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조선(한단고기)

[스크랩] 尙書大典 <舜典>에 숨겨진 天子國 古朝鮮의 실체(Truth of Old Chosun described by chinese historian in Shundian)

설레임의 하루 2012. 7. 27. 00:45

 

尙書는 공자가  요순임금의 덕행을 모아 엮은 역사책이다.

필경 공자시대에는 종이가 귀해 죽간으로 그 기록을 해 놓았을것이고

소위 그들의 선조라 여긴 요,순 임금에 대한  덕행과 치세가 태평성세를 이루게

하였다는 기록물이다.

 

실제 상서대전에는 요순의 치세가 기록되어 있는데 요,나 순임금이

고조선 단군께 朝覲한 기록이 후세 중국 사가들에 의해서 교묘히 변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을 사마천이 인용하면서 곡필을한 사람중에 하나였을 것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곡필아세로 그들의 민족적 열등의식을 이런식으로 숨기려 하였으나

이땅의 성리학자들이나 근세의 한학자들도 한글로 번역하면서 이런 사항들에

대한 검토나 비판없이 그대로 중국사가들이 해석한대로 지나쳤다는 것이다.    

 

상서순전의 귀절을 본다 

 

-----------

尙書 舜典  

-----------

 

歲二月東巡守至于 垈宗柴望秩于山川  肆覲東后 協時月正日 同律度量衡

세이월동순수지우 대종시망질우산천  사근동후 협시월정일 동률도량형

 

순임금이 이해 이월에 동쪽을 순행하여 태산에 이르러 제사를 지내고 동쪽의 제후를 알현하고 ,

철과 달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 잡았으며 악률과 도량형을 일치시키고

 

脩五禮五玉三帛二生一死贄  如五器卒乃復.

소오례오옥삼백이생일사지  여오기졸내복.

 

오례와 오옥(홀,규,종 등...) 세가지 비단,두가지 산 짐승, 한가지 죽은 짐승 및 예물을 정리하였다.

다섯가지 옥기는 예가 끝난후 돌려 드렸다. 

 

이문장들에서 우리는 본인이 자주 올렸던 당시보다 먼 이전 아사달(홍산)으로부터 유래된 옥기가

얼마나 중요한 왕국의 유물인지 알게된다. 그런데 글내용을 보면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띈다.

 

 

 

 

肆覲東后(사근동후)라는 귀절이다.

이 귀절을 변조한것으로 보이는데 后를 天子로 해야 맞는 것이다.

글 그대로라면 순임금이 동쪽을 순행하여 보다 낮은   에게 다(뵈었다)라는 말은

성립될수 없다.

 

舜이 중국인들이 말하는 제(임금)라면 문귀의 東后는 동후가 아니라 바로 天子인것이다.  

이문귀가 고래로 曲筆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며

이러한 내용은 바로 한단고기의 <단군세기>중 순임금이 단군을 뵈었다는 4 대 오사구 단군 기록과

시간상으로 일치하는 것이다. 

 

당시 신정시대에는 옥기로 만들어진 홍,종,규 등 궁중에서 사용되는 천자의 상징과 도량형이

천자국 고조선과 邦國이 서로 일치하는지 확인하여 일치시키고

천문현상인 역법을 배워가며 신성한곳(소도)에서

하늘과 상국의 천자에게 예를 올렸다는 증거가 된다.

 

 

 

 

1911년제작 민국지도에 등장하는 곽주의 태악산이 바로 고대의 태산이다.  

 

 

둘째로, 지역명인 태산이 나오는 아랫 귀절을 분석해본다.

 

歲二月東巡守至于 垈宗柴望秩于山川 

세이월동순수지우 대종시망질우산천

순임금이 이해 이월에 동쪽을 순행하여 태산에 이르러 제사를 지내고...

 

요와 순은 중국사서에도 현 하남성지역에서 존재했던 전설에서 역사로 증명된 임금들이다. 

요와 순 등은 후에 潞지역(현 산서성 남중부)에서 생을 마감했다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이들이 중원에 있었다 하더라도 글로 보아 그들은 하남성 서부 혹은 섬서서부 

황하접경지역에 있었던 나라의 왕들로 보아야 된다는것이

바로 그들이 東巡 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왜냐하면 동순하여 太山에 이르렀다는 그 태산은 현 산동 태산이 아님이 추정된다.

산서남부 혹은 하남북부지역에 있었던 요와 순이 매우 먼 길을 순행하여

산동 태산에서 천자인 고조선 임검을 뵈었다는 말은 성립되기 힘들다. 

 

따라서 만부,하북과 산서를 주강역으로 하는 천자인 고조선 임검을

산서중부 太岳에서 요임금이  알현을 했을것이라는게 더 합리적 추론이다.

그렇지 않다면 산동 인근에 고조선이 존재해야 되고 태산에서 천자를 뵈었다는 내용이

억지스럽게 다가올것이다.

 

위의 중공 그들의 역사지도를 보면 이해가 쉽다.

 

결국

상서는 순임금이 상국인 天子國인 고조선 단군께 朝覲 (조정으로 찾아뵙고 알현하다)했다는

반증이다. 

이래서 수천년간 역사는 서토족 그들의 열등감으로 곡필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고려와 조선의 사대부들과 학자들은 후손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묻고싶다.

 

 

운영자 심제 씀.

    

출처 :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