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心濟 2006.02.07. http://cafe.daum.net/dobulwonin/GGII/2
한민족의 문화원류는 만주 <홍산문화>와 관련이 있다. 韓民族이라고 일컬어지는 현재의 우리는 고대로부터 여러 민족이 혼합되어 혈연을 형성하고 초기문화의 틀을 서로의 도가니에 부어 융합해 발전시켜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적어도 30년까지 우리는 단일민족 백의민족이라는 제국주의시절의 프로파겐다를 외우고 암송하였으며 유구한 역사 5000년동안 4.7년마다 침략을 받았어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끌어온 위대한 민족이라고 세뇌되어 왔으며 근간에도 역사의식이 모자라는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자리에는 한두명 어김없이 위와같은 이야기를 지껄이는 친구들도 있다. 이민족의 문화를 수용하고 이민족의 좋은 형질을 선택적으로 이어 받는것이 그 종족의 majority를 살려가는 길이다. <잡종강세>는 어김없이 인간사에도 적용된다. 지나족이 자랑하는 다양한 문화는 바로 잡종들이 한지역에 얽히고 섥혀서 만들어낸 잡종강세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대하고 위대한 한족의 문화라고 치켜세운다.. 바로 약자였음에 주어진 기회에 <허장성세>하는 전체주의의 프로파겐다이다. 문화유적을 발굴할당시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양자강유역의 문화와 황하강유역을 따라 발달한 문화로 나뉘는데 지나당국에서는 양자강의 그것과 황하강의 그것이 발달하는 시점이 거의 같다고 하지만 같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바로 현 지나공산당을 이끌어가는 대다수의 핵심 인원들이 양자강유역 출신들이기 때문에 이에대한 전체주의적 프로파겐다를 그대로 믿는것은 편안한 마음을 주질 않는다 학문적인 어프로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연히 문화의 루트를 보면 서북지역에서 동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의 띠고리가 이루어지고 ,황하의 원류지역인 섬서성에서 양자강으 로 이루어지는 동남문화벨트로 되어 있다.
즉 대문구문화의 후계자인 산동용산문화가 대륙최초왕조인 殷(商),周 의 모태가 되었다.!!! 발견. 홍산문화는 북방 지구의 신석기문화 중(안)에서 중요한 문화이다. 여기서 말하는 북방 지구란, 동북 3성(요녕, 길림, 흑룡강), 내몽고자치구 및 신강(위구르) 자치구를 가리킨다. 홍산문화는 1935년에 발견되었지만, 채도와 세석기가 공존하는 신석기시대 문화가 長城 以北에서 발견되었던 것에 주의해, 1954년에 紅山文化 라고 명명되었다. 이 문화를 발굴하므로 인해서 지나는 황하 중심 문화 전파론을 지양하고 이른바 '다중심문화론'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산동반도에서 발견되는 북신문화-대문구-용산문화가 바로 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까지 나오게 되었다. 주장하였던 <이하동서>설의 주인공인 夷가 바로 고조선인이거나 그 선조였다는 이론으로까지 확산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기존의 고조선의 중심이 평양으로 주장하는 학자와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문화는 또한 한단고기를 중심으로 하여 꾸준히 강단 사학계를 한반도 중심의 식민사관이라고 비판했던 재야사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이미 고대국가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까지 되었다.
6000~B.C.5000)를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매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홍산문화는 앙소문화의 채도와 이전단계의 연속고선문계 토기와 세석기등을 융합하여 한단계 발전하여 전개되었는데 후에 이 지역 하가점하층문화에 연결되고 대륙의 황하유역과 산동반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또한 B.C.4500년경의 이지역 대문구문화와도 직접적인 연원관계에 있다.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積石塚-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石棺墓-돌널무덤)가 대능하상류지역 < 요녕성 우량하유적>에서 발굴되었다.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분야가 묘장법인데 죽은 사람을 장례치르는 의식이야말로 오랜기간 변하지 않는 그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지나의 경우 殷 (나라)이전에는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고 있고, 주대(周代)에 들어와서야 나무로 곽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한다.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화로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 그래서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돌을 이용하여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이 고조선 이후 夫餘, 高句麗 에도 계속하여 전승되는 고유의 산물이기도 하다 벌이며 하북과 산동일대를 개척하여 청구국을 세웠다는 기록은 (사마천의)[사기]에 더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홍산문화 이후 하가점하층문화(B.C.2000~B.C.1300)가 그 지역에 보다 광범하게 확산되어 등장하는데 홍산문화는 하가점 하층문화로 이어졌고 하가점하층 문화는 바로 고조선의 문화였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더구나 소하연문화에 이어지는 하가점하층문화, 구체적으로 풍하 (豊下)문화에서는 고조선의 건국연대보다 조금 앞서는 서기전 2천4백년경으로 보이는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출토된 유물을 보면 화살촉, 칼, 창 등도 발굴되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기록의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 요동, 요서일대에 발굴된 이 청동기 유물은 황하유역에서 발굴되는 청동기 유물보다 연대가 훨씬 빨라 중국 동부지역에 발견되는 청동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 되기까지 한다.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로 보았었는데 <홍산문화>를 발견한 이후로 이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의 주인공으로 홍산문화★ 를 들고 있다. 동이족이 한민족의 선조였다는 근거가 된다. 또한 북신문화-대문구문화-용산문화-악석문화로 이어지는 산동문화와 흥륭화문화,신락문화-홍산문화-하가점하층문화(풍하문화)로 이어지는 요령문화의 주인공이 韓民族의 先祖 가 되는 것이다 >>> 밝히기를 꺼려하고 전백찬 같은 지나학자의 일부가 사적상에 보이는 辰國(고조선?)이 동이족의 중심지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지나학계가 인정하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 동이족이 과연 <고조선인>이냐 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기원도 그곳에서 발생하여 한반도로 이주를 해왔다는 이론이 점차로 신빙성을 더해 가고 있기 때문에 홍산문화의 주인공 나아가서 중국의 문화의 중요한 획을 그었던 세력이 누구냐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있게 되었다. 이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것을 떠나서 분명한 것은 이 문화가 고조선을 건국하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북방지역에서 발견된 문화는 실제로 현재 용산문화,감숙성,청해성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고 추정이 된다.왜냐하면 같은 문화대가 형성이 되고 동일한 유물들이 상호보완되어 발견되기 때문이다. 판단되기 때문이다.
도불원인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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