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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라(新羅) 진덕여왕릉(眞德女王陵)은 중국 서안(西安)에 있다.

설레임의 하루 2011. 12. 12. 00:05

 

중국 서안(西安)에 있는 신라 진덕여왕릉(眞德女王陵).

 

북송(北宋)사람이었던 송민구(宋 敏求,1019년-1079년)가 편찬한 장안지(長安志)라는 고서가 있다.
내용은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성(현 서안)과 임동,보계,삼원일대 전반의 지리와 지명 성,건축물,능묘,묘원등을 기록한 것이다.
총 20권으로 그 중 3권(상,중,하권)은 부본(附本)으로 원(元)나라 사람인 이호문(李好文)이 편찬한 장안지도(長安志圖)가 포함되어 삽화의 역활을 하고 있다.

이 장안지는 초간후 명대(明嘉靖11年,1532年)에 장민(張敏)과 청대에 필원(畢沅, 1730-1797)에 의해서 교정되고 5권으로 통합되어 재발간되었었고 마지막으로 청말(光緖17,1891년) 조언약(趙彦若)이 서문을 쓴

신교정장안지(新校正長安志)라는 명으로  사현강사(思賢講舍)에서 출간되었는데 이 신교정장안지는 필원이 교정한 것을 재간한 것이다.

송민구가 찬한 원본을 구해보려 애썼으나 실패하고 두 번에 걸친 교정과정에서 얼마만큼 변질 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신교정장안지 제1권에 포함된 장안지도(長安志圖)의 상권(上券)부분에 수록된 지도들 중, 참고할 만한 두 장이 눈에 띈다.

 

 당소릉도 상(唐昭陵圖 上) -소릉의 좌측권역 (이하 이미지 확대 :클릭)

 

 

당소릉도 하(唐昭陵圖 下) -소릉의 우측권역

 

 

소릉도설(唐昭圖說)일부 -  (14개 번국왕의 석상에 관한 기록으로 하단부 관련기사 참조요.)

 

 

위 지도의 좌측 최상단엔 신라진덕묘(新羅眞德墓)가 있다.

이걸 어찌 풀어야 하나. 그 다음 왕이 김춘추..........과연 무슨일이 있었길래..........
당 건릉(建陵)의 동북쪽으로 보이는데, 신라의 진덕이라면 진덕여왕(28대,A.D.647) 밖엔 없으니 진덕왕릉이 틀림없는듯 하고 미쳐 다 살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이 들 많은 묘중에 신라와 관계있는 인물이 더 있을듯 하다.

 


진덕왕릉에 대한 네이버 백과의 기록을 빌면 아래와 같다. 

 

진덕왕릉 (眞德王陵)
경북 경주시 현곡면(見谷面) 오류리(五柳里)에 있는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의 능묘.
지정번호  사적 제24호
지정연도  1963
시대  652년경 조성
크기  면적 9,480㎡
종류  능 
 
사적 제24호. 1963년 지정. 면적 9,480m2. 652년경 조성. 구릉의 중복에 위치하며, 봉토 밑에는 판석으로 둘레돌[護石]을 돌리고 판석과 판석 사이의 탱석(撑石)에는 방향에 따라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조각되었다. 판석과 둘레돌 위에는 장대석(長大石)으로 된 갑석(甲石)이 덮여 있으나, 원래의 돌이 아닌

것도 있다. 둘레돌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석(薄石)을 깔고 그 밖에 난간을 세우는 형식이었으나, 지금은 없어진 부재(部材)가 상당히 많다. 이 밖에는 다른 표식물(表飾物)이 없고, 능 앞에 따로 축대와 통로를

근년에 설치하였다.
기록에는 “진덕여왕이 왕위에 있은 지 8년에 죽으니, 시호를 진덕이라 하고 사량부(沙梁部)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는데, 이 사량부는 경주시의 남쪽 흥륜사(興輪寺) 터가 있는 일대로 추정되어 현 지점인 현곡면과는 정반대의 위치가 된다. 또, 십이지신상의 조각 수법도 경주에 남아 있는 8기의 능묘 가운데서 가장 빈약하여, 진덕여왕의 능묘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진덕여왕 관련기사

 

<신라 진덕여왕 석상 조각 당태종 무덤 주변서 출토>--(2006.07 한겨레 신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143833.html

 

 

<당 태종 능 주변서 '신라낙랑군왕' 명문 조각상 발굴>--연합뉴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755537§ion_id=001&menu_id=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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