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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특별기획 광개토태왕 2부작> -제1부 동방의 알렉산더, 고담덕(高談德) -제2부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고구려에 의한 평화 |
▣방송 : 2011. 6. 2 (목) 22:00~22:50 (KBS 1TV) ▣연출 : 김종석, 배민수 PD ▣글 : 고은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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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왕, 광개토태왕 그의 진정한 꿈은 무엇이었나?
동으로는 연해주, 서로는 중원에 육박하고 남으로는 김해에 이르렀던 고구려대제국을 이룬 왕.
그가 꿈 꾼 것은 고구려가 이끄는 삼국의 대통합, 나아가 삼국의 힘으로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것이었다.
<역사스페셜>에서는 총2부에 걸쳐 ‘정복군주’ 광개토대왕이 넓은 영토를 개척해 이루고 싶었던 꿈과 비전이 무엇이었는지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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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청년 왕 고담덕! 즉위 이듬해 백제와 거란을 모두 공격하다 |
-거란 공격으로 백성의 신임을 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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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이대(高麗二隊) |
▲고려 강(高麗河) |
옛 거란의 땅, 내몽고 자치구에는 ‘대영자’라는 지명의 마을이 있다.
마을을 끼고 흐르는 강의 이름은 ‘까오리’, 바로 고려강이다.
1,600여 년 전 이곳에 즉위 2년을 맞은 고구려왕 담덕이 이끄는 군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거란족을 공격, 정벌하고 포로로 잡혀있던 고구려인들을
해방시켰다.
그것은 국경을 침범해 약탈을 일삼던 거란에 대한 경고이자 백성들의
지지와 신뢰가 필요했던 새로운 군주 담덕의 신고식이었다. |
-백제의 대동맥을 막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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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경기도 연천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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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백제는 황해를 건너 중국과 해상 무역을 주도하는 동아시아 최강의
국가였다. 고구려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와 대립했고, 급기야 371년
엔 평양성을 기습한 근초고왕의 군대에 담덕의 증조부 고국원왕(故國原王)
이 사망했다.
담덕은 즉위 이듬해 즉시 임진강 인근의 백제성 10여개를 함락했고 이후
경기만과 서해로 가는 백제의 관문이었던 관미성을 함락해 임진강 수계의 내륙 수로와 중국에 이르는 서해 항로의 요지를 장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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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할수록 강해졌던 나라, 고구려 - 비려(碑麗) 정벌,
군비를 확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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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태왕비 |
▲호태왕비에 새겨진 ‘염수’(鹽水) |
담덕은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거란족의 8부 중 하나인 ‘비려’를
공격했다.
그들의 본거지는 ‘염수’,’(鹽水) 즉 ‘짠 물의 땅’이었다.
담덕은 시라무렌강 중상류에 위치하고 있던 소금호수 ‘염수’로 진격해
유목민족이었던 거란을 치고 그들의 가축을 전리품으로 가져왔다.
특히 말은 기마전투에 능한 고구려에는 필수적인 존재. 고구려는 염수를
정복함으로써 엄청난 양의 가축을 확보했다.
그는 정복한 집단의 자원과 힘을 활용해 다음 전쟁에 투입했고, 그로
인해 고구려는 잦은 전쟁에도 경제적으로 피폐해지지 않았다.
담덕은 전쟁에 빠진 정복군주가 아니라 합리를 추구하는 경영형 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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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판 인천 상륙작전, 백제, 무릎을 꿇다. |
관미성 함락으로 서해 항로를 잃은 백제 아신왕은 계속해서 반격해왔다.
수세로 일관하던 담덕은 백제의 공세가 끊이지 않자 결단을 내린다.
고구려 판 인천상륙작전, 담덕은 한강, 미추홀, 남양만 3가지 진로로
수륙양공을 펼쳐 백제의 도성인 ‘한성’을 포위했다.
끝까지 저항하던 백제 아신왕(阿莘王)은 결국 담덕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담덕은 그러나 백제를 점령하지 않았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단 것입니다. 소탐대실이 아니고 큰 것을 얻기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하고 또 상대방 나라들을 포용해 줬단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개토대왕은 궁극적으로 포용과 자비심을 발휘함으로써 시간이 해결해준다 언젠가는 고구려 안에 다 포용되고 한 가족이 된다는 그런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었단 것이죠.
-이도학 교수
그는 즉위 5년 간 남으로는 아리수의 백제를 치고 북으로 거란을 정벌하였으며 한반도에서 중국에 이르는 서해 중부 항로를 장악했다.
담덕은 고구려제국을 거느린 새로운 통치자이자 동아시아 최고의
정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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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특별기획 광개토태왕 2부작> -제2부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 고구려에 의한 평화 |
▣방송 : 2011. 6. 9 (목) 22:00~22:50 (KBS 1TV) ▣연출 : 김종석, 배민수 PD ▣글 : 고은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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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어디인가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대 제국 고구려의 ‘태왕’
고구려의 하늘 아래 모든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든 광개토태왕
<역사스페셜 특별기획 광개토태왕 제2부> 대륙의 정복자를 넘어 민족의 미래를 개척한 광개토태왕의 비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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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 선비족과의 대결, 요동(遼東)을 확보하라 |
-고구려의 원수, 모용 선비족을 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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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동과 요서의 경계인 요하
(遼河) |
▲ 무덤 가운데가 파헤쳐진 서대묘 (西大墓) |
중국 동북지방의 남부 평원을 관통하는 요하,
중원으로 통하는 길목인 이 강을 두고 고구려와 모용 선비족 간의 치열한
쟁패전이 벌어졌다.
수준 높은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연(燕)을 건국하고 북방의 강자로 군림했던 모용 선비족. 고구려의 성장을 경계하던 연은 고구려의 환도성을
공격, 광개토태왕의 고조부인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가져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선조들의 원수이자 고구려 성장의 걸림돌, 모용 선비족.
광개토태왕은 정벌에 나섰다.
목표는 요하의 동쪽을 확보하는 것! |
-대륙과 바닷길의 길목, 요동반도를 확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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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동성총에 그려진 요동성도
(遼東城圖) |
▲ 장산군도의 대장산도(大長山島) |
대대적인 군 조직의 정비로 전력을 상승시킨 광개토태왕은 요하 일대의
요충인 요동성과 숙군성을 공격하여 요동을 확보하고 요서로 진출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했다.
고구려는 철광석 등 풍부한 자원을 가진 요동을 대 제국의 기반으로 삼는다.
또한 요동반도의 비사성과 장산군도(長山群島)를 중심으로 해안 방어기지를 구축,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서해의 바닷길을 장악했다.
요동과 서해를 지배한 광개토태왕은 동아시아 최고의 강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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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종단 작전, 대한해협을 확보하라! - 백제, 가야, 왜(倭) 연합군을 굴복시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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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갑으로 무장한 고구려 병사 |
▲ 쪽샘지구 출토 마갑(馬甲) |
한성 점령으로 고구려에 무릎을 꿇었던 백제는 고구려의 서해 장악으로
선진 문물 수입에 지장을 받게 된 왜(倭)를 사주하여 신라를 공격했다.
고구려와 교류관계에 있던 신라를 쳐서 저항하고자 한 것이다.
광개토태왕은 찰갑으로 무장한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파견하여 신라를
구원하고, 왜군의 완전 섬멸을 위해 가야까지 추격했다.
신라와 경쟁관계에 있었던 가야 역시 백제, 왜와 함께 고구려에 맞선 상태.
고구려는 가야마저 정복하고 요동에서 한반도의 남쪽 끝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동아시아 해양 항로를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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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코리아나, 고구려에 의한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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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주자사 진의 모습
(덕흥리 고분) |
▲ 중원 고구려비 비문 중 |
후연은 오늘날 푸순(撫順)의 신성(新城)을 습격했다.
반격에 나선 광개토태왕은 후연의 수도로 진격, 모용 선비족을 격파하고
오늘날의 북경 부근의 연군(燕郡)을 공격했다.
또한 일련의 무력시위를 통해 유주자사 진을 비롯한 후연의 지배계급을
포섭, 후연의 자체 붕괴를 유도했다.
결국 고구려의 숙적이었던 후연은 쿠데타로 멸망하고, 고구려인 고운(高雲)
이 새로운 북연의 황제가 되었다.
한반도 남단에서 요서에 이르는 광활한 대 제국 고구려를 완성한 광개토태
왕, 그의 마지막 소원은 평화로운 공존이었다. |
‘세세토록 형제같이 지내기를 원한다(世世爲願如兄如弟)’ - 중원 고구려비 비문 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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