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근세조선

허준의 동의보감은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보다 앞선다.

설레임의 하루 2009. 2. 25. 10:14

*출처:카페-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心濟

 

 

 

 

 

 

동양의학은 중국것이 아니라  시원을 한민족 최초 왕조 고조선으로 부터 부여로 그리고 고구려로 고려로 전승되었다. 

동양의학의 종주국(?)이라 자처하는 중국인들..

관련 중국사서에서는 宋 나라에서 지은 <황제내경> 그 자체도 고려에서 전해준 것임을 알게될때 동양의학 그 원류가 어디인지는

명약관화 하다. 

중국이 자랑하는 이시진의 <본초강목>도 허준의 동의보감 보다 편찬년도가 50여년 정도 뒤진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韓方 이라는 단어에 몹시 신경질적이다.

그들의 의학인 漢方을 한국인들이 훔쳐갔다고. 적반하장이 한두가지 이랴.. (운영자)  

 

 

『동의보감』(보물 제1085호)은 선조 30년(1597) 임금의 병과 건강을 돌보는 어의 허준(1546∼1615) 선생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학서적을 하나로 모아 편집에 착수하여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의 의학실력을 동양 여러 나라에 드러나게 한

동양의학의 보감이다.

의가들이 반드시 읽어야할 방서로서 널리 알려진 책이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출판이 계속되어 귀중한 한방임상의학서가 되었다.


동의보감


조선 중기의 어의 허준許浚 등이 선조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학서인 한의학에 관한 문헌과 임상 체험을 바탕으로

치료방을 한데 모아 편찬한 의서이다.
동의보감의 서명書名은 이 책의 집례集例에 나타내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동방에 있고 의약의 연구가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는

즉 우리나라의 의학는 동의東醫라고 해야 옳을 것이며, 또 감鑑이라 함은 만물을 밝게 비쳐서 그 형체를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이 책을 펼쳐서 살펴보면 길흉과 경중輕重이 밝은 거울과 같이 밝다고 하여 동의보감東醫寶鑑 이라고 하였다.


내의원목활자로 인쇄하여 25권25책으로 완성하였는데 1·2책은 세부목록이고 3책부터는 본문인데 표지 이면裏面에는 ‘만력사십이

萬曆四十二(1614)년年 이월일二月日 내사동의보감일건오대산상좌승지신이內賜東醫寶鑑一件五臺山上左承旨臣李(수결手決)’이라

내사기가 있다.

권두卷頭에는 “만력삼십구년萬曆三十九年(1611, 광해군光海君3)신해맹하이정구봉교근서辛亥孟夏李廷龜奉敎謹序”의 서문에

이어서 “만력사십일萬曆四十一(1613)년年 십일월일十一月日 내의원봉교간행內醫院奉敎刊行 감교관통훈대부행내의원직장신이희헌

監校官通訓大夫行內醫院直長臣李希憲 통훈대부행내의원부봉사신윤지미通訓大夫行內醫院副奉事臣尹知微” 라 하여 1613년(광해군

5)에 내의원에서 간행한 간기와 감교관으로 이희헌과 윤지미가 참여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각 권의 권수제 다음에는 “어의충근정량호성공신숭녹대부양평군허준봉교찬御醫忠勤貞亮扈聖功臣崇祿大夫陽平君許浚奉敎撰”

이라 적고 있어서대표저자가 허준 임을 보여주고 있다.

동의보감 편찬경위


동의보감 편찬경위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전화를 입은 난민과 역병疫病으로 곤궁과 질병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서적들이 많이 약탈당하고 병화로 소실되어 사용해야 할 의서 마저 희귀하게 되었다.

백성의 질병 치료의 효과를 높힐 것을생각하고 전란 후에 귀중한 서적들의 복인復印과 함께 질병을 구료救療할 간편한 의방서醫方書

가 필요하게 되자 선조는 1596년선조 29)에 모든 의서를 총 정리 하여 알기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편찬할 것을 허준에게 명하였다.

허준은 왕명에 따라 유의儒醫인 정작鄭 과 태의太醫인 양례수楊禮壽, 김응택金應鐸, 이명원李命源, 정례남鄭禮男 등과 함께 내의원에

편국을 설치하고 그것을 주관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듬해 정유재란으로 여러 의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편집은 일시 중단되었다가 난이 끝나자 선조는 다시 허준에게 명하여 계속해서

편집하게 하고 내장방서內藏方書 500권을 내주어 고증하게 하였다.

전란 중에도 중단하지 않고 전후 15년에 걸쳐 전심전력을 다하여 1610년(광해군 2)에 동의보감 25권을 완성하자 내의원에 명하여

간행하여 널리 배포토록 하였다.

1613년 내의원에서 간행된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동의보감의 내용

책의 구성은 목록이 상하 2권이고 허준의 집례集例와 역대의방歷代醫方이라 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의서 총 86종의 서명과 저자

및 간행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동의보감을 편찬할 때에 인용한 문헌들이다. 그리고 신형장부도身形藏府圖라 하여 인체의 오장육부 등의 구조도와 그 해설이 있다.

본문은 내경편內景篇 4권, 외형편外形篇 4권, 잡병편雜病篇 11권, 탕액편湯液篇 3권, 침구편鍼灸篇 1권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의 5대 강편綱篇아래에 질병에 따라 항項을 열기하고 각 항의 류를 다시 목目으로 나누고,

항목의 아래에는 그 항목에 해당하는 병론과 방약을 채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출전도 밝혀져 있어서 각 병증에 관한 처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각 병증에 따르는 단방과 침구법을 부기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경험방을 붙이기도 하였다.


허준이 병의 증상과 처방을 밝힐 때마다 그 인용문헌을 문장 첫머리에 기록하거나 아니면 문장 끝에 기록하고 있다. 인용서

기재방법은 완전서명도 있지만 거의가 약서명이며 저자의 이름이나 자 혹은 호, 그리고 여러 문헌에서 인용했을 경우 “諸方” 이라

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인용출처를 표기하였다.

인용된 문헌은 수·당이래 명초에 이르는 중요한 고전 의방서들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내경편에는 신형身形·정精·기氣·신神·혈血·꿈夢·성음聲音·언어言語·진액津液·담음痰飮·오장육부五臟六腑·간장肝臟·심장心臟·비장脾臟·

페장肺臟·신장腎臟, 담부膽腑·위부胃腑·소장부小腸腑·대장부大腸腑·방광부膀胱腑·삼초부三焦腑·포胞·충蟲·소변小便·대변大便등 26개

분야의 내과 질병의 치료 방법을 열거하였다.

 

외형편에는 머리頭·얼굴面·눈眼·귀耳·코鼻·입과 혀口舌·치아牙齒·목구멍咽喉앞 뒷목頸項·등背·가슴胸·젖乳·배腹·배꼽臍·허리腰·옆구리

脇·피부皮·살肉·맥脈·상牀·힘줄筋·뼈骨·손手·발足·모발毛髮·전음前陰·후음後陰 등 26개의 외과분야로 편성되었는데 외과적 질병으로

인체에 발생하는 각종 질병의 원인과 증상을 설명하고 치료의 원리와 방법을 담았다.

 

잡병편에는 천지기운天地運氣·60세 운기運氣의 주객主客과 민병民病·병을 살핌審病·변증辨證·진맥診脈·용약用藥·토함吐·땀汗·설사下

등 진단법으로부터 풍風·추위寒·더위暑·습濕·건조燥·화火·내상內傷·허로虛勞·곽란 亂·구토嘔吐·해수咳嗽·적취積聚·부종浮腫·창만脹滿·

소갈消渴·황달黃疸·학질 虐·온역瘟疫·사수邪崇등 내과질환과 종기癰疽·여러 부스럼諸瘡·여러 상함諸傷·해독解毒·구급救急·괴질怪疾·

잡방雜方·여러 법諸法 등 외과질환들을 함께 다루었고, 그밖에 부인과·소아과가 따로 첨부되어 있어 각 병상들을 그 증후에 따라

배열하였다.

 

탕액편에서는 권두의 서례에서 채약법採藥法·건약법乾藥法·삼품약성三品藥性·수제법修製法·제약방법制藥方法·탕산환법湯散丸法·칠방

七方·십이제十二劑·근양승두斤兩升斗·자약법煮藥法·복약법服藥法·오미약성五味藥性·기미승강氣味升降·약주담그는 방법 등의 사례를

기록하였다.

수부水部·토부土部·곡부穀部·인부人部·날짐승부禽部·길짐승부獸部·물고기부魚部·벌레부蟲部·과일부果部·채소부菜部·풀부草部·나무부

木部·옥부玉部·석부石部·금부金部등 약물에 대한 총론과 약재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침구편에는 침술의 이론과 함께 약물학 및 침구술에 관한 일반적 지식이 거의 포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침봉의서인 동인경銅人經이 주로 인용되었다.

 

 

동의보감의 가치


동의보감은 우리나라 한의학에 귀중한 자료로서 의학사에 필수적인 문헌 중의 하나이며 초간된 이후 그 가치가 알려지자 조선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 전래되고 간행되어 17세기이후 동양에서 널리 활용된 의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계속하여 간행이 거듭되었는데 초간初刊된 이후에 완영完營, 영영嶺營에서 간행되고 1814년(순조 14)에 갑술

내의원 교정 영영개간본嶺營改刊本과 완영중간본完營重刊本이 있으며 중국은 건륭乾隆·가경嘉慶·광서판光緖版, 민국상해석인본

民國上海石印本, 대만영인본이 있고, 일본은 1724년 경도서림京都書林 초간본과 1799년 대판서림大阪書林 훈점訓點 재간본이

있다.

우리나라의 의학실력을 동양 여러 나라에 드러나게 한 동양의학의 보감으로서, 중국이나 일본에도 큰 영향을 준 의서이며, 의가들이

반드시 읽어야할 방서로서 널리 알려진책이라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출판되어 귀중한 한방임상의학서가 되었다.

조선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