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중국신화-주석정리

중국신화-주석정리4 <펌>

설레임의 하루 2009. 3. 22. 05:02

중국신화-주석정리4

출처:이우혁 홈피에서

 

 

 

*태봉泰封 

* 태봉泰封 : 234~236(235 그림), 617, 산해경 168(그림 168)
- 동양부산東陽 山(화산和山에)의 주신主神인 길신吉神

- 사람처럼 생겨 별달리 이상한 점은 없었으나 몸의 뒤쪽에 호랑이 꼬리가 달려 있었다. 

- 혹은 참새 꼬리라고도 하는데, 생각하기에는 새의 꼬리가 더 그에게 어울릴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본래의 착한 그의 모습에 조금은 익살스런 맛을 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통력은 하늘과 땅을 감동시켜 구름과 비를 마음대로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춘추시대에 진나라의 평공平公이 저명한 음악가인 사광師曠과 함께 마차를 타고 회수澮水로 놀러 가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8백 필의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수레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어떤 사람이 뛰어내려 

진 평공의 마차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평공의 뒤를 돌아다보니 그의 모습이 좀 이상하게 보였다. 어째서 들고양이의 몸에 여우의 꼬리가 달려 있는 것일까? 

마음속으로 좀 두려워하며 사광에게 저것이 도대체 무슨 괴물이냐고 물었다. 

그를 본 사광이 대답했다.

「저 사람의 모습을 보니 아마 수양산의 산신인 길신 태봉인 것 같습니다. 

얼굴이 벌건 것을 보니 곽태산藿太山 산신이 사는 곳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것 같군요. 

지금 회수에서 그를 만나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공 公께 곧 좋은 일이 닥칠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길신 태봉이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 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줄곧 좋은 것이었다. 태봉은 화산 부근의 부산 山 남쪽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가 그 산을 

드나들 때마다 몸 둘레에 늘 눈부신 빛이 따랐다고 한다. 

- 화산을 맡고 있는 선신善神으로 형상은 사람 같으나 호랑이의 꼬리가 있다. 부산의 남쪽에 즐겨 거처하고 있으며 드나들 때마다 

광채를 발한다. 그리고 천지의 기운을 움직인다.

- 하왕조의 공갑孔甲은 어리석고 노는 것과 사냥을 좋아했는데 어느날 시종과 호위병을 잔뜩 이끌고서 마을 타고 수레를 몰며 사냥와 

매들을 데리고 동양부산으로 사냥을 하러 갔다. 태봉은 어리석은 왕 공갑이 그곳에 와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무척 싫었다. 

그래서 폭풍을 일으켜서 돌과 모래를 흩날리게 하여 천지가 온통 어둠에 휩싸이게 하니, 공갑과 그의 무리들은 폭풍 속에서 길을 잃고 

흩어져 버리게 되었다.

 

*태산산신녀泰山山神女

* 태산산신녀泰山山神女 : 676~677

문왕은 처음에 태공太公을 관단灌壇이라고 하는 작은 지방에 보내어 그곳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아보게 하였다. 

일년이 지나자 그는 그곳을 잘 다스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만들었다. 

또한 그의 다스림이 바람에까지 미쳤는지 나뭇가지를 흔들어 댈 만한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문왕은 꿈속에서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태산泰山 산신의 딸입니다. 동해의 해신에게 시집을 갔는데 지금 친정으로 가는 길이지요. 

그런데 그만 관단 지방의 현령 때문에 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본래 제가 지나가려면 폭풍우가 반드시 저를 따르게 되어 있답니다. 

만일 제가 그곳을 지남으로 해서 폭풍우가 몰아치게 된다면 그 현령의 좋은 평판에 금이 가게 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가 천제의 징벌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또한 폭풍우 없이는 제가 지나갈 도리가 업으니 진퇴양난이지요.」

문왕은 꿈에서 깨어나 참으로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고는 태공을 불러다 그 까닭을 물었다. 

태공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난처해하고 있을 때 마침 문왕에게 달려와 보고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의 보고는 이러했다. 

「아주 센바람과 큰비가 지금 막 태공께서 관할하는 지방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문왕은 그때서야 그 꿈의 의미를 깨닫고 태공에게 대사마大司馬의 직책을 맡겼다.

 

*태호(太 , 太昊 / 포희包羲, 包犧,  犧 / 복희伏羲) 

*태호(太 , 太昊 / 포희包羲, 包犧,  犧 / 복희伏羲) : 54, 159~181(뇌공 참조), 514,  

- <태호 복희씨는 성이 풍이며 뱀의 몸,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복희씨의 씨족 토템은 뱀이었던 것 같다.

- 인류에 대한 복희의 공헌은 지대하다. 역사서 에서는 복희가 팔괘를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건乾은 하늘을 대표하고, 곤坤은 땅을 대표하며, 감坎은 물을, 이離는 불을, 간艮은 산을, 진震은 천둥, 손巽은 바람, 태兌는 늪을 

나타낸다. 팔괘의 이 부호들은 세상 만물의 여러 가지 상황을 포괄한다. 

인류는 이것들을 가지고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기록할 수 있었다. 

또 복희는 노끈을 짜서 그물을 만들어 고기 잡는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그의 신하 망씨芒氏도 복희의 방법에 따라 새 잡는 그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새 잡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러한 발명들은 인류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인류에 대한 복희의 가장 큰 공헌은 아마도 불씨를 인류에게 가져다 준 일일 것이다. 

불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동물의 익은 고기를 먹게 되어 위장병이나 배탈이 나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불을 발견해 낸 사람에 대해서 사서史書에는 수인씨燧人氏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기록에는 복희로 되어 있기도 하고 

황제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최초로 불을 취해 온 사람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정설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복희가 <포희 犧> 혹은 <포희 犧>라고 불렸는데, 그 뜻은 <희생물들을 부엌에 채운다> 또는 <날고기를 익힌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불이 있어야만 했을 것이니, <포희 犧:동물의 고기를 굽는다는 뜻>의 발명은 곧 불의 발견을 뜻하는 것이다. 

수인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킨 것도 그 목적이 바로 <포희 犧>에 있었다. 

신화 속에서 복희는 뇌신의 아들이며 또한 봄을 다스리는  동방이 상제였으니, 수목의 생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번개가 나무에 떨어진다면 어떤 광경이 벌어질까? 말할 것도 없이 타오르기 시작해 작렬하는 큰불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직책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본다면 아주 간단하게 <불>이라는 개념을 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불의 발견은 수인보다는 복희에게 돌리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물론 복희가 일으킨 불은 뇌우가 지난 뒤 숲에서 타오르는 

천연적이 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수인이 나타나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켰는데, 이 불은 삼림에서 발생했던 자연적인 불 이후에 발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화서씨의 나라에 이름은 없고 그저 <화서씨>라고 만 불리는 소녀가 있었다. 

하루는 그녀가 동쪽에 있는, 나무가 우거지고 경치가 아름다운 <뇌택雷澤>이라는 호숫가에 가서 놀고 있었다. 

그녀는 우연히 뇌택 가에 찍혀 있는 한 거인의 발자국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소녀는 자신의 발로 거인의 

발자국을 밟아 보았는데, 밟자마자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곧 임신을 해서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으니, 그가 곧 <복희>였다.

그러면 호숫가에 찍혀 있던 발자국의 임자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고서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 뇌택의 주신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뇌신으로, 사람의 머리에 용의 몸뚱이를 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천신이다. 

이 발자국이 뇌신이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이겠는가. 

전설에 의하면 복희는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가졌다거나 <용이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복희와 

뇌신의 혈통 관계를 짐작할 수 있으니, 복희는 뇌신의 아들임에 틀림이 없다.

만일 복희가 천신과 인간 낙원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면 복희 역시 충분한 신성 神性을 지녔을 것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하늘사다리를 따라 마음대로 하늘을 오르내렸다는 사실은 그의 신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 우가 용문산龍門山을 뚫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우연히 그는 커다란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동굴은 몹시도 깊어서 들어갈수록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한 치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져 우는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안쪽에서 빛을 발하는 무엇인가가 나타났고, 빛을 뿜는 그 물건은 동굴 속을 온통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크고 검은 뱀이었다. 열 길이나 되는 긴 뱀의 머리에는 뿔이 돋아 있었으며 입에는 야광주를 물고 앞에서 우의 

길을 밝혀 주고 있었다. 우는 횃불을 버리고 그 뱀을 따라갔다. 

한참을 가니 마침내 밝은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은 아마도 전당殿堂인 것 같았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뱀의 몸뚱이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신을 둘러싸고 모여 있었다. 

우가 그 신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대충 짚이는 것이 있어 물었다.

「그대는 화서씨華胥氏의 아들 복희伏羲가 아닌가?」
「그렇소」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뚱이를 하고 있는 신이 대답했다.
「내가 바로 구하신녀九河神女인 화서씨의 아들 복희요!」

그들이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가 무척이나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복희는 어렸을 때 홍수 때문에 혼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치수의 위대한 작업을 하고 있는 우에 대하여 평소부터 존경심을 품어 오고 있던 터라 자신의 힘을 다해 조금이라도 우를 돕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품속에서 옥간玉簡을 꺼내어 우에게 주었다.

그것은 대나무 조각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길이가 한 자 두 치쯤 되었으며 그것으로 천지를 측량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후에 우는 그것을 몸에 지니고서 과연 홍수를 다스릴 수 있었다.

 

*토백土伯 

* 토백土伯 : 315, 542

- 유도의 성문을 지키는 유명한 거인으로 호랑이의 머리에 세 개의 눈이 이마에 달려 있었으며 소처럼 생겼고 아홉 번 구부러지는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었다. 

그는 또 날카롭게 빛나는 한 쌍의 뿔을 흔들며 피로 물든 살찐 손가락을 펼치고는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유도의 

불쌍한 귀신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 머리에는 뾰족한 뿔 한 쌍이 달려 있고 몸은 아홉 굽이로 구불구불했으며 피투성이인 큰  손을 벌리고서 유도의 검은 귀신들을 쫓아다녔다.

 

*팔공八公

* 팔공八公 : 362

한澣나라 때 회남왕 유안劉安에게 학문을 가르쳐 준 수염과 눈썹이 하얀 여덟 명의 이상한 노인들

 

*팔신八神

*팔신八神 : 387
제곡에게는 왕비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추도씨鄒屠氏의 딸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 태양을 삼키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태양을 한 번 삼키는 꿈을 꿀 때마다 아들을 하나씩 낳았다. 

그래서 이런 꿈을 여덟 번 꾸고 나니 아들이 여덟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팔신八神>이라 불렀다.

 

*풍이馮夷(하백河伯, 빙이氷夷)

* 풍이馮夷(하백河伯, 빙이氷夷) : 513, 461~470, 산해경 275~276(그림 276)
- 해경海經에 기록된 물의 신으로 깊이가 300길인 종극연에서 항상 살고 있다.
사람의 얼굴에 두 마리의 용을 타고 있다.

- 우가 치수를 시작한 뒤 황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가 높은 절벽 위에 서서 물길을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키가 크고 얼굴이 희며 물고기의 몸뚱이를 한 자가 넘실거리는 물결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스스로를 물의 정령이라 하였는데, 그가 바로 하백河伯이었다. 

그는 우에게 물이 뚝뚝 흐른 커다랗고 푸른 돌덩이(하도河圖)를 건네주고는 몸을 돌려 물 속으로 사라졌다. 

우가 그 푸른 돌을 자세히 보니 그 위에는 저절로 생겨난 듯한 구불구불한 곡선 모양의 무늬가 있었다. 

총명한 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볼 필요도 없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즉시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치수의 지도였던 것이다.

- 하백은 빙이氷夷 혹은 풍이馮夷라고도 하였다. 어떤 전설에서는 그가 강을 건너가다 물에 빠져 죽어  수신이 되었다고 하고, 또는 

그가 약을 먹고 물을 만나 신선이 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백은 풍류를 알고 흰 얼굴에 큰 키를 지닌 멋진 미남이었다. 그러나 그가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에는 북해의 능어陵魚처럼 

하반신이 물고기의 형태였다. 

그는 늘 연잎으로 뚜껑을 씌운 수레를 타고 나타났는데 용 같은 종류의 동물이 수레를 끌었다. 

후세의 민간전설에 그가 해마다 신부를 새로 맞아 들여 놀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하백의 방탕했던 생활로 미루어 보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 이익을 취하고 또 약한 자에게 강하며 강한 자에게는 약한 비열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 강의 왕인 하백은 그 수하에 수많은 관원들과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새우나 게와 같은 보통 부하들은 치지 않더라도 그중에는 꽤 특별한 부하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하백사자河伯使者>라고 부른 

저파룡과 <하백종사河伯從事>인 자라, 그리고 하백의 <도사소리度事小吏>였던 오징어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아마 하백의 친위대였던 것 같다. 

그들은 늘 물위를 드나들며 순찰을 하였고, 또 거기서 듣고 온 소식들을 하백에게 알려주었는데 정치나 애정 문제에 관한 소식들이 

모두 그들의 보고 범위에 들어 있었다. 하백의 사자는 물위로 나올 때 그 모습이 더 대단했다.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던 그는 붉은 갈기가 달린 백마를 타고서 흰옷을 입었으며 검은 모자를 쓴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는데, 그 뒤에는 

열두 명의 어린아이들이 따라왔다. 그 아이들도 말을 타고서 질풍처럼 물위를 내달렸다. 

어떤 때는 강기슭에까지 올라왔는데 그들이 탄 말이 달려가는 곳까지 물이 차 올랐으며 그들이 가는 곳에는 졸지에 큰비가 쏟아져 

내리곤 했다. 

그러다가 황혼 무렵이 되면 나와서 순시를 하던 하백 사자가 다시 작은 물고기나 새우들이 변한 어린이들을 데리고 강으로  돌아왔다. 

물나라 하백 부하들의 이런 부지런함은 예와 복지의 애정에 대해 무척이나 불리한 것이었다. 

하백은 화를 억누를 수 없는 그런 보고를 듣고서 격노하여 친히 물위로 나가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던 대신大神 예의 용맹스러움이 두려워 직접 나가지는 못하고 그저 흰 용으로 변하여 강 위를 헤엄치고 

있었다. 

이렇게 용으로 변하여 물위로 나오 몰래 살펴보려는 그의 의도는 별 것이 아니었으나 그의 그런 행동은 엄청난 홍수를 일으키게 되었다. 

강물이 양쪽 기슭에까지 넘쳐흘러 무고한 백성들이 숱하게 빠져 죽었던 것이다. 

결국 하백의 그런 모습이 예의 눈에 띄게 되었다. 수신이 응당히 지녀야 할 품격을 저버린 하백의 저질스런 행동에 대해서 예는 몹시도 화가 났다. 

그래서 그를 혼내 주려고 흰 용으로 변한 하백을 향해 활을 쏘았는데 그 화살은 하백의 왼쪽 눈에 바로 맞았다. 

<뜻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 와야 했던> 하백은 엉엉 울며 하나 남은 눈 하나를 크게 뜨고 천제를 찾아가 하소연했다.

「천제여, 예란 놈이 사람을 너무 못살게 굽니다. 그놈을 좀 죽여주십시오.」
「왜 예가 너의 눈을 쏘았느냐?」
천제가 물었다.
「저요, 저는......」
하백이 우물거렸다.
「저는 그때 흰 용으로 변해 강 위로 나가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신통력을 지닌 천제는 사건의 발생과 진행 과정에 대해 일찌감치 다 알고 있었다. 

천제는 행실을 바로 하지 못했던 이 수신에게 사실 별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루한 듯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여러 말할 것 없다. 물의 신이면 물 속에나 가만히 있을 것이지, 누가 너보고 용으로 변하라고 했더냐? 

용은 물 속에 사는 동물이니 사람들이 쏘는 게 당연하지. 예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어 하백은 그의 아내와 한바탕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복비는 자기 때문에 눈 하나를 잃게 된 남편에게 좀 미안해했던 것 같다. 

비록 예를 사랑하긴 했지만 두 집안의 평안함을 위하여 예와의 만남을 끝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애정이 비극적인 파국을 맞아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초사』의 「천문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천제가 예를 인간 세계로 보낸 것은 백성들의 고통을 없애 주기 위함인데,왜 전설에서는 그가 하백을 죽이고 낙빈을 아내로 맞았다 

 하는가?>
즉 예가 낙빈을 차지하고 아내로 삼았다는 전설은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하므로 시인 굴원도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풍후風后  

* 풍후風后 : 풍후1.HWP 참조
지남차指南車라는 수레를 발명

 

*필방조畢方鳥  

* 필방조畢方鳥 : 296
학처럼 생겼고 사람의 얼굴에 하얀 부리를 하고 있다. 

푸른색의 몸에 붉은 무늬가 있었으며 발은 단 한 개였는데, 우는소리가 <삐황, 삐황!>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새가 나타나는 곳에는 늘 괴이한 화재가 발생하곤 했다.

 

*헌원국軒轅國  

* 헌원국軒轅國 : 343, 547(그림), 산해경 239, 310
염제가 태어난 상양산의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황제의 자손들이 모여 사는 장소로 궁산窮山의 끝에 위치.

헌원국 사람들은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에 꼬리가 머리를 휘감고 있으며 모두가 장수하였고 단명하여 죽는 사람도 8백 년은 살았다.

헌원국의 근처에는 <헌원의 언덕>이라고 하는 구릉이 있었는데 네 마리의 뱀이 그곳에 또아리를 틀고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서방에 황제黃帝의 위령이 있는 <헌원의 언덕>이 있었기 때문에 활을 쏘는 사람들을 누구도 감히 서쪽을 향해 쏘지를 못했다

 

* 현녀玄女 : 319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한 부인.

그녀는 득도得道한 하늘나라의 여선인女仙人인데 과보족이 합세한 치우 군대를 맞아 고전하던 황제를 찾아와서는 병법을 가르쳐 

주었다. 

황제가 현녀의 병법을 전수 받아 군대를 움직여 진을 치자 실로 그 변화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과보1.HWP 참조)

 

* 현명玄冥(우강 强)

 * 현명玄冥(우강 强): 209~210, 240, 289, 681~683, 247~249, 산해경 250
- 북방 천제 전욱의 속신으로 바다의 신(海神)이자 바람의 신(風神)이며 손에는 저울추를 들고 겨울을 관장한다. 연배로 치자면 

 전욱의 아버지뻘(천제의 친손자)이 되는 우강은 능력이 뛰어난 조카 밑에서 충직하게 일하며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전욱과 우강은 북방의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1만 2천 리의 차가운 들판을 함께 다스렸다.
- 주무왕周武王이 즉위한 지 얼마 안되어 군사를 일으켜 주紂를 치러 가는데 합세하여 은나라를 멸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 바람의 신으로 나타날 때는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있으며, 귀에는 두 마리 푸른 뱀을 걸고 

다리로는 두 마리의 푸른 뱀을 밟고 있는 위풍당당한 천신으로 나타난다. 

그는 거대한 두 날개를 퍼덕여 매우 강한 바람을 일으키는데, 그 바람에는 많은 역병의 균이 실려 있어서 사람들이 그 바람을 맞으면 

병이 나서 죽었다고 한다.

- 바다의 신으로 나타나 때는 모습이 무척이나 선량하다. 

능어처럼 물고기의 몸을 하고 있고 손발이 달려 있으며 두 마리의 용을 타고 다닌다. 물고기의 몸을 하고 있는 까닭은 본래 그가 북쪽 

넓은 바다에 사는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고래, <곤鯤>이었기 때문이다. 

곤이 몸을 한번 뒤척이기만 하면 <붕鵬>이라고 하는 큰 새로 변했다고 한다. 

그 새는 아주 사납고 큰 봉새鳳로 등 넓이만 해도 몇천 리에 달하는 거대한 새였다. 

그 새가 노하여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그 검은 두개의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워져 있는 먹구름과도 같았다고 한다.

 해마다 겨울이 되어 바다의 물길이 움직일 때, 그도 북해에서 남해로 날아간다. 

그때 그는 물고기에서 새로, 즉 바다의 신에서 바람의 신으로 변한다. 

휙휙 불어와 들판을 스쳐 지나는, 뼈에 스며드는 그 차가운 북풍은 바로 큰 새로 변한 바다의 신 우강이 불어 제끼는 바람인 것이다. 

한번의 날갯짓에 3천리에 걸친 파도가 일어나고, 폭풍을 따라 구름 속 9만리까지 치솟아 반년을 날아 목적지인 남해에 이르면 

그때서야 내려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형천型天

* 형천型天 : 341~344, 형천1.HWP 참조, 산해경 237(237 그림)

- 형천이 천제와 신의 지위를 다투었는데 천제가 그의 머리를 잘라 상양산에 묻자 곧 젓으로 눈을 삼고 배꼽으로 입을 삼아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추었다

 

*혼돈(混沌, 混敦, 渾敦 / 제강帝江)

* 혼돈(混沌, 混敦, 渾敦 / 제강帝江) : 142~144 (143 제강 그림), 산해경 98
- 신화와 비슷한 것으로 우언寓言이라는 것이 있는데, 「천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나온 「장자障子」에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해의 천제天帝는 숙 이라 하고, 북해의 천제는 홀忽이라 하며, 중앙의 천제는 혼돈混沌이라 한다. 

숙과 홀은 자주 혼돈에게 놀러 갔는데, 혼돈이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 매우 은근하고도 치밀하였다. 

어느 날 숙과 홀이 어떻게 하면 혼돈의 은덕에 보답할 수 있을까 하고 의논하기를,

「사람은 모두 다 눈.코.귀.입 등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음식을 먹고 하는데, 혼돈에게는 구멍이 하나도 없으니 뭔가 

부족함이 있지. 우리가 가서 그를 위해 구멍을 몇 개 뚫어 주는 것이 어떨까」라고 말하였다. 

 중국 고대신화에서 혼돈은 분명히 천신天神의 이름이다.

 『산해경』 「서차삼경西次三經」에 이르기를, 서쪽의 천산天山에 신령스런 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꼭 누런 헝겊 주머니 같고, 한 덩어리 불꽃 송이처럼 붉은데 다리가 여섯 개요, 날개가 네 개이고 눈.코.귀.입이 모두 

없었다. 그러나 음악과 춤을 알았으며 이름을 제강帝江이라 하였다. 

제강은 곧 제홍帝鴻이며 또 중앙 상제上帝인 황제黃帝인데, 「장자」의 우언에서는 직접 그를 중앙의 천제라 하였던 것이다. 

혼돈이 황제의 아들이라고 하는 설도 있으나, 이는 아마 후대의 전설일 것이다.

혼돈이 천제이건 천제의 아들이건 간에, 자연으로 돌아가 무위로써 다스리는 것을 추구하는 도가道家들 말고는 아무도 이 흐리멍덩한 

혼돈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후세의 전설에서 혼돈은 추악하게 묘사되곤 한다.

「신이경神異經」에서 혼돈은 개와도 비슷하고 곰과 사람을 합친 형상과도 흡사한 야수로 나타나는데,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눈뜬장님>이기 때문에 스스로로 길을 걷는 것은 몹시 힘들어했지만 다른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은 잘 알았다. 

또 덕행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거칠게 대했지만, 제멋대로 하는 악한을 만나면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꼬리를 흔들며 그에게 기대려 

들었다. 

이런 비열한 성질은 실로 천성적인 것으로 보통 때 별일이 없으면 이놈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다가 하늘을 보고 껄껄 크게 

웃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들을 보면 어둠과 거의 동의어라 할 수 있는 혼돈에 대해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지개벽에 관한 정식 신화는 한나라 초기의 「회남자淮南子」에 나타난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얘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아직 천지가 생겨나지 않았을 때, 세계의 모습은 그저 어두운 혼돈 뿐으로 어떠한 형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혼돈 속에서 서서히 두 명의 대신大神이 나타났는데, 하나는 음신陰神이요.

 다른 하나는 양신陽神으로, 둘은 혼돈 속에서 열심히 천지를 만들어 갔다. 

후에 음양이 갈라지고 팔방八方의 위치가 정해져, 양신은 하늘을 관장하고 음신은 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이렇게 하여 이 세계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화서씨국華胥氏國 

* 화서씨국華胥氏國 : 170

중국 서북쪽 수천만 리 되는 곳에 <화서씨華胥氏의 나라>라고 하는, 극락이라 부를 만한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어찌나 멀리 있는지, 걸어서든 혹은 차나 배를 타고서도 결코 갈 수가 없는 곳이고 다만  <마음으로만 갈 수 있는> 

나라였다. 

그곳에는 정부나 지도자가 없고, 일반 백성들도 욕망이나 욕심이  없이 모든 것을 자연에 따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수명이 길었고 모두 

아름답고도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물 속에 들어가도 빠질 염려가 업었고, 불 속에 들어가도 타 버리지 않았다.  또 공중에서도 땅을 딛은 듯이 걸을 수 있었으며, 구름과 안개도 그들의 시선을 가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천둥소리까지도 그들이 다른 것을 듣는 것을 방해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니 이 나라 백성들은 실로 인간과 신의 중간쯤 되는 사람들로 땅위의 신선들이라 할 만했다

 

*화적貨狄  

* 화적貨狄 : 349
황제의 신하로 공고共故와 함께 배를 만들었다.

 

*환두국 頭國(환주국 住國)

* 환두국 頭國(환주국 住國) : 571(572 그림), 산해경 229(229 그림)
남방의 이품異稟국으로 우민국과 난민국의 동남쪽, 염화국의 북쪽에 위치

이 나라 사람들은 입이 새의 부리와 같았고 등에는 날개가 달린 것이 우민국(570 그림) 사람들과 흡사했다. 

그러나 그들의 날개로는 날 수가 없었고 그것은 다만 지팡이 대신으로만 쓰였다. 

그들은 그런 날개에 의지하여 절룩거리며 무리를 지어 바닷가로 가서 새처럼 뾰족하게 생긴 입으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환두는 원래 요임금의 신하였다고 하는데 죄를 지어 남해南海에 뛰어 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요임금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그의 아들을 남해로 보내어 제사를 지내 주게 했다. 

그 이후 그의 자손들은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해야 했던 까닭으로 입 모양까지도 새의 부리처럼 변해 갔던 것 같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환두는 본래 대신 곤 의 손자라고 하는데 무슨 연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남해로 가서 새로운 국가를 이루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곤이 천제의 노여움을 사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사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물고기 이외에도 몇 가지 곡식을 주식으로 먹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기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신 곤이 죽어서 누런 곰으로 변한 뒤 서방으로 갈 때 백성들에게 기르라고 권했던 그 곡식이 바로 기장이었다

 

*황마黃魔 

* 황마黃魔 : 272
운화부인의 신하로 우임금이 치수를 도와주었다.

 

*황제(皇帝, 黃帝)

*황제(皇帝, 黃帝) : 황제1.HWP 참조 * 헌원軒轅(황제黃帝) : 348, 
- 황제가 수레를 만들어서 헌원씨軒轅氏라고 불린다.
- 유웅씨有熊氏라고 불린 것으로 보아 곰의 토템으로 보인다. 
또 <황제가 판천의 들판에서 염제와 싸울 때 곰熊.비 .이리.표범.추 .호랑이虎 등을 앞세웠고, 수리.할.매.솔개 등이 깃발을 들었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부족 연맹의 우두머리이던 황제가 새와 짐승들의 이름으로 명명된 씨족 집단을 이끌고 판천에서 염제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으로 보인다

 

*후예后 

* 후예后  : 608~616

유궁국의 국왕인 후예는 원래 평범한 농민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활쏘기를 좋아하는 데다가 사람들을 위해 많은 재앙을 물리쳐

주었던 천신 예 를 흠모하여 스스로를 <예>라고 불렀다. 

나중에 그가 국왕이 되자 사람들이 그를 <후예>라고 높여 부르게 된 것이다. <후后>는 왕이라는 뜻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활쏘기의 천재였다.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어느 날 그는 산에 약초를 캐러 가는 아빠, 엄마를 따라가게 되었다. 

 때는 마침 엶이어서 온 산이 매미 울음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한나절을 걷다가 어느 커다란 나무 밑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는 너무나 피곤해서 움직일 수가 없어 그곳에서 잠을 자고 싶어했다. 

이때 그 산에서 오직 그 나무에만 매미가 있어 <찌르르 찌르르> 울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아이를 그 나무 밑에서 자도록 하게 하자고 결정을 했다. 

나중에 돌아올 때 매미가 우는 큰 나무를 찾아오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부부는 약초를 캐러 길을 떠났다.

저녁이 되었다. 약초를 다 캔 부부는 아들을 찾아 돌아왔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온 산에 가득 들리는 매미 울음소리, 모든 나무에 

 매미가 숨어 있는 듯 여기저기서 <찌르르 찌르르>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매미가 울고 있는 나무를 찾으면 되리라는 생각은 이미 쓸데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둠이 점점 짙어져 갔다. 부부는 아이를 찾지 못한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부터 부부는 몇 차례나 산으로 아이를 찾으러 갔지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러면 후예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무 밑에서 자다가 깨어 보니 온 산에 매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무섭다는 생각이 조금도 안 들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재미있게 놀았다. 

이곳 저곳으로 마음대로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그는 문득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길모퉁이 바위 위에 웅크리고 앉아 소리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초호보楚狐父라고 하는 산 속의 사냥꾼이 지나가다가 그를 보았다. 

울고 잇는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아이에게 물었다.

「꼬마야, 너 어디에 사니?」
「네 이름이 뭐니?」
「왜 여기서 혼자 울고 있니?」
그러나 아이는 머리만 가로 저을 뿐 아무 것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 아이가 그러나 어딘가 기개가 있어 보여 초호보는 그를 자신의 아들로 삼기로 했다.
초호보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다. 후예는 커 가면서 양아버지에게 활 쏘는 법을 배웠다. 어떤 때는

양아버지보다 더 나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활을 많이 쏘아서 그런 것인지 그의 왼쪽 팔은 오른쪽보다 

길었다. 

그래서 활을 잡아당기면 활이 훨씬 더 둥글게 굽어 튀어 나가는 화살이 힘이 있었다.

후예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양아버지가 병이 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원대한 뜻을 가슴속에 품고 있던 후예에게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생활은 너무나 적막하고 외로운 것이었다. 

그는 친부모에게 가고 싶었지만 자신의 집이 어디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산의 절벽 위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긴 채 축원을 했다.
앞으로 내가 만일 이 활을 가지고 세상의 사악한 것들을 없애고 천하를 평정하게 될 것이라면 내가  손 이 화살이 나의 집 문 앞에 

떨어지게 되기를!」
축원을 마치고 그는 활을 쏘았다. 정말 기이하게도 화살이 땅위에 떨어지더니 뱀처럼 구불거리며 땅위를 달려가는 것이었다. 

풀숲을 지나고 나무 사이를 헤치며 화살은 땅위에 구불거리는 줄을 그으면서  산을 벗어났다.
후예는 마음속으로 신기해하면서 화살의 자취를 따라갔다. 산을 떠나 수십 리를 갔을 때였다. 

길가에 다 쓰러져 가는 초가 한 채가 보였는데 자신이 쏜 화살이 바로 그 집의 문지방에 꽂혀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집엔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도처에 깨진 기왓조각이 깔려 있었고 거미줄투성이였으며 부엌의 부뚜막에도 깨진 사발 몇 개가 놓여 있을 뿐이었고 한쪽 구석엔 

다리가 부러진 침대가 눈의 띄었다. 그는 이웃집으로 가 그 집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 집은 원래 산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노부부가 살던 집인데 그 부부는 삼 년 전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나 버렸다는 대답이었다. 

후예는 그곳이 바로 자기가 찾던 자신의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슬픔에 겨워하며 집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활 쏘는 데는 고수였던 후예였지만 농사짓는 일에는 문외한이라 고향에서의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늘 죽에다가 시래기국으로 연명을 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그는 죽 한 그릇이라도 꼭 부뚜막에 올려놓고서 세상을 떠난 부모님께 자신의 효심을 보이고 싶어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자니 후예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활을 짊어지고 고향을 떠나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떠돌아다니던 길에 그는 역시 활쏘기의 명인이었던 오하吳賀라는 청년을 만났다. 

 두 젊은이는 만나자마자 서로를 알아보며 의기투합하였다. 

뿐만 아니라 후예는 오하를 스승으로 삼아 그로부터 활 쏘는  법을 더 배웠다.

「저 참새를 쏘아 봐!「
「산채로? 아니면 죽일까?」
후예가 물었다.
「쏘아 봐!」
오하가 말했다.
「참새의 왼쪽 눈을 맞춰 보라고!」
후예가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아 참새를 명중시켰다. 참새를 맞춘 화살이 땅에 떨어졌고 두 사람은 달려가 참새를 주워들었다. 

 과연 참새의 눈에 화살이 박혀 있었는데 아쉽게도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었다.
「그런 대로 괜찮은 솜씨야!」
오하가 후예를 격려하며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후예는 부끄러움으로 귓부리까지 붉게 물들어 하늘을 바라다보며 한나절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는 더욱 더 힘을 기울여 활 쏘는 연습을 하였으며 드디어는 백발백중, 한발도 헛되이 쏘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 후 자신의 활과 화살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모든 것들을 제거해 나가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존경해 얼마 되지 않아서 마침내 

유궁국의 국왕이 되었다.
당시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그의 명령을 들었는데 오직 백봉伯封이라는 자만이 후예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백봉은 원래 요임금의 악관 노릇을 했던 기 의 아들이었다. 

생김새가 시커먼 돼지 같은 데다가 못생겼으며 거기다가 성격마저 거칠고 탐욕스러워 사람들은 그를  산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렇게 못생긴 아들에게도 절세미인인 어머니가 있었으니 그녀는 유영씨有仍氏의 딸, 현처玄妻였다. 사람의 모습조차 비칠 

정도로 검고 길며 빛나는 머리카락을 지닌 그녀는 나이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검은 여우>라고 불렀다. 백봉이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알게 된 후예는 군사를 

이끌고 그를 치러 갔다. 전쟁터에서 마주치게 된 그들은 서로 힘껏 싸웠다. 

그러나 백봉의 무예가 뛰어나다고 한들 신궁 후예의 솜씨를 당해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후예는 백봉의 허를 찔러 한발의 화살로 그를 쏘아 죽였다.

산돼지처럼 거칠고 사나운 폭군을 제거하자 사람들은 모두 환호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현처만은 슬픔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후예는 현처의 빼어난 미모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 버렸다.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이 만류하는 것도  뿌리치고 그녀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후예 때문에 집안이 풍지박산난 그녀였지만 아들의 원수에게 드러내 놓고 반항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그에게 순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아들의 원수를 갚을 계획을 세웠다.

백봉을 없앤 후, 후예는 개선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총애하는 왕비 현처를 앞세우고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도중 그는 한착寒 이라는 젊은이를 만나게 되었다. 

한착은 멀고 먼 한국寒國에서 후예를 찾아온 것이었다. 

본래 그는 한국의 귀공자였는데 사람됨이 교활하고 간특했다. 

정직한 성품의 한국 국왕은 그의 그런  비열한 성격을 일찌감치 파악했기 때문에 그를 중용 하지 않았고 견디다 못한 한착은 멀리

후예를 찾아와 그의 신하가 되려 했다. 

후예를 만나게 되자 한착은 자신의 귀공자다운 모습과 달변으로 후예를 사로잡았다. 겉으로는 스스로를 낮추지도 높이지도 않았지만 

 사실상 후예에게 아부를 다한 그를 후예는 조금도 의심해 보지 않고  완전히 믿어 자신의 심복으로 삼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점점 더 뜻이 맞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후예는 아예 한착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본래 그의 곁에 있었던 어진 재상들 - 무라武羅.백인伯因.웅곤

熊 .방어龐  -은 모조리 내쫓아 버렸다. 후예는 자신의 그 뛰어난 궁술만으로도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다. 

정치 따위는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시종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 매와 개를 

풀어놓고서 사냥에 열중했다.

한착이 일단 권력을 잡게 되자 그의 속에서 잠자고 있던 야심이 불이 붙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속에는 칼을 품고 있었던 이 음험한 소인배는 후예가 밖에서 사냥에 열중해 있는 틈을  타 슬그머니 

궁으로 들어가 후예의 총비인 현처와 수작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들 둘은 서로 뜻이 맞았다. 현처는 아들의 복수를 하고자 했으며 한착은 제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했다. 

그들에게는 서로 다른 목표가 있었지만 후예를 없애고자 하는 뜻만은 서로 일치했다.

현처가 한착에게 말했다.
「당신이 큰일을 도모하자면 우선 날개가 필요해요, 그래야 날 수 있잖아요. 당신이 날아오르게 되는 날, 나는 바람을 일으켜 

 주겠어요.」
한착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즉시 깨달았다. 그날부터 그는 이리저리 다니며 자신의 세력과 지지기반을 넓혀 갔다. 

또한 곳곳에 뇌물을 뿌려 인심을 얻었다.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위장하고서 자신이 저지른 모든 못된 일과 비리들을 후예에게 떠넘겼다.
후예가 사냥을 하고 싶어하면 계속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권했다. 

한편으로는 현처에게 후예의 마음에 안 드는 일을 계속하게 해 후에의 화를 돋구게 했다. 

이렇게 되자 후예의 성격은 날이 갈수록 나쁘게 변해 갔다. 화를 풀자니 무고한 시종들만 욕을 먹고 매를 맞아야 했다. 

이유도 없이 후예에게서 매를 맞게 된 시종들의 마음속에는 자연히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 쌓여 갔다. 

한착은 이런 기회를 틈타 그들을 구슬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착의 꼬임에 넘어갔다. 

오직 후예만 이 모든 변화를 모르고 있었다. 

한착과 현처의 계획에 의해 모든 것은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었고 암살의 음모는 드디어 실현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다. 후예는 야외에서의 사냥을 마치고 말을 탄 채 시종들을 거느리고 흥겹게 돌아오고 있었다. 

 그때 숲 속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들려 왔다. 

후예가 머리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는 순간 <쉭!>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 한 발이 후예의 왼쪽 목덜미에 꽂혔다. 

뒤이어 연달아 날아오는 몇 발의 화살이 후예의 어깨와 등, 허리 등을 연이어 맞췄다. 

후예는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하고 분노에 찬 눈썹을 몇 번 찌푸린 뒤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한착은 자신의 심복들과 이미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후예의 시종들을 데리고 숲에서 나왔다. 

그리고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후예에게 다가가 잔혹하게 그의 생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후예를 따라오던 시종들도 대부분 일찌감치 한착과 내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무기를 내려놓았다. 

다만 몇몇 충직한 시종들만이 한착에게 맞서 싸웠지만 중과부적이라 모두 한착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무사들은 후예의 시체를 둘러메고 횃불을 높이 쳐들고서 기세등등하게 왕궁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한착이 국왕으로 옹립되고 현처는 한착의 황후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반야만의 시대라, 그들은 후예의 시체를 솥에 넣고 삶아 고깃국을 끓였다. 

그리고 왕궁 근처에서 후예 본부인의 아들을 찾아내어 그에게 그 고깃국을 먹이려 하였다. 

후예의 아들이 먹지 않으려 하자 그들은 그를 왕궁 문밖으로 끌고 가 살해해 버렸다.

한착이 후예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되었지만 나라 이름은 여전히 유궁이라고 불렀다. 

현처는 교와 희라고 하는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들 역시 힘이 천하장사인 용사들이었다. 

교는 늘 몸에 갑옷을 두르고 다녔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발명품이었다고 한다. 

그는 땅위에서도 배를 끌고 다닐 수 있었다고 하니 그 힘이 얼마나 장사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의 동생인 희 역시 형과 막상막하였다. 

이렇게 되니 삼부자가 자신들의 권세와 무력, 그리고 교활한  성품으로 약한 제후들을 못살게 구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들이 후예에 비해  더욱 악독한 강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도망쳤던 계啓의 손자 소강 小康을 옹립하기로 결정을 하고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소강이 막 군사를 일으킬 무렵, 그들에게는 사방 십리밖에 안 되는 땅과 오백의 병마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착 부자는 각각 병마를 거느리고 요지에서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었다. 

부흥의 가치를 높이 든 소강에게는 힘든 전쟁이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싸우니 한착 부자는 몇 년 안되어 소강의 군대에게 궤멸 

당했고 유궁국도 마침내 멸망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소강은 하왕조를 부흥시켰던 것이다.

 

*후조后照 

* 후조后照 : 181

복희가 함조咸鳥를 낳았고 함조는 승리乘釐를, 승리는 후조後照를 낳았는데, 후조가 바로 파국의 시조가 되었다. 

*기棄(후직后稷)

* 기棄(후직后稷) : 278, 389~393
- 주周민족의 시조, 곤륜산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직택이라는 호수에 거주
- 후직의 무덤은 산과 강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으며 저국 國의 서쪽에 있다.

- 전설에 의하면 유태씨에게는 강원이라는 딸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그녀가 교외에 나가 놀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땅위에 거대한 거인의 발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발을 그 거인의 발자국 위에 대어 보았다. 

거인의 발자국과 자신의 발이 도대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 발자국이 얼마나 크던지 그녀의 발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녀가 엄지발가락 부분을 막 밟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어떤 감동 같은 것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을 했고 시간이 지나자 뭔가 이상한 것을 낳았는데 그것은  고양이도 개도 아닌 것이 그저 

둥그런 살덩어리일 뿐이었다. 

그 모습이 하도 기이하여 두려운 마음이  든 그녀는 그 살덩어리를 마을의 좁을 골목길에 모래 내다 버렸다. 

골목길에는 소나 양들이 자주 지나다녔는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동물들이 살덩어리를 밟을까 봐 조심하여 옆으로 비켜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살덩어리를 다시 들고 숲 속으로 가 그곳에 버리려 했으나 마침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베느라고 떠들썩하게 모여 

있어 버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오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들판의 연못가를 지나오게 되었고, 연못의 물이 꽁꽁 얼어 있는 것을 보자 마음을 독하게 먹은 그녀는 

살덩어리를 차디찬 연못의 얼음 위에 놓아두고 그대로 떠나려 했다. 

그때 참으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아득한 하늘 저편에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두 개의 날개로 그 살덩어리를 

포근히 감싸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품어 따스하게 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깜짝 놀란 경원은 참지를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그 모습을 더 자세히 보려 했다. 

사람의 기척을 느끼자 그 새는 휘~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날개 사이에 품고 있던 살덩어리를 떨어뜨린 채 그 새는 머나먼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살덩어리 속에서 응애, 응애!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강원이 급히 달려가 보니 달걀 껍질이 깨어진 듯이 깨진 껍질 사이로 튼튼하게 생긴 발그레한 사내아이가 자그마한 손발을 휘저으며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책에 보면 그때 그 아기는 활과 화살을 지니고 있었는데 자그마한 활에 화살을 메워 마치 하늘을  향해 쏠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높디높은 하늘에 앉아 있던 천제를 놀라게 했다고 하기도 한다.


강원은 자기가 낳은 것이 무슨 이상한 괴물이 아니라 귀여운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서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얼음판 위에서 얼른 아이를 안아 올려 자기 옷으로 따뜻하게 감싼 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기르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여러 번 버려졌었기 때문에 <기 >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기는 후에 주민족의 시조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농사짓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장성한 뒤에는 사람들에게 오곡을 심는 법을 가르쳤으므로 그의 자손들은 그를 <후직

后稷>이라 존칭하였다.

어렸을 때 후직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그는 놀 때에도 야생의 보리와 조  그리고 콩, 고량과 각종의 박과 과일들의 씨앗을 모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것들을 땅에 심었다. 

후에 오곡과 호박, 콩들은  모두 잘 자라서 열매가 살찌고 탐스러웠으며 달고 향기로와 야생의 것들보다 훨씬 좋았다. 

커서 어른이 된 뒤 그는 농업 방면에 관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나서는 또 나무와 돌로 간단한 농기구 몇 가지를 만들어서 그의 고향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 

수렵과 야생 과일의 채취만으로 살아가던 그 당시 사람들은 점차 인구가 늘어나 먹을 것이 모자라게 되자 생활이 무척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후직이 이루어 놓은 농업의 성과를 보고서 점차 그를 믿게 되어 농사짓는 일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새롭고 의미 있는 노동은 후직 어머니의 고향인 유태 지방에도 전해지게 되었고, 당시의 국왕이던 요임금도 후직과 그 고향 

사람들이 이룬 농업의 성과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임금은 후직을 농사農師로 청했는데 그 직책은 바로 전국의 총농예사總農藝師였던 것이다. 

그는 후직에게 전국 백성들을 위해 농사짓는 여러 가지 기술들을 지도해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후에 요임금을 뒤이은 순임금은 후직을 태邰지방에 봉하여 주고 그의 백성들의 농업 시험장으로 삼기도 했다.

- 전설에 따르면 신성神性을 지닌 이 영웅은 하늘나라에도 올라갔었는데 그곳에서 온갖 곡식의 씨앗들을 가지고 인간세계로 돌아와 

대지 위에 그것들을 흩뿌려 수많은 농작물들이 들판을 가득 채우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들의 생활은 한층 더 행복해졌다고 전해진다.


*후토后土

* 후토后土 : 239, 267, 289, 293, 315
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로 유명幽冥세계, 곧 유도幽都의 통치자이며 땅의 신(土神)이다.
황제의 보좌신이며 귀신 나라의 왕으로 손에 끈을 들고 있고 사면 팔방을 모두 관리한다.

 

*휘揮

휘揮 : 349

황제의 신하로 활을 만들었다.

*흑치국黑齒國 

* 흑치국黑齒國 : 559, 산해경 254, 288

- 동방 해외의 이형異形국으로 현고국의 남쪽, 군자국 근처에 위치
- 부근에는 탕곡湯谷이 있었으며 열 개의 태양이 늘 그곳에 머물렀다.

제준帝俊의 후손들로 치아가 온통 옻칠을 한 듯이 검은데 벼를 먹고 뱀을 잡아먹는다. 

붉은 뱀 한 마리와 푸른 뱀 한 마리가 그 곁에 있다. 

흑치국은 군자국 근처에 있었는데, 아마 이런 연유 때문인지 이여진李汝珍의 『경화연鏡花緣』에 보면 그들이 무척이나 예절바르고 

학식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흑치국의 두 여학생과 시서를 논할 때 당唐나라의 수재인 그를 그녀들이 오히려 능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 제준이 흑치를 낳았는데 성이 강씨이고 기장을 먹고 살며 네 종류의 짐승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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