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心濟
고려의 제주(탐라)는 산동성 巨野澤 일대로 비정. 원사 지리지를 봅니다. 산동성 제수가 濟州라는 지명을 낳았으며, 황하의 河水氾濫으로인해 지역이 물에 침범되어 행정구역을 임성으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동 투국의 발원지 경주김씨 김일제의 후손이 살고있었다는 지명 金鄕과도 관련이 있으며 제주와 탐라는 같은지명으로 보이며 후대의 역사가들이 의도적으로 왜곡하였거나 혼동한것으로 보입니다. 원나라에 저항해서 끝까지 저항한 삼별초의 항쟁지역이 이곳 아닌가 추정해봅니다.
縣七
巨野,中。倚郭。金廢,屬鄆州。至元六年復立。
金鄉,下。初隸濟州,至元二年來屬。
碭山,金為水蕩沒。元憲宗七年,始復置縣治,隸東平路。至元二年,以戶口稀少,並入單父縣。三年復置,屬濟州。八年,屬濟寧路。 虞城,下。金圮於水。元憲宗二年,始復置縣,隸東平路。至元二年,以戶口稀少,並入單父。三年,復立縣,屬濟州。八年,隸濟寧路。豐縣。唐屬徐州。元憲宗二年,屬濟州。至元二年,以沛縣並入豐縣。三年,復立沛縣。八年,以豐縣直隸濟寧路。
州三
濟州,下。
唐以前為濟北郡,治單父。唐初為濟州,又為濟陽郡,仍改濟州。周瀕濟水立濟州。宋因之。金遷州治任城, 以河水湮沒故也。 元至元二年,以戶不及千數,並隸任城。六年,遷州於巨野,而任城為屬邑。八年,升州為濟寧府,治任城,復還府治巨野。 十二年,以任城當江淮水陸衝要,復立濟州,屬濟寧府而任城廢。十五年,遷府於濟州,以巨野行濟州事。 其年復於巨野立府,仍於此為州。二十三年,復置任城,隸州。 領三縣:任城,倚郭。魚台,太宗七年,屬濟州。至元二年,並入金鄉。三年復故。八年,屬濟寧府。十三年來屬。
兗州,下。
唐初為兗州,復昇泰寧軍。宋改襲慶府。金改泰定軍。元初復為兗州,屬濟州。憲宗二年,分隸東平路。至元五年,復屬濟州。 十六年,隸濟寧路總管府。二十三年,立尚珍署,領屯田四百五十六戶,收子粒赴濟州官倉輸納,餘糧糶賣,所入鈔納於光祿寺。 領四縣:嵫陽,曲阜,泗水,至元二年,省入曲阜。三年復置。寧陽。至元二年,省入嵫陽。大德元年復置。
單州,下。
唐置輝州,治單父。後唐改為單州。宋升團練州。金隸歸德府。元初屬濟州。憲宗二年,屬東平府。至元五年,復屬濟州。 十六年,隸濟寧路。領二縣:單父,縣在郭下。元初與單州並屬濟州。憲宗二年,隸東平府。至元二年,復立單父縣。 三年,還屬濟州,今屬單州。嘉祥。舊屬濟州。憲宗二年,割隸東平路。至元三年,還屬濟州。今為單州屬縣。 濟南路,上。
唐濟州,又改臨淄郡,又改濟南郡,又為青州。宋為濟南府。金因之。元初改濟南路總管府,舊領淄、陵二州。 至元二年,淄州割入淄萊路,陵州割入河間路,又割臨邑縣隸河間路,長清縣入泰安州,禹城縣隸曹州,齊河縣入德州, 割淄州之鄒平縣來屬,置總管府。戶六萬三千二百八十九,口一十六萬四千八百八十五。領司一、縣四、州二。州領七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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