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신화-주석정리2
출처:이우혁 홈피에서
*리매 魅 *신괴神槐 * 망량
상제 전욱의 불초한 세 아들 중 한 명으로 약수若水에 살면서 도깨비(망량)가 되었는데, 이 도깨비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고
붉은 눈에 길다란 귀, 검은 데 붉은 빛 감도는 몸을 하고 있다.
또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으며 사람 목소리를 잘 흉내내어 사람들을 미혹시켰다.
*맹서국孟舒國(맹조국孟鳥國, 맹희국孟戱國)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았고 깃털의
색깔은 붉은색과 노란색, 푸른색의 세 가지 종류였다.그들은 우임금을 도와 치수에 공을 세웠던 대신 백익伯益 혹은 백예栢 의 후손들이다.
전설에 의하면 백예의 현손인 맹희孟戱 - 그도 역시 새의 몸뚱이에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았다.
- 가 이곳에 와 나라를 세울 때 봉황도 그를 따라왔다고 한다. 맹조국의 산에는 대나무가 많았고 그 길이는 천 길이나 되었는데
봉황은 바로 그 대나무 숲 속에 둥지를 틀었고 또 그 열매를 먹으며 살았다.
맹희도 역시 나무 열매를 찾아 먹으며 지냈다. 이렇게 하여 후에 나라가 이루어졌는데 그 나라는 맹서국 또는 맹조국이라 불렸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맹희국이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모민毛民(모민국毛民國)
모민국 사람들의 몸에는 온통 화살촉처럼 단단한 털이 돋아 있었는데 체구는 작았다.
그들은 동굴 속에서 살았으며 일년 내내 옷을 입지 않았다.
- 모민지국毛民之國 :
지금 임해군臨海郡에서 동남쪽으로 2천리 되는 바다 한가운데 큰 섬에 모인- 성이 의씨로 기장을 먹고살며 네 종류의 짐승을 부린다.
우가 균국均國을 낳고 균국이 역채役采를 낳고 역채가 수협修 을 낳았는데 수협은 작인綽人을 죽였다.
천제가 그(작인)를 동정하여 몰래 나라를 만들어 주니 그것이 이 모민이다.
*무라巫羅, 무사巫謝
- 서방에 위치한 갖가지 진귀한 약초가 있는 무산 巫山(운우산雲雨山, 혹은 영산靈山)에서 활동하는(신과 인간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 무산에서 자라는 온갖 진귀한 약초들을 캐어 신약을 제조하기도 한다.) 열 명의 무당(무사巫師, 무함巫咸.무즉巫卽.무반
巫盼.무팽巫彭.무고巫故.무진巫眞.무례巫禮.무저 巫抵.무사巫 .무라巫羅 등)중 일인.
- 여자국女子國의 남쪽에 무함국巫咸國이라는 곳이 있다.
무함국은 무사巫師들이 모여서 만든 나라인데 그중 유명한 것이 무함巫咸.무즉巫卽.무반巫盼.무팽巫彭.무고巫故.무진巫眞.무례巫禮.
무저 巫抵.무사巫 .무라巫羅 등 열 명의 무사들이다.
그들은 오른손에는 푸른 뱀을, 왼손에는 붉은 뱀을 쥐고서 등보산登 山을 오르내리며 약초를 찾아 다녔다.
*무라신武羅神
사람의 얼굴에 몸에는 표범 무늬가 있었으며 허리가 가늘었고 이는 백옥처럼 흰빛이며, 귀에는 금귀고리를 달고 있었으며 우는소리가
마치 패옥이 딩동 거리는 소리와 같아서 무척 듣기가 좋았다
- [산해경]의 기록에 따르면 청요지산의 행궁에는 순초荀草라는 풀이 자라고 있었는데 네모나고 길쭉한 줄기에 노란 꽃이 피었고
붉은 열매가 열렸다.
이 열매를 먹으면 얼굴빛이 아름다워졌다고 한다. 이런 기록들을 보건대 무라신은 <산귀>와 같이 아리따운 여신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다른 책의 기록에 의하면 무라신은 서리의 신이라고도 한다.
또 그녀가 여성인 산신이라고도 하고 있는데 비록 그런 주장이 [산해경]에 나타난 묘사를 보고 억지로 끌어내 온 이야기라고 해도 그
견강부회의 유래가 이미 오래된 것이라면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무산신녀巫山神女
*무산신녀巫山神女 : 270
- 염제에게는 요희瑤姬라는 딸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막 시집갈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결혼도 못한 채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가슴속에 열정이 가득했던 이 소녀의 영혼은 고요지산故搖之山으로 가서 한 포기의 요초瑤草로 변했다.
이 요초는 이파리가 겹겹이 자라 매우 무성했는데, 노란 색 꽃이 피고 나서 토사 絲 열매 같은 열매가 열렸다.
그런데 누구든지 이 열매를 먹기만 하면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천제는 요희가 일찍 죽은 것을 불쌍히 여겨 그녀를 무산巫山으로 보내어 무산의 구름과 비의 신으로 삼았다.
새벽이 되면 그녀는 아름다운 아침의 구름으로 변하여 자유롭고 한가하게 산 고개와 골짜기를 떠다녔고, 저녁 무렵이 되면 한바탕
내리는 비로 변해서 산과 물을 향해 그녀의 애통함을 흩뿌리곤 했다.
그 뒤 전국시대 말기에 초나라 회왕懷王이 운몽雲夢지방을 여행하다가 <고당高唐>이라고 하는 큰 누각에서 머물게 되었다.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이 여신은 한낮인데도 고당으로 달려와, 막 낮잠을 즐기고 있는 회왕에게 그녀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회왕은 그 꿈이 기이하기도 하고 또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여, 고당 근처에 그녀를 위한 사당을 짓고 사당의 이름을
<아침의 구름(朝雲)>이라고 지었다 한다. 훗날 회왕의 아들 양왕襄王이 그의 어전시인 송옥宋玉과 함께 이곳을 여행하다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양왕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난 저녁, 송은 그와 비슷한 이상하고도 슬픈 꿈을 꾸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 그는 그 이야기를 또
양왕에게 들려주었다.
양왕은 그 두 가지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송옥에게 명하였고, 송옥은 그 명을 받들어 「고당부高唐賦」와 「신녀부神女賦」
를 지었다.
훗날 문학작품에 전고로 자주 인용되는 <양왕몽襄王夢>이라는 것은 고서의 기재 착오로 인한 오해인데, 초 양왕과 무산신녀는 사실
아무런 관계도 없다.
운화부인雲華夫人의 이름은 요희인데 서왕모西王母의 스물 세 번째 딸이다.
신선의 도를 닦은 뒤 동해東海에서 돌아오다가 무산巫山을 지나게 되었는데 무산의 협곡이 너무 아름다워 떠나기가 싫어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 마침 우禹임금도 치수를 하느라 무산 기슭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치수 작업 중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와 천지가 진동을 하고 돌덩이가 날아 다녀 더 이상 작업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우임금은 생각 끝에 운화부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다.
부인은 그에게 귀신을 부리는 법술을 가르쳐 주었고 또 그녀의 신하들인 광장狂章.우여虞余.황마黃魔.대예大 .경진庚辰.동률童律을
보내어 우임금의 치수 작업을 돕게 하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은 가라앉았고 무산의 협곡을 뚫는 일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치수의 작업이 일단락 되었다.
우임금은 운화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려고 그녀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가 높은 절벽 위에 서서 바라다보니 그녀는 이미 돌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돌덩이였던 그녀가 순식간에 구름으로 변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비로 변했고, 그런가 하면또 용으로 변했다가 흰 학으로 변해
날아가는 등,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그녀의 그런 변화를 보고 우임금은 그녀가 진짜 신선인지 의심스러워졌다. 그래서 동률에게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신기했다.
운화부인은 사람의 뱃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서화西華 소음少陰의 기氣가 모여 이루어진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변화무쌍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인간세계에 있을 때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천지 만물 사이에 있을 때에는 바로 그 천지 만물의 모습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설명을 듣고서야 우임금은 의문이 풀렸다.
그는 두 번째로 그녀를 찾아가 자신의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깊은 산 속에 갑자기 아름다운 누각들이 나타났다. 사자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으며 천마天馬가 길을 안내했다.
우임금이 천마를 따라가자 누각에서 운화부인이 잔칫상을 차려 놓고 그를 맞이했다.
우임금은 고개 숙여 고마운 뜻을 전했고 운화부인은 따뜻하고도 세심하게 그를 대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시녀 능용화陵容華에게 붉은 옥으로 된 상자를 열게 하더니 그 안에서 치수의 비법이 적혀 있는 신기한 책을
꺼내어 우에게 주었다.
뿐만 아니라 경진과 우여 에게 다시 우를 도와 치수 작업에 참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우임금은 운화부인의 이러한 도움 덕분에 13년 동안 중국 땅을 뒤덮었던 홍수를 마침내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무산의 경치에 넋을 잃고 그것에 머물러 있던 요희는 우임금의 치수 작업을 도와준 연유로 해서 그곳 사람들과 좋은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무산에 눌러 앉아 다시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무산에서 살게 된 그녀는 날마다 높은 절벽 위에 올라가서 무산의 삼협三峽, 즉 구당협瞿 峽.무협巫峽.서릉협西陵峽 등의 협곡
사이를 지나는 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협곡은 자그마치 칠 백리나 되는 물길이었는데 그녀는 그곳을 오가는 배들과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수백 마리의 신령스런 까마귀들을 그곳으로 보내어 협곡 위에서 맴돌며 배들을 안전하게 이끄는 일을 하게 하였다.
삼협에 들어서는 배들은 그 까마귀들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 무사히 협곡을 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에서 매일 멀리 협곡을 바라다보던 그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침내 그 봉우리의 한 부분으로 변해 갔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신녀봉神女峰이다.
그녀를 시중들던 시녀들 역시 크고 작은 봉우리들로 변했으니 그것이 지금의 무산 12봉이다.
그 봉우리들은 마치 그녀들이 여전히 그곳에 서서 애틋한 마음으로 지나가는 배들을 위해 방향을 가리켜 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봉우리들은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있으면서 빼어나게 아름다워 삼협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다보며 세속을 초월한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녔던 선녀들을 떠올린다.
신녀봉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또한 누구나 우임금을 도와 치수를 완성하게 했던 요희를 생각해 낸다.
이리하여 옛날 전설에 나오던 요희, 초 회왕의 꿈속에 나타나 사랑을 호소하던 요희의 모습은 신녀봉 전설에 밀려 사람들 마음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박보국搏父國(과보국 父國)
<박보>는 바로 <과보 父>이니, 이 나라 사람들은 예전에 태양과 달리기 시합을 했던 거인 과보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체구가 무척 컸고 오른 손에는 푸른 뱀을, 왼손에는 누런 뱀을 쥐고 있다.
그 나라의 동쪽에는 푸른 잎이 우거지고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도림桃林이 있다.
도림은 바로 등림鄧林으로 옛날 태양을 뒤쫓아 달렸던 과보가 죽기 전에 던진 지팡이가 변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본래 겨우 두 그루였던 것이 자라서 얽히고 설켜 광대무변한 삼림을 이루었다.
*과보족 父族
던지기를 잘하며 이름을 거보擧父라 한다.
- 과보가 태양과 경주를 하였는데 해질 무렵이 되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어 황하와 위수의 물을 마셨다.
(그러나) 황하와 위수로는 부족하여 북쪽으로 대택의 물을 마시러 갔다가 도착하기도 전에 목이 말라죽었다.
그 지팡이를 버렸는데 그것이 변하여 등림이 되었다.
- 대황大荒의 한가운데에 성도재천成都載天이라는 산이 있다. 두 마리의 누런 뱀을 귀에 걸고
두 마리의 누런 뱀을 손에 쥔 사람이 있는데 이를 과보라 한다. 후토后土가 신信을 낳고 신이 과보를 낳았다.
과보가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해를 쫓아가려고 하다가 우곡에 이르렀다.
황하를 마시려 했으나 양에 안차 대택으로 가려 했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이곳에서 죽었다.
*반고국盤古國
- 고신왕高辛王시절이었다.
황후가 갑작스레 귓병에 걸려 무려 삼 년간을 앓게 되었는데 백방으로 치료를 해보아도 별 효험이 없었다.
그러다가 귓속에서 금빛 벌레 한 마리가 튀어나왔는데, 그 모습이 꼭 누에와 같고 길이는 대략 세 치 정도였다.
그 벌레가 귓속에서 나오자마자 황후의 귓병은 금새 낫게 되었다.
황후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그 벌레를 박瓠 속에 넣고 쟁반으로 덮어두었다.
그러자 그 쟁반 속의 벌레는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리의 개로 변하였는데, 온몸이 찬란하게 오색으로 반짝거렸다.
그리고 쟁반盤과 박 속에서 나왔다고 하여 <반호盤瓠>라고 이름지어졌다.
고신왕은 이 개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늘 곁에 두고 잠시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갑자기 방왕房王이 반란을 일으키니, 고신왕이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여 <방왕의 머리를 베어 바치는 자가 있다면 공주를 그에게주리라>하고 여러 신하들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은 방왕의 군사력이 강해 이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여겨 아무도 생명을 건 모험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왕이 그 말을 한 바로 그날, 반호가 궁전에서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그 개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하며 며칠을 계속 찾았으나 그림자도 볼 수 없어 고신왕은 몹시 이상하다고 여겼다.
반호는 그때 궁전을 떠나 곧바로 방왕의 군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방왕을 보자 머리와 꼬리를 흔들어 댔다.
방왕은 이 개를 보자 매우 흡족해 하면서 둘레의 신하들에게 <고신씨는 곧 망하리라! 그의 개까지도 내게로 투항해 오니 내가 이길
것이 뻔하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어 이 좋은 징조를 기념하였다.
그날 저녁, 몹시 흥겨웠던 방왕은 잔뜩 취해 군중의 천막 안에서 잠이 들었다.
반호는 이 기회를 틈타 맹렬하게 방왕의 머리를 물고서 바람처럼 궁전으로 돌아왔다.
고신왕은 자신의 애견이 적의 머리를 물고 궁전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는 기쁨에 넘쳐 다진 고기를 그에게 많이 먹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반호는 코를 대고 킁킁 냄새만 맡아보고는 그냥 가 버리는 것이었다.
고민스러운 듯이 방구석에서 잠만 자고 음식은 먹지 않으며 움직이지도 않았고 고신왕이 불러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렇게 이삼 일을
보냈다.
「나의 개야, 왜 음식도 먹지 않고 불러도 오지 않느냐?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은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화가 난 것이란
말이냐? 그건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고, 개와 인간이 결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 말이다!」
「임금님, 걱정 마세요. 임금님께서 저를 금으로 된 종속에 넣어 주시면 일곱 낮 일곱 밤이 지나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답니다.」
고신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기이하게 여겼으나 결국은 반호를 황금으로 된 종 안에 넣어 두고 그가 어떻게 변하는가 보기로 하였다.
하루, 이틀, 사흘......날은 지나 엿새째가 되었다. 결혼을 기다리고 있던 다정다감한 공부는 그가 굶어 죽을까 봐 걱정이 되어
살그머니 황금의 종을 열어 보았다.
그랬더니 반호의 몸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고 머리만이 여전히 개의 모습이었는데, 공주가 열어 보고 난 뒤로는 더 이상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반호는 황금 종속에서 뛰어나와 외투를 걸치고 공주는 개머리 모양의 모자를 쓰고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혼인을 하고 나서 반호는 아내를 데리고 남산南山으로 가 인적이 없는 깊은 산의 굴속에서 살았다.
공주는 화려한 옷을 벗어 던지고는 서민들의 옷을 입고 친히 일을 하여야 했는데도 원망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반호는 매일 나가 사냥을 하여 그것으로 먹고살았는데 부부는 화목하고 행복한 생활을 했다.
몇 년 후, 그들은 3남 1녀를 낳았는데 자식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만나 보게 하였다.
그리고는 자식들에게 아직 성씨가 없으니 고신왕에게 성姓을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큰아들은 태어나자마자 곧 접시에 담았으므로 성을 반盤이라 하였고,
둘째 아들은 바구니에 담았으므로 남藍이라 했다. 셋째 아들에게는 무슨 성이 내리는 것이 좋을까 하고 있는데 마침 하늘에서
우릉우릉 하는 천둥소리가 들려 와 성을 뇌雷라고 지었다.
딸은 자라서 어른이 되어 용감한 병사를 남편으로 삼으니, 남편의 성을 따라 종鐘이라 하게 되었다.
남, 뇌, 반, 종의 네 성씨는 이후 서로 결혼하며 자손이 번성하여 국족國族이 되니 모두들 반호를 그들 공동의 조상으로 모셨다.
*발魃(한발旱魃, 천녀발天女魃, 황제녀발黃帝女魃)
계곤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있어 이름을 황제여발이라고 한다.
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황제를 치자 황제가 이에 응룡으로 하여금 기주야 에서 그를 공격하게 하였다.
응룡이 물을 모아 둔 것을 치우가 풍백과 우사에게 부탁하여 폭풍우로 거침없이 쏟아지게 했다.
황제가 이에 천녀天女인 발을 내려보내니 비가 그쳤고 마침내 치우를 죽였다.
발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되자 그가 머무는 곳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숙균이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아뢰자 후에 그녀는 적수의 북쪽에 두어 살게 하였고 숙균은 그리하여 밭농사의 책임자가 되었다.
발이 때때로 그곳을 빠져 나오면 그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은 "신이여! (적수의) 북쪽으로 돌아가고서."라고 명령하듯이 말했다.
그전에 우선 물길을 깨끗하게 크고 작은 도랑을 터서 통하게 해 놓았다.
*방상씨方相氏
*방풍국防風國
방풍동防風洞) 중 하나.
*방풍씨防風氏
- 우가 회계산會稽山에서 여러 신들을 모이게 하니 모두들 도착했는데 방풍씨防風氏만이 늦게 왔다고 한다.
우는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여 그를 죽였다.
그로부터 1 2천년이 지난 춘추시대, 오吳와 부차夫差가 월越나라를 칠 때, 부차는 월나라의 왕 구천句踐이 사는 회계산을 포위했다.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어서 산까지 모두 무너질 정도였다. 그때 무너진 산 속에서 뼈가 하나 나왔다.
그것은 인류나 짐승의 뼈가 아니었으나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수레 하나에 가득 찼다.
그래서 당시의 박학했던 공자孔子에 가서 물으니 공자가 회계산의 모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방풍씨의 뼈임을 알게 되었다.
우가 그때 천하의 여러 신들을 모이게 한 것은 아마도 공공에게 대항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은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우의
신통력과 권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공공은 우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우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회계산은 원래 <모산茅山>이라고 불렸다 하는데, 우가 거기에서 천하의 뭇 신들을 모이게 하여 치수를 의논하고 공공에 대항하려
하였으므로 회계산이라고 고쳐진 것이라 한다.
<회계會稽>는 바로 <회계會計>이니, <모여서 의논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때 뜻하지 않게 방풍씨가 교만하게 약속을 지키지 않아 헛되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방풍씨를 죽일 때 세 길이 넘는 그의 키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망나니의 칼날이 그의 목에 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형을 집행하기 전에 특이한 과정이 필요했으니 곧 높다란 축대를 쌓는 일이었다.
높은 축대 아래에 방풍씨를 세워 놓고 그 위에 망나니가 올라갔다.
미리 만들어 두었던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칼을 든 힘센 무사는 이렇게 해서야 비로소 리우釐牛처럼 거대한 방풍씨의 목을 칠 수
있었다.
방풍씨가 죽은 뒤에도 이 축대는 오랜 기간 동안 그대로 있었는데 그것을 <형당型塘>이라고 불렀다.
<당>이란 바로 <축대>라는 뜻이다.
목을 치는 광경이야 사람들이 한두 번 보아 온 것이 아니었지만 산처럼 거대한 사나이의 목이 잘리는 모습이야말로 신기한
것이었으니 이런 것은 신화 전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드문 일이었을 것이다.
방풍씨라는 거인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치우나 공공, 과보 그리고 형천 같은 <초대형 거인>들을 연상해 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염제의 후예들로 황제의 반대파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남방 거인족의 우두머리였던 방풍씨는 이들과 혹시 무슨
혈연관계라도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만일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면 왜 하필 우 임금이 치수의 방법과 공공에게 대항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에 그렇게 게으름을
부리며 늦게 가 죽음을 당한 것일까. 설혹 관계가 있었다 해도 고서에서는 아직 그 증거를 찾아낼 수가 없어 그저 하나의 의문으로
남겨 두는 수밖에 없다.
- 우는 치수가 끝나자 하늘에서 내려온 두 마리의 용을 범성광范成光이라고 하는 사신에게 주어 타고 바다 밖의 여러 나라를
순시하게 하였다.
그가 남해에 이르러 방풍씨 부족들의 나라를 지나가게 되었을 때였다.
우가 자신들의 왕을 죽인 것에 대한 한恨이 아직 풀리지도 않았는데 우의 신하가 용을 타고 와 위세를 과시하려 하는 것을 보자
방풍씨의 두 신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니, 그야말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귀빈이 땅 위로 내려오기도 전에 미리 활을 당겨 우의 사신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둥소리처럼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광풍이 휘몰아치고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내리면서 사신을 태운 두 마리의
용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순식간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방풍씨의 두 신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얼굴 색이 새파랗게 질리다 못해 검게 변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자신들이 엄청난 짓을 저질렀으며 그 죄는 용서받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한 그들은 남에게
당하느니 스스로 죽는 게 낫다고 여겨 허리춤에서 칼을 빼내어서는 가슴에 큰 구멍을 내고 죽어 버렸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우는 그들의 의리와 충직함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그들의 가슴에 꽂힌 칼을 빼내고 불사초 가루를 상처에 발라 주게 했다.
그러자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들은 유유히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 뚫린 밥공기 만한 크기의 구멍은 다시 메워지지 않았으니, 이런 연유로 해서 그들의 후손 역시 뚫린 가슴을
갖게 되었고 나라 이름도 관흉국貫胸國이 되었다.
*백택白澤
황제가 한번은 곤륜산 동쪽에 있는 항산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그곳 해변가에서 우연히 <백택白澤>이라고 하는 신령스런 동물을 얻게 되었다.
이 동물은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았고 무척이나 지혜롭고 총명하여 천지간에 있는 귀신들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또한 수풀과 물가의 정기精氣나 그곳에 떠도는 영혼들이 변하여서 된 귀신이나
요괴들에 대해서도 훤히 알고 있었다. 즉 무슨 산의 정령이 기망상 罔象인가, 용망량龍罔兩은 어떤 물의 정령인가 또 도로의 정령인
작기作器와 무덤의 정령인 낭귀狼貴등에 대해서도 그는 조금도 막히지 않고 말해 낼 수 있었다.
우주의 통치자인 황제조차도 백택만큼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황제는 사람을 시켜 백택이 이야기해 내는 가지가지의 괴물들을 그림으로 그려내게 하고, 또 그 그림 옆에 설명을 달게
했는데 그것이 모두 1만1천5백20 종류가 되었다.
이때부터 황제는 이 요괴들을 관리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병예屛 (병호屛號, 우사雨師)
생김새가 마치 누에와 비슷했지만 몸이 작다고 해서 과소 평가할 수는 없었다.
그가 한번 법술을 부리기만 하면 하늘 가득히 먹구름이 몰려와 눈 깜짝할 사이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 비렴飛廉(풍백風伯, 이姨)
머리는 참새처럼 생겼고 한 쌍의 뿔이 돋아 있었으며 몸은 사슴과 비슷했다.
그리고 뱀의 꼬리를 하고 있었으며 몸에는 표범 무늬가 있었다.
*산귀山鬼
[초사] [구가九歌]의 [산귀편]에 보면 그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과 마음을 묘사해 주고 있는 몇 구절이 있는데, 그 구절들 또한
무라신의 모습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깊은 산 속에 한 여인이 살았지.
*삼묘三苗(묘민苗民, 유묘有苗)
- 서북해의 밖, 흑수의 북쪽에 날개 돋친 사람이 있는데 이름을 묘민 이라고 한다.
전욱 頊이 환두驩頭를 낳고 환두가 묘민苗民을 낳았는데, 묘민은 성이 이씨이고 고기를 먹고산다.
삼묘의 세 민족은 요임금이 순舜에게 왕위를 선양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자 요임금은 그들 민족의 우두머리를 죽였고, 그들은 남해로 도망가 함께 나라를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삼묘국이다.
이 나라 사람들의 생김새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다만
발 밑에 날지는 못하는 작은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이 특이했다.
*상류相柳(상유, 상요, 相繇)
- 우에게 쫓겨났던 공공에게는 상류相柳라고 하는 신하가 있는데 사람의 얼굴에 머리가 아홉 개 달리고 온몸이 푸른색이며 뱀의
몸으로 스스로를 휘감고 있으며 아홉 곳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
그가 토하는 곳과 머무는 곳은 즉시 늪이 되는데 (늪의 물이) 맵지 않으면 또 쓰거나 해서 어떤 짐승들도 살수 없었다.
우임금이 홍수를 메울 때 상요를 죽이자, 그의 피에서 비린내가 나서 곡식이 자라지 못하고 그 땅은 물이 많아 살수가 없었다.
우임금이 그것을 메우는데 세 번 흙을 덮었으나 세 번 무너져서 마침내 세 길이나 파서 못을 만드니, 여러 상제들이 그곳에 누대를
만들어 요괴들을 다스렸다.
곤륜산의 북쪽에 있다.
*상망象罔
*서왕모西王母
- 「목천자전穆天子傳」의 서왕모 : 곤륜산崑崙山에 살았다는 옛 선인, 성은 양楊 혹은 구 이며 이름은 희回 혹은 완령 이라고도
하며 목왕이 서정西征하여 요지瑤池에서 서왕모를 만나 선도를 얻었다고 한다.
주周 목왕穆王과 시를 주고받는 인간세계의 왕으로 나타난다.
다만 그녀가 읊은 노래 속에 나오는 <호랑이나 표범과 같이 살고 새들과 함께 거하네>라는 귀절에서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야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한나라 때의 석각화石刻 나 전화 에 의하면 용이나 호랑이 곁에 앉아 있는 서왕모는 왕의 복장을 하고 있긴 해도 그 모습이 좀
거칠다.
이 시기에 서왕모의 배우신配偶神인 동왕공東王公의 모습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때부터 서왕모는 신선의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반고班固가 지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육조六朝시대 사람의 작품인 「한무고사韓武故事」와 한무내전韓武內傳」 속에서 서왕모는
<나이 삼십여 세>에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운> 여선 女仙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여기에서 서왕모가 관장했던 불사약은 <선도仙桃>로 바뀌며 <서왕모를 위해 먹을 것을 찾아왔던> 세 마리 푸른 새들은 동쌍성
董雙成.왕자등王子登 등의 천진난만한 시녀들로 변한다.
괴신 이었던 서왕모와 아름다운 선인仙人인 서왕모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됨으로써 서왕모의 변천 과정이
마무리된다.
- 「산해경」과 「서차삼경」에 나타나는 서왕모 :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의 이빨을 갖고 있으며 봉두난발에 옥비녀를 꽂고 하늘의
재앙과 다섯 가지 형벌을 관장하는 괴신 이며 성별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비녀>는 부인들의 장식품이기는 하지만 원시시대에는 남자도 그것을 꽂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에 그것은 귀걸이와 마찬가지로 남녀를 불문하고 장신구로 지니고 다니던 것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전설에 의하면 동굴 속에서 단순한 생활을 하던 서왕모에게는 세 마리의 파랑새가 있어 순서대로 돌아가며 먹을
것을 찾아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왕모라든가 옥비녀, 그리고 파랑새가 모두 여성적 분위기를 지니기 때문에 서왕모는 점차 여성화되고 또 온화한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를 위해 음식물을 가져다주었다는 세 마리의 파랑새에 대해 말해 보자 그들은 곤륜산
서쪽의 삼위산三危山에 살았는데 이 산은 세 개의 봉우리가 하늘로 치솟아 있었으므로 삼위三危라고 불렸다.
이 파랑새들은 각각 대려大 , 소려小 , 청조靑鳥라고 하였다. 이 새들은 모두 몸뚱이가 푸르고 머리는 붉으며 눈이 검은 힘세고
사나운 새들이었지, 결코 자그마하고 귀여운 새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삼위산에서 날개를 펼치고 솟아올라 천리를 날아 서왕모가 살고 있는 옥산의 동굴에까지 왔다.
그리고는 하늘과 들판에서 갓 잡은 피투성이의 날짐승과 길짐슴들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차고 와 동굴에 떨어뜨려 놓곤 했다.
그렇게 그들은 호랑이 이빨을 하고 있는 주인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했던 것이다.
서왕모가 식사를 마치고 나면 세 개의 발이 달린 또 다른 신조가 절룩거리며 다가와서 땅바닥에 흩어진 껍데기와 뼈들을 주워 갔다.
발이 세 개 달린 이 새는 서왕모를 따라다니며 갖가지 잔일들을 했다.
서왕모는 기분이 좋아지면 동굴 속에서 나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서서는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 무섭고도 처연한 휘파람 소리가 깊은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면 사나운 매들까지도 놀라서 하늘을 어지러이 날아다녔으며 호랑이나
표범들도 숲 속에서 꼬리를 감추고는 날 살려라 하며 도망쳐 숨었다고 한다.
이것이 대략 기록에 전해지는 바 <호랑이와 표범과 무리를 짓고 새들과 함께 살아가던> 서왕모의 실제 모습이었다.
서왕모는 이처럼 본래 그렇게 자상하고 온화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면 전염병과 형벌을 관장하는 괴신 서왕모가 왜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는 것일까?
이것은 아마도 전염병과 형벌이 모두 인간의 생명과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으므로 당연히 또 인간에게 생명을 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서왕모가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며 다행히 이 약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을 먹고 장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서왕모는 불사약을 갖고 있었다. 곤륜산 위에 불사수不死樹가 있고 그 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먹으면 장생불사할 수 있다고
했던 그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면, 서왕모가 불사약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왕모의 불사약은 바로 불사수의 열매를 따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서왕모에 관한 한 漢나라 때의 각종 그림들을 보면 시종이 손에 나무처럼 생긴 것을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선화善禾라고도 하고 또 삼주수三珠樹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불사수가 아닌가 한다.
이 나무 역시 비슷한 종류의 다른 나무들처럼 몇 천년에 한번 꽃이 피고 또 몇 천년이 지나서야 열매가 열리며 그 열매 또한 많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불사약은 신기하고 진귀한 것이었고, 그것을 다 써 버리고 나면 얼마 동안 다시는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긴 했지만, 누구라서 오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랴. 또 그 진귀한 불사약을 누구라서 얻고 싶지 않았을까!
다만 서왕모가 살고 있던 곳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갈 수가 없는 곳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서왕모는 어떤 때에는 곤륜산 꼭대기의 요지 瑤池근처에 살았고 또 어떤 때에는 좋은 옥이 많이 난다고 하는 곤륜산 서쪽의 옥산에
살았다.
그리고 또 때로는 대지의 서쪽 끝, 태양이 지는 엄자산 山 위에서도 살았다. 이렇게 그에게는 정해진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그를
만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곤륜산 꼭대기만 해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가 없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곤륜산 아래에는 약수弱水의 깊은 물이 휘돌아 흐르고 있었는데, 이 약수는 가벼운 새의 깃털조차도 가라앉아 버리는
곳이었으므로 배를 타고 건너는 사람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리고 곤륜산의 바깥쪽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거대한 산이 있었는데 그 불꽃은 밤낮으로 꺼지지 않았으며 어떤 물체라도 닿기만
하면 그 즉시 타 버렸으니, 누가 감히 이런 물과 불의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었으랴. 그래서 서왕모가 불사약을 갖고 있다고 하는
전설은 있어도 이 귀한 물건
을.
*소녀素女
일찍이 황제가 청성산에가 영봉자에게 도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청성산 골짜기에서 소녀素女라고 하는 신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후에 황제의 시녀가 되었다.
소녀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슬瑟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본래 복희 시대에 만들어진 슬은 줄이 50개였는데 그 소리가
너무 슬펐기 때문에 황제가 줄을 반으로 줄여 소녀에게 연주하게 하였다고 한다.
줄이 25개로 줄어드니 소리도 그런 대로 들을 만하였던 것이다.
소녀가 있던 곳은 청성산 부근으로 지금의 사천성 서쪽 평원인데 옛날에는 도광의 들판이라 불렸었고 하늘사다리인 건목乾木이
그곳에서 자랐다.
전욱의 아들 중의 한 명으로 잡귀가 되어 사람들의 집구석에 살며 부스럼병 등을 걸리게 하고 또 아기들을 놀라게 했다.
*식사食邪(척곽尺郭)
동남쪽의 거인으로 키가 일곱 길이나 되며 배의 높이가 몸길이와 같았다고 한다.
머리에는<계부기두鷄父 頭>를 쓰고 있었는데 <계부>라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기두>는 커다란 가면으로, 갑골문에서는
<기>자를 < >로 표시하니 바로 사람이 커다란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그것은 방상씨가 쓴 것과 같은 것인데, 방상씨가 쓴 것은 눈이 네 개 달렸으나 척곽이 쓴 것은 눈이 두 개뿐이다.
그밖에도 그는 붉은 옷을 입고 허리에는 흰 띠를 매었으며 이마에는 붉은 뱀을 감고 있었는데 뱀이 꼬리와 머리가 맞물려 있었다.
이 괴인은 다른 건 먹지 않고 귀신만 잡아먹었으며 이슬로 목마름을 달랬는데, 새벽에 악귀 삼천 마리를 먹고 저녁에는 삼 백 마리를
먹었으므로 <식사食邪>라고도 하며 또 <탄사귀呑邪鬼> 혹은 <황보귀黃父鬼>라고도 불린다.
*신도神 & 울루鬱壘
황제는 <신도神 >와 <울루鬱壘> 형제에게 인간세계를 떠도는 귀신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 두 형제는 동해의 도도산挑都山에 살았다. 도도산 위에는 큰 복숭아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의 가지는 구불구불 뻗어 삼천리나되는 땅위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의 맨 꼭대기에는 금계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 금계는 태양이 솟아오를 때의 첫 햇살이 몸을 비출 때, 부상수의 금계가 우는소리를 듣고 따라서 운다.
바로 이때 신도와 울루는 복숭아나무 동북쪽의 나뭇가지 사이에 있는 귀문鬼門 아래에 위풍당당하게 서서 인간 세계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귀신들을 조사했다.
(귀신은 밤에만 나타날 수 있었고 닭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엔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만일 그 귀신들 중에 유별나게 흉악하고 교활하거나 또는 인간 세상에서 착한 사람들을 해친 귀신들을 돌아오면 두 형제는 즉시
그들을 갈대 끈으로 꽁꽁 묶어 커다란 호랑이에게 먹이로 던져 주었다.
그리하여 흉악한 귀신들은 점차로 적어졌고 또 멋대로 굴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해마다 섣달 그믐날 저녁이 되면 복숭아나무에 두 신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그 두 신은 손에 갈대 끈을 들고 있는 신도와 울루를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대문 양쪽에 두었다.
또 문설주에는 큰 호랑이 한 마리를 그려 붙여 사악한 마귀들을 막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복잡하면 간편하게 하기 위해 두 형제의
그림을 문 위에 그리기도 했고 그들의 이름만을 문에 쓰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도 효과는 같았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문신門神인 것이다.
'최초의 나라 한(환)국 > 중국신화-주석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신화-주석정리(국가명) - 펌 (0) | 2009.03.22 |
---|---|
중국신화-주석정리4 <펌> (0) | 2009.03.22 |
중국신화-주석정리3 <펌> (0) | 2009.03.22 |
중국신화 - 주석정리1 <펌> (0) | 2009.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