]의 기록에 따르면 청요지산의 행궁에는 순초荀草라는 풀이 자라고 있었는데 네모나고 길쭉한 줄기에 노란 꽃이 피었고

붉은 열매가 열렸다. 이 열매를 먹으면 얼굴빛이 아름다워졌다고 한다.

이런 기록들을 보건대 무라신은 <산귀>와 같이 아리따운 여신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다른 책의 기록에 의하면 무라신은 서리의 신이라고도 한다. 또 그녀가 여성인 산신이라고도 하고 있는데 비록 그런 주장이 [산해경]

에 나타난 묘사를 보고 억지로 끌어내 온 이야기라고 해도 그 견강부회의 유래가 이미 오래된 것이라면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 산귀山鬼 : 285

[초사] [구가九歌]의 [산귀편]에 보면 그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과 마음을 묘사해 주고 있는 몇 구절이 있는데, 그 구절들 또한

무라신의 모습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깊은 산 속에 한 여인이 살았지.

벽려薜荔풀 옷을 걸치고 이끼풀 띠를 둘렀다네.

그렇게도 다정한 그녀의 눈빛과 사랑스러운 미소,

성품은 자상했고 자태 또한 날렵했네.

붉은 표범 타고 가는 그녀의 뒤를 아름다운 너구리가 따라갔지.

백목련을 수레로 삼고 계수나무로 깃발을 세웠네.

수레엔 향긋한 석란石蘭, 두형杜衡풀이 향기를 흩뿌리는데

아름다운 꽃 한 송이 꺾어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려 하네.

(들어 보라, 그녀의 노랫소리가 그 얼마나 처량했는가를.)

- 돌아가야 함조차 잊은 채로, 내 그대 위하여 망연히 여기 있어요.

나이 들어 이미 황혼, 누구라서 내게 아름다움을 다시 돌려줄 수 있을까.

무산巫山의 지초芝草라도 캐서 미모를 되찾아 볼까 하나

산 속의 바윗돌은 첩첩하고 끝없이 얽힌 넝쿨이 어지러워요.

돌아가야 함조차 잊은 채로, 한탄하며 나는 그대를 원망해요.

그대는 지금도 날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그럴 틈이 없는 건가요.


* 무산신녀巫山神女: 270

- 염제에게는 요희瑤姬라는 딸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막 시집갈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결혼도 못한 채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가슴속에 열정이 가득했던 이 소녀의 영혼은 고요지산故搖之山으로 가서 한 포기의 요초瑤草로 변했다.

이 요초는 이파리가 겹겹이 자라 매우 무성했는데, 노란 색 꽃이 피고 나서 토사菟絲 열매 같은 열매가 열렸다.

그런데 누구든지 이 열매를 먹기만 하면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천제는 요희가 일찍 죽은 것을 불쌍히 여겨 그녀를 무산巫山으로 보내어 무산의 구름과 비의 신으로 삼았다.

새벽이 되면 그녀는 아름다운 아침의 구름으로 변하여 자유롭고 한가하게 산 고개와 골짜기를 떠다녔고,

저녁 무렵이 되면 한바탕 내리는 비로 변해서 산과 물을 향해 그녀의 애통함을 흩뿌리곤 했다.

그 뒤 전국시대 말기에 초나라 회왕懷王이 운몽雲夢지방을 여행하다가 <고당高唐>이라고 하는 큰 누각에서 머물게 되었다.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이 여신은 한낮인데도 고당으로 달려와, 막 낮잠을 즐기고 있는 회왕에게 그녀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회왕은 그 꿈이 기이하기도 하고 또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여, 고당 근처에 그녀를 위한 사당을 짓고 사당의 이름을

 <아침의 구름(朝雲)>이라고 지었다 한다.

훗날 회왕의 아들 양왕襄王이 그의 어전시인 송옥宋玉과 함께 이곳을 여행하다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양왕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난 저녁, 송은 그와 비슷한 이상하고도 슬픈 꿈을 꾸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 그는 그 이야기를 또

양왕에게 들려주었다.

양왕은 그 두 가지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송옥에게 명하였고, 송옥은 그 명을 받들어 「고당부高唐賦」와 「신녀부神女賦」를

지었다.

훗날 문학작품에 전고로 자주 인용되는 <양왕몽襄王夢>이라는 것은 고서의 기재 착오로 인한 오해인데, 초 양왕과 무산신녀는 사실

아무런 관계도 없다.

- 요희가 우임금의 치수를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운화부인雲華夫人의 이름은 요희인데 서왕모西王母의 스물 세 번째 딸이다.

신선의 도를 닦은 뒤 동해東海에서 돌아오다가 무산巫山을 지나게 되었는데 무산의 협곡이 너무 아름다워 떠나기가 싫어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 마침 우禹임금도 치수를 하느라 무산 기슭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치수 작업 중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와 천지가 진동을

하고 돌덩이가 날아 다녀 더 이상 작업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우임금은 생각 끝에 운화부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다.

부인은 그에게 귀신을 부리는 법술을 가르쳐 주었고 또 그녀의 신하들인 광장狂章∙우여虞余∙황마黃魔∙대예大蘙∙경진庚辰∙동률童律을

보내어 우임금의 치수 작업을 돕게 하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은 가라앉았고 무산의 협곡을 뚫는 일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치수의 작업이 일단락 되었다.

우임금은 운화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려고 그녀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가 높은 절벽 위에 서서 바라다보니 그녀는 이미 돌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돌덩이였던 그녀가 순식간에 구름으로 변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비로 변했고, 그런가 하면 또 용으로 변했다가 흰 학으로 변해 날아가는 등,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그녀의 그런 변화를 보고 우임금은 그녀가 진짜 신선인지 의심스러워졌다.

그래서 동률에게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신기했다. 운화부인은 사람의 뱃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서화西華 소음少陰의 기氣가 모여

이루어진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변화무쌍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인간세계에 있을 때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천지 만물 사이에 있을 때에는 바로 그 천지 만물의 모습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설명을 듣고서야 우임금은 의문이 풀렸다.

그는 두 번째로 그녀를 찾아가 자신의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깊은 산 속에 갑자기 아름다운 누각들이 나타났다. 사자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으며 천마天馬가 길을 안내했다.

우임금이 천마를 따라가자 누각에서 운화부인이 잔칫상을 차려 놓고 그를 맞이했다.

우임금은 고개 숙여 고마운 뜻을 전했고 운화부인은 따뜻하고도 세심하게 그를 대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시녀 능용화陵容華에게 붉은 옥으로 된 상자를 열게

하더니 그 안에서 치수의 비법이 적혀 있는 신기한 책을 꺼내어 우에게 주었다.

뿐만 아니라 경진과 우여에게 다시 우를 도와 치수 작업에 참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우임금은 운화부인의 이러한 도움 덕분에 13년 동안 중국 땅을 뒤덮었던 홍수를 마침내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무산의 경치에 넋을 잃고 그것에 머물러 있던 요희는 우임금의 치수 작업을 도와준 연유로 해서 그곳 사람들과 좋은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무산에 눌러 앉아 다시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무산에서 살게 된 그녀는 날마다 높은 절벽 위에 올라가서 무산의 삼협三峽, 즉 구당협瞿瑭峽∙무협巫峽∙서릉협西陵峽 등의

협곡 사이를 지나는 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협곡은 자그마치 칠 백리나 되는 물길이었는데 그녀는 그곳을 오가는 배들과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수백 마리의 신령스런 까마귀들을 그곳으로 보내어 협곡 위에서 맴돌며 배들을 안전하게 이끄는 일을 하게 하였다.

삼협에 들어서는 배들은 그 까마귀들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 무사히 협곡을 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에서 매일 멀리 협곡을 바라다보던 그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침내 그 봉우리의 한 부분으로 변해 갔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신녀봉神女峰이다.

 그녀를 시중들던 시녀들 역시 크고 작은 봉우리들로 변했으니 그것이 지금의 무산 12봉이다.

그 봉우리들은 마치 그녀들이 여전히 그곳에 서서 애틋한 마음으로 지나가는 배들을 위해 방향을 가리켜 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봉우리들은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있으면서 빼어나게 아름다워 삼협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다보며 세속을 초월한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녔던 선녀들을 떠올린다.

신녀봉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또한 누구나 우임금을 도와 치수를 완성하게 했던 요희를 생각해 낸다.

이리하여 옛날 전설에 나오던 요희, 초 회왕의 꿈속에 나타나 사랑을 호소하던 요희의 모습은 신녀봉 전설에 밀려 사람들 마음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 황마黃魔 : 272

운화부인의 신하로 우임금이 치수를 도와주었다.


* 발魃(한발旱魃, 천녀발天女魃, 황제녀발黃帝女魃) : 309~311(발1.HWP 참조), 산해경 323

계곤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있어 이름을 황제여발이라고 한다.

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황제를 치자 황제가 이에 응룡으로 하여금 기주야 에서 그를 공격하게 하였다.

응룡이 물을 모아 둔 것을 치우가 풍백과 우사에게 부탁하여 폭풍우로 거침없이 쏟아지게 했다.

황제가 이에 천녀天女인 발을 내려보내니 비가 그쳤고 마침내 치우를 죽였다.

발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되자 그가 머무는 곳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숙균이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아뢰자 후에 그녀는 적수의 북쪽에 두어 살게 하였고 숙균은 그리하여 밭농사의 책임자가 되었다.

발이 때때로 그곳을 빠져 나오면 그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은 “신이여! (적수의) 북쪽으로 돌아가고서.”라고 명령하듯이 말했다.

그전에 우선 물길을 깨끗하게 크고 작은 도랑을 터서 통하게 해 놓았다.

* 방상씨方相氏 : 206

- 위풍당당한 귀신들의 왕


* 식사食邪(척곽尺郭) : 486~487

동남쪽의 거인으로 키가 일곱 길이나 되며 배의 높이가 몸길이와 같았다고 한다.

머리에는<계부기두鷄父魌頭>를 쓰고 있었는데 <계부>라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기두>는 커다란 가면으로, 갑골문에서는

<기>자를 <  >로 표시하니 바로 사람이 커다란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그것은 방상씨가 쓴 것과 같은 것인데, 방상씨가 쓴 것은 눈이 네 개 달렸으나 척곽이 쓴 것은 눈이 두 개뿐이다.

그밖에도 그는 붉은 옷을 입고 허리에는 흰 띠를 매었으며 이마에는 붉은 뱀을 감고 있었는데 뱀이 꼬리와 머리가 맞물려 있었다.

이 괴인은 다른 건 먹지 않고 귀신만 잡아먹었으며 이슬로 목마름을 달랬는데, 새벽에 악귀 삼천 마리를 먹고 저녁에는 삼 백 마리를

먹었으므로 <식사食邪>라고도 하며 또 <탄사귀呑邪鬼> 혹은 <황보귀黃父鬼>라고도 불린다.


* 종규鐘馗 : 487

당唐 명황明皇이 악성 학질에 걸린 적이 있었다. 그는 고열이 나는 혼수상태에서 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큰 귀신이 작은 귀신을 뒤쫓고 있었는데 작은 귀신은 붉은 색 옷을 입고 짧은 바지를 입었으며 한쪽 발에는 신발을 신고

한쪽은 맨발이었다. 그는 양귀비의 자향紫香주머니와 명황의 옥피리를 훔쳐 복도를 돌아 도망치고 있었다.

큰 귀신은 모자를 썼으며 남색 도포를 입었고 발에는 짧은 목의 가죽신을 신었는데, 두 팔을 드러내고는 그 작은 귀신을 쫓아가 잡아

두 눈을 빼내어 산채로 꿀꺽 삼켜 버리는 것이었다.

명황은 참을 수 없어 큰 귀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그러자 큰 귀신이 대답했다.

「저는 무과에 급제하지 못하여 자살한 종규입니다. 폐하를 위하여 천하의 사악한 것들을 모조리 없애 드리기로 이미 맹세를 했지요.」

명황이 깨어나 보니 악성 학질은 어느새 씻은 듯이 나았다. 그래서 그는 이 이상한 꿈을 당시의 유명한 화가인 오도자吳道子에게

이야기하고, 오도자에게 그가 꿈에서 본 모습대로 <종규착귀도鐘馗捉鬼圖>를 그리게 했다.

오도자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붓을 들어 당 명황이 말한 대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이 무척이나 생동적이어서 마치 자신이 직접 본

것과도 같았다. 후에 이 이야기가 전해지자 천하의 백성들은 해마다 연말이면 종규가 귀신 잡는 그림을 그려 집에 붙여 놓아 사악한

것들을 쫓아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전설을 믿지 않았다.

<종규>는 <종규鐘葵>나고도 쓰는데 그것은 바로 「고공기考工記」에 나오는 <종규終葵>이다.

이 두 글자의 음을 합치면 <추椎>자가 된다. <추>라는 것은 곧 몽둥이를 가리키는데, 옛날 제 齊나라 사람들이 이 나무 몽둥이를

<종규終葵>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종규를 귀신이나 요괴들을 잡을 때에 사용했던 것인데, 이것이 인화人化가 되어 후세의 <종규착귀>라는 희극적인

전설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상당히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종규의 전설을 보면 영웅 예를 죽게 했던 복숭아나무 몽둥이가 생각난다.

전설에 의하면 예가 복숭아나무 몽둥이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후에 천하의 귀신들이 다 복숭아나무를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예가 천하의 모든 귀신들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귀신들의 우두머리까지 복숭아나무 몽둥이에 맞아 죽었기 대문에 후에 천하의 귀신들이 다 복숭아나무를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예가 천하의 모든 귀신들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귀신들의 우두머리까지 복숭아나무 몽둥이에 맞아 죽었으니 그 나머지 조무라기 귀신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하였을 것이다. 이것과 <종규착귀>의 전설에는 무척이나 큰 유사점이 있다.

하나는 복숭아나무 몽둥이에 맞아 죽어 못 귀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또 하나는 그 자신이 바로 큰 몽둥이의 화신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가 어쩌면 종규의 전신前身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주장 역시 꽤 믿을

만한 것이라 하겠다. 척곽은 바로 이 <종규終葵>나 <종규鐘葵>의 음이 바뀐 것으로 예나 종규의 신화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


* 방풍씨防風氏 : 510~512, 574

- 우가 회계산會稽山에서 여러 신들을 모이게 하니 모두들 도착했는데 방풍씨防風氏만이 늦게 왔다고 한다.

우는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여 그를 죽였다.

그로부터 1∼2천년이 지난 춘추시대, 오吳와 부차夫差가 월越나라를 칠 때, 부차는 월나라의 왕 구천句踐이 사는 회계산을 포위했다.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어서 산까지 모두 무너질 정도였다. 그때 무너진 산 속에서 뼈가 하나 나왔다.

그것은 인류나 짐승의 뼈가 아니었으나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수레 하나에 가득 찼다.

그래서 당시의 박학했던 공자孔子에 가서 물으니 공자가

회계산의 모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방풍씨의 뼈임을 알게 되었다.

우가 그때 천하의 여러 신들을 모이게 한 것은 아마도 공공에게 대항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은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우의 신통력과

권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공공은 우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우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회계산은 원래 <모산茅山>이라고 불렸다 하는데, 우가 거기에서 천하의 뭇 신들을 모이게 하여 치수를 의논하고 공공에 대항하려

하였으므로 회계산이라고 고쳐진 것이라 한다. <회계會稽>는 바로 <회계會計>이니, <모여서 의논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때 뜻하지 않게 방풍씨가 교만하게 약속을 지키지 않아 헛되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방풍씨를 죽일 때 세 길이 넘는 그의 키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망나니의 칼날이 그의 목에

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형을 집행하기 전에 특이한 과정이 필요했으니 곧 높다란 축대를 쌓는 일이었다.

높은 축대 아래에 방풍씨를 세워 놓고 그 위에 망나니가 올라갔다. 미리 만들어 두었던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칼을 든 힘센 무사는

이렇게 해서야 비로소 리우釐牛처럼 거대한 방풍씨의 목을 칠 수 있었다.

방풍씨가 죽은 뒤에도 이 축대는 오랜 기간 동안 그대로 있었는데 그것을 <형당型塘>이라고 불렀다. <당>이란 바로 <축대>라는

뜻이다. 목을 치는 광경이야 사람들이 한두 번 보아 온 것이 아니었지만 산처럼 거대한 사나이의 목이 잘리는 모습이야말로 신기한

것이었으니 이런 것은 신화 전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드문 일이었을 것이다.

방풍씨라는 거인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치우나 공공, 과보 그리고 형천 같은 <초대형 거인>들을 연상해 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염제의 후예들로 황제의 반대파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남방 거인족의 우두머리였던 방풍씨는 이들과 혹시 무슨

혈연관계라도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만일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면 왜 하필 우 임금이 치수의 방법과 공공에게 대항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에 그렇게 게으름을

부리며 늦게 가 죽음을 당한 것일까. 설혹 관계가 있었다 해도 고서에서는 아직 그 증거를 찾아낼 수가 없어 그저 하나의 의문으로

남겨 두는 수밖에 없다.

- 우는 치수가 끝나자 하늘에서 내려온 두 마리의 용을 범성광范成光이라고 하는 사신에게 주어 타고 바다

밖의 여러 나라를 순시하게 하였다. 그가 남해에 이르러 방풍씨 부족들의 나라를 지나가게 되었을 때였다.

우가 자신들의 왕을 죽인 것에 대한 한恨이 아직 풀리지도 않았는데 우의 신하가 용을 타고 와 위세를 과시하려 하는 것을 보자

방풍씨의 두 신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니, 그야말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귀빈이 땅 위로 내려오기도 전에 미리 활을 당겨 우의 사신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둥소리처럼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광풍이 휘몰아치고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내리면서 사신을 태운 두 마리의 용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순식간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방풍씨의 두 신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얼굴 색이 새파랗게 질리다

못해 검게 변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자신들이 엄청난 짓을 저질렀으며 그 죄는 용서받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한 그들은 남에게

당하느니 스스로 죽는 게 낫다고 여겨 허리춤에서 칼을 빼내어서는 가슴에 큰 구멍을 내고 죽어 버렸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우는 그들의 의리와 충직함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그들의 가슴에 꽂힌 칼을 빼내고 불사초 가루를 상처에 발라 주게 했다. 그러자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들은유유히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 뚫린 밥공기 만한 크기의 구멍은 다시 메워지지 않았으니, 이런 연유로 해서 그들의 후손 역시 뚫린 가슴을

갖게 되었고 나라 이름도 관흉국貫胸國이 되었다.


* 방풍국防風國 : 512

- 방풍씨의 사당이 있는 지금의 절강성浙江成 덕청현德靑縣의 막간산幕干山 기슭에 남아 있는 지명(방풍국

防風國, 방풍산防風山, 방풍동防風洞) 중 하나.


* 관흉국貫胸國 : 574, 방풍씨 참조, 산해경 231(232 그림)

남방의 이품異稟국으로 역민국의 동쪽에 위치

이 나라 사람들은 앞가슴에 커다랗고 둥근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이 생긴 기원은 방풍씨 참조.

가슴에 구멍이 있어서 존귀한 이는 옷을 벗고 비천한 것들로 하여금 대나무로 가슴을 꿰어 들고 다니게 한다.


* 백택白澤 : 295

황제가 한번은 곤륜산 동쪽에 있는 항산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그곳 해변가에서 우연히 <백택白澤>이라고 하는 신령스런 동물을 얻게 되었다.

이 동물은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았고 무척이나 지혜롭고 총명하여 천지간에 있는 귀신들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또한 수풀과 물가의 정기精氣나 그곳에 떠도는 영혼들이 변하여서 된 귀신이나 요괴들에 대해서도 훤히 알고 있었다.

 즉 무슨 산의 정령이 기망상蘷罔象인가, 용망량龍罔兩은 어떤 물의 정령인가,

또 도로의 정령인 작기作器와 무덤의 정령인 낭귀狼貴등에 대해서도 그는 조금도 막히지 않고 말해 낼 수 있었다.

우주의 통치자인 황제조차도 백택만큼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황제는 사람을 시켜 백택이 이야기해 내는 가지가지의 괴물들을 그림으로 그려내게 하고, 또 그 그림 옆에 설명을 달게

했는데 그것이 모두 1만1천5백20 종류가 되었다.

이때부터 황제는 이 요괴들을 관리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 비렴飛廉(풍백風伯, 이姨) : 297

머리는 참새처럼 생겼고 한 쌍의 뿔이 돋아 있었으며 몸은 사슴과 비슷했다.

그리고 뱀의 꼬리를 하고 있었으며 몸에는 표범 무늬가 있었다.


* 병예屛蘙(병호屛號, 우사雨師) : 297

생김새가 마치 누에와 비슷했지만 몸이 작다고 해서 과소 평가할 수는 없었다.

그가 한번 법술을 부리기만 하면 하늘 가득히 먹구름이 몰려와 눈 깜짝할 사이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 우사첩雨師妾 : 559~560(560 그림), 산해경 255(255 그림)

현고국玄股國 부근에 있는 부족으로 인간과 신의 중간에 속하는 뱀을 정복했던 괴인怪人들이었다.

이 부족 사람들은 온몸이 검은 색이었고 두 손에는 뱀을 한 마리씩 들고 있었다. 어떤 때는 뱀 대신에 자라를 들고 있기도 했다.

왼쪽 귀에는 푸른 뱀을 걸고 있었고 오른쪽 귀에는 붉은 뱀을 걸고 있었다.

- 몸빛이 검고 양손에 각각 뱀을 한 마리씩 잡고 있는데 왼쪽 귀에는 푸른 뱀을, 오른쪽 귀에는 붉은 뱀을 걸고 있다.

혹은 열 개의 태양의 북쪽에 있는데 생김새가 검은 몸빛에 사람의 얼굴이며 거북이를 한 마리씩 잡고 있다고도 한다.

- 「곽박」 : 병예屛蘙를 말함.

- 「학의행」 : 국명國名인 듯


*  태호(太皥, 太昊 / 포희包羲, 包犧, 庖犧 / 복희伏羲) : 54, 159~181(뇌공 참조), 514, 

- <태호 복희씨는 성이 풍이며 뱀의 몸,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복희씨의 씨족 토템은 뱀이었던 것 같다.

- 인류에 대한 복희의 공헌은 지대하다. 역사서 에서는 복희가 팔괘를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건乾은 하늘을 대표하고, 곤坤은 땅을 대표하며, 감坎은 물을, 이離는 불을, 간艮은 산을, 진震은 천둥, 손巽은 바람, 태兌는 늪을

나타낸다. 팔괘의 이 부호들은 세상 만물의 여러 가지 상황을 포괄한다.

인류는 이것들을 가지고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기록할 수 있었다.

또 복희는 노끈을 짜서 그물을 만들어 고기 잡는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그의 신하 망씨芒氏도 복희의 방법에 따라 새 잡는 그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새 잡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러한 발명들은 인류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인류에 대한 복희의 가장 큰 공헌은 아마도 불씨를 인류에게 가져다 준 일일 것이다.

불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동물의 익은 고기를 먹게 되어 위장병이나 배탈이 나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불을 발견해 낸 사람에 대해서 사서史書에는 수인씨燧人氏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기록에는 복희로 되어 있기도 하고

 황제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최초로 불을 취해 온 사람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정설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복희가 <포희庖犧> 혹은 <포희炮犧>라고 불렸는데, 그 뜻은 <희생물들을 부엌에 채운다> 또는 <날고기를 익힌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불이 있어야만 했을 것이니, <포희炮犧:동물의 고기를 굽는다는 뜻>의 발명은 곧 불의 발견을 뜻하는

것이다.

수인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킨 것도 그 목적이 바로 <포희炮犧>에 있었다.

신화 속에서 복희는 뇌신의 아들이며 또한 봄을 다스리는  동방이 상제였으니, 수목의 생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번개가 나무에 떨어진다면 어떤 광경이 벌어질까?

말할 것도 없이 타오르기 시작해 작렬하는 큰불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직책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본다면 아주 간단하게 <불>이라는 개념을 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불의 발견은 수인보다는 복희에게 돌리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물론 복희가 일으킨 불은 뇌우가 지난 뒤 숲에서 타오르는 천연적이 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수인이 나타나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켰는데, 이 불은 삼림에서 발생했던 자연적인 불 이후에

발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화서씨의 나라에 이름은 없고 그저 <화서씨>라고 만 불리는 소녀가 있었다. 하루는 그녀가 동쪽에 있는, 나무가 우거지고 경치가

아름다운 <뇌택雷澤>이라는 호숫가에 가서 놀고 있었다.

그녀는 우연히 뇌택 가에 찍혀 있는 한 거인의 발자국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소녀는 자신의 발로 거인의 발자국을 밟아 보았는데, 밟자마자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곧 임신을 해서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으니, 그가 곧 <복희>였다.

그러면 호숫가에 찍혀 있던 발자국의 임자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고서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 뇌택의 주신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뇌신으로, 사람의 머리에 용의 몸뚱이를 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천신이다.

이 발자국이 뇌신이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이겠는가. 전설에 의하면 복희는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가졌다거나 <용이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복희와 뇌신의 혈통 관계를 짐작할 수 있으니, 복희는 뇌신의 아들임에 틀림이 없다.

만일 복희가 천신과 인간 낙원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면 복희 역시 충분한 신성 神性을 지녔을 것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하늘사다리를 따라 마음대로 하늘을 오르내렸다는 사실은 그의 신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 우가 용문산龍門山을 뚫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우연히 그는 커다란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동굴은 몹시도 깊어서 들어갈수록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한 치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져 우는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안쪽에서 빛을 발하는 무엇인가가 나타났고, 빛을 뿜는 그 물건은 동굴 속을 온통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크고 검은 뱀이었다.

열 길이나 되는 긴 의 머리에는 뿔이 돋아 있었으며 입에는 야광주를 물고 앞에서 우의 길을 밝혀 주고 있었다.

우는 횃불을 버리고 그 뱀을 따라갔다. 한참을 가니 마침내 밝은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은 아마도 전당殿堂인 것 같았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뱀의 몸뚱이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신을 둘러싸고 모여 있었다. 우가 그 신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대충 짚이는 것이 있어 물었다.

「그대는 화서씨華胥氏의 아들 복희伏羲가 아닌가?」

「그렇소」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뚱이를 하고 있는 신이 대답했다.

「내가 바로 구하신녀九河神女인 화서씨의 아들 복희요!」

그들이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가 무척이나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복희는 어렸을 때 홍수 때문에 혼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치수의 위대한 작업을 하고 있는 우에 대하여 평소부터 존경심을 품어

오고 있던 터라 자신의 힘을 다해 조금이라도 우를 돕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품속에서 옥간玉簡을 꺼내어 우에게 주었다. 그것은 대나무 조각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길이가 한 자 두 치쯤 되었으며

그것으로 천지를 측량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후에 우는 그것을 몸에 지니고서 과연 홍수를 다스릴 수 있었다.


* 화서씨국華胥氏國 : 170

중국 서북쪽 수천만 리 되는 곳에 <화서씨華胥氏의 나라>라고 하는, 극락이라 부를 만한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어찌나 멀리 있는지, 걸어서든 혹은 차나 배를 타고서도 결코 갈 수가 없는 곳이고 다만

<마음으로만 갈 수 있는> 나라였다. 그곳에는 정부나 지도자가 없고, 일반 백성들도 욕망이나 욕심이 없이 모든 것을 자연에 따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수명이 길었고 모두 아름답고도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물 속에 들어가도 빠질 염려가 업었고, 불 속에 들어가도 타 버리지 않았다.

또 공중에서도 땅을 딛은 듯이 걸을 수 있었으며, 구름과 안개도 그들의 시선을 가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천둥소리까지도 그들이 다른 것을 듣는 것을 방해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니 이 나라 백성들은 실로 인간과 신의 중간쯤 되는 사람들로 땅위의 신선들이라 할 만했다.


* 삼묘三苗(묘민苗民, 유묘有苗): 573, 402~404, 산해경 325

- 제홍씨帝鴻氏의 후손인 혼돈渾敦

소호씨小昊氏의 후손인 궁기窮奇

진운씨縉雲氏의 후손인 도철饕餮

- 서북해의 밖, 흑수의 북쪽에 날개 돋친 사람이 있는데 이름을 묘민 이라고 한다.

전욱顓頊이 환두驩頭를 낳고 환두가 묘민苗民을 낳았는데, 묘민은 성이 이씨이고 고기를 먹고산다.

* 삼묘국三苗國(묘민국苗民國, 삼모국三毛國) : 573, 402~404, 산해경 230

남방의 이품異稟국으로 나국의 동북쪽, 질국의 서쪽에 위치

삼묘의 세 민족은 요임금이 순舜에게 왕위를 선양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자 요임금은 그들 민족의 우두머리를 죽였고, 그들은 남해로 도망가 함께 나라를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삼묘국이다.

이 나라 사람들의 생김새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다만 발 밑에 날지는 못하는 작은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이 특이했다.


* 상류相柳(상유, 상요, 相繇) : 529(530 그림), 산해경 244~245(245 그림)

- 우에게 쫓겨났던 공공에게는 상류相柳라고 하는 신하가 있는데 사람의 얼굴에 머리가 아홉 개 달리고 온몸이 푸른색이며 뱀의

몸으로 스스로를 휘감고 있으며 아홉 곳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

그가 토하는 곳과 머무는 곳은 즉시 늪이 되는데 (늪의 물이) 맵지 않으면 또 쓰거나 해서 어떤 짐승들도 살수 없었다.

우임금이 홍수를 메울 때 상요를 죽이자, 그의 피에서 비린내가 나서 곡식이 자라지 못하고 그 땅은 물이 많아 살수가 없었다.

우임금이 그것을 메우는데 세 번 흙을 덮었으나 세 번 무너져서 마침내 세 길이나 파서 못을 만드니, 여러 상제들이 그곳에 누대를

만들어 요괴들을 다스렸다. 곤륜산의 북쪽에 있다.


상망象罔 : 287(황제1.HWP 참조)

신들의 나라에서 덜렁거리기로 소문난 천신


서왕모西王母 : 96~97, 472~475, 산해경 37, 93, 271

- 「목천자전穆天子傳」의 서왕모 : 곤륜산崑崙山에 살았다는 옛 선인, 성은 양楊 혹은 구緱이며 이름은 희혹은 완령婠姈이라고도

하며 목왕이 서정西征하여 요지瑤池에서 서왕모를 만나 선도를 얻었다고 한다.

주周 목왕穆王과 시를 주고받는 인간세계의 왕으로 나타난다. 다만 그녀가 읊은 노래 속에 나오는 <호랑이나 표범과 같이 살고

새들과 함께 거하네>라는 귀절에서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야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한나라 때의 석각화石刻畫나 전화磚畫에 의하면 용이나 호랑이 곁에 앉아 있는 서왕모는 왕의 복장을 하고

있긴 해도 그 모습이 좀 거칠다. 이 시기에 서왕모의 배우신配偶神인 동왕공東王公의 모습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때부터 서왕모는 신선의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반고班固가 지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육조六朝시대 사람의 작품인 「한무고사韓武故事」와 「한무내전韓武內傳」 속에서 서왕모는

<나이 삼십여 세>에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운> 여선 女仙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여기에서 서왕모가 관장했던 불사약은 <선도仙桃>로 바뀌며 <서왕모를 위해 먹을 것을 찾아왔던> 세 마리 푸른 새들은 동쌍성

董雙成∙왕자등王子登 등의 천진난만한 시녀들로 변한다.

괴신 이었던 서왕모와 아름다운 선인仙人인 서왕모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됨으로써 서왕모의 변천 과정이

마무리된다.

- 「산해경」과 「서차삼경」에 나타나는 서왕모 :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의 이빨을 갖고 있으며 봉두난발에 옥비녀를 꽂고 하늘의 재앙과

 다섯 가지 형벌을 관장하는 괴신 이며 성별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비녀>는 부인들의 장식품이기는 하지만 원시시대에는 남자도 그것을 꽂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에 그것은 귀걸이와 마찬가지로 남녀를 불문하고 장신구로 지니고 다니던 것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전설에 의하면 동굴 속에서 단순한 생활을 하던 서왕모에게는 세 마리의 파랑새가 있어 순서대로 돌아가며 먹을

것을 찾아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왕모라든가 옥비녀, 그리고 파랑새가 모두 여성적 분위기를 지니기 때문에 서왕모는 점차 여성화되고 또 온화한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를 위해 음식물을 가져다주었다는 세 마리의 파랑새에 대해 말해 보자 그들은 곤륜산 서쪽의 삼위산三危山에 살았는데

이 산은 세 개의 봉우리가 하늘로 치솟아 있었으므로 삼위三危라고 불렸다.

이 파랑새들은 각각 대려大鵹,  소려小鵹, 청조靑鳥라고 하였다. 이 새들은 모두 몸뚱이가 푸르고 머리는 붉으며 눈이 검은 힘세고

사나운 새들이었지, 결코 자그마하고 귀여운 새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삼위산에서 날개를 펼치고 솟아올라 천리를 날아 서왕모가 살고 있는 옥산의 동굴에까지 왔다.

그리고는 하늘과 들판에서 갓 잡은 피투성이의 날짐승과 길짐슴들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차고 와 동굴에 떨어뜨려 놓곤 했다.

그렇게 그들은 호랑이 이빨을 하고 있는 주인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했던 것이다.

서왕모가 식사를 마치고 나면 세 개의 발이 달린 또 다른 신조가 절룩거리며 다가와서 땅바닥에 흩어진 껍데기와 뼈들을 주워 갔다.

발이 세 개 달린 이 새는 서왕모를 따라다니며 갖가지 잔일들을 했다.

서왕모는 기분이 좋아지면 동굴 속에서 나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서서는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 무섭고도 처연한 휘파람 소리가 깊은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면 사나운 매들까지도 놀라서 하늘을 어지러이 날아다녔으며 호랑이나

표범들도 숲 속에서 꼬리를 감추고는 날 살려라 하며 도망쳐 숨었다고 한다.

이것이 대략 기록에 전해지는 바 <호랑이와 표범과 무리를 짓고 새들과 함께 살아가던>

서왕모의 실제 모습이었다. 서왕모는 이처럼 본래 그렇게 자상하고 온화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면 전염병과 형벌을 관장하는 괴신 서왕모가 왜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는 것일까?

이것은 아마도 전염병과 형벌이 모두 인간의 생명과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으므로 당연히 또 인간에게 생명을 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서왕모가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며 다행히 이 약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을 먹고 장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서왕모는 불사약을 갖고 있었다. 곤륜산 위에 불사수不死樹가 있고 그 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먹으면 장생불사할 수 있다고 했던

그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면, 서왕모가 불사약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수 있을  것이다.

서왕모의 불사약은 바로 불사수의 열매를 따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왕모에 관한 한 漢나라 때의 각종 그림들을 보면 시종이 손에 나무처럼 생긴 것을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선화善禾라고도 하고 또 삼주수三珠樹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불사수가 아닌가 한다.

이 나무 역시 비슷한 종류의 다른 나무들처럼 몇 천년에 한번 꽃이 피고 또 몇 천년이 지나서야 열매가 열리며 그 열매 또한 많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불사약은 신기하고 진귀한 것이었고, 그것을 다 써 버리고 나면 얼마 동안 다시는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긴 했지만, 누구라서 오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랴. 또 그 진귀한 불사약을 누구라서 얻고 싶지 않았을까!

다만 서왕모가 살고 있던 곳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갈 수가 없는 곳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서왕모는 어떤 때에는 곤륜산 꼭대기의 요지 瑤池근처에 살았고 또 어떤 때에는 좋은 옥이 많이 난다고 하는 곤륜산 서쪽의 옥산에

살았다. 그리고 또 때로는 대지의 서쪽 끝, 태양이 지는 엄자산崦嵫山 위에서도 살았다.

이렇게 그에게는 정해진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그를 만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곤륜산 꼭대기만 해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가 없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곤륜산 아래에는 약수弱水의 깊은 물이 휘돌아

흐르고 있었는데, 이 약수는 가벼운 새의 깃털조차도 가라앉아 버리는 곳이었으므로 배를 타고 건너는 사람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리고 곤륜산의 바깥쪽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거대한 산이 있었는데 그 불꽃은 밤낮으로 꺼지지 않았으며 어떤 물체라도 닿기만 하면

그 즉시 타 버렸으니, 누가 감히 이런 물과 불의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었으랴. 그래서 서왕모가 불사약을 갖고 있다고 하는 전설은

있어도 이 귀한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녀素女 : 174, 361~362

- 천지의 중심인 <도광의 들판>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황제가 청성산에가 영봉자에게 도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청성산 골짜기에서 소녀素女라고 하는 신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후에 황제의 시녀가 되었다.

소녀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슬瑟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본래 복희 시대에 만들어진 슬은 줄이 50개였는데 그 소리가 너무 슬펐기 때문에 황제가 줄을 반으로 줄여 소녀에게 연주하게

하였다고 한다. 줄이 25개로 줄어드니 소리도 그런 대로 들을 만하였던 것이다.

소녀가 있던 곳은 청성산 부근으로 지금의 사천성 서쪽 평원인데 옛날에는 도광의 들판이라 불렸었고 하늘사다리인 건목乾木이

그곳에서 자랐다.


* 소아귀小兒鬼 : 215

전욱의 아들 중의 한 명으로 잡귀가 되어 사람들의 집구석에 살며 부스럼병 등을 걸리게 하고 또 아기들을 놀라게 했다.


* 염제신농炎帝神農(염제炎帝, 신농神農) : 197, 263~266, 302~303,

- 치우의 조부

- 여와의 뒤를 이어 대신大神이 하나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태양의 신 염제炎帝이다.

염제는 그의 현손玄孫인 불의 신 축융과 함께 남쪽 1만2천리나 되는 지역을 다스렸는데, 그가 남방의 상제였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염제는 본래 황제黃帝와 동모이부同母異父의 형제인데 각기 천하를 반씩 다스렸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때 황제는 어진 정치를 펼쳤으나 염제가 따르지 않아 후에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서로 한바탕 싸우게 되었는데, 그 전쟁이

어찌나 격렬했던지 병사들이 흘린 피 때문에 싸울 때 썼던 낭아봉狼牙棒까지도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설은 그리 믿을 만하지는 못하다.

다만 염제와 황제가 형제라는 설은 비교적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자세한 상황은 알 수가 없지만 그들간의 알력, 서로가 다른 관념을 지니고 나름대로의 인도仁道를 펼치는 데 있어서의

불가피한 마찰이 결국엔 충돌을 일으키고 만 것이었다. 염제는 화공법을 썼다.

그에게는 불의 신인 축융이 있었고 또 그 자신이 태양신이었기 때문에, 불을 이용해 적을 궤멸시키는 것은 그 이상 더 쉬울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뇌우 雷雨의 신이었다. 그는 염제의 화공법을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다.

비만 내리면 불 따위는 맥을 못 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제는 신병神兵과 신장神將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또 호랑이, 이리, 곰 등의 사나운 짐승들로 이루어진 용감한 선봉대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리, 매, 솔개, 사나운 산새 등이 공격의 깃발을 높이 들고 판천의 들판에 나아가 맹렬한 기세로 쳐들어가니

그 세력이 말할 수 없이 강대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염제로서는 방어에만 급급했을 뿐 공격은 꿈도 꿀 수가 없었고 결국 승리는 황제에게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 염제가 포로로 잡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너무 과장된 낭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이 전쟁 이후로 염제가 남방으로 쫓겨가 그곳의 구석진 땅에서 천제의 명맥을 이어간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 염제는 원래 자애로운 신이다. 그래서 어진 정치를 베푼 것으로 치자면 오히려 황제보다 훨씬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대지에는 이미 인류가 번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계에서 나오는 음식물만으로는 모두가 배불리 먹기에 부족하였다.

그래서 인자한 염제는 곡식을 심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인간에게 가르쳐 주었다.

당시의 인간들은 공동으로 노동하고 서로 도우며 수확한 열매들을 모두 똑같이 나누어 가졌기에 서로간의 감정이 마치 형제 자매처럼

가까웠다.

염제는 또 태양이 충분한 빛과 열기를 내뿜게 하여 오곡이 잘 자라게 하였으므로 그 이후는 인류는 먹고 입는 것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래서 인류는 염제의 공덕에 감동하여 그를 <신농神農>이라고 높여 불렀다.

전해지는 말로는 그가 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소의 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마 수 천년 동안 인류를 도와 밭을 갈아 온 소처럼 농업에 대하여 특별한 공로가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태양의 신이자 농업의 신인 염제가 막 태어났을 때 그가 태어난 곳의 둘레에서는 아홉 개의 샘이 저절로 솟구쳐 올랐다고 한다.

이 샘들은 서로 이어져 있어서 한 군데에서 물을 길어 올리면 다른 여덟 군데의 샘물도 흔들렸다.

또 그가 사람들에게 곡식 심는 법을 가르칠 때 하늘에서 숱하게 많은 곡식의 씨앗들이 떨어져 내렸는데, 그가 이 씨앗들을 모아

개간에 놓은 밭에 심으니 인류가 먹고 살 수 있는 오곡이 그때부터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당시, 몸이 온통 붉은 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새가 입에 아홉 개의 이삭이 달린 벼의 모를 물고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그 이삭들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염제가 그것을 주워서 밭에 뿌리니 크고 긴 곡식이 자라났는데, 사람들이 그 곡식을 먹으면 배가 불렀을 뿐 아니라 장생불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신농 시대의 사람들이 이미 야생의 곡물들을 인공적으로 기르는 방법을

습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 염제는 농업의 신일 뿐 아니라 의약의 신이기도 했다.

태양이라는 것이 곧 건강의 원천이기 때문에 염제가 의약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전설에 의하면 그에게는 <자편藉鞭>이라는 신기한 채찍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그 채찍으로 여러 가지 약초들을 후려치면, 그 약초들의 여러 가지 특성, 즉 독성이 있는지 없는 지와 한성寒性인지 열 熱性인지

등이 저절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는 이 약초들의 서로 다른 성질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신농 염제는 온갖 약초들의 맛을 모두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하루에 70번이나 약초에 중독이 되기도 했다.

또 어떤 민간전설에서는 신농 염제가 약초를 맛보다가 그만 독극성이 있는 단장초斷章草를 잘못 맛보아 그만 창자가 끊어지고 썩어

버렸으니, 인류를 그렇게 위하여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고 한다.

이 전설들이 서로 조금씩 다르긴 해도 사람들은 위대하신 염제가 인류를 위해 희생했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았다.

그래서 의약 방면에 있어서 신농의 업적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질 때도 <약초를 맛보았다.> <약초에 채찍질을 했다>는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산서성山西省 태원현太原縣 부강釜岡에는 신농이 약초의 맛을 볼 때 사용했던 솥이 남아

있다고 한다. 또 성양산成陽山에서는 신농이 약초를 채찍질하던 곳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산은 <신농원神農原> 또는 <약초산

藥草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염제는 사람들의 의식 衣食이 풍족해지기는 했으나 생활하기에는 그래도 미흡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장을 만들게 하여 사람들끼리 서로 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때에는 시계도 없었고, 또 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수단도 달리 없었는데 대체 물건을 교환하는 시간을 어떻게 정했던

것일까? 자신들의 일을 팽개쳐 두고 종일토록 시장에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염제는 인간들에게 그 자신 -

혹은 자신이 관할하던 태양을 표준으로 삼게 하였다.

태양이 머리 위에 와 있을 때를 시장에서

교역하는 시각으로 정하고 그때가 지나면 파장하는 것으로 하였는데, 사람들이 그대로 시행해 보니까 정확하고도 간편하여 모두들

 매우 기뻐하였다.


* 염제소녀炎帝少女 : 267~269

* 적송자赤松子 : 267

염제에게는 네 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이름은 없고 그냥 염제의 소녀小女라고만 전해진다.

그녀는 고대의 유명한 한 선인仙人을 따라가 함께 선인이 되었는데 그 선인의 이름은 적송자赤松子라고 하는데 염제 때 비를

다스리던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는 늘 수옥水玉, 즉 수정이라는 귀한 약을 먹으며 자신의 몸을 단련했다.

그렇게 신체를 단련해 가다가 특별한 재주 하나를 얻게 되었으니, 곧 큰 불 속에 뛰어 들어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었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그의 몸은 연기를 따라 자유롭게 오르내리다가 결국에는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선인이 되었다.

선인이 되자 그는 곤륜산으로 가서 서왕모가 살았던 동굴 속에 살았다.

몸이 가벼웠던 그는 비바람이 칠 때마다 높은 산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비바람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했다.

한편 염제의 이름 없는 딸은 선인이 되는 것을 부러워하여 적송자를 따라 이곳까지 왔다.

그녀 역시 특이한 약을 먹고 불에 드나드는 수련을 통해 적송자와 함께 선인이 되어 그를 따라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났다고 한다.


* 적제녀赤帝女(염제녀炎帝女) : 269, 산해경 212

염제의 또 다른 딸 역시 이름은 없고 그냥 적제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녀도 신선의 도를 배워 남양南陽 악산愕山의 뽕나무 위에

살았다. 정월 초하루가 되자 그녀는 작은 나뭇가지들을 물어다가 나뭇가지 위에 집을 지었다.

열심히 일을 하여 정월 보름이 되니 집이 다 지어졌고 일단 집을 짓고 나자 다시는 나무 밑으로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흰 까치로 변하기도 했고 때로는 여인의 모습 그대로 있기로 했다.

이렇게 기이한 딸의 행동을 본 염제는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아팠다.

그래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그녀를 내려오게 해보려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아예 나무 밑에 불을 지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하면 뜨거워서라도 내려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나이 어린 그녀는 몸의 형체를 벗어버린 채 하늘로 올라가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소녀>가 적송자를 따라간 것과 같았는데,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지핀

불에 의해서라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떠나고 난 뒤에 남은 그 뽕나무는 후일 <제녀상帝女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제녀상은 바로 ������산해경������ 「충차십경中次十經」 보이는 선산仙山의 <제녀상帝女之桑>이다.

그 나무는 둘레가 자그마치 다섯 길이나

되는 거대한 뽕나무인데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고 이파리 하나의 길이가 한 자나 되었다.

붉은 색 무늬가 들어 있었으며 꽃은 노란색이었고 꽃받침은 푸른빛이었다. 나무의 굵기로 미루어 보건대 높이가 적어도 백 길은 더 될

듯했으니 그야말로 거대한 나무였다. 염제의 딸이 이 뽕나무의 까치집에서 불에 타 하늘로 올라간 뒤, 세상에는 새로운 풍습이 하나

늘어났다.

해마다 정월 보름날이 되면 사람들은 나무 위의 까치집을 걷어 내렸다.

그리고 그것을 불에 태운 뒤 그 재에 물을 부어서 누에알을 담구어 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그 해에 알에서 깨어난 누에들이 실을 많이 토해 내고 그 실도 아주 품질이 좋게 된다고 했다.

이것은 염제의 딸과 관련된 신화일 뿐 아니라 잠마蠶馬(잠신 참조)신화와도 연관성이 있다.


* 알유猰羭(알유窫寙) : 291, 507, 442, 산해경 117, 261

-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천신 <이부貳負>에게 <위危>라는 신하가 있었다. 위라는 이름의 신하는 마음씨가 무척 고약했다.

그래서 그의 주인인 이부를 충동질하여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또 다른 천신 <알유窫寙>를 함께 살해했다.

황제가 이 일을 하고는 즉각 명령을 내려 두 악인을 잡아다가 서방의 소속산疏屬山에 묶어 두었다.

오른발에는 족쇄를 채우고 머리와 두 손을 함께 묶은 뒤 다시 산 위의 큰 나무에 꽁꽁 묶어서

그들의 죄를 다스렸다. 그렇게 몇천 년이 흐른 뒤에야 막혀 있는 동굴 안에서 그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무고하게 살해된 알유를 불쌍히 여긴 황제는 그를 곤륜산으로 데리고 가게 했다. 그리고는 곤륜산의 개명수開明獸가 있는 동쪽에

있는 무팽巫彭∙무저巫抵∙무양巫陽∙무리巫履∙무범巫凡∙무상巫相이라고 하는 여러 무사巫師들에게 불사약을 가져다가 알유를 다시

살려내라고 시켰다. 그 결과 알유는 정말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되살아난 그는 곤륜산 아래에 있는 약수의 깊은 물에 뛰어들어 사람을 잡아먹는 이상한 괴물로 변하여 완전히 본성을

잃었다고 한다.

- 소함산이라는 곳에 있는 짐승으로 생김새가 소 같은데 몸빛이 붉고 사람의 얼굴에 말의 발을 하고 있다.

소리는 어린아이 같고 사람을 잡아먹는다.

- 약수 가운데에 살며 생김새는 추貙와 비슷하며 용의 머리를 하고 사람을 잡아먹는다.

본래 사신인면蛇身人面의 천신 天神인데 피살된  이렇게 변하였다.


* 야유신夜遊神 : 295

남방 황야에 살고 있다는 열 여섯 명의 신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모두 얼굴이 자그마했고 팔은 붉었으며 손과 손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황제를 위하여 밤을 밝히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은 밤에 귀신이나 요괴들이 나와서 말썽을 일으켜 어느 행궁에선가 단잠에 빠져 있을 늙은 황제를 깨어나게 할까 봐

순찰을 돌고 있었던 것이리라. 날이 밝으면 그들은 사라졌고 어두워지면 다시 나타났으므로 사람들은 그들을 <야유신夜遊神>이라고

불렀다.

황야에서 우연히 이들 손이 이어져 길다랗게 된 야유신을 만나게 되어도 사람들은 그들이 밤에 순시를 하고 있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 양역 : 345

「염철론鹽鐵論」 「결화편結和篇」에 의하면, <헌원이 탁록에서 싸워 양역과 치우를 죽이고 상제가 되었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여기에 나오는 <양역>이 어떤 인물인가는 고서에 기록이 없기 때문에 자세히 알 수가 없으나 그 이름이 치우와 함께 거론되어진

것으로 보아 치우와 같이 군사를 일으켜 황제에게 저항했던 영웅이 아닌가 여겨진다.

어쩌면 염제의 후손이거나 그의 신하인 것 같기도 한데, 고서의 기록이 너무 간략하여 이름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 여와 : 188~196, 산해경 305

- 무량사武梁祠에 그려져 있는 화상畵像과 「초사」에 주석을 단 왕일王逸이 전설에 근거해서 설명한 형상은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는 것으로 같지만, 성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 최초로 만들어진 중국의 자전을 보면 <와>자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와는 옛날의 신성한 여인으로서 만물을 창조하고 길러 낸 사람이다.>

여기서 그녀가 여성인 천신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천신은 재주가 무척이나 뛰어났는데 그중에서도 그녀의 최대 작품은 인류의 창조와 하늘 메우기였을 것이다.

먼저 그녀가 인류를 만들어 낸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천지가 개벽한 이래, 대지에는 산과 냇물이 있게 되고 초목이 우거졌으며 새와 짐승들, 벌레와 물고기들까지 생겨났지만 아직

인류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세상은 여전히 황량하고 적막하였다. 이 황량하고 고요하기만 한 땅위를 거닐던 대신大神 여와는

마음속으로 너무나 고독하고 생각하며, 천지간에 뭔가를 더 만들어 넣어야 생기가 돌 것 같다고 느꼈다.

생각 끝에 여와는 몸을 굽혀 땅에서 황토를 파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에 섞어 둥글게 빚어 인형과 같은 작은 모양을 만들었다.

이것을 내려놓자 희한하게도 곧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꽥꽥 소리치며 즐겁게 뛰놀았는데 그가 곧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체구는 비록 작았으나 신이 친히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말할 것도 없이 신을 닮았다.

그리고 날아다니는 새나 기어다니는 짐승들과는 달리 우주를 다스릴 만한 기개가 있어 보였다.

여와는 그녀 자신의 이 아름다운 창조품에 매우 만족해하며, 계속해서 손으로 물을 섞어 황토를 반죽하여 수없이 많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내었다. 벌거벗은 인간들은 모두 여와를 둘러싸고 뛰놀며 즐거워하다가 혼자서, 혹은 무리를 지어 흩어져 갔다.

그 모습을 보며 기쁨과 놀라움을 느낀 여와는 작업을 계속 해 나갔다.

그녀는 살아서 움직이는 인간을 언제라도 그녀의 손에서 땅에다 내려놓을 수 있었고, 또 주위에서 인간들이 웃고 떠는 소리를 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여와는 이제 더 이상 쓸쓸하고 고독하지 않았다.

그녀가 만들어 낸 자식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리하고 총명한 이 작은 생물들을 대지에 가득 차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지는 너무나 넓었다.

오랫동안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루기도 전에 그녀는 너무 지쳐서 더 이상 일을 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드디어 여와는 줄 하나를 구해 다 진흙탕 속에 넣고는 누런 진흙 물을 적셔서 땅을 향해 한바탕 휘둘렀다.

그러자 진흙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떨어진 방울들이 모두 소리치며 즐겁게 뛰어 노는 인간으로 변하였다. 이 방법은 과연 간단했다. 줄을 한 번 휘두르기만 하면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생겨났으니, 얼마 되지 않아 대지는 인간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지상에 인류가 존재하게 되니, 이제 여와는 자신의 작업을 끝내도 좋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하면 인류를 계속 생존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였다.

인류는 죽어야만 하게 되어 있는데, 한 무리가 죽고 나면 새로 또 한 무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래서 여와는 남자와 여자를 짝 지워서 스스로가 그들의 자손을 만들어 내고 키우는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인류는 이렇게 하여

이어져 내려와 나날이 더욱 많아지게 된 것이다.

여와는 인류를 위하여 혼인 제도를 만들어 내었다. 남녀를 서로 짝 지워 주는 인류 최초의 중매인이 되니, 후대의 사람들은 여와를

고매高媒로 추앙하였다. 고매라는 것은 신매神媒, 즉 혼인의 신이라는 뜻이다.

여와가 인류를 창조하고 그들을 위해 혼인 제도를 만든 뒤 오랫동안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우주에는 갑자기 크나큰 변동이 일어났다.

신들의 나라에 무슨 변란이 생겨서였는지, 아니면 새롭게 만들어진 천지가 아직 그리 단단하게 고정되지 않아서였는지 그 이유는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하늘의 한쪽 귀퉁이가 무너져 내려보기 싫은 구멍이 크게 뚫려 버렸고 땅도 가로 세로로 갈라 터져 어둡고 깊은 틈이 생겼다.

이런 엄청난 변화 때문에 수풀에는 맹렬하게 타오르는 산불이 일어났고 땅 속에서는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올라 홍수가 터지니 그

물길은 하늘까지 닿을 듯하여 대지는 그만 드넓은 바다처럼 변해 버렸다.

인류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 가루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때 숲 속에서 뛰쳐나온 각종 맹수와 사나운 새들도 사람들을 습격했다.

세상에는 마치 한 폭의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와는 자신이 만들어 낸 인간들이 이런 비참한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녀는 하늘과 땅의 부서진 곳을 수리하는 힘든 작업을 시작했다. 이 일은 정말 방대하고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자애로운 인류의 어머니 여와는 그녀가 사랑하는 인간들의 행복을 위하여 힘들고 어려운 것을 조금도 마다하지 않고 용감하게

이 중책을 짊어졌다.

여와는 우선 큰 강에서 오색 돌들을 많이 골라내었다.

그리고는 불을 피워 오색 돌을 녹여 아교 상태의 액체로 만든 후 이 액체로 보기 흉하게 뚫린 하늘의 구멍을 메웠다.

자세히 뜯어보면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멀리서

보면 원래 모습과 대체로 비슷하게 되었다. 여와는 수리를 끝내 놓은 하늘이 다시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큰 거북이 한 마리를 잡아 네발을 잘라서 그것을 하늘 기둥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을 대지의 사방에 세워서 인류의 머리 위에 천막처럼 하늘을 지탱할 수 있게 하였다. 기둥은 상당히 탄탄하여 다시는

하늘이 무너질 염려가 없게 되었다.

 

그런 뒤 여와는 중원中原에서 악명이 높던 검은 용을 죽였으며 여러 맹수와 흉조들을 쫓아내어 인류가 다시는 짐승들의 해를 입지

않게 해주었다. 또 갈대 잎을 태워 재로 만들어 쌓아서 하늘까지 닿은 홍수를 막았다.

그리하여 거대한 그 재앙은 결국 위대한 여왕의 손으로 평정이 되었으니, 그녀의 후손들은 마침내 죽음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여와가 숱한 고생 끝에 하늘을 수리하고 땅을 모두 평평하게 메워 재앙은 끝나게 되었다.

인류는 다시 평온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게 되었고 대지에도 다시 즐거움이 감돌게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차례대로 돌아오니, 더워야 할 때 덥고 추워야 할 때 추워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 이 시대를 <황금시대>라고 칭한다.

여와는 그녀의 자손들이 잘 지내는 것을 보고 매우 흡족해 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녀는 또 <생황笙篁>이라는 악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생황은 생笙이라고도 하며, 황은 篁은 생 안에 들어 있는 엷은 이파리 모양의 물건인데 그것이 있어서 생을 불면 소리가 나게 된다고

한다. 이 악기의 모양은 봉새의 꼬리와 같았고 13개의 대롱이 반으로 자른 호리박 안데 꽂혀 있었다.

여와가 그것을 그녀의 자손들에게 선물로 주니, 그때부터 인간의 생활은 더욱 유쾌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위대한 여와는 창조의 여신일 뿐 아니라 음악의 여신이기도 했던 것이다.

여와가 만든 생은 지금도 중국 서남 지방의 묘苗∙동侗족 사람들이 불고 있다.

그것은 <노생盧笙>이라 불리며 만드는 방법이 고대의 생황과 약간 다를 뿐이다.

고대의 생황은 호리박(복희와 여와가 호리박 속에 숨어 홍수를 피했다는 전설과 물론 관계가 있다.)을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속을 파낸 나무를 사용하며 대롱도 몇 개가 줄었지만, 그래도 옛날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여와가 인류를 만들어 내는 자신의 작업을 끝낸 뒤 마침내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 휴식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하지만, 여와의

죽음은 그냥 사라져 버리는 죽음이 아니라 반고처럼 우주의 다른 사물로 변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산해경」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즉, 여와의 창자가 열 사람의 신인神人으로 변하여 율광栗廣의 들판에 사는데,

그들의 이름을 <여와의 창자>라고 한다는 내용이다. 여왕의 창자가 열 사람의 신인으로 변했다는 데에서 우리는 그녀의 몸 전체가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것들로 변하였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여와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 한다.

인류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끝내고 나서 여와는 우뢰소리를 내는 수레電車를 타고 비룡飛龍을 몰면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그때 하얀 용이 수레의 앞에서 길을 열었으며 뒤에서는 나는 뱀이 따라갔는데, 황금 빛 구름이 그녀의 수레를 감쌌고, 세상의 모든

귀신들이 수레 뒤를 요란스럽게 따라왔다고 한다.

이렇게 용을 타고 구름을 이끌고서 아홉 층 하늘 꼭대기까지 계속 올라가 그녀는 하늘나라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여와는 천제를 뵙고 그 동안 그녀가 했던 일을 간단하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하늘나라에서 조용하게 은둔자처럼 살아갔는데,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려 하지도 않았고 또 명성을 얻으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모든 공로를 다 대자연에 돌리고, 자기 자신은 그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인류를 위하여 작은 노력을 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그 후손인 인간들은 <공로가 위로는 구천九天에, 아래로는 황천黃泉에 이르는>, 겸손하고 위대한

인류의 어머니 여와 에게 감사하며 그녀를 영원히 인간들의 가슴속에 새겨 놓았던 것이다.


* 여와지장 : 196, 산해경 304

「산해경」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즉, 여와의 창자가 열 사람의 신인神人으로 변하여 율광栗廣의 들판에 사는데, 그들의 이름을 <여와의 창자>라고 한다는 내용이다.

여와의 창자가 열 사람의 신인으로 변했다는 데에서 우리는 그녀의 몸 전체가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것들로 변하였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 여와(정위精衛) : 274

- 염제의 딸 여와가 동해로 놀러 갔는데, 불행하게도 바다에 파도가 일어 그만 바다 속에 빠져 죽어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의 영혼은 한 마리 새로 변하였는데, 그 모습이 까마귀와 비슷하였고 이름은 <정위精衛>라고 하였다.

그 새는 알록달록한 머리에 하얀 부리, 그리고 빨간빛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북쪽의 발구산發鳩山에서 살았다.

그녀는 그녀의 젊은 생명을 앗아간 바다를 원망하며 입으로 서산西山의 작은 돌멩이와 나뭇가지들을 물어다가 동해에 던져 넣어 그

넓은 바다를 메워 버리려고 하였다. 생각해 보라,

그렇게 작은 새 한 마리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위 높은 하늘에서 작고 마른 나뭇가지와 돌멩이를 던져 넣어 넓은 바다를 메운다는

것은 얼마나 비장한 느낌을 주는 일인가.

누구라도 우리는 그 요절해 버린 소녀를 가엾다고 생각할 것이며, 또한 그녀의 강한 의지를 존경해 마지않을 것이다.

그녀는 태야 신의 딸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었기에, 우리의 인상 속에 남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늘 새롭다.

그래서 진 晋나라의 대시인 도연명은 그의 「독산해경시讀山海經時」에서 <정위가 작은 나무들을 물어다가 푸른 바다를 메우려 한다>

고 노래했는데, 이는 애도와 찬미의 분위기가 충분히 표현되어 있는 시의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이 새는 바닷가에서 갈매기와 짝이 되어 새끼를 낳았다고 하는데, 암놈은 정위를 닮았고 수놈은 갈매기를 닮았다.

지금도 동해에는 정위가 맹세했다고 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 빠져 죽었기 때문에 절대로 그곳의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라 한다.

그래서 정위는 <서조誓鳥> 혹은 <지조志鳥>라고 하기도 하고 또 <원금寃禽>이라고도 불린다.

민간에서는 <제녀작帝女笮>이라고도 한다.


* 염수여신鹽水女神(염신鹽神) : 183~185

- 염수에 살고 있는 총명하고도 아름다운 여신

남방의 무락종리산武落鐘離山에 파씨巴氏 일족과 번씨樊氏∙심씨瞫氏∙상씨相氏∙정씨鄭氏일족이 함께 살았는데, 다섯 씨족의 대표자로

늠군廩君(무상務相)이라는 자가 뽑혔다.

늠군이 지도자가 된 뒤 통일된 이들 부족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인구도 나날이 늘어나 본래 그들이 살던 동굴이 비좁게 되어 살기

힘들어 지자 배를 타고 신천지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수夷水를 따라 흘러 내려가 며칠이 지나자 그들은 염수鹽水가 지나가는 염양鹽陽지방에 도착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배에서 내려 그곳에 천막을 쳤다. 며칠 쉬고 나서 다시 출발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염수에 살고 있던 여신이 영웅적 인물인 늠군을 보고서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되어 그에게 간절히 말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땅이 무척 넓어요. 물고기와 소금도 풍부하게 난답니다. 당신의 부족과 함께 이곳에서 사세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시지 말아요.」

늠군의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역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부탁에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곳은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충족한 땅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 부족의 새로운 정착지로서 그리 이상적인 곳이 못 되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먼 여신은 자신의 애정으로 그를 묶어 두려고 밤마다 늠군이 자는 곳에 모래 들어가 있다가 새벽이 되면 빠져

나오곤 했다.

그리고는 작은 날벌레로 변해 하늘을 날아 다녔다.

산과 물의 정령들이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파 그들도 함께 작은 날벌레로 변해 그녀와 같이 하늘에서 춤을 추었다.

날벌레는 갈수록 많아졌고 마침내는 햇빛까지 가릴 정도로 많아졌다.

하늘을 빽빽하게 채우는 그 날벌레들 때문에 세상이 온통 암흑천지로

변해 버렸다

늠군은 그의 부족들을 이끌고 그곳을 떠나려 했지만 기세등등한 날벌레들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다.

그것들이 그들을 둘러싸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길을 떠날 수가 있었겠는가.

이런 상황이 칠일간을 계속되었다. 늠군은 그것이 염수의 여신이 장난을 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 차례 그녀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를 하였다. 그러나 이 말괄량이 여신은 자기의 연인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짐짓 못들은

체했다. 늠군은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오라기 뽑아 그녀에게 전하게 했다.

「늠군께서 이 머리카락을 여신께 전하라고 하십니다.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정표하고 하시더군요.

이것을 늘 품에 간직하시랍니다. 절대로 잃어버리시면 안된 다는군요.」

여신은 그것이 계책인 줄도 모르고 기뻐하며 그 말대로 했다.

다음날 새벽, 그녀는 또 작은 날벌레로 변해 다른 벌레들과 함께 허공에서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늠군의 그 머리카락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늠군은 그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비가 많이 내릴 때 맑아지기를 기원하는 <양석陽石>위에 올라가 활을 당겨 그 머리카락이 있는 곳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작은 신음 소리가 들리고 하늘에 갑자기 빛이 번쩍 하더니 화살을 맞은 여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창백한 안색에 두 눈을 꼭 감은 그녀는 힘없이 염수 위로 떨어졌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가다가 서서히 강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순간 셀 수도 없이 많았던 날벌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들의 눈앞에는 상쾌하고도 아름다운 하늘과 들판이 펼쳐졌다.

모두들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었다. 그러나 늠군은 묵묵히 그 양석 위에 서 있었다.

그는 활을 든 손을 축 늘어뜨린 채 무심하게 흘러가는 염수를 멍하니 바라다보고 있었다.


* 신도神荼 & 울루鬱壘 : 293

황제는 <신도神筡>와 <울루鬱壘> 형제에게 인간세계를 떠도는 귀신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 두 형제는 동해의 도도산挑都山에 살았다. 도도산 위에는 큰 복숭아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의 가지는 구불구불 뻗어 삼천리나

되는 땅위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의 맨 꼭대기에는 금계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 금계는 태양이 솟아오를 때의 첫 햇살이 몸을 비출 때, 부상수의 금계가 우는소리를 듣고 따라서 운다.

바로 이때 신도와 울루는 복숭아나무 동북쪽의 나뭇가지 사이에 있는 귀문鬼門 아래에 위풍당당하게 서서 인간 세계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귀신들을 조사했다(귀신은 밤에만 나타날 수 있었고 닭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엔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만일 그 귀신들 중에 유별나게 흉악하고 교활하거나 또는 인간 세상에서 착한 사람들을 해친 귀신들을 돌아오면 두 형제는 즉시

그들을 갈대 끈으로 꽁꽁 묶어 커다란 호랑이에게 먹이로 던져 주었다.

그리하여 흉악한 귀신들은 점차로 적어졌고 또 멋대로 굴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해마다 섣달 그믐날 저녁이 되면 복숭아나무에 두 신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그 두 신은 손에 갈대 끈을 들고 있는 신도와 울루를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대문 양쪽에 두었다.

또 문설주에는 큰 호랑이 한 마리를 그려 붙여 사악한 마귀들을 막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복잡하면 간편하게  하기 위해 두 형제의 그림을 문 위에 그리기도 했고 그들의 이름만을 문에 쓰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도 효과는 같았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문신門神인 것이다.


* 유궁귀有窮鬼 : 279, 산해경 90

괴강지산傀江之山의 동쪽에 있는 항산은 험준하고 높게 솟아 있었는데 어찌나 높은지 네 겹의 층을 이루고 있었고 궁귀窮鬼들이

리끼리 무리를 지어 사방에 살고 있었다.


* 잠신蠶神 : 326~330,

황제는 치우를 살해한 뒤 전쟁에서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잔치를 열었다.

전승을 축하하는 음악을 울리며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을 때였다.

금상첨화 격으로 말가죽을 걸친 잠신蠶神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손에 두 타래의 실을 받쳐들고 있었는데, 한 타래는 황금처럼 노란빛이었고 또 한 타래는 순은처럼 빛나는 하얀 색이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황제께 바쳤다. 잠신은 본래 용모가 아름다운 소녀였는데 불쌍하게도 말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말가죽은 소녀의 몸에 붙어 뿌리가 내린 것처럼 그녀의 몸과 한 덩어리가 되어 어떻게 떼어 낼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가죽의 양쪽 가장자리를 잡아당겨 자신의 몸을 감싸면 그 즉시 말 모양의 머리를 한 누에로 변하였다.

심지어는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끝없이 가늘고 긴, 빛을 발하는 실을 입에서 토해 낼 수 있었다.

북방의 황야에 높기가 백 길이나 되고 줄기만 있으며 가지가 없는 세

그루의 뽕나무가 있었다.

그녀는 그 뽕나무 가까운 곳에 있는 또 다른 큰 나무에 올라가서는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을 토해 냈다고 하니,

사람들이 그 황야를 <실을 토해 내는 들판>이라 불렀다.

본래 아름다웠던 소녀가 말가죽을 두르고 누에로 변해 잠신이 된 것에는 민간전설이 있다.

먼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먼길을 떠나 오랫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다른 사람이라곤 없고 다만

어린 딸과 말 한 마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말은 소녀가 먹이를 주어 길렀다.

혼자 남은 어린 딸은 무척 쓸쓸해하며 늘 그녀의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마구간의 말에게 농담으로 말을 건넸다.

「말아! 네가 가서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나는 네게 시집갈텐데」

말은 그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서더니 고삐를 끊고 마구간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들판을 가로질러서는 몇 날 며칠을 달려 소녀의 아버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자기 집의 말이 천리 밖의 고향서부터 달려온 것을 보고는 놀랍고도 기뻐서 말의 갈기를 잡고 몸을 날려 말 등에

올라탔다. 그러나 말은 이상하게도 그가 달려온 방향만 바라보고 서서 목을 길게 빼고는 슬피 우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말이 아득히 먼 집에서부터 달려와 이렇게 이상스런 짓을 하고 있으니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나 아닐까.

그래서 그는 즉시 그곳을 떠나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딸이 아버지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했다.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말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는 저 혼자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돌아왔군요.」

아버지는 딸의 말을 듣고 나자 아무 할 말이 없어 그대로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이 그렇게도 총명하고 또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기뻐서 전과 달리 가장 좋은 사료를 말에게

주었다. 그러나 말은 풍성한 음식도 마다하고 소녀가 마당에서 대문으로 드나들때마다 신경질이 되어 소리 지르고 날뛰는데, 한두

번만 그러고 마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이 모습을 보자 괴이한 생각이 들어 딸에게 물었다.

「너 말좀 해봐라. 저 말이 왜 너만 보면 그렇게 흥분해서 날뛰는 거냐?������

딸은 하는 수 없이 전에 말과 농담으로 했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밝혔다.

이야기를 듣고 난 아버지는 얼굴 표정이 굳어져서 딸에게 말했다.

「아이고, 정말 창피스럽구나! 남들에게는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말아라, 그리고 며칠 동안은 당분간 대문 밖으로 나가지 말거라.」

아버지는 말을 사랑했으나 결코 말을 그의 사위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말이 계속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버지는 화살을 감춰 가지고 마구간에서 말을 쏘아 죽였다.

그리고 그 껍질을 벗겨 뜰에 널어 두었다.

마침 그날 아버지는 일이 있어 밖에 나가게 되었다. 아버지가 외출한 사이, 어린 딸은 옆집 친구들과 함께 뜰에 널려 있는 말가죽

옆에서 놀고 있었다. 어린 딸은 그 말가죽을 보자 심술이 나서 발로 그것을 걷어차며 욕을 했다.

「이 못된 짐승아, 감히 인간을 네 마누라로 삼으려 하다니. 가죽이 벗겨진 꼴을 보니 정말 고소하구나.

너 이놈, 지금도......」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말가죽은 땅 바닥에서부터 갑자기 날아오르더니 소녀를 뒤집어씌웠다.

그리고는 뜰 밖으로 나가 바람처럼 몇 바퀴 돌고 나서 눈 깜짝할 사이에 아득히 먼 들판 저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친구들은 눈앞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는 기절초풍하게 놀라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를 구할 생각은 못한 채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려 비로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놀랍고도 이상하여 부근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딸의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며칠이 지났다.

아버지는 큰 나무의 나뭇잎 사이에서 온몸이 말가죽으로 둘러싸인 딸을 찾아냈으나 그녀는 이미 꿈틀꿈틀 움직이는 벌레 모양의

생물로 변해 있었다.

그 벌레는 말 모양의 머리를 천천히 흔들면서 입에서 희게 빛나며 길다랗고 가는 실을 토해 내 사방의 나뭇가지를 휘감는 것이었다.

호기심에 찬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광경을 보고는 실을 토해 내는 이 이상한 생물을 <누에蠶>라고 불렀으니, 그녀가 토해 낸 실이

녀 자신을 휘감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나무는 <뽕桑>이라 불렸는데, 이 나무에서 어떤 사람이 젊은 목숨을 잃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누에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 딸은 후에 잠신이 되었고 그 말가죽은 그녀의 몸에 붙어서 그녀와 영원히 갈라지지

않는 친밀한 반려자가 되었다고 한다.


* 혼돈(混沌, 混敦, 渾敦 / 제강帝江) : 142~144 (143 제강 그림), 산해경 98

- 신화와 비슷한 것으로 우언寓言이라는 것이 있는데, 「천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나온 「장자障子」에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해의 천제天帝는 숙儵이라 하고, 북해의 천제는 홀忽이라 하며, 중앙의 천제는 혼돈混沌이라 한다.

숙과 홀은 자주 혼돈에게 놀러 갔는데, 혼돈이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 매우 은근하고도 치밀하였다.

어느 날 숙과 홀이 어떻게 하면 혼돈의 은덕에 보답할 수 있을까 하고 의논하기를,

「사람은 모두 다 눈∙코∙귀∙입 등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음식을 먹고 하는데, 혼돈에게는 구멍이 하나도 없으니 뭔가

부족함이 있지. 우리가 가서 그를 위해 구멍을 몇 개 뚫어 주는 것이 어떨까」

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둘은 도끼와 끌 등을 가지고 가 혼돈에게 구멍을 뚫어 주게 되었는데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 이레만에

일곱 개의 구멍을 다 뚫게 되었다. 그러나 혼돈은 그의 친구들이 구멍을 뚫어 주자 도리어 가엾게도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익살스러운 이 우언은 천지 개벽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

즉, 혼돈이 숙과 홀 - 빠른 시간을 대표하는 - 에 의해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려지자 혼돈 자신은 비록 죽게 되지만 혼돈의 뒤를 이어

우주와 세계가 탄생했던 것이다.

중국 고대신화에서 혼돈은 분명히 천신天神의 이름이다.

������산해경������ 「서차삼경西次三經」에 이르기를, 서쪽의 천산天山에 신령스런 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꼭 누런 헝겊 주머니

같고, 한 덩어리 불꽃 송이처럼 붉은데 다리가 여섯 개요, 날개가 네 개이고 눈∙코∙귀∙입이 모두 없었다.

그러나 음악과 춤을 알았으며 이름을 제강帝江이라 하였다. 제강은 곧 제홍帝鴻이며 또 중앙 상제上帝인 황제黃帝인데, 「장자」의

우언에서는 직접 그를 중앙의 천제라 하였던 것이다.

혼돈이 황제의 아들이라고 하는 설도 있으나, 이는 아마 후대의 전설일 것이다.

혼돈이 천제이건 천제의 아들이건 간에, 자연으로 돌아가 무위로써 다스리는 것을 추구하는 도가道家들 말고는 아무도 이 흐리멍덩한

혼돈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후세의 전설에서 혼돈은 추악하게 묘사되곤 한다.

「신이경神異經」에서 혼돈은 개와도 비슷하고 곰과 사람을 합친 형상과도 흡사한 야수로 나타나는데,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눈뜬장님>이기 때문에 스스로로 길을 걷는 것은 몹시 힘들어했지만 다른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은 잘 알았다.

또 덕행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거칠게 대했지만, 제멋대로 하는 악한을 만나면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꼬리를 흔들며 그에게 기대려

들었다.

이런 비열한 성질은 실로 천성적인 것으로 보통 때 별일이 없으면 이놈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다가 하늘을 보고 껄껄 크게

웃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들을 보면 어둠과 거의 동의어라 할 수 있는 혼돈에 대해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지개벽에 관한 정식 신화는 한나라 초기의 「회남자淮南子」에 나타난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얘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아직 천지가 생겨나지 않았을 때, 세계의 모습은 그저 어두운 혼돈 뿐으로 어떠한 형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혼돈 속에서 서서히 두 명의 대신大神이 나타났는데, 하나는 음신陰神이요 다른 하나는 양신陽神으로, 둘은 혼돈 속에서 열심히

천지를 만들어 갔다. 후에 음양이 갈라지고 팔방八方의 위치가 정해져, 양신은 하늘을 관장하고 음신은 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이렇게 하여 이 세계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 제곡帝嚳(제곡帝嚳, 순蕣, 제준帝俊) : 373~381, 384~387, 406~430, 산해경 291

제준帝俊이나 제곡帝嚳은 모두 순蕣의 화신이다.

- 제준은 동방의 은殷민족이 섬기던 상제이다.(동방 상제 복희와 제준은 동일 인물이 아니다.)

정확한 형상은 알 수 없지만 갑골문을 풀어 보면 새 모양의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나 있으며 원숭이의 몸뚱이에 다리는 하나뿐이고, 또

손에는 늘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등을 구부리고 절름거리며 길을 걷는 기괴한 생물인데, 이것이 바로 동방 은민족의 시조신인 제준인

것이다.

제준은 은민족의 시조인 설揲과 주민족의 시조인 후직后稷을 낳은 제곡이며, 동시에 또한 역산歷山 기슭에서 코끼리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다가 황제가 된 순이다.

순임금이 요堯임금의 사위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지만 제국은 또 요임금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순과 제곡은 본래 동일인인데 이렇게 한 인물이 갑자기 아버지도 되고 또 사위가 되기도 하니, 고대의 신화와 전설이 역사로 변화할

때 생겨난 복잡함이 바로 이와 같았다.

 

동방 은민족이 모시던 상제인 제준의 위대함은 서방 주周민족의 상제인 황제와 견줄 만하다.

그러나 주민족은 후에 은민족을 멸망시킨 민족이었기 때문에 황제에 관한 신화는 자연히 많이 보존되어 왔으며 또 더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또 그 후에 역사화의 과정을 거쳐 황제는 상제에서 인간세계의 왕으로 변하는데, 이렇게 변한 황제의 모습에 관하여  후에

나타난 전설들은 더욱 많다.

그리하여 황제는 마침내 인간과 신의 공통된 조상이 되며 제준보다도 더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제준은 전쟁에 패한 민족의 상제였으므로 그 상황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즉 그에 관한 신화는 대부분 없어지고 다만

서로 연관성이 없는 몇 개의 단편적인 이야기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남아 있는 단편적 이야기들만 보아도 당시 이 동방 상제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 전설에 의하면 제준에게는 세 명의 아내가 있었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아황娥皇이었다.

아황은 인간세계에다가 삼신국三身國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켰는데 이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하나에 몸뚱이가 세 개였다.

그들은 요姚씨 성性을 갖고 있었으며 오곡을 먹었고 표범과 호랑이, 곰과 말곰 등의 네 가지 야수들을 자신들의 하인으로 부렸다.

그러나 삼신국을 탄생시킨 아황은 그런 대로 평범한 아내였다.

이에 비해 제준의 다른 두 아내는 상당히 뛰어난 여인들이었다. 태양의 여신인 희화羲和는 열 개의 태양을 아들로 낳았다.

그녀는 동남쪽 바다밖에 있는 감연甘淵에서 그곳의 맑고 달콤한 샘물로 그녀가 낳은 태양들을 목욕시켰다.

그녀는 그 태양들을 깨끗이 씻겨 그들이 차례로 일하러 나가서 세상을 밝게 비춰 주는 직책을 다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 다른 아내는 달의 여신으로 상희常羲라고 하였다. 그녀는 열두 개의 달을 딸로 낳았다.

그녀는 희화처럼 서방의 황야에서 그녀의 딸인 달들을 씻겼는데, 그 끗은 아마 태양의 여신 희화가 그녀의 아들들을 씻겼던 것과

같은 데 있었으리라.

- 동방의 황야에는 사람의 얼굴에 개의 귀, 그리고 짐승의 몸을 한 사비시신奢比尸神이 있었는데, 그 근처에는 깃털이 아름다운

오색조五色鳥들이 얼굴을 맞대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제준은 가끔 하늘에서 내려와 이 오색조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가 기분이 좋아지면 단 하나뿐인 다리로 지팡이를 짚고 오색조들 틈에 섞여 절름거리며 그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제준은 인간세계에 두 군데의 제단을 갖고 있었는데 오색조들이 그것을 관리하였다.

- 북방 황야에 위구衛丘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둘레가 삼백 리 넓이나 되었다.

그 언덕의 남쪽에 제준의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그곳의 대나무는 얼마나 큰지, 마디 하나만 잘라 쪼개도 두 척의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대나무는 남방의 황야에도 있었다고 하는데 <체죽涕竹>이라 불렸다.

이 나무는 크기가 수백 길이나 되었고 둘레가 세 길이나 되었으며 두께는 아홉 치나 되었다. 이것 역시 잘라서 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아마 제준의 대나무였을 것이다.

- 제곡과 제준은 동일한 인물의 화신이며, 기록에 보이는 제곡은 이미 역사화 되어 반인반신半人半神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몇 가지 점으로 보아 그는 본래 천신이며 또한 그가 바로 동방 상제인 제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곡은 태어나자마자 무척 이상스러웠다. 즉 자신의 이름이 <준>이라고 말했다 하는데, <준>이라는 것은 새의 머리에 원숭이의

몸뚱이를 한 이상한 생물, 즉 제준인 것이다.

- 제곡시대에 발생했던 큰 사건으로 방왕房王, 또는 견융犬戎의 난이 있다.

하지만 미루어 볼 때 방왕의 난이라고 하는 것이 더 믿을 만 하다. 기록에 따르면 제곡의 성이 방 房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곧 내분이 되는 것인데 제곡의 두 아들 사이의 다툼이라고 볼 수 있다

제곡에게는 알백閼伯과 실심實沈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 형제는 황량한 산의 숲 속에 살며 서로 잘난 체하고 또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무기를 들고서 서로 다투고 싸웠다. 아버지인 제곡은 그들을 정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알백을 상구商邱로 보내어 동방의 반짝이는 삼성三星을 관리하게 했다.

삼성은 심숙心宿이라고도 하며 상성商星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연인들의 별인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견고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심은 대하大夏로 보내어 서방의 삼성參星을 관리하게 하였다.

이렇게 두 형제가 멀리 떨어져서 다시는 서로 만날 수가 없게 되니 그때서야 풍파가 잦아들어 다시는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관리하던 두 별자리는 한쪽이 떠오르면 한쪽이 지기 때문에 서로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제곡에게는 왕비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추도씨鄒屠氏의 딸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 태양을 삼키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태양을

한 번 삼키는 꿈을 꿀 때마다 아들을 하나씩 낳았다.

그래서 이런 꿈을 여덟 번 꾸고 나니 아들이 여덟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팔신八神>이라 불렀다.

열 개의 태양을 낳았다고 하는 제준의 아내 희화와 또 노래와 춤을 만들어 내었다고 하는 제준의 여덟 아들을 연상케 하는 전설이다.

그 후 제곡이 <인화人化>되어 고대 제왕 중의 하나로 나타날 때, 그에게는 네 명의 아내가 있었다.

 

첫째 부인은 강원姜塬이라고 하는데 <유태씨有邰氏>의 딸이며 후직을 낳았다. 둘째 부인은 간적簡狄이라 한다.

그녀는 유융씨有娀氏의 딸이며 설偰을 낳았다. 셋째 부인은 진풍씨陣豐氏의 딸인 경도慶都이며 제요帝堯를 낳았다. 그리고 넷째

부인은 추자씨娵資氏의 딸인 상의常儀인데 제지帝摯를 낳았다고 한다.

<상의>라는 이름은 달을 낳은 제준의 아내 상희와 비슷한 이름인 것으로 보아 제곡이 곧 제준임을 알 수 있다.

이들 네 아내가 낳은 네 명의 아들들은 모두 보통 사람과 달랐다.

그중에는 한 민족의 시조가 된 아들들이 있었으니, 설이 바로 은민족의 시조가 되었고 후직은 주민족의 시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직접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여 인간세계의 제왕이 자들도 있었으니 제지와 제요가 그러하였다.

- 고수瞽叟라고 하는 눈 먼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이상스런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봉황 한 마리가 입에 쌀을 물고 와

그에게 먹이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내 이름은 계雞라고 하는데 당신에게 자손을 주러 왔지요.」

고수는 잠에서 깨어나 참으로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그는 정말 아들을 하나 낳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순舜이라고 지었다.

순의 눈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한쪽 눈에 눈동자가 두개였으므로 그를 중화重華라고 불렀다고 한다.

수에 지지국 사람들이 요에게 바쳤다는 중명조의 한쪽 눈의 눈동자가 두개였으며 생김새는

새와 같았고 또 울음소리도 봉황과 같았다고 했으니 아마도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 같다.

순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고수는 다른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그녀는 상象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는 이름 그대로 <상>이라고 하는 인간이었을 수도 있고, 또는 글자의 뜻대로 한 마리의 코끼리였을 수도 있다.

즉, 코와 큰 귀와 거대한 발, 그리고 날카로운 야성의 코끼리, 길들여지지 않은 사나운 맹수로서의 코끼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고악편古樂篇」의 <상商민족은 야생의 사나운 코끼리들을 길들여서 동방 일대의 국가들에

큰 위용을 내보였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상商민족이 이미 코끼리를 길들여서 전쟁에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순은 상商민족의 시조신이다.

그러므로 고대신화에도 그가 코끼리를 길들였다는 것에 관한 전설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지금의 민간전설에 보이는, 순이 코끼리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러한 고대신화의 흔적이 아닐까 여겨진다.

������초사楚辭������ 「천문」의 <순은 동생을 길들였지만 그 동생이란 놈은 이곳 저곳 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혔지. 그러나

순은 개똥으로 목욕을 하여 아무런 재앙도 당하지 않았다네.>는 순이 야생의 코끼리를 길들인 일은 이미 순이 그의 동생을 다스린

것으로 변해 있다.

하지만 설사 신화나 전설이 역사로 변화했다 해도 그 속에는 여전히 태고적 이야기의 본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고대신화에 나타나는 순의 동생 상은 어쩌면 정말로 사나운 야생의 코끼리였으며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다가

마침내는 영웅이자 신인神人인 은민족의 시조 순에게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순은 규수嬀水에서 태어났으며, 한쪽 눈에 두 개의 눈동자가 있는 기이한 용모를 제외하면 다른 것은 모두 보통 사람들과 다름이 없이

평범하였다. 그는 중키에 거무스름한 피부를 갖고 있었고 얼굴에는 수염이 없었다.

젊을 적부터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칭송이 자자하였고, 천성이 성실하고 온후했던 순은 후처와 후처의 자식만을 사랑하고 전처의

식인 순은 눈의 가시로 여기는 아버지도, 속이 좁고 사납기 이를 데 없었으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고약한 성질을 가진 계모도

지극히 잘 섬겼으며, 그 어머니와 비슷하였으니, 무척이나 거칠고 교만하여 동생다운 공손함을 조금도 갖추지 못한 동생인 상도, 나쁜

습성을 좀 지니고 있기는 했어도 인간성은 그런 대로 괜찮은 여동생 과수敤手에게도 진심으로 우애스럽게 대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회초리뿐만이 아니라 몽둥이로도 매를 들었고 감당할 수 없었을 때마다 순은 들판으로 도망쳐서 푸른 하늘을 향해

슬피 울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불렀다.

그는 또 그 못되기 이를 데 없는 동생 상을 대할 때마다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행동해야 했다.

상이 좋아하면 그도 좋아했고 상이 고민하면 그도 걱정했다.

상이 기분이 나쁘면 곧 화를 낼 것이었고 화를 내면 그것이 자기에게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힘껏 동생에게 잘해 주어 계모의 환심을 사서 자신이 받는 학대를 줄여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악독한 계모는 순을 죽여야만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결국 순은 견디어 낼 도리가 없어서 혼자 분가해 나가 규수 부근의 역산歷山 기슭에 초가를 한 칸 짓고 황무지를 개간하며 외롭고도

슬픈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자주 뻐꾹새를 보았다.

그 새들은 새끼들을 데리고 즐겁게 하늘을 날아다녔는데 어미 새가 먹을 것을 물어다가 나무 위에 있는 새끼 새들에게 먹여 주는

모습이 참으로 화목해 보였다.

그런데 자기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고아의 신세로 계모의 학대를 받고 있다는 걸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그래서 그는 늘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 슬픈 감정을 풀고는 했다. 순이 역산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역산의 농사꾼들은 그의 덕행에 감화를 받아서 모두가 앞을 다투어 그들의 전답을 순에게 바쳤다.

또 순이 뇌택雷澤에 가서 고기를 잡으니 뇌택의 어부들 역시 앞다투어 자신들의 어장을 순에게 주었다.

순이 강가에 가서 도기陶器를 만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의 도공들이 만든 도기가 이상스럽게도 모두 아름답고도 튼튼하게 되었다. 그렇게 순이 살던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와 그에게 의지해서 살았다. 그리하여 이곳은 일 년 만에 작은 마을이 되었고 다시 일 년이

지나자 제법 큰 읍이 되었으며 삼 년째가 되자 번듯한 도시로 변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요임금은 천하의 현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천자의 자리를 선양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대족장들은 모두가 순이 현명하고 효성스러우며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순을 추천하였다.

그래서 요는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라는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냈고, 또 그의 아홉 아들들을 순과 함께 생활하게 하여 그가 정말

재능이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그리고 가는 갈포 옷과 거문고를 순에게 하사하였고 또 사람들을 시켜서는 곡식창고를 몇

칸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또 소와 양들도 내려 주었다. 본래 평범한 농민이었던 순은 이렇게 하여 순식간에 천자天子의 사위가 되어

갑작스레 귀한 몸이 되었다.

눈 먼 고수네 식구들은 그들이 줄곧 미워해 오던 순이 갑자기 높은 자리로 올라가 부자가 되고 귀한 몸이 된 것을 보고는 모두 질투에

불타서 이를 갈며 참을 수 없어 하였다.

동생 상은 순의 아름다운 두 아내를 보고는 침을 질질 흘리며 그녀들을 빼앗아 자기의 것으로 삼아 보려는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그 당시의 습속에 의하면 형이나 동생이 먼저 죽으면 그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회 관습의 유혹에 고무되어 음험하고 악독한 상은 무슨 함정이든 만들어 형을 죽이고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소망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상의 어머니 역시 아무 말 없이 아들의 계획에 완전히 동조하였다.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그 얄미운 순을 없애는 것은 자신이 늘 바래 왔던 소망이었으니까.

그리고 바보스러운 고수 역시 순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고 또 그의 재산이 탐이 났기 때문에 순을 없애 버리고

재산을 차지하자는 계획에 동의하였다.

이들은 마치 땅굴 속의 들쥐들처럼 밤을 새워 가며 집안에서 속닥속닥 의논을 하여 순을 없애 버리려는 음모의 올가미를 만들어

내었다.

그의 여동생 과수는 이 피비린내 나는 음모에 직접 가담은 하지 않은 방관자였지만 새 언니들의 행복을 시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 행복한 가정이 파괴되기를 바라는 비겁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들은 세 번의 음모를 꾸몄는데, 그 첫 번째는 곡식창고의 수리라는 명목 하에 순을 불태워 죽이려 하였다.

하지만 순의 아내들은 어디서 배운 신기한 재주인지 미래를 미리 알 수 있었고 또 신묘한 법술을 부리는 보물들을 지니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들은 자신들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으로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녀들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상자 속에서 그림이 그려진 오색찬란한 옷을 꺼내어 순에게 입으라고 했고 순은 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는 아버지를 도와 곡식창고를 수리하러 갔다.

그리고 곡식창고의 위로 올라가 수리를 시작했다. 그러자 이 악한 무리들은 일찌감치 짜 놓은 계획에 따라 사다리를 치워 버리고는

곡식창고 아래에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질러 그들 모두의 공통된 적을 불태워 죽이려 했다.

곡식창고의 사방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로 휩싸였다.

순은 창고 꼭대기에 넘어져서는 놀라서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리고는 식구들을 향해 도와 달라고 소리쳤다. 그것이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되자 순은 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아, 하늘이시여!」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팔을 벌려서 옷에 그려진 새 그림이 드러나는 순간, 순은 불꽃과 연기 속에서 한 마리 큰 새로 변하여

꽉꽉 소리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 광경을 보고 고수의 무리들은 얼이 빠진 듯 한동안을 꼼짝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렇게 하여 첫 번째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고수의 무리들은 이에 그만 두지 않고 두 번째의 계략을 짜내었다.

우물 청소를 도와 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순은 순순히 응했고, 아내들은 용의 그림이 그려진 옷을 순에게 주며 본래 입고 있는 옷안에

그것을 입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위험이 닥쳤을 때 겉옷을 벗어버리면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일러주었다.

순은 아내들의 부탁대로 용무늬의 옷을 속에 입고서 눈 먼 아버지를 도와 우물을 청소해 주러 갔다.

고수의 무리들은 순이 전처럼 이상한 옷을 입고 오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이젠 되었다고 여겼다.

즉 이번에야말로 순이라는 재수 없는 놈이 분명히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순은 도구를 챙겨 들고 그들에게 밧줄을 붙잡고 있으라고 말하고는 깊은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우물 속으로 들어가자 곧 밧줄이 끊기고 뒤이어 영문도 알 수 없이 돌이며 진흙 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한 번 당했던 적이 있는 순은 곧바로 민첩하게 대응하여 진흙덩이들이 다 쏟아져 내릴 때까지 가만히 있지 않고 겉에 있었던 옷을

벗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비늘로 뒤덮인 구불구불한 멋진 용으로 변하였다.

그는 지하의 황천黃泉을 뚫고 여유 만만하게 헤엄쳐서 다른 우물로 솟구쳐 나왔다.

악독한 고수의 무리들은 우물을 다 메우고 나서 우물 위를 발로 꽉꽉 밟으며 통쾌하게 웃어댔다.

원수 같은 순이 드디어 죽었으니 뜻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며 온 가족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순의 집으로 향했다.

가서 그의 아내들과 순의 재산을 빼앗을 작정이었다. 여동생 과수도 그것을 구경하러 따라갔다.

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자 참인지 거짓인지 두 형수는 얼굴을 가리고는 몸을 돌려 뒤꼍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 대성통곡을

하였다. 득의양양해진 상은 집안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죽은 순의 재산을 분배하는 문제를 의논했다.

「이 계략은 제가 꾸민 겁니다.」

상은 추악한 두꺼비 모양의 입을 벌리고 손발을 흔들어 대며 떠들었다.

「이치로 따져도 재산은 제가 좀더 가져야 됩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겠어요. 소와 양들은 두 분께 드리지요.

전답과 집도 모두 드리겠어요. 저는 다만 형의 이 거문고와 활, 그리고 두 형수만을 원해요.

히히, 이젠 드디어 함께 잘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러면서 상은 벽에서 순의 거문고를 꺼내어 딩딩당당 신나게 그것을 뜯어보았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즐겁게 빙글빙글 돌며 집안의 이 물건 저 물건들을 만져 보았다.

뒤꼍에 있는 두 과부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애통스러웠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여동생 과수의 여자로서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기 집안 식구들이 하는 짓이 너무나 잔악하고 비열하였으며, 또 자신이 이걸 보고서도 가만히 있는 다면 더욱 비겁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참회하는 고통스런 마음에 막 이를 깨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순이 바깥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순이 살아서 돌아오자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넋이 빠져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침내 그가 귀신이 아닌 진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비로소 정신들을 차리게 되었다.

순의 침대에 앉아 거문고를 뜯고 있던 상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맥없이 말했다.

「형, 지금 형 생각을 하며 걱정하고 있었어요.」

순이 말했다.

「그래, 나도 네가 나를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순은 아무 말도 더하지 않았다.

천성이 온후했던 순은 이 두 가지 죽을 뻔한 사건들을 겪고서도 부모와 동생을 대하는 것이 전과 마찬가지로 효성스럽고

우애스러웠으며 아무런 다른 점이 없었다.

오히려 본래 조금은 나쁜 습성이 있었던 여동생 과수가 이 두 사건을 겪은 뒤 잘못을 뉘우쳐서 오빠 그리고 새언니들과 진심으로

친해지게 되었다.

두 가지 사건으로 감동을 받은 과수는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고 그때부터 집안 식구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식구들에게 오빠와 새언니들을 해치려는 무슨 꿍꿍이속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걱정하던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고수의 무리들은 순이 죽지 않은 것을 보고는 영 마음이 편치 않아 또다시 새로운

음모를 꾸며내었던 것이다.

이 음모란 다름이 아니라 거짓으로 순을 청해 술자리를 마련한 다음 그를 흠뻑 취하게 한 뒤에 죽여 없애려는 것이었다.

이 음모를 알아챈 과수는 급히 두 새언니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몰래 알려주었고 순의 아내들은 대응책을 마련하게 순에게 알려

주었다.

「이 약을 가지고 가서 개똥이랑 섞으세요, 그리고 그걸로 목욕을 하시면 내일 가셔서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아무 일 없을 거예요.

부엌에 물도 다 데워 놓았으니 가서 목욕하세요.」

순은 아내들의 말을 듣고서 개똥과 약으로 열심히 목욕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자 깨끗한 옷을 입고는 부모님의 집에서 열리는 잔치에 참석하러 갔다.

고수의 무리들은 날카로운 도끼를 문틈에 숨겨 두고서 은근한 표정으로 기분 좋게 순을 맞아 들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풍성한 잔칫상을 차려 놓고 모두들 함께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순은 큰 잔 작은 잔 안 가리고 자신의 손에 술잔이 오기만 하면 사양하지 않고 모조리 마셔 버렸다.

한 잔 또 한 잔, 도대체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줄곧 술을 권해 대던 고수의 무리들이 모두 비틀거리며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냈지만

순은 여전히 똑바로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마침내 술 단지 몇 개가 모두 바닥이 나고 안주도 동이 나 더 먹을 것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자 순은 입을 닦으며 일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서 당당하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고수의 무리들은 그 모습을 그냥 쳐다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으니, 문틈에 숨겨 두었던, 그 미처 사용하지 못한 도끼가 비웃는 듯한

찬 빛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아들과 딸들의 보고를 듣고서 요는 순이 정말 소문대로 지혜롭고 효성스러우며 또 재능 있는 청년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기 전에 정치에 대한 학습과 단련이 필요했으므로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여 벼슬을 하게 하였는데, 온갖

직책을 다 맡겨 보아도 그는 모두 잘 해냈다.

그리하여 요는 천자의 자리를 이 능력 있는 청년에게 물려주고자 하였으나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한 번 더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 시험이란 곧 큰비가 쏟아져 내리려 할 때 그를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있게 한 뒤, 폭우가 내리는 삼림 속에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탈출해 나오라는 것이었다.

이 시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진다. 순이 깊은 산 속을 걷는데 조금도 두렵지가 않았다.

독사들은 그를 보면 멀리 도망쳤고 호랑이나 표범 등의 맹수들도 그를 보곤 해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삼림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천둥과 번개, 그리고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비, 사방엔 온통 머리를 풀어헤치고 팔을 벌린 정령들처럼 생긴 나무, 나무, 나무들.....

그야말로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용감하고 지혜로운 순은 폭풍우 치는 이 변화무쌍한 삼림 속을 걷고 또 걸으며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올 때의 길을 따라 이 삼림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는 삼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를 시험하려 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시험을 끝으로 하여 요는 천자의 자리를 순에게 물려주었다.

임금이 되자 순은 수레에 천자의 깃발을 달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인 고수를 만나 뵈었다.

순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공손하고도 효성스러웠다.

눈 먼 아버지는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의 아들이 정말로 착한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리석었던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아들과 화해하였고 순은 오만하고 방자했던 동생 상을 유비라는 곳에 제후로

봉하였다. 상은 제후로 봉해진 후에야 형이 정말로 인자하고 관대하다는 것을 알고서 마음속으로 깊이 감동하여 점차 자신의 못된

습관들을 버리고 좋은 사람이 되어 갔다.

순이 임금자리에 있던 몇십 년간, 그는 요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에게 이로운 많은 일을 하였다.

그리고 왕위를 물려주는 방법도 요와 같았다. 즉 노래부르고 춤추는 것만 아는 자기의 아들 상균商均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홍수를 다스려 백성들에 위해 큰공을 세운 우에게 물려주었다. 이것 역시 순의 공평무사함을 보여 주는 행동이라 하겠다.

순은 평소에 무척이나 음악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요임금이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낼 때 특별히 거문고를 내려 준 일이 있었다.

순이 천자가 된 뒤에는 악사 연延을 시켜 그의 아버지 고수가 만들었던 열 다섯 줄의 거문고에 여덟 줄을 더해 스물 세 줄의 거문고를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악사 질質에게는 제곡시대에 함흑이 지었던 구초九招∙육영六英∙육열六列등의 음악을 정리하여 새 악곡으로 만들게 하였다.

순은 만년에 남쪽 지방의 여러 곳을 순시하였는데 도중에 창오의 들판에서 죽고 말았다.

이런 슬픈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의 백성들은 자신의 부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애통해 하였고 순의 시체를 흙으로 만든 관에 넣어

창오蒼梧의 구의산九疑山 남쪽에 묻었다.

그와 고락을 함께 했던 두 아내 역시 이 불행한 소식을 듣고서는 간장이 끊어질 듯이 슬퍼하였다고 한다.

구의산 기슭에는 봄과 여름 두 계절에 걸쳐 코가 길고 귀가 커다란 코끼리가 나타나 순의 제우답을 갈았다고 한다.

후에 유비에 봉해진 동생 상도 자신의 봉지封地에서 돌아와 형의 무덤에 성묘하였다.

상이 돌아간 후에 사람들은 묘 근처에 정자를 지어 비정鼻亭이라 하고 상의 신주를 모셨는데, 그것을 비정신鼻亭神이라 하였다.

이 이야기를 보면 동물인 코끼리象와 사람인 상이 이미 거의 하나가 되어 버려 어느 것이 정말인지 분간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순의 아내로는 아황과 여영 외에 또 등비씨登比氏라는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등비씨는 소명宵明과 촉광燭光이라고 하는 두 딸을 낳았는데 그녀들은 황하 근처의 큰 연못에 살았다.

저녁이 되면 그녀들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주위 백리나 되는 곳을 밝게 비춰 주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태양과 달을 낳았다는 제준의 두 아내를 연상케 하는데, 순의 두 딸은 바로 제준의 그 두 아내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전설들로 보아 순의 신분이 인간세계의 인왕人王이 아니라 천상의 상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등비씨가 순의 본래 부인으로, 요가 그의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기 전에 이미 순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두 가지의 다른 전설이 뒤섞인 것으로서 그리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책에서는 순의 아들이 아홉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후에 상商에 봉해져서 상균商均이라 불려진 의균義均(제준의 손자 균과 이름이 같다.)

 말고 나머지 여덟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들 모두가 상균처럼 노래와 춤을 좋아했다는 것만은 알 수가 있다. 풍류만 알던 이들 귀공자들은 당연히 천하를 다스리는

중책을 맡을 수가 없었다.

이들 이외에 순의 후손이라고 하는 변방의 두 나라가 있었는데 동방 황야의 요민국搖民國과 남방 황야의 질국臷國이 바로 그것이다.

질국의 사람들은 노란 피부를 갖고 있었고 활을 쏘아 뱀을 잡는 능력이 있었다.

그 나라는 천혜의 땅으로서 농사를 짖지 않아도 먹을 것이 풍부했으며 옷감을 짜지 않아도 입을 것이 저절로 생겨 낫다.

그리고 난새가 노래하고 봉황이 춤을 추었다고 하니, 질국 사람들이 살던 곳은 실로 지상의 낙원이었다.


* 팔신八神 : 387

제곡에게는 왕비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추도씨鄒屠氏의 딸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 태양을 삼키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태양을 한 번 삼키는 꿈을 꿀 때마다 아들을 하나씩 낳았다.

그래서 이런 꿈을 여덟 번 꾸고 나니 아들이 여덟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팔신八神>이라 불렀다.


* 창힐蒼頡 : 353~354,

황제의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인물, <사황史皇>의 칭호를 갖고 있었다.

그는 황제의 신하였다고 하는데 혹자는 그가 황제 이전의 또 다른 제왕이었다고 하기도 한다.

또 창힐사황이 한 인물이라고 하는 설과 창힐은 창힐, 사황은 사황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창힐은 문자를 발명했고 사황은 그림을 만들어 내었다고 하며 두 인물 사이엔 아무 관계도 없다고

한다.

이렇듯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최초의 문자가 그림의 형태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창힐과 사황을 동일 인물로 보는

것이 비교적 합리적일 것 같다.

창힐은 탄생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우선 그는 넓적한 용의 얼굴을 하고 있는 데다가 네 개의 눈에서는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아직 어린아이일 때부터 붓을 들고 여기저기 휘갈겼는데 가만히 바라보면 그것이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사람들이

그런 그의 행동을 미워하지 않았다. 커 가면서 그는 머리를 써서 여러 자기 문제들에 대한 답을 구하곤 했다.

그로서는 천지 만물의 변화가 참으로 신기한 것이어서 연구해 보아야 할 대상이었으나, 그는 늘 머리 들어 하늘의 별들을 살폈고

머리 숙여 땅위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다.

거북이 껍질의 무늬, 새들의 깃털에 그려진 문양, 산의 능선과 시냇물의 완만한 흐름, 그런 대자연의 모습들을 늘 자신의 손바닥에

그려보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띠어 문자를 만들어 내었다.

창힐이 문자를 발명해 낸 것은 그야말로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 하늘과 땅이 놀라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늘에서는 좁쌀이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렸고 귀신도 놀라서 한밤중에 흐느껴 우는소리를 내었다.

사람들이 이제 자신들의 본분인 농사짓는 일을 소홀히

여기고 송곳 따위로 글자를 새기는 데만 몰두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먹을 양식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선 좁쌀 비를 내리게 하여 앞으로 일어날 기근에 대비하려 함이었으니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경고의 의미가 되는

것이었다.

또한 문자가 생기면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해서 귀신들을 탄핵할 것이니 귀신들 역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문자의

발명이 그야말로 <천지를 놀라게 하고 귀신들까지 겁먹게 하는> 굉장한 사건이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 천제소녀天帝少女(야행유녀夜行游女, 고확조故穫鳥) : 217

천제 전욱의 딸로 추정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나타나 날아 다녔는데, 깃털을 몸에 걸치면 새가 되어 날 수 있었고 깃털을 벗으면 인으로 변했다.

이 새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데려다 기르기를 좋아했는데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자기 목의 핏방울을 아이의 옷에 흘려

표시를 해 두었다가 나중에 꾀어 아이를 유괴해 오곤 했다.

이새는 머리가 아홉 개 가 있어서 구두조九頭鳥, 혹은 귀거鬼車, 귀조鬼鳥라고 불렸다.

본래는 머리가 열 개였다는데 개에게 물려 머리가 하나 떨어져 나갔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는 늘 피가 났는데 사람들은 그 피가 묻을까 봐 두려워서 밤에 그 새의 소리가 나기만 하면 개를 짖게 하고 불을

꺼서 그 새가 얼른 지나가 버리게 했다.


* 촉룡燭龍(촉음燭陰) : 147(147 그림), 504, 산해경 243

- 우산의 남쪽에 있는 안문雁門을 지키는 신룡

입에 촛불 하나를 물고 햇빛이 비치지 않는 북쪽 끝 지방의 어둠을 밝혀 주고 있다.

- 「산해경」에 서술된 종산鐘山의 신으로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있으며, 붉은 피부에 키는 천 리나

된다. 눈의 생김새가 특별한데 두 개의 올리브 열매처럼 세로로 서 있어 눈을 감으면 두 줄의 직선이 된다.

재주 또한 뛰어나서, 눈을 한번 뜨기만 하면 이 세상은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곧 밤이 대지에 내리게 된다.

입김을 불면 아리따운 구름이 가득 차고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이 되었다 가도, 숨을 한번 들이쉬면 곧 태양이 이글거리고 쇠라도

녹일 듯이 뜨거운 여름이 된다.

그는 종산에 엎드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잠도 안 자며 숨도 쉬지 않는대, 한번 숨을 쉬게 되면 만 리 밖  곳까지도 바람이 불게

된다.

그의 신통력은 또 구층 땅속의 어둠까지 밝혀 줄 수 있으니, 전설에 따르면 늘 초 하나를 입에 물고 북쪽 어두운 천문天門을 비춰

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촉음燭陰>이라고도 부른다.

- 종산의 신은 이름을 촉음이라고 한다. (촉음이) 눈을 뜨면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된다. 입김을 세게 내불면 겨울이 되고

천천히 내쉬면 여름이 된다. (물을) 마시지도 (음식을) 먹지도 않으며 숨도 쉬지 않는데 숨을 쉬면 바람이 된다.

몸 길이가 1000리가 무계의 동쪽에 있다.

그 생김새는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붉은 빛이며 종산의 기슭에 산다.


* 축융祝融 : 197, 237, 289, 503, 681~683, 산해경 234

- 해경海經에 기록된 염제의 현손玄孫인 불의 신火神, 염제와 함께 남쪽 1만2천리가 되는 지역을 다스렸다.

(남방 상제 염제의 보좌신)

- 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버지

-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몸을 하고,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으며 여름을 주관한다.

- 곤이 상제의 보물인 식양을 훔쳐 홍수를 다스리자, 상제는 축융을 보내어 우산에서 죽이고 남은 식양을

빼앗아 오게 하였다.

- 주무왕周武王이 즉위한 지 얼마 안되어 군사를 일으켜 주紂를 치러 가는데 합세하여 은나라를 멸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 남방의 신 축융은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두 마리의 용을 타고 있다.


* 현명玄冥(우강禺强) : 209~210, 240, 289, 681~683, 247~249, 산해경 250

- 북방 천제 전욱의 속신으로 바다의 신(海神)이자 바람의 신(風神)이며 손에는 저울추를 들고 겨울을 관장한다.

연배로 치자면 전욱의 아버지뻘(천제의 친손자)이 되는 우강은 능력이 뛰어난 조카 밑에서 충직하게 일하며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전욱과 우강은 북방의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1만 2천 리의 차가운 들판을 함께

다스렸다.

- 주무왕周武王이 즉위한 지 얼마 안되어 군사를 일으켜 주紂를 치러 가는데 합세하여 은나라를 멸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 바람의 신으로 나타날 때는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있으며, 귀에는 두 마리 푸른 뱀을 걸고 다리로는 두 마리의 푸른 뱀을

밟고 있는 위풍당당한 천신으로 나타난다.

그는 거대한 두 날개를 퍼덕여 매우 강한 바람을 일으키는데, 그 바람에는 많은 역병의 균이 실려 있어서 사람들이 그 바람을 맞으면

병이 나서 죽었다고 한다.

- 바다의 신으로 나타나 때는 모습이 무척이나 선량하다.

능어처럼 물고기의 몸을 하고 있고 손발이 달려 있으며 두 마리의 용을 타고 다닌다.

물고기의 몸을 하고 있는 까닭은 본래 그가 북쪽 넓은 바다에 사는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고래, <곤鯤>

이었기 때문이다. 곤이 몸을 한번 뒤척이기만 하면 <붕鵬>이라고 하는 큰 새로 변했다고 한다.

그 새는 아주 사납고 큰 봉새鳳로 등 넓이만 해도 몇천 리에 달하는 거대한 새였다.

그 새가 노하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그 검은 두개의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워져 있는 먹구름과도 같았다고 한다.

해마다 겨울이 되어 바다의 물길이 움직일 때, 그도 북해에서 남해로 날아간다.

그때 그는 물고기에서 새로, 즉 바다의 신에서 바람의 신으로 변한다.

휙휙 불어와 들판을 스쳐 지나는, 뼈에 스며드는 그 차가운 북풍은 바로 큰 새로 변한 바다의 신 우강이 불어 제끼는 바람인 것이다.

한번의 날갯짓에 3천리에 걸친 파도가 일어나고, 폭풍을 따라 구름 속 9만리까지 치솟아 반년을 날아 목적지인 남해에 이르면

그때서야 내려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 칠선녀七仙女 : 335~338

칠선녀는 하늘나라의 직녀인데, 직녀 자매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선녀였다.

그녀는 하늘나라에서의 적막함을 견딜 수 없어 몰래 인간 세계로 내려갔다가 길에서 동영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자기 자신을 팔아 부원외傅員外 집에 일을 하러 가는 중이었는데 칠선녀를 그를 보자 곧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토지의 신에게 주례를 부탁하고 늙은 홰나무에게 중매를 청하여 홰나무 그늘 아래에서 동영과 결혼하였다.

결혼식을 올리고 난 뒤 부부는 함께 부원외 집에 일을 해주러 갔다.

그런데 계약서에 <아무 것도 걸리는 것 없는 혼자>라는 것이 씌어져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레 여자 하나를 데리고 함께 온 동영을

부원외는 그들을 같이 있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애원하고 다투고 한 끝에 결국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즉 동영 부부가 그날 저녁으로 비단 열 필을 짜낸다면 본래 삼 년이던 고용살이를 백일로 줄여 주기로 했고, 만일 짜내지 못하면

년에 삼 년을 더 보태 육 년간의 머슴살이를 하기로 하였다. 칠선녀는 얼른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으나 동영은 몹시도 근심이

되었다.

그날 저녁, 고민하고 있는 동영을 먼저 자라고 한 뒤, 칠선녀는 인간세계로 내려올 때 자매들이 그녀에게 선물한 난향難香이라는

향을 방안에 피웠다. 그러자 하늘에 있던 선녀들이 그 냄새를 맡고는 얼른 달려왔다.

그리고는 막내 동생의 부탁들 듣고 모두 함께 일을 시작하였다.

하늘 나라에서도 빼어난 길쌈 솜씨를 지닌 이 재주 많은 아가씨들은 날줄 씨줄을 재빠르게 짜 넣으며 작업을 했는데, 정말로 하룻밤

사이에 화조花鳥문양이 가득한 찬란한 비단 열 필을 짜내었다.

이튿날 부부가 이 비단을 주인에게 전하니 주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드디어 약속했던 백 일이 되었다.

동영 부부는 주인에게 고별 인사를 하고 자기 집을 향해 떠났다.

이미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주인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이 돌아가도록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칠선녀는 자신이 이미 임신했다는 것을 동영에게 이야기하였다.

동영은 그 말을 듣고 기쁜 일이 겹쳤다며 즐거워하였다.

그들은 견우 직녀처럼 작은 가정을 이루어 남편은 농사짓고 아내는 옷감을 짜는, 그런 부지런하고 행복한 생활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때 천제는 칠선녀가 몰래 인간 세계로 내려갔다는 것을 알았다.

크게 노한 천제는 그 즉시 사신을 보내어 종과 북을 울려 칠선녀에게 천제의 명령을 전하게 했다.

「오시五時 삼각三刻까지 하늘로 돌아오너라.

만일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늘의 병사들을 보내어 잡아올 것이며 동영도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행복한 단꿈은 이렇게도 쉽게 깨져 버리고 말았다.

칠선녀는 그녀의 남편이 해를 입을까 두려워 그들이 결혼했던 홰나무 아래에서 동영과 슬픈 이별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본래 동영이 부르면 곧 대답을 하던 그 홰나무 역시 지금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벙어리 나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사이 좋던 부부가 순식간에 이렇게 생이별을 하게 되었음은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칠선녀는 동영게게 <내년에 벽도화碧桃花가 피는 날, 홰나무 아래에서 아이를 드리리다>라는 약속을 하고는 동영이 기절해

버린 사이에 하늘 나라의 사신을 따라 하늘로 가 버렸다.


* 태봉泰封 : 234~236(235 그림), 617, 산해경 168(그림 168)

- 동양부산東陽萯山(화산和山에)의 주신主神인 길신吉神

- 사람처럼 생겨 별달리 이상한 점은 없었으나 몸의 뒤쪽에 호랑이 꼬리가 달려 있었다.

- 혹은 참새 꼬리라고도 하는데, 생각하기에는 새의 꼬리가 더 그에게 어울릴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본래의 착한 그의 모습에 조금은 익살스런 맛을 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통력은 하늘과 땅을 감동시켜 구름과 비를 마음대로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춘추시대에 진나라의 평공平公이 저명한 음악가인 사광師曠과 함께 마차를 타고 회수澮水로 놀러 가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8백 필의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수레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어떤 사람이 뛰어내려 진

평공의 마차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평공의 뒤를 돌아다보니 그의 모습이 좀 이상하게 보였다.

어째서 들고양이의 몸에 여우의 꼬리가 달려 있는 것일까?

마음속으로 좀 두려워하며 사광에게 저것이 도대체 무슨 괴물이냐고 물었다. 그를 본 사광이 대답했다.

「저 사람의 모습을 보니 아마 수양산의 산신인 길신 태봉인 것 같습니다.

얼굴이 벌건 것을 보니 곽태산藿太山 산신이 사는 곳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것 같군요.

지금 회수에서 그를 만나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공 公께 곧 좋은 일이 닥칠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길신 태봉이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 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줄곧 좋은 것이었다.

태봉은 화산 부근의 부산萯山 남쪽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가 그 산을 드나들 때마다 몸 둘레에 늘 눈부신 빛이 따랐다고 한다.

- 화산을 맡고 있는 선신善神으로 형상은 사람 같으나 호랑이의 꼬리가 있다.

부산의 남쪽에 즐겨 거처하고 있으며 드나들 때마다 광채를 발한다. 그리고 천지의 기운을 움직인다.

- 하왕조의 공갑孔甲은 어리석고 노는 것과 사냥을 좋아했는데 어느날 시종과 호위병을 잔뜩 이끌고서 마을 타고 수레를 몰며

사냥개와 매들을 데리고 동양부산으로 사냥을 하러 갔다.

태봉은 어리석은 왕 공갑이 그곳에 와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무척 싫었다.

그래서 폭풍을 일으켜서 돌과 모래를 흩날리게 하여 천지가 온통 어둠에 휩싸이게 하니, 공갑과 그의 무리들은 폭풍 속에서 길을

잃고 흩어져 버리게 되었다.


* 태산산신녀泰山山神女 : 676~677

문왕은 처음에 태공太公을 관단灌壇이라고 하는 작은 지방에 보내어 그곳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아보게 하였다.

일년이 지나자 그는 그곳을 잘 다스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만들었다.

또한 그의 다스림이 바람에까지 미쳤는지 나뭇가지를 흔들어 댈 만한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문왕은 꿈속에서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태산泰山 산신의 딸입니다. 동해의 해신에게 시집을 갔는데 지금 친정으로 가는 길이지요.

그런데 그만 관단 지방의 현령 때문에 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본래 제가 지나가려면 폭풍우가 반드시 저를 따르게 되어 있답니다.

 

만일 제가 그곳을 지남으로 해서 폭풍우가 몰아치게 된다면 그 현령의 좋은 평판에 금이 가게 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가 천제의 징벌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또한 폭풍우 없이는 제가 지나갈 도리가 업으니 진퇴양난이지요.」

문왕은 꿈에서 깨어나 참으로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고는 태공을 불러다 그 까닭을 물었다.

태공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난처해하고 있을 때 마침 문왕에게 달려와 보고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의 보고는 이러했다.

「아주 센바람과 큰비가 지금 막 태공께서 관할하는 지방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문왕은 그때서야 그 꿈의 의미를 깨닫고 태공에게 대사마大司馬의 직책을 맡겼다.


* 팔공八公 : 362

한澣나라 때 회남왕 유안劉安에게 학문을 가르쳐 준 수염과 눈썹이 하얀 여덟 명의 이상한 노인들


* 풍이馮夷(하백河伯, 빙이氷夷) : 513, 461~470, 산해경 275~276(그림 276)

- 해경海經에 기록된 물의 신으로 깊이가 300길인 종극연에서 항상 살고 있다.

사람의 얼굴에 두 마리의 용을 타고 있다.

- 우가 치수를 시작한 뒤 황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가 높은 절벽 위에 서서 물길을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키가 크고 얼굴이 희며 물고기의 몸뚱이를 한 자가 넘실거리는 물결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스스로를 물의 정령이라 하였는데, 그가 바로 하백河伯이었다.

그는 우에게 물이 뚝뚝 흐른 커다랗고 푸른 돌덩이(하도河圖)를 건네주고는 몸을 돌려 물 속으로 사라졌다.

우가 그 푸른 돌을 자세히 보니 그 위에는 저절로 생겨난 듯한 구불구불한 곡선 모양의 무늬가 있었다.

총명한 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볼 필요도 없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즉시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치수의 지도였던 것이다.

- 하백은 빙이氷夷 혹은 풍이馮夷라고도 하였다.

어떤 전설에서는 그가 강을 건너가다 물에 빠져 죽어 수신이 되었다고 하고, 또는 그가 약을 먹고 물을 만나 신선이 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백은 풍류를 알고 흰 얼굴에 큰 키를 지닌 멋진 미남이었다.

그러나 그가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에는 북해의 능어陵魚처럼 하반신이 물고기의 형태였다.

 그는 늘 연잎으로 뚜껑을 씌운 수레를 타고 나타났는데 용 같은 종류의 동물이 수레를 끌었다.

후세의 민간전설에 그가 해마다 신부를 새로 맞아 들여 놀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하백의 방탕했던 생활로 미루어 보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 이익을 취하고 또 약한 자에게 강하며 강한 자에게는 약한 비열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 강의 왕인 하백은 그 수하에 수많은 관원들과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새우나 게와 같은 보통 부하들은 치지 않더라도 그중에는 꽤 특별한 부하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하백사자河伯使者>라고 부른 저파룡과 <하백종사河伯從事>인 자라, 그리고 하백의 <도사소리度事小吏>였던 오징어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아마 하백의 친위대였던 것 같다.

그들은 늘 물위를 드나들며 순찰을 하였고, 또 거기서 듣고 온 소식들을 하백에게 알려주었는데 정치나 애정 문제에 관한 소식들이

모두 그들의 보고 범위에 들어 있었다. 하백의 사자는 물위로 나올 때 그 모습이 더 대단했다.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던 그는 붉은 갈기가 달린 백마를 타고서 흰옷을 입었으며 검은 모자를 쓴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는데, 그 뒤에는 

열두 명의 어린아이들이 따라왔다. 그 아이들도 말을 타고서 질풍처럼 물위를 내달렸다.

어떤 때는 강기슭에까지 올라왔는데 그들이 탄 말이 달려가는 곳까지 물이 차 올랐으며 그들이 가는 곳에는 졸지에 큰비가 쏟아져

내리곤 했다. 그러다가 황혼 무렵이 되면 나와서 순시를 하던 하백 사자가 다시 작은 물고기나 새우들이 변한 어린이들을 데리고

강으로 돌아왔다.

물나라 하백 부하들의 이런 부지런함은 예와 복지의 애정에 대해 무척이나 불리한 것이었다.

하백은 화를 억누를 수 없는 그런 보고를 듣고서 격노하여 친히 물위로 나가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던 대신大神 예의 용맹스러움이 두려워 직접 나가지는 못하고 그저 흰 용으로 변하여 강 위를 헤엄치고

있었다.

이렇게 용으로 변하여 물위로 나오 몰래 살펴보려는 그의 의도는 별 것이 아니었으나 그의 그런 행동은 엄청난 홍수를 일으키게

되었다. 강물이 양쪽 기슭에까지 넘쳐흘러 무고한 백성들이 숱하게 빠져 죽었던 것이다.

결국 하백의 그런 모습이 예의 눈에 띄게 되었다.

수신이 응당히 지녀야 할 품격을 저버린 하백의 저질스런 행동에 대해서 예는 몹시도 화가 났다.

그래서 그를 혼내 주려고 흰 용으로 변한 하백을 향해 활을 쏘았는데 그 화살은 하백의 왼쪽 눈에 바로 맞았다.

<뜻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 와야 했던> 하백은 엉엉 울며 하나 남은 눈 하나를 크게 뜨고 천제를 찾아가 하소연했다.

「천제여, 예란 놈이 사람을 너무 못살게 굽니다. 그놈을 좀 죽여주십시오.」

「왜 예가 너의 눈을 쏘았느냐?」

천제가 물었다.

「저요, 저는......」

하백이 우물거렸다.

「저는 그때 흰 용으로 변해 강 위로 나가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신통력을 지닌 천제는 사건의 발생과 진행 과정에 대해 일찌감치 다 알고 있었다.

천제는 행실을 바로 하지 못했던 이 수신에게 사실 별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루한 듯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여러 말할 것 없다. 물의 신이면 물 속에나 가만히 있을 것이지, 누가 너보고 용으로 변하라고 했더냐?

용은 물 속에 사는 동물이니 사람들이 쏘는 게 당연하지. 예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어 하백은 그의 아내와 한바탕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복비는 자기 때문에 눈 하나를 잃게 된 남편에게 좀 미안해했던 것 같다.

비록 예를 사랑하긴 했지만 두 집안의 평안함을 위하여 예와의 만남을 끝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애정이 비극적인 파국을 맞아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초사������의 「천문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천제가 예를 인간 세계로 보낸 것은 백성들의 고통을 없애 주기 위함인데,

왜 전설에서는

그가 하백을 죽이고 낙빈을 아내로 맞았다 하는가?>

즉 예가 낙빈을 차지하고 아내로 삼았다는 전설은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하므로 시인 굴원도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 필방조畢方鳥 : 296

학처럼 생겼고 사람의 얼굴에 하얀 부리를 하고 있다.

푸른색의 몸에 붉은 무늬가 있었으며 발은 단 한 개였는데, 우는소리가 <삐황, 삐황!>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새가 나타나는 곳에는 늘 괴이한 화재가 발생하곤 했다.


황제(皇帝, 黃帝) : 황제1.HWP 참조

* 헌원軒轅(황제黃帝) : 348,

- 황제가 수레를 만들어서 헌원씨軒轅氏라고 불린다.

- 유웅씨有熊氏라고 불린 것으로 보아 곰의 토템으로 보인다.

또 <황제가 판천의 들판에서 염제와 싸울 때 곰熊∙비羆∙이리∙표범∙추貙∙호랑이虎 등을 앞세웠고, 수리∙할∙매∙솔개 등이 깃발을 들었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부족 연맹의 우두머리이던 황제가 새와 짐승들의 이름으로 명명된 씨족 집단을 이끌고 판천에서 염제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으로 보인다.

 

* 헌원국軒轅國 : 343, 547(그림), 산해경 239, 310

염제가 태어난 상양산의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황제의 자손들이 모여 사는 장소로 궁산窮山의 끝에 위치.

헌원국 사람들은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에 꼬리가 머리를 휘감고 있으며 모두가 장수하였고 단명하여 죽는 사람도 8백 년은 살았다.

헌원국의 근처에는 <헌원의 언덕>이라고 하는 구릉이 있었는데 네 마리의 뱀이 그곳에 또아리를 틀고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서방에 황제黃帝의 위령이 있는 <헌원의 언덕>이 있었기 때문에 활을 쏘는 사람들을 누구도 감히 서쪽을 향해 쏘지를

못했다.


* 화적貨狄 : 349

황제의 신하로 공고共故와 함께 배를 만들었다.


* 휘揮 : 349

황제의 신하로 활을 만들었다.


* 풍후風后 : 풍후1.HWP 참조

지남차指南車라는 수레를 발명


* 후조后照 : 181

복희가 함조咸鳥를 낳았고 함조는 승리乘釐를, 승리는 후조後照를 낳았는데, 후조가 바로 파국의 시조가 되었다.


* 후예后羿 : 608~616

유궁국의 국왕인 후예는 원래 평범한 농민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활쏘기를 좋아하는 데다가 사람들을 위해 많은 재앙을 물리쳐 주었던 천신 예羿를 흠모하여 스스로를 <예>라고 불렀다.

나중에 그가 국왕이 되자 사람들이 그를 <후예>라고 높여 부르게 된 것이다. <후后>는 왕이라는 뜻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활쏘기의 천재였다.

그가 아직 갓난아기였을 때 요람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파리들이 날아와 얼굴에 앉아 자꾸 귀찮게 구는 것이었다.

그는 아빠 엄마에게 부탁하여 필초蓽草로 활과 화살을 좀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활을 당기고 화살을 매겨 공중에 날아다니는 파리를 향해 쏘았다.

마침내 잠깐 사이에 파리들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겁이 난 파리들은 감히 그의 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어느 날 그는 산에 약초를 캐러 가는 아빠, 엄마를 따라가게 되었다.

때는 마침 엶이어서 온 산이 매미 울음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한나절을 걷다가 어느 커다란 나무 밑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는 너무나 피곤해서 움직일 수가 없어 그곳에서 잠을 자고 싶어했다.

이때 그 산에서 오직 그 나무에만 매미가 있어 <찌르르 찌르르> 울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아이를 그 나무 밑에서 자도록 하게 하자고 결정을 했다.

나중에 돌아올 때 매미가 우는 큰 나무를 찾아오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부부는 약초를 캐러 길을 떠났다.

저녁이 되었다. 약초를 다 캔 부부는 아들을 찾아 돌아왔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온 산에 가득 들리는 매미 울음소리, 모든 나무에 매미가 숨어 있는 듯 여기저기서 <찌르르 찌르르>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매미가 울고 있는 나무를 찾으면 되리라는 생각은 이미 쓸데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둠이 점점 짙어져 갔다. 부부는 아이를 찾지 못한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부터 부부는 몇 차례나 산으로 아이를 찾으러 갔지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러면 후예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무 밑에서 자다가 깨어 보니 온 산에 매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무섭다는 생각이 조금도 안 들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재미있게 놀았다.

이곳 저곳으로 마음대로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그는 문득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길모퉁이 바위 위에 웅크리고 앉아 소리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초호보楚狐父라고 하는 산 속의 사냥꾼이 지나가다가 그를 보았다.

울고 잇는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아이에게 물었다.

「꼬마야, 너 어디에 사니?」

「네 이름이 뭐니?」

「왜 여기서 혼자 울고 있니?」

그러나 아이는 머리만 가로 저을 뿐 아무 것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 아이가 그러나 어딘가 기개가 있어 보여 초호보는 그를 자신의 아들로 삼기로 했다.

초호보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다. 후예는 커 가면서 양아버지에게 활 쏘는 법을 배웠다.

어떤 때는 양아버지보다 더 나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활을 많이 쏘아서 그런 것인지 그의 왼쪽 팔은 오른쪽보다 길었다.

그래서 활을 잡아당기면 활이 훨씬 더 둥글게 굽어 튀어 나가는 화살이 힘이 있었다.

후예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양아버지가 병이 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원대한 뜻을 가슴속에 품고 있던 후예에게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생활은 너무나 적막하고 외로운 것이었다.

그는 친부모에게 가고 싶었지만 자신의 집이 어디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산의 절벽 위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긴 채 축원을 했다.

「앞으로 내가 만일 이 활을 가지고 세상의 사악한 것들을 없애고 천하를 평정하게 될 것이라면 내가 손 이 화살이 나의 집 문 앞에

떨어지게 되기를!」

축원을 마치고 그는 활을 쏘았다. 정말 기이하게도 화살이 땅위에 떨어지더니 뱀처럼 구불거리며 땅위를 달려가는 것이었다.

풀숲을 지나고 나무 사이를 헤치며 화살은 땅위에 구불거리는 줄을 그으면서 산을 벗어났다.

후예는 마음속으로 신기해하면서 화살의 자취를 따라갔다. 산을 떠나 수십 리를 갔을 때였다.

길가에 다 쓰러져 가는 초가 한 채가 보였는데 자신이 쏜 화살이 바로 그 집의 문지방에 꽂혀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집엔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도처에 깨진 기왓조각이 깔려 있었고 거미줄투성이였으며 부엌의 부뚜막에도 깨진 사발 몇 개가 놓여 있을 뿐이었고 한쪽 구석엔

다리가 부러진 침대가 눈의 띄었다.

그는 이웃집으로 가 그 집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 집은 원래 산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노부부가 살던 집인데 그 부부는 삼 년 전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나 버렸다는 대답이었다. 

후예는 그곳이 바로 자기가 찾던 자신의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슬픔에 겨워하며 집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활 쏘는 데는 고수였던 후예였지만 농사짓는 일에는 문외한이라 고향에서의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늘 죽에다가 시래기국으로 연명을 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그는 죽 한 그릇이라도 꼭 부뚜막에 올려놓고서 세상을 떠난 부모님께 자신의 효심을 보이고 싶어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자니 후예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활을 짊어지고 고향을 떠나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떠돌아다니던 길에 그는 역시 활쏘기의 명인이었던 오하吳賀라는 청년을 만났다.

두 젊은이는 만나자마자 서로를 알아보며 의기투합하였다.

뿐만 아니라 후예는 오하를 스승으로 삼아 그로부터 활 쏘는 법을 더 배웠다.

「저 참새를 쏘아 봐!「

「산채로? 아니면 죽일까?」

후예가 물었다.

「쏘아 봐!」

오하가 말했다.

「참새의 왼쪽 눈을 맞춰 보라고!」

후예가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아 참새를 명중시켰다. 참새를 맞춘 화살이 땅에 떨어졌고 두 사람은 달려가 참새를 주워들었다.

과연 참새의 눈에 화살이 박혀 있었는데 아쉽게도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었다.

「그런 대로 괜찮은 솜씨야!」

오하가 후예를 격려하며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후예는 부끄러움으로 귓부리까지 붉게 물들어 하늘을 바라다보며 한나절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는 더욱 더 힘을 기울여 활 쏘는 연습을 하였으며 드디어는 백발백중, 한발도 헛되이 쏘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 후 자신의 활과 화살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모든 것들을 제거해 나가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존경해 얼마 되지 않아서 마침내

유궁국의 국왕이 되었다.

당시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그의 명령을 들었는데 오직 백봉伯封이라는 자만이 후예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백봉은 원래 요임금의 악관 노릇을 했던 기蘷의 아들이었다.

생김새가 시커먼 돼지 같은 데다가 못생겼으며 거기다가 성격마저 거칠고 탐욕스러워 사람들은 그를 산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렇게 못생긴 아들에게도 절세미인인 어머니가 있었으니 그녀는 유영씨有仍氏의 딸, 현처玄妻였다.

사람의 모습조차 비칠 정도로 검고 길며 빛나는 머리카락을 지닌 그녀는 나이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검은 여우>라고 불렀다.

백봉이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알게 된 후예는 군사를 이끌고 그를 치러 갔다.

전쟁터에서 마주치게 된 그들은 서로 힘껏 싸웠다.

그러나 백봉의 무예가 뛰어나다고 한들 신궁 후예의 솜씨를 당해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후예는 백봉의 허를 찔러 한발의 화살로 그를 쏘아 죽였다.

산돼지처럼 거칠고 사나운 폭군을 제거하자 사람들은 모두 환호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현처만은 슬픔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후예는 현처의 빼어난 미모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 버렸다.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이 만류하는 것도 뿌리치고 그녀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후예 때문에 집안이 풍지박산난 그녀였지만 아들의 원수에게 드러내 놓고 반항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그에게 순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아들의 원수를 갚을 계획을 세웠다.

백봉을 없앤 후, 후예는 개선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총애하는 왕비 현처를 앞세우고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도중 그는 한착寒浞이라는 젊은이를 만나게 되었다. 한착은 멀고 먼 한국寒國에서 후예를 찾아온 것이었다.

본래 그는 한국의 귀공자였는데 사람됨이 교활하고 간특했다. 정직한 성품의 한국 국왕은 그의 그런 비열한 성격을 일찌감치

파악했기 때문에 그를 중용 하지 않았고 견디다 못한 한착은 멀리 후예를 찾아와 그의 신하가 되려 했다.

후예를 만나게 되자 한착은 자신의 귀공자다운 모습과 달변으로 후예를 사로잡았다.

겉으로는 스스로를 낮추지도 높이지도 않았지만 사실상 후예에게 아부를 다한 그를 후예는 조금도 의심해 보지 않고 완전히 믿어

자신의 심복으로 삼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점점 더 뜻이 맞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후예는 아예 한착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본래 그의 곁에 있었던 어진 재상들 - 무라武羅∙백인伯因∙웅곤

熊髡∙방어龐圉 - 은 모조리 내쫓아 버렸다. 후예는 자신의 그 뛰어난 궁술만으로도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다.

정치 따위는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시종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 매와 개를 풀어놓고서 사냥에 열중했다.

한착이 일단 권력을 잡게 되자 그의 속에서 잠자고 있던 야심이 불이 붙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속에는 칼을 품고 있었던 이 음험한 소인배는 후예가 밖에서 사냥에 열중해 있는 틈을 타 슬그머니

궁으로 들어가 후예의 총비인 현처와 수작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들 둘은 서로 뜻이 맞았다.

현처는 아들의 복수를 하고자 했으며 한착은 제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했다.

그들에게는 서로 다른 목표가 있었지만 후예를 없애고자 하는 뜻만은 서로 일치했다.

현처가 한착에게 말했다.

「당신이 큰일을 도모하자면 우선 날개가 필요해요, 그래야 날 수 있잖아요. 당신이 날아오르게 되는 날, 나는 바람을 일으켜 주겠어요.」

한착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즉시 깨달았다. 그날부터 그는 이리저리 다니며 자신의 세력과 지지기반을 넓혀 갔다.

또한 곳곳에 뇌물을 뿌려 인심을 얻었다.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위장하고서 자신이 저지른 모든 못된 일과 비리들을 후예에게 떠넘겼다.

후예가 사냥을 하고 싶어하면 계속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권했다.

한편으로는 현처에게 후예의 마음에 안 드는 일을 계속하게 해 후에의 화를 돋구게 했다.

이렇게 되자 후예의 성격은 날이 갈수록 나쁘게 변해 갔다. 화를 풀자니 무고한 시종들만 욕을 먹고 매를 맞아야 했다.

이유도 없이 후예에게서 매를 맞게 된 시종들의 마음속에는 자연히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 쌓여 갔다.

한착은 이런 기회를 틈타 그들을 구슬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착의 꼬임에 넘어갔다.

오직 후예만 이 모든 변화를 모르고 있었다.

한착과 현처의 계획에 의해 모든 것은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었고 암살의 음모는 드디어 실현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다. 후예는 야외에서의 사냥을 마치고 말을 탄 채 시종들을 거느리고 흥겹게 돌아오고 있었다.

그때 숲 속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들려 왔다.

후예가 머리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는 순간 <쉭!>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 한 발이 후예의 왼쪽 목덜미에 꽂혔다.

뒤이어 연달아 날아오는 몇 발의 화살이 후예의 어깨와 등, 허리 등을 연이어 맞췄다.

후예는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하고 분노에 찬 눈썹을 몇 번 찌푸린 뒤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한착은 자신의 심복들과 이미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후예의 시종들을 데리고 숲에서 나왔다.

그리고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후예에게 다가가 잔혹하게 그의 생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후예를 따라오던 시종들도 대부분 일찌감치 한착과 내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무기를 내려놓았다.

다만 몇몇 충직한 시종들만이 한착에게 맞서 싸웠지만 중과부적이라 모두 한착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무사들은 후예의 시체를 둘러메고 횃불을 높이 쳐들고서 기세등등하게 왕궁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한착이 국왕으로 옹립되고 현처는 한착의 황후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반야만의 시대라, 그들은 후예의 시체를 솥에 넣고 삶아 고깃국을 끓였다.

그리고 왕궁 근처에서 후예 본부인의 아들을 찾아내어 그에게 그 고깃국을 먹이려 하였다.

후예의 아들이 먹지 않으려 하자 그들은 그를 왕궁 문밖으로 끌고 가 살해해 버렸다.

한착이 후예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되었지만 나라 이름은 여전히 유궁이라고 불렀다.

현처는 교趬와 희豷라고 하는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들 역시 힘이 천하장사인 용사들이었다.

교는 늘 몸에 갑옷을 두르고 다녔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발명품이었다고 한다.

그는 땅위에서도 배를 끌고 다닐 수 있었다고 하니 그 힘이 얼마나 장사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의 동생인 희 역시 형과 막상막하였다.

이렇게 되니 삼부자가 자신들의 권세와 무력, 그리고 교활한 성품으로 약한 제후들을 못살게 구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들이 후예에 비해 더욱 악독한 강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도망쳤던 계啓의 손자 소강 小康을 옹립하기로 결정을 하고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소강이 막 군사를 일으킬 무렵, 그들에게는 사방 십리밖에 안 되는 땅과 오백의 병마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착 부자는 각각 병마를 거느리고 요지에서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었다.

부흥의 가치를 높이 든 소강에게는 힘든 전쟁이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싸우니 한착 부자는 몇 년 안되어 소강의 군대에게 궤멸

당했고 유궁국도 마침내 멸망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소강은 하왕조를 부흥시켰던 것이다.


* 무라武羅 : 613

- 유궁국의 국왕인 후예后羿의 곁에 있던 어진 재상들 중 일인이었으나 한착寒浞으로 인해 내쫓김


* 견융국犬戎國(견봉국犬封國) : 578, 산해경 272, 325

- 고야국의 서쪽, 서북쪽의 끝에 위치

- 개의 머리에 사람의 몸뚱이를 하고 있다.

-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황제黃帝의 후손이라고 한다.

황제의 현손인 농명弄明이 암수 한 쌍의 흰 개를 낳았는데 그 두 마리의 개가 결합하여 자손을 퍼뜨려 견융국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견융국 사람들은 고기를 먹었고 융선왕시戎宣王尸라고 하는 신을 모셨는데 그는 말처럼 생겼으나 머리가 없었고 온몸이

붉은 색이었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고신왕高辛王 시절에 방왕房王을 죽이는 데 공을 세웠고, 그래서 고신왕이 자신의 딸을 주어 사위로

삼은 용구龍拘 반호盤瓠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그후에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모두가 개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고 여자아이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아가씨가 술과 요리 접시를 받쳐들고 얌전히 꿇어앉아 개의 머리를 한 자신의 남편에게 그것을 올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 나라에는 또 흰색에 무늬가 있는 <길량吉量>이라고 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은 <길량吉良>이라고도 불렸다.

황금색 눈에 갈기는 불꽃처럼 붉었으며 그 말을 타면 천년은 능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 교경국交脛國 : 555(555 그림), 산해경 231(231 그림)

남방 해외의 이형異形국으로 길흉국의 동쪽, 효양국의 부근에 위치

교경국 사람들은 키가 그리 크지 않아 대개 네 척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다리가 구부러진 데다가 서로 얽혀 있어 한 번 누우면 일어나지를 못했으니, 누군가가 곁에서 부축해 주어야만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길을 걸을 때도 바로 걷지 못하고 절름거리며 걸어가 그 모습이 보기에 조지 않았는데 그들은 습관이 되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똑바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오면 그것을 이상하다고 여기곤 했다.


* 군자국君子國 : 545~546

동방에 위치한 장수국 중의 하나인데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수명이 매우 길었다.

그들은 가축과 들짐승을 잡아먹었으며 그 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는 무궁화木槿花를 쪄서 일상 식품으로 먹기로 했다.

무궁화는 관목灌木에 속하는 나무에 피는 꽃인데 붉은색과 보라색, 그리고 흰색의 여러 가지가 있었다.

고대의 시인들은 그들의 시 속에서 무궁화를 이렇게 묘사했다.

<어떤 아가씨와 나와 같은 수레에 탔네.

그녀의 얼굴은 활짝 핀 무궁화와도 같아.>

이런 시의 구절로 보아 무궁화가 무척 아름다운 꽃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꽃은 그리 오래 피어 있지는 않았으니, 새벽에 피어나면 저녁이 안 되어 시들어 버렸다.

그것은 마치 일찍 스러져 버린 소녀의 청춘과도 같았다.

군자국 사람들은 수명이 이렇게 짧은 무궁화를 먹었는데, 수명이 짧은 꽃을 먹는 그들이 장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장수는 어쩌면 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군자로서의 품덕이나 자애로운 마음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자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오래 살았다고 하니까.

군자국 사람들은 정말 이상했다.

그들은 옷과 모자를 모두 격식에 맞추어 차여 입었고 허리에는 보검을 찼으며 모든 사람들이 각자 호랑이 두 마리를 하인으로 부렸다.

모두들 겸양의 미덕이 있었으며 조금도 서로 다투지 않았다.

호랑이 또한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처럼 온순하였다.

군자국의 거리에 가보면 사람과 호랑이가 서로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아무런 혼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는 이렇게 개탄하여 말한 적이 있다.

「나의 도 道가 중국에서는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이나 타고 바다 건너 구이 九夷의 지방에나 가볼까」

군자국은 구이의 범위에 속했던 나라였으니 공자의 뜻은 아마도 군자국에 가서 자신의 도를 펼쳐 보고 싶었던 것 같다.


* 흑치국黑齒國 : 559, 산해경 254, 288

- 동방 해외의 이형異形국으로 현고국의 남쪽, 군자국 근처에 위치

- 부근에는 탕곡湯谷이 있었으며 열 개의 태양이 늘 그곳에 머물렀다.

제준帝俊의 후손들로 치아가 온통 옻칠을 한 듯이 검은데 벼를 먹고 뱀을 잡아먹는다.

붉은 뱀 한 마리와 푸른 뱀 한 마리가 그 곁에 있다.

흑치국은 군자국 근처에 있었는데, 아마 이런 연유 때문인지 이여진李汝珍의 ������경화연鏡花緣������에 보면 그들이

무척이나 예절바르고 학식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흑치국의 두 여학생과 시서를 논할 때 당唐나라의 수재인 그를 그녀들이 오히려 능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 제준이 흑치를 낳았는데 성이 강씨이고 기장을 먹고 살며 네 종류의 짐승을 부린다.


* 대식왕국大食王國 : 543~544

이 나라의 어느 절벽 위에 푸른 가지에 붉은 이파리를 가진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 나무는 많은 아이들이 생겨나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은 대개 여섯 치 정동의 길이에 머리가 나뭇가지에 붙은 채로 자라났는데 사람들을 보면 웃었고 손과 발이 모두 움직였다.

그러나 나무에서 떨어지면 곧 죽어 버렸다고 한다.

이런 소인들을 <균인>이라고 했는데 먹으면 장생불사하는 <육지肉芝>의 일종인 것 같다.

오승은의 「서유기西遊記」에서는 이런 것을 <인삼과人蔘果>라고 했다.


* 대진국大秦國 : 543

남방 바다밖에 있는 조요국이라는 소인국의 근처에 있는 나라로 이 나라의 사람들은 키가 열 길이나 되었다.

조요국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흉악한 백학이 날아와 그들을 잡아먹는 것을 대진국의 사람들이 도와주어 무사할 수

있었다.


* 맹서국孟舒國(맹조국孟鳥國, 맹희국孟戱國) : 581~582

서방의 이품異稟국으로 수마국의 남쪽에 위치한 서방의 마지막 나라

이 나라 사람들은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뚱이를 하고 있으며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았고 깃털의 색깔은 붉은색과 노란색, 푸른색의

세 가지 종류였다.

그들은 우임금을 도와 치수에 공을 세웠던 대신 백익伯益 혹은 백예栢翳의 후손들이다.

전설에 의하면 백예의 현손인 맹희孟戱 - 그도 역시 새의 몸뚱이에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았다. - 가 이곳에 와 나라를 세울 때 봉황도

그를 따라왔다고 한다.

맹조국의 산에는 대나무가 많았고 그 길이는 천 길이나 되었는데 봉황은 바로 그 대나무 숲 속에 둥지를 틀었고 또 그 열매를 먹으며

살았다. 맹희도 역시 나무 열매를 찾아 먹으며 지냈다.

이렇게 하여 후에 나라가 이루어졌는데 그 나라는 맹서국 또는 맹조국이라 불렸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맹희국이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 모민毛民(모민국毛民國) : 560(560 그림), 산해경 255(256 그림), 320

동방의 이형異形국으로 현고국의 북쪽에 위치

모민국 사람들의 몸에는 온통 화살촉처럼 단단한 털이 돋아 있었는데 체구는 작았다.

그들은 동굴 속에서 살았으며 일년 내내 옷을 입지 않았다.

- 모민지국毛民之國 : 지금 임해군臨海郡에서 동남쪽으로 2천리 되는 바다 한가운데 큰 섬에 모인毛人이 살고 있다.

그들은 체격이 왜소하고 온몸에 털이 나 있는데 마치 돼지털이나 곰 털 같고 굴속에 살며 옷을 걸치지 않고 있다.

- 성이 의씨로 기장을 먹고살며 네 종류의 짐승을 부린다.

우가 균국均國을 낳고 균국이 역채役采를 낳고 역채가 수협修鞈을 낳았는데 수협은 작인綽人을 죽였다.

천제가 그(작인)를 동정하여 몰래 나라를 만들어 주니 그것이 이 모민이다.


* 반고국盤古國 : 150~156

- 고신왕高辛王시절이었다. 황후가 갑작스레 귓병에 걸려 무려 삼 년간을 앓게 되었는데 백방으로 치료를 해보아도 별 효험이

없었다. 그러다가 귓속에서 금빛 벌레 한 마리가 튀어나왔는데, 그 모습이 꼭 누에와 같고 길이는 대략 세 치 정도였다.

그 벌레가 귓속에서 나오자마자 황후의 귓병은 금새 낫게 되었다.

황후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그 벌레를 박瓠 속에 넣고 쟁반으로 덮어두었다.

그러자 그 쟁반 속의 벌레는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리의 개로 변하였는데, 온몸이 찬란하게 오색으로 반짝거렸다.

그리고 쟁반盤과 박 속에서 나왔다고 하여 <반호盤瓠>라고 이름지어졌다.

고신왕은 이 개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늘 곁에 두고 잠시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갑자기 방왕房王이 반란을 일으키니, 고신왕이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여 <방왕의 머리를 베어 바치는 자가 있다면 공주를

그에게 주리라>하고 여러 신하들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은 방왕의 군사력이 강해 이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여겨 아무도 생명을 건 모험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왕이 그 말을 한 바로 그날, 반호가 궁전에서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그 개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하며 며칠을 계속 찾았으나 그림자도 볼 수 없어 고신왕은 몹시 이상하다고 여겼다.

반호는 그때 궁전을 떠나 곧바로 방왕의 군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방왕을 보자 머리와 꼬리를 흔들어 댔다.

방왕은 이 개를 보자 매우 흡족해 하면서 둘레의 신하들에게 <고신씨는 곧 망하리라! 그의 개까지도 내게로 투항해 오니 내가 이길

것이 뻔하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어 이 좋은 징조를 기념하였다.

그날 저녁, 몹시 흥겨웠던 방왕은 잔뜩 취해 군중의 천막 안에서 잠이 들었다.

반호는 이 기회를 틈타 맹렬하게 방왕의 머리를 물고서 바람처럼 궁전으로 돌아왔다.

고신왕은 자신의 애견이 적의 머리를 물고 궁전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는 기쁨에 넘쳐 다진 고기를 그에게 많이 먹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반호는 코를 대고 킁킁 냄새만 맡아보고는 그냥 가 버리는 것이었다.

고민스러운 듯이 방구석에서 잠만 자고 음식은 먹지 않으며 움직이지도 않았고 고신왕이 불러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렇게 이삼 일을

보냈다.

고신왕은 걱정이 되어 생각 끝에 반호에게 물었다.

「나의 개야, 왜 음식도 먹지 않고 불러도 오지 않느냐?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은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화가 난 것이란 말이냐?

그건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고, 개와 인간이 결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 말이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반호는 곧 사람의 말을 하였다.

「임금님, 걱정 마세요. 임금님께서 저를 금으로 된 종속에 넣어 주시면 일곱 낮 일곱 밤이 지나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답니다.」

고신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기이하게 여겼으나 결국은 반호를 황금으로 된 종 안에 넣어 두고 그가 어떻게 변하는가 보기로 하였다.

하루, 이틀, 사흘......날은 지나 엿새째가 되었다.

결혼을 기다리고 있던 다정다감한 공부는 그가 굶어 죽을까 봐 걱정이 되어 살그머니 황금의 종을 열어 보았다. 

그랬더니 반호의 몸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고 머리만이 여전히 개의 모습이었는데, 공주가 열어 보고 난 뒤로는 더 이상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반호는 황금 종속에서 뛰어나와 외투를 걸치고 공주는 개머리 모양의 모자를 쓰고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혼인을 하고 나서 반호는 아내를 데리고 남산南山으로 가 인적이 없는 깊은 산의 굴속에서 살았다.

공주는 화려한 옷을 벗어 던지고는 서민들의 옷을 입고 친히 일을 하여야 했는데도 원망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반호는 매일 나가 사냥을 하여 그것으로 먹고살았는데 부부는 화목하고 행복한 생활을 했다.

몇 년 후, 그들은 3남 1녀를 낳았는데 자식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만나 보게 하였다.

그리고는 자식들에게 아직 성씨가 없으니 고신왕에게 성姓을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큰아들은 태어나자마자 곧 접시에 담았으므로 성을 반盤이라 하였고, 둘째 아들은 바구니에 담았으므로 남藍이라 했다.

셋째 아들에게는 무슨 성이 내리는 것이 좋을까 하고 있는데 마침 하늘에서 우릉우릉 하는 천둥소리가 들려 와 성을 뇌雷라고 지었다. 

딸은 자라서 어른이 되어 용감한 병사를 남편으로 삼으니, 남편의 성을 따라 종鐘이라 하게 되었다.

남, 뇌, 반, 종의 네 성씨는 이후 서로 결혼하며 자손이 번성하여 국족國族이 되니 모두들 반호를 그들 공동의 조상으로 모셨다.

-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반고를 성으로 삼았다.


* 여자국女子國 : 579, 산해경 239

서방의 이품異稟국으로 옥민국의 남쪽, 무함국의 북쪽에 위치

여자국에는 여자만 있을 뿐 남자는 없었다. 소녀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황지黃地에 가서 목욕을 했고 그러면 바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삼 년 안에 모두 죽어 버렸고 여자아이들만이 자라 어른이 되었다.

- 여자국의 무함의 북쪽에 있는데 두 여인이 함께 살며 물이 그곳을 에워싸고 있다. 혹은 한 집안에 거처한다고도 한다.

「삼국지三國志」 <옥저沃沮의 노인이 말했다. ‘어떤 나라가 바다 한가운데에 잇는데 온통 여자뿐이고 남자는 없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누군가 얘기하는데 그 나라에는 신령스러운 우물이 있어 들여다보기만 하면

애를 낳는다고 한다>

수水 : 황지黃地라는 못이 있는데 부인들이 들어가 곧 임신이 하였다.

만약 남자를 낳을 경우 세 살만 되면 죽었다.


* 용백국龍伯國 : 249~250, 545

용백국은 본래 1만 8천 세까지 장수한 거인의 나라로 곤륜산 북쪽 몇만 리나 되는 알 수 없는 곳에 있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용의 종족이기 때문에 <용백>이라고 했다.

그곳에 살고 있던 거인이 할 일이 없어 심심하고 답답해하다가, 낚싯대를 둘러메고 동쪽 바다 밖 넓은 곳으로 낚시질을 하러 갔다.

그는 바다에 두 발을 내딛고 몇 발짝 걷지도 않아서 곧 귀허의 신산이 있는 곳에 도착했고, 다시 몇 발짝 더 걸어 다섯 개의 신산을

바퀴 돌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낚싯대를 던지니, 오랫동안 음식물을 먹지 못한 굶주린 거북이(다섯 개 신산의 뿌리를 받치고 있던 열 다섯 마리

중) 여섯 마리가 줄줄이 걸려 올라왔다.

그는 어찌된 연유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 거북이들을 등에 지고는 집을 향해 달려갔다.

얼른 집에 가서 거북이 등 껍질로 점을 쳐 볼 생각을 하며. 용백국 거인의 낚시질 때문에 대여와 원교, 두 신산은 애석하게도 북극으로

떠내려가 넓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버렸다.

많은 신선들이 급히 이사하느라 상자며 이불들을 들고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한바탕 땀을 흘려야 했다.

천제는 이 일을 알고서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래서 그의 위대한 신력神力으로 용백국의 땅을 아주 작게 줄여 버리고 용백국 사람들의 몸도 있는 대로 작게 해서 그들이 다시는

여기저기서 말썽을 부리지 못하게 하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 나라 사람들의 키는 작아질 대로 작아졌는데, 그래도 인간들이 보기에 그들의 키는 아직 수십 길이나 되었다.


유리留利(유리국柔利國) : 565(565 그림), 산해경 244(245 그림)

서방의 이형異形국으로 심목국의 서쪽, 일목국의 동쪽에 위치.

<유리>는 <우려牛黎> 또는 <유리留利> 라고 하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뼈가 없었다.

또 손발이 모두 하나씩밖에 없는 데다가 그것마저 뼈가 없어 모두 위쪽을 향해 부드럽게 구부러져 있었다.

그들은 섭이국聶耳國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귀국鬼國(일목국一目國) : 566, 산해경 244(244 그림), 272

서방의 이형異形국으로 유리국의 서쪽에 위치

이 나라 사람들은 눈이 하나뿐이었는데 얼굴의 한복판에 눈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위威라는 성을 갖고 있었는데 소호小昊의 후손들이었다고 한다.

생김새가 고약한 데다가 성도 위威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나라를 귀국鬼國이라고 잘못 부르곤 했다.

그러나 사실 이 귀국 근처에는 온갖 요괴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고 한다.


* 환두국讙頭國(환주국讙住國) : 571(572 그림), 산해경 229(229 그림)

남방의 이품異稟국으로 우민국과 난민국의 동남쪽, 염화국의 북쪽에 위치

이 나라 사람들은 입이 새의 부리와 같았고 등에는 날개가 달린 것이 우민국(570 그림) 사람들과 흡사했다.

그러나 그들의 날개로는 날 수가 없었고 그것은 다만 지팡이 대신으로만 쓰였다.

그들은 그런 날개에 의지하여 절룩거리며 무리를 지어 바닷가로 가서 새처럼 뾰족하게 생긴 입으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환두는 원래 요임금의 신하였다고 하는데 죄를 지어 남해南海에 뛰어 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요임금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그의 아들을 남해로 보내어 제사를 지내 주게 했다.

그 이후 그의 자손들은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해야 했던 까닭으로 입 모양까지도 새의 부리처럼 변해 갔던 것 같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환두는 본래 대신 곤鯀의 손자라고 하는데 무슨 연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남해로 가서 새로운 국가를

이루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곤이 천제의 노여움을 사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사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물고기 이외에도 몇 가지 곡식을 주식으로 먹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기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신 곤이 죽어서 누런 곰으로 변한 뒤 서방으로 갈 때 백성들에게 기르라고 권했던 그 곡식이 바로 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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