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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파괴한 석굴암, 원형복원해야

설레임의 하루 2011. 12. 16. 00:28

*출처:역사복원신문    

                                                            

 

 

 

 

일제가 파괴한 석굴암, 원형복원해야
 
역사복원신문 기사입력  201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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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한 불국사와 함께 전생의 부모를 위한 석불사를 세웠다[1]는 기록이 있어서 불국사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점을 참작하여 석불사가 현재의 석굴암으로 여겨지고 있다.

 석불사에는 신림(神琳)·표훈(表訓)의 두 성사(聖師)를 각각 청하여 거주하게 하였다 한다.
그 뒤로는 기록에 등장하지 않다가 조선 중기 이후로 중수하거나 방문한 기록이 남아 있고, 정선은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일제의 훼손
일본의 학자들이 1907년 우연히 석굴암의 존재를 전해 듣고 그들이 최초로 발굴한 것으로 오인, 석굴암 전체를 분해하여 반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으나, 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무마되기도 하였다.
일제는 석굴암이 훼손되어 무너지기 쉬운 위험한 상태라 판단, 1913년 ~ 1915년에 모두 해체하여 돌 사이와 천정 바깥쪽에

시멘트를  발랐다.

그 뒤로 물에 잠기는 현상이 발생하여 1920년, 1920년에 중수를 시도하였으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처음 해체·복원한 뒤로

원형이 훼손되었다.
당시,일제가 석굴암을 발견했을때는 보존불상에는 부처의 이마의 솜털을 표현하기위해 보석이 박혀있었으며, 바닥을 차갑게해

습기를 아래로 모이게 하기위한 감로수가 흘렀다.

 

일제는 보석을 훔쳐가고, 또한 신라인들의 지혜를 모르고 감로수를 석굴암 밖으로 빼돌려 버린다.

일제는 이를 복원공사라 하며 끝마쳤다.

그러나 시멘트를 바르며 환기구멍들을 모두 막아버리고 감로수를 밖으로 빼돌렸기에 석굴암에 습기가 끼기 시작해 석굴암 벽면에

물이 맺히고 이끼와 곰팡이가 끼기 시작한다. 일제는 이를 방지하기위해 벽면을 부수고 유리창을 설치했으나 상태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광복후,1960년대 한국정부는 석굴암을 복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위에 시멘트를 더 덧발라버린다.

그후 석굴암 벽속에 온풍기와 에어컨을 설치해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고,겨울에는 온풍기를 틀어 습기조절에는 성공하였으나

기계의 소음때문에 석굴암에 미세한 금이 가고있는 상태다.

구조
굴내(窟內)는 둥근 평면이며, 천장은 궁륭상(穹隆狀, 반구형 또는 아치형) 석굴을 짓고 위에 흙을 덮은 것으로 동쪽을 향하였고,

좌우의 너비 약 6.7미터, 전후 약 6.6미터, 입구의 넓이 3.35미터이며, 그 앞에 장방형의 전실(前室)이 있다.

석불사 본존불인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은 흰 화강석에 조각한 것으로, 높이 약 3.4미터, 석굴 중앙의 연화좌(蓮花座) 위에

부좌(趺坐)하였고, 수법이 정교하며 장중웅려(莊重雄麗)한 기상이 넘치는 매우 보기 드문 걸작이다.

본존 뒷벽에 반육각(半六刻)한 십일면관음보살상(十一面觀音菩薩像)의 원만한 자태는 신라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석굴 벽면에 십나한(十羅漢)·범천(梵天)·제석천(帝釋天)을 반육각하였고, 벽의 윗부분에는 10개의 불감(佛龕)을 만들어

그 속에 1체의 유마거사상(維摩居士像)과 7체의 보살상을 안치하였다.

 

그 중 두 개만은 지금 비어 있는데, 대한제국 때 일본 사람이 반출하였다고 전한다.

천장은 궁륭상(穹隆狀)으로 되었고 중심에는 연판(蓮瓣)을 새긴 둥근 돌로 눌러놓았는데, 그 교묘한 구조와 우아한 조각은 놀랄

만하다.  

입구 비도(扉道)의 좌우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각 2개씩 반육각하였으며, 그 앞 전실 양쪽 벽의 인왕(仁王) 및 팔부신장

(八部神 將) 은 내부의 것에 비해 그 수법이 정교하지 못한 듯하다.

즉, 내부에는 여러 불상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는데,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제자들의 입상이, 비도 양쪽으로는 사천왕상이,

그 바깥쪽에는 금강역사가 놓여 있다.

본존불 윗쪽으로는 10개의 감실이 있는데, 그 가운데 8개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기사입력: 2011/08/30 [18:02]  최종편집: ⓒ 역사복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