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心濟
‘역사추적’그 두 번째 시간! 풀리지 않는 여러 의문들.
비문 속 주인공 투후 김일제와 성한왕은 어떤 관계인가? 투후 김일제의 나라 투국은 과연 존재했는가? 흉노족은 정말 한반도 남단으로 내려왔는가? 과연 수수께끼 같은 문무왕 비문의 비밀은 풀릴 것인가?
▲국립경주박물관의 문무왕릉비 하단석
1. 秺侯 김일제와 星漢王은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성한왕은 누구인가?
문무왕릉 비문에는 ‘투후 제천지윤 전7엽’이라는 암호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여기서 ‘투후제천지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투후의 자손이라는 뜻.
그리고 ‘7엽’은 일곱 개의 잎사귀, 즉 7대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투후 김일제’의 자손이 7대를 전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15대조 성한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투후 김일제의 자손이 7대를 전하여 신라의 성한왕으로
이어졌다는 말일까?
그리고 과연 성한왕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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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능원 |
2. 匈奴族 문화와 新羅 문화의 類似性.
신라의 문화와 풍습은 북방기마민족 흉노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게
닮았다.
<일본서기>에는 신라를 ‘금은의 나라’로 표현되어 있다.
황금 숭배는 유목 민족의 특징이다.
또 신라 김씨 무덤과 흉노족 무덤양식은 적석목곽분으로 동일하다.
흉노의 근거지에서 발견된 ‘동복(청동 솥)’ 역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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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인물형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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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 |
3. 秺侯 김일제의 나라 秺國은 존재했는가?
중국에서 김(金)씨는 흉노계를 상징하는 성씨와 같다.
중국의 김씨는 대부분 투후 김일제를 시조로 모시는 흉노족. 산동성 하택시 성무현 옥화묘촌 입구에는 이곳이 김일제의 투국이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투국성 유적지에는 김일제를 기리던 투후사가 있었다고 한다.
또 이곳 주민들은 투국성을 김성(金成), 금성이라고 한다. 조림사업이 시작되면서 숲으로 바뀐 이 일대 지하에 투후국의 흉노족이 ‘금성’이라 부르던 성이 있었다.
김일제의 성을 딴 투후국의 ‘금성’과 신라의 수도 ‘금성’ 두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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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성 하택시 투국의 옛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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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라는 이주민이 세운 나라, 그렇다면 흉노족과 관련이 있다는 걸까?
왕망의 신나라에서 사용되던 ‘화천’이 출토된다. 이것이 발견된 지역은 중국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무역로와 거의 일치한다.
중국왕망의 난에 가담했던 투후 김일제의 자손들은 왕망의 피살과 함께
뿔뿔이 흩어진다.
<삼국사기>나 <삼국지 위지동이전> 등 역사서에는 대륙의 정세가 급변할 때마다 북방의 이주민이 한반도 남단 진한 땅으로 이주해왔다는 기록이
여럿 등장한다.
그렇다면 투후 김일제의 자손들도 신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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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
5. 星漢王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문무왕의 15대조는 김알지의 아들 세한이다. 추사 김정희가 비문의 내용을 집대성한 <해동비고>에 보면 문무왕비문에 기록된 성한왕은 바로 ‘김알지’라는 기록이 나온다.
비문의 성한왕에 대한 묘사는 김알지의 설화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분석된다.
성한왕은 바로 신라 김 씨 시조 김알지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에서 이주해온 김 씨가 세력을 형성하고 이주민에 불과했던 김 씨들이 최초의 왕인 미추왕을 배출한다. 문무왕에 이르러서는 삼국을 통일하고 한반도 패권을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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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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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대당전쟁마저 승리한 문무왕. 그의 비문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석탈해가 사라지고 성한왕만이 존재한다.
신라는 이제 김씨 단독 왕국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바로 문무왕릉비문인
셈이다.
신라김씨왕족의 자신감은 신라김씨 시조 성한왕과 더불어 흉노 태자
투후 김일제까지 자신들의 뿌리가 닿음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무왕비문은 신라 김씨가 한반도의 패자로 성장해간 비밀을 담고 있는
고대사의 블랙박스였다. KBS 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