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심제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전략적 동맹을 맺을 1순위국으로 꼽혀
몽골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흉노(匈奴)족’, 서양에서는 ‘훈(Hun)’족으로 알려진 민족이 주축이 되어 건설된 유목민 국가로부터
기원됐다고 한다. 인간을 뜻하는 영어 단어 휴먼(Human)이 ‘훈맨(Hun man)'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칭기스칸의 등장으로 몽골은 세계사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다.
칭기스칸의 칸은 영어로는 Khan으로 표기하지만 실제 발음은 ‘한’에 가까우며 ‘왕’이라는 뜻이다.
칭기스’는 바다라는 뜻의 ‘팅기스’에서 왔는데 ‘우주 또는 세계를 지배하는 이’라는 의미로 발전했다고 한다.
칭기스칸은 인류문화사적으로 보면 인터넷보다 700년 앞서 국제통신망을 건설하여 동서 간 경제, 문화 교류를 촉진하였다.
워싱턴포스트는 1995년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기스칸을 선정한 바 있다.
몽골인들에게 칭기스칸은 진심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최고의 것에만 칭기스칸을 붙인다.
울란바타르 시내 최고급 호텔 이름도 칭기스칸이고, 몽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최고급 보드카 이름도 칭기스칸이다.
중·러 사이 위치한 가장 큰 내륙국가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북쪽 오랑캐들의 침입을 막았지만, 몽골 유목민들에게 중국인들은 옥토와 평원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상대였다.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한국인이 일본인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중국인을 싫어한다.
하지만 개혁·개방의 물결이 일고 있는 오늘의 몽골에게 주변국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도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에 둘러 쌓여있지만 몽골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바다도 없이 끼어 있다.
육로는 막혀 있고 항로도 사실상 러시아나 중국 영공을 거쳐야 한다. 해로는 아예 없다.
몽골은 자원부국이자 지정학적 요충지
몽골은 세계 10대 자원부국이다. 석탄 생산량은 전 세계 총 생산량에 1%에 달하며 개발 가능 지하자원이 80여 종에 달한다.
캐나다 한 광업회사는 몽골 남부에 위치한 톨고이 광구를 개발해 향후 1만 1,000온스의 금과 다량의 구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또 대규모의 석유 및 천연가스의 매장도 추정되고 있다.
정치는 92년 민주공화제로 전환된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어 가고 있다. 외교는 개방형 외교를 펼치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부시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자리 잡은 몽골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미국도 몽골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몽골 역시 이라크에 파병하는 등 과거 사회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다변화된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전략적 동맹 1순위국
몽골에서 한국은 ‘솔롱고스’라고 불린다. 솔롱고스는 무지개라는 뜻이다.
무지개의 나라 한국이다.
일본이나 미국, 중국 등의 국가명은 몽골어로 대개 뜻없이 원어를 그대로 발음하지만,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은 ‘무지개의 나라’라는
뜻을 붙여 부른다.
대륙의 끝, 바다와 마주한 땅, 무지개가 뜨는 동쪽 방향에 위치한 나라이다.
무지개의 꿈을 좇듯 1991년 수교 후에는 많은 몽골인들이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 땅에 왔다.
몽골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몽골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전략적 동맹으로 삼아야 할 1순위국으로 꼽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몽골과 한국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너무도 많다. 몽골반점이 똑같고, 생김새도 유난히 닮았다. 말도 어순이 같다.
몽골 거리에는 우이동이니 하는 행선지가 붙은 중고 시내버스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조랑말은 ‘저러머리’라는 몽골어에서 왔다. 실제로 몽골에서 보는 말은 모두 제주도 조랑말과 똑같다.
우리에게 조랑말은 작고 초라한 느낌을 주지만 저러머리는 튼튼하고 훌륭한 말을 뜻한다. 두 발로 성큼성큼 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안장 위에서는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상태로 활을 쏠 수 있어서 칭기스칸 정복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다리미는 우리의 인두와 발음이 같다.
혹자는 이것이 원나라 시절 끌려온 고려 아낙네가 가지고 온 인두가 역수입된 것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발음이 유사한 말이 유난히 많다. ‘사등’(사돈), ‘바른죽’(바른쪽), ‘군즈’(공주), ‘밤배’(방패), ‘배차’(배추), '만토‘(만두),
‘아브’(아버지) 등등. 장사치와 같은 말의 ‘캄도 몽골어에서 비슷하게 쓰이며, 양주골 할 때의 ‘골’도 몽골어에서는 강이나 골짜기를
뜻한다.
울란바타르는 대한민국의 소도시
울란바타르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도 많다.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남양주’를 말하면 ‘남양주’라고 반문하면서 ‘남양주의 거리’에 데려다 준다.
몽골인 근로자가 유난히 많은 경기도 남양주시와 결연을 맺고 남양주 거리가 생겨났다.
서울의 거리도 있다. 거리에는 우이동이나 구파발 등 행선지를 그대로 붙인 우리 중고 시내버스들이 수입되어 운행이 되고 있다.
택시나 개인 승용차도 눈짐작으로 보아 반쯤은 한국산이다.
비슷한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과 서울의 지명을 붙이고 다니는 시내버스와 택시들. 한국 어느 소도시에 와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영어보다 한국말 더 통해
한국에 가서 취업하고 있는 몽골인들 수는 2만여 명이 넘는다. 전 인구가 260만 명 정도이니, 100명 중 1명이 한국에 취업차가
있는 것이다.
지방을 제외하면 실제적으로 도시에서는 한집 건너 식구 중 한 사람 정도는 한국에서 근로하고 있는 것이 된다.
몽골의 제1외국어는 러시아어다. 중국어를 많이 쓸 것 같지만 국민감정상 별로 많지 않고 오히려 요즘 뜨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택시를 타거나 거리에서 길을 물을 때 영어 보다는 오히려 한국말이 좀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에 가서 일하고 돌아 온
사람, 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이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 본국의 개별 가계나 국가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우리도 몽골의 값싼 노동력의 도움을 받고
있는 측면이 많다.
혼혈인이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몽골인 근로자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무지개의 땅, 기회의 땅
매주 월요일 한국 대사관 앞은 비자를 신청하려는 몽골인들이 장사진을 친다.
현재 2만 5,000여 명의 몽골인들이 ‘코리안 드림’의 꿈을 키우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몽골 전체 인구의 1%에 이른다.
직계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현재 한국에 거주하거나 거주한 경험이 있는 경우를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몽골 대졸자의 초임은 월 10만 원 정도. 그나마 일자리도 흔치 않다.
한국에 나가 있는 몽골 근로자들이 어렵게 고생하며 아껴서 송금한 돈은 가족들에게는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주 소득원이며 동시에
국가 전체로는 주요한 외화 획득의 수단이다.
생김새는 물론 마음 씀씀이까지 닮은꼴
한국인들 또한 몽골인들에 대해서 유별난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한국인과 체질 인류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몽골 사람이기 때문일까?
실제로 몽골에 와서 보는 몽골인들은 생김새나 마음 씀씀이가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
이곳 한국 교민사회가 몽골에 갖는 관심도 각별하다.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고아원 등 자선기관이 열 곳이 넘는다.
이 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을 비롯해 모두 5개의 대학이 한국인에 의해 설립됐다.
이 가운데는 이미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한 대학도 있다.
한국인이 설립해 운영하는 현대식 병원과 한방 병원은 의료 기술이나 시설면에서 이 나라 최고 수준이다.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유·무상 지원 외에도 각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도 활발하다.
사회단체나 개인 등 민간차원의 교류나 협력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국인들보다 한국 드라마 더 즐겨본다
몽골인들은 한국인 보다 훨씬 더 많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즐긴다.
1997년 이 나라에 처음 한국 드라마가 소개된 후 지금까지 몽골 내 5개 TV 방송국 가운데 3개 방송국이 거의 매일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방영하고 있다.
멜로드라마, 가족드라마, 액션물 등 장르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몽골인들의 가슴에 바로 와 닿기 때문이다.
또 언어 체계가 비슷해 번역이 쉽고 우수한 통·번역 인력도 많기 때문이다.
이곳 대학에서 한국학이나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2,500명을 헤아린다.
기회의 땅과 인연을 맺기 위해 한국어 학습에 열심인 것이다.
한국산 제품은 이 나라에서 최고의 상품이며 젊은이들 사이에는 한국 배우나 가수 이름을 모르면 '왕따'를 당할 정도.
한국의 유행은 거의동시에 이곳에 전해진다. 한국 음식의 인기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2004년 '대장금' 방영 이후에 한국 음식점들은 몽골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몽골, "타민족을 수탈하지 않았던 韓, 믿을 수 있다"
- 몽골, 중국의 구애 거절, 한국을 동맹대상국으로 생각
2005년 8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대한민국의 소도시를 연상케 하는 풍광이 연출되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한국산 자동차, 한국어 간판, 한류 스타들의 포스터와 음악, 끊이지 않고 방송되는 한국산 드라마….
몽골 젊은이들은 노천 카페에서 카스 맥주를 마시며 서울로 일하러 간 친구 얘기를 나눴다.
“약 2만5000명의 몽골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일하며 돈과 물건을 보내오고 있어요.
90년 이전에는 러시아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단연코 한국입니다.”(앳띠마·22·몽골 대학생)
택시기사부터 고급 관료에 이르기까지 한국어 한두 마디쯤은 건넬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한국어과에 진학해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최고의 선택으로 여긴다.
아직 몽골에 익숙지 않은 한국인 관광객이라면 과도한 한류 열풍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 하지만 몽골인들은 “수천년간 몽골의
가장 친한 나라는 한국이었다”며 한국인들의 무관심과 몽골에 대한 저평가에 실망감을 내비친다.
“몽골은 한반도를 피붙이 같은 동반자로 여겨왔다.
사회주의를 하던 시절엔 북한과 끈끈한 정을 나눴고, 자본주의로 바뀐 지금은 한국을 파트너로 삼고 싶어한다.
그런데 한국은 몽골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 다.(돌구르마·25·인하대 정치학과 유학생)
택시기사부터 고위층까지 한국어 한두 마디 구사
1990년 수교 이후 교류의 물꼬가 트이면서 몽골에 대한 한국의 관심도 꾸준하게 증가했다.
99년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몽골을 국빈 방문한 뒤 몽골과의 교류액이 급증했다.
2000년 두 나라 간의 교역 규모는 5700만 달러로, 한국은 몽골의 4번째 교역국이 됐으며 그 거래액은 계속 상승 중이다.
600여개의 합작회사가 세워졌고, 한국에서 일하는 몽골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보내는 송금은 몽골 경제의 중요한 버팀목이 됐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y C&C가 몽골의 제2 이동통신사로 몽골의 이동통신 붐을 주도하고 있으며, 몽골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한국 기업의 투자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정부나 대기업의 투자보다는 의료·교육·IT(정보기술)·종교 등 민간분야의 교류가 더 활발한 편. 현재 2000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몽골에 정착해서 몽골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 울란바토르 대학 등 한국인이 세운 5개의 교육기관과
교회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세운 각종 장학재단은 몽골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왜 몽골이 주목받는가 ?
요즘 몽골의 주가는 연일 폭등세다.
과거 열강들이 취했던 몽골 홀대 정책이 점차 약해지고 몽골이 적극적으로 동진 정책을 취하면서, 몽골이 요충지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4대 열강이 앞다투어 몽골에 러브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열에서 빠진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몽골이 주목받는 이유는 첫째,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몽골은 지구상에서 가장 커다란 내륙국가로 러시아와 3480km, 중국과는 4673km라는 장대한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몽골은 오랜 기간 중국과 긴장관계를 형성해왔는데, 이는 중국을 견제하고 싶은 미국의 이해와 맞아떨어졌다.
미-일 동맹은 앞으로 최대 경쟁자가 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요충지로 몽골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몽골이 갖고 있는 막대한 지하자원이다.
전임 대통령인 바가반디가 공식석상에서 “금덩이를 깔고 앉아 굶고 있는 딱한 처지”라고 말할 정도로 몽골은 지하자원이 많다.
세계 8대 자원 부국으로 불리는 몽골은 1000억t의 석탄과 5.4억t의 구리, 고비사막에 매장된 50억 배럴의 석유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원이 개발된다면 몽골은 희망으로 가득 찰 것이다.
몽골의 지하자원 광물 매장량
석탄 1,000억t 구리 5.4억t 몰리브덴 5.4억t 텅스텐 2억t 형석 5,900만t 인광석 24억t 아연 1억t 석유 50억 배럴
몽골, 중국의 구애 거절
몽골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급증하자, 러시아와 중국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두 나라는 몽골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공조를 모색하고 있다.
2003년 6월5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주석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몽골을 택했다.
‘철의 여인’으로 통하는 우이 부총리도 5월26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취소하고 몽골로 달려갔다.
하지만 중국의 구애는 몽골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2억 달러 이상의 저리 차관을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몽골은 “경제가 예속되면 정치 또한 예속된다”며 거절한 것이다.
몽골의 반중(反中) 의식은 뿌리가 깊다. 청나라 때 빼앗긴 내몽골(중국의 내몽고 자치주) 지역은 몽골이 꼭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수복 지구다. 그래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공동 보조를 취해줄 나라는 몽골뿐이라는 평까지 나온다.
이러한 반중 정서가 몽골을 미국 쪽으로 기울게 하는 요소가 된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또 어떠한가. 러시아는 시베리아 및 극동러시아의 인구감소로 고민하고 있다.
이 공백을 중국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몽골이 동진 정책을 펼치면서 이것이 중국의 팽창을 막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적극적인 유화정책 없이는 몽골을 붙잡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했는지 2003년 12월31일 러시아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대(對)
몽골 차관을 98% 탕감해주겠다는 호의를 베풀었다.
몽골은 러시아에 대해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호감을 갖고 있으나 사회주의 몰락 이후 유대감은 점차 엷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륙 몽골, 몽골의 항구 한반도
해양세력 일본의 몽골에 대한 관심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일본은 100여년 전 도쿄대학에 몽골어 학과와 만주어 학과를 세울 정도로 중앙아시아 연구에 매진했다.
이러한 관심은 1930~40년대 만주와 내몽골 지배로 이어졌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히틀러의 슬라브 침공과 마찬가지로 내몽골과 만주 지역을 향후 일본 민족의 터전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래서인지 일본은 정부 차원의 몽골 지원과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광산 채굴권도 상당 부분 일본에 넘어간 상황이라고 한다.
세계 열강들의 몽골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만큼 몽골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증가하고 있다.
몽골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몽골이 앞으로 전략적인 동맹으로 삼아야 할 나라로 4대 강국을 제치고 한국이 꼽히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몽골공산당의 후신인 인민혁명당(MPR) 대통령들(1대 오치바트가, 2·3대 바가반디, 4대 엥흐바야르)과 야당인 민주당도 친한파로
자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유목국가에서 농업국가로의 전환을 꿈꾸는 몽골은, 울란바토르 동쪽 지역에 대한 농업 개발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농업 발전을 바탕으로 시베리아철도를 통해 두만강을 거쳐 동해 쪽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몽골 정부는 한국의 기술과 자본, 몽골의 토지, 북한의 인력이 조화를 이룬다면 북한의 식량난은 물론 몽골과 한국의 경제적
이득까지 챙길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한반도는 몽골의 항구가 될 수 있고, 몽골은 한반도의 대륙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땅을 한국에 100년간 조차하자는 의견에서부터 국가 연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급진적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몽골의 고민은 적은 인구로 인해 넓은 땅 덩어리를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내몽골 인접 지역에 한국이 적극적인 투자를 해 농업이 발전된다면 몽골은 국방과 경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재몽골 한인회 이현재 씨)
몽골 각종 여론조사 “한국을 전략적 동맹으로 삼아야”
그러나 한국의 몽골에 대한 투자를 막는 요소는 적지 않다. 적은 인구와 열악한 경제 인프라, 낮은 교육 수준, 그리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강대국의 견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끝간 데 모를 광활한 토지와 무한정에 가까운 광물자원은 반도에 갇힌 한국에 커다란 유혹이 아닐 수 없다.
“1218년 칭기즈칸 시대에는 ‘두 나라가 영원히 형제가 되어 자손만대로 오늘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는 우호적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1999년 5월 김대중 대통령 몽골 국회 연설 가운데)
7세기 중엽 고구려와 돌궐(옛 몽골)의 강고한 연맹은 당나라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와 두 나라의 동반 몰락을 초래했다.
하지만 똑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몽골리안이라는 동질성과 고구려 시대 이래의 오랜 우호관계, 그리고
근래 한류 열풍으로 다져진 친밀감이 한-몽 관계의 상징어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몽골의 등장이 21세기 동북아 지형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
인터뷰/ 몽골 국립대 국제관계 바르토르 교수
“한-몽 손잡으면 시너지 효과 낼 것”
-한국에 대한 몽골의 기대가 커 보인다.
“몽골은 역사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중국인들의 몽골 진출을 환영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자본과 기술의 도입이 시급한데, 그 일을 해줄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은 다른 민족을 수탈한 경험이 없어 믿을 수 있는데, 4대 강국은 그렇지 않다.”
-몽골과 한국의 연대는 무슨 의미가 있나.
“동북아시아에서는 세력 균형이 중요했다. 한 나라가 패권을 차지하면 주변국들은 협력관계를 모색했다.
칭기즈칸 시대는 잠깐이었고, 몽골 역사의 대부분은 이민족의 압제에 시달렸다.
현재도 몽골의 항구적인 존립은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몽골과 한국은 서로 갖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다. 민족적 혈통으로나 역사적 경험으로나 연대할 이유가 충분하다.”
-강대국 틈에 낀 몽골의 생존 방법은 무엇인가.
“줄타기 외교로 갈 것이다. 몽골은 핵무기 같은 군사력으로 생존할 수는 없다.
문화가 꽃을 피우고 민족적 정체성이 확립된 나라와 민족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몽골의 문화는 중국과 다르고, 수준 또한 높기 때문에 한국적 모델을 지향하면 성공할 수 있다.
환경을 보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몽골의 화두다.”
-미국이 몽골에 대한 구애의 손짓이 뜨겁다. 미군 기지 건설 논란이 있었는데.
“근대 이후 몽골은 러시아에 기대 왔다. 하지만 더 이상 러시아는 몽골의 생존을 보장해줄 수 없다.
몽골이 원하는 것은 군사 연대가 아닌 기술과 자본이다.
만일 몽골에 핵이 들어온다면 중국과 러시아의 협공으로 국경이 폐쇄되고 나라가
없어질 수도 있다. 다행인 점은 몽골 헌법은 타국과 군사동맹을 맺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몽골은 UN의 이념대로 비핵화 지대로 남을 것이다. 평화만이 몽골이 살 길이다.”
-한-몽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있을까.
“광활한 토지를 가졌지만 농사지을 사람과 기술이 부족하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인력이 결합한다면 한반도와 몽골은 함께 번성할 수가 있다.
몽골은 사회주의를 벗어난 젊은 국가다. 몽골을 주목해달라.
한국인에게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출처: 야후 그라시아(운마천도)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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