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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발해 황후 묘는 왜 공개되지 못하나?

설레임의 하루 2011. 9. 4. 02:02

추적! 발해 황후 묘는 왜 공개되지 못하나?  
방송일: 20110616  


  추적! 발해 황후 묘는
      왜 공개되지 못하나?


 

▣방송 : 2011. 6. 16 (목) 22:00~22:50 (KBS 1TV)
▣연출 : 임현진 PD
▣글 : 박민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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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중국 길림성에서 발견된
순목황후 묘비

베일에 싸인
발해 역사의 비밀을 풀 결정적 단서,
묘비에 새겨진 141자(字)!

그러나 중국 당국은
발굴이 끝나고 6년이 지나도록
묘비의 사진과 비문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 3D로 재현한 순목황후 묘비

 

중국의 발해 유적지 원천봉쇄! 단 한 순간도 취재는 허락되지

않았다.

▲ 취재진을 위협하는 현장 책임자

▲ 육정산 비석. 접근이 쉽지 않다.

발해 황후의 무덤이 발굴된 곳은 중국 길림성 용두산(龍頭山) 고분군.

지난 5월, KBS 역사스페셜 취재팀이 용두산을 찾았을 때 현장은 공사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제작진이 다가서자 책임자라는 한 사람이 날카로운 공구로 위협하며 취재진을 막아섰다. 다른 발해 유적지에서도 실랑이가 이어졌다.

현재 발해 관련 모든 유적지는 언론사는 물론 모든 사적인 촬영까지

차단하는 상황. 취재는 쉽지 않았다.
취재진과 함께 발해의 수도 동경의 궁궐지였던 훈춘시(琿春市) 팔련성을

찾은 윤재운 교수는 “올해로 네 번째 방문인데, 표지판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학자들에게마저도 철저하게 접근이 금지된 발해 유적지-,
중국이 이토록 발해 유적지의 접근을 차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내막을 집중 취재했다.

 

발해황후 묘비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 중국 사회과학원 발간 잡지

“고고”

▲ 보고서의 “순목황후” 언급 부분

한국 학자들이 발해 황후 묘의 발굴 소식을 접한 때는 지난 2009년.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발간하는 잡지 '고고(考古)'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극히 간략한 내용만을 담고 있어 발굴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발해의 정치체를 밝혀줄 매우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발해국 순목황후는 간왕의 황후 태씨(泰氏)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황후의 묘지 발굴. 황제의 부인인 ‘황후’ 묘의 발굴은

발해가 황제의 나라였음을 웅변한다.

즉, 자주독립 국가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발해를 당의 지방정권으로 보는 중국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다. 하지만 이 내용은 비문에 새겨진 141자 중 극히 일부! 중국은 지금까지

전체 내용은 물론 묘비의 사진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취재진은 발굴 담당자와 접촉을 시도했다.

 

발해 상경성 제 2궁전지 - 19칸 VS 당나라 장안성 최대 건물

함원전 - 11칸

          ▲ 상경성 복원조감도.
            당나라 궁궐과 형태가 유사하다.

현재 중국은 외부의 접근을 차단한 채 단독으로 주요 발해 유적지 발굴

작업을 실시, 발해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가장 유력한 발해 유적지는 상경성(上京城).

중국은 지난 2006년 “흑룡강성 당 발해국 상경 용천부 유적 보호 조례”를

통과시키고 유적 정비작업을 시작해 현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또한 지난 2009년에는 발굴 성과를 모은 상경성 발굴 보고서도 발간되는

등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임박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상경성은 756년, 발해 문왕 대흠무가 설계한 궁궐이다.

지금까지 상경성이 중국의 장안성을 모방했다는 것이 중국학계의 정설.

그런데 지난 2009년 제 2궁전 발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상경성 제 2궁전지가 전면 19칸에 달하는 큰 규모로 나타난 것이다.

당나라 장안성의 최대 건물인 함원전은 11칸에 불과하다.

중국 측의 주장대로 발해가 당의 속국이었다면 일개 지방정권이 황제보다 더 큰 궁궐을 가진 것이 된다.

중국 내 어떤 궁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다.

그런데 상경성 제 2궁전지 19칸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고구려

안학궁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의 교과서 왜곡, 이미 반세기 전에 시작됐다.

▲ 중국 역사 교과서

▲ 발해를 비롯한 소수민족사를

다룬 제 5과 - 화동위일가


“발해는 중국의 소수 민족이 건설했으므로 중국사에 포함해야 한다. ”
         -리칭, 인민교육출판사 중국역사 편집실 편집인


중국은 발해를 당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고 자국사의 한 단원으로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다.

이는 고구려가 세계사에 포함된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출판사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나만의 견해가 아니라 우리

국가(중국)의 입장”이라며 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런데 발해가 중국 역사책에 실린 건 무려 반세기 전.

이미 두 세대 이상이 발해를 중국사로 배워 온 것이다.

취재진은 현지 시민 인터뷰를 통해,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발해를 당의

지방 정권으로 인식, 발해사 왜곡이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 없는 역사” 발해, 발굴지는 공개되어야 한다.

광활한 영토 때문에 우리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까지 동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발해.

그러나 한국 학계의 발해 연구는 사실상 쉽지 않다.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고, 사료는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발해사에서 고고학적 발굴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발해의 정체성을 밝힐 수 있는 주요 유적지는 철저한 통제 속에

있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발해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중국 측의 공개가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