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한글

[스크랩] 창씨개명 이전의 창씨개명, 창씨개명 이후의 창씨개명

설레임의 하루 2011. 4. 1. 02:45

최근 손흥민 선수가 독일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소속팀 함부르크SV의 최연소 골 기록을 39년만에 갈아 치웠다죠. 어린나이에 참 대단합니다.

유럽에서 이청용, 기성용, 손흥민 등 어린 선수들이 성공적으로 활약하는 것을 보니 한국 축구의 미래가 밝은것 같아 흐뭇합니다. 

 

얼마 전 손흥민 선수가 하노버와의 경기에서 2골을 연달아 넣던 날, 美 CNN에서도 손 선수의 활약을 보도했습니다.

  

 

"...Hannover led in the 31st minute through Lars Stindl, but Chinese midfielder Heung-Min Son leveled from close range five minutes before halftime ..."

 

하노버는 전반 31분까지 이기고 있었으나 중국인 미드필더 손흥민이 하프타임 5분 전에 가까운 거리에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마음이 흐뭇해지는 기사입니다. 근데 가만. 손흥민 선수가 어디 사람이라고? 중국?!

기분 좋게 기사를 읽다가 기자의 부주의함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군요.

선수의 국적을 바꿔버리다니..

 

그런데 이렇게 극동아시아를 제외한 국가에서는 이름만 듣고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이나 중국이나 이름을 짓는 언어와 방식이 같기 때문이죠. 우리 입장에서는 같은 중국식 이름이라 할지라도 발음을 통해 국적을 구분할 수 있지만, 외국인은 발음만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Heung Min Son.

 

한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First name과 Middle name, Last name. 그리고 복잡한 모음과 흔한 ng받침 등 많은 요소가 중국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외에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한국인이나 기업(오너)이 이름때문에 중국적으로 오해받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경쟁력의 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은 신라의 통일(?) 이후 관직명, 지명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이름까지 모조리 중국식으로 개명해버린 데서 시작합니다. 일제 시대의 창씨개명 이전에 벌어진 또 하나의 창씨개명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신라의 사대와 창씨개명은 누가 강제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 중심의 천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중국이 강할땐 중국식 이름을, 일본이 강할땐 일본식 이름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약소국의 운명이 슬프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강해졌습니다.

더이상 중국에 사대하지도 않고, 더이상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말과 글이 있습니다.

수도의 이름도 이젠 한성이 아니라 서울이며 각 지자체에서도 한밭, 달구벌 등 고유 지명을 되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국민의 이름은 그대로 중국식인가요?

 

 

삼국시대의 사료에는 현대 한국인이 듣기엔 이상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주몽(추모), 다우환노, 어구루, 좌가려, 오이, 도수류금류, 흑치상지, 부분노, 마리, 어비류, 을두지, 이리거세사, 추발소, 목도루, 상부약모리, 어지류, 명림답부, 을파소, 온달, 연개소문(이리가수미), 을지문덕, 저명부백세, 예실불, 창조리, 부여온조, 발기, 검모잠, 재증걸루, 고이만년, 이리수의미, 수류지, 이리와수, 이리사사예사, 부여풍, 안작득지, 사수루, 가서일, 걸걸중상...

 

어디까지가 성이고 이름인지도 모르겠고, 한자를 들여다봐도 뜻이 이어지질 않으니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이질감이 드는 이유는 바로 우리 고유어로 지은 이름을 한자로 음차(음이 비슷한 글자를 빌려 적는 방법)해 적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일본서기에서는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라고 적고있고 중국측에서는 천개소문(泉蓋蘇文)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연씨의 시조가 수중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죠. 연, 이리, 천 모두 물 혹은 연못을 뜻하는 고구려어 '아일(최남희, 고구려어연구)'의 훈사(訓寫) 혹은 음사(音寫)입니다. 이름인 개소문(蓋蘇文) 또한 일본서기에서는 가수미(柯須彌)로 적고 있으니 한자 이름이 아닌 고유어 이름임을 알 수 있죠.

단재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 채록한 구전설화 갓쉰동전의 주인공 갓쉰이 연개소문인 것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갓쉰과 가수미, 또는 개소문. 비슷하죠?

 

위에 소개한 다른 이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자가 아닌 고유어로 지은 이름들인 것입니다.

 

물론 삼국시대 초기부터 많은 한족들이 국가형성에 참여했었고 이에 따라 중국식 한자어 이름도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 중국계가 아닌 사람도 중국식 이름을 사용한 경우가 있지만 다른 예들을 보았을 때 이것도 사실은 고유어 이름의 훈차(뜻이 비슷한 글자를 빌려 적는 방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름은 언어와 더불어 국가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이제 이름도 우리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고유의 언어와  방식으로 짓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굴욕의 역사와는 다른, 긍정적 의미의 새로운 창씨개명인 것입니다.

 

 

만약 이용수라는 제 친구 이름을 예로 들면

 

李龍首 -> 오얏 미르머리 -> Oyat Mirmuri

 

어떤가요. 중국과는 다른 한국만의 아이덴티티가 가득 배어나지 않나요? ㅋㅋ

한가지 예로는 부족하니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명박 -> 오얏 밝음넓힘 -> Oyat Balgnolphim

노무현 -> 밥그릇 굳센솥귀 -> Bapgureut Goodsensotgui

김대중 -> 누르쇠 큰가온 -> Noorsoi Kungaon

김영삼 -> 누르쇠 헤엄셋 -> Noorsoi Heumset

노태우 -> 밥그릇 큰어리석음 -> Bapgureut Kunorisogm

전두환 -> 고스란 싸움불꽃 -> Gosran Saumbulkot

최규하 -> 수리 구슬여름 -> Soori Goosryorum

박정희 -> 다카기 마사오 -> Dakaki Masao

윤보선 -> 빛테 끓는착함 -> Bitte Klnunchakam

이승만 -> 오얏 이을가득 -> Oyat Iulgaduk

 

웃기게 들겠지만 익숙해지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다른나라들도 다 이런식으로 이름 짓고 있지요. 예를 들면 'Smith Taylor'라는 이름은 사실 '대장장이 양복쟁이'란 뜻이죠.

몽골인의 이름 Haran Bataar는 몽골어로 강대한 전사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유니크하고 멋진가요?

 

볼튼의 경기를 볼때 영국 해설자가 '총 룡 리' 라고 소개하면 누가 들어도 13억 중국인중 한사람의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푸르미르 오얏' 이라고 소개하면 당장은 한국 이름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중국인으로 혼동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중국식 이름은 국적에 대한 오해 뿐만이 아니라 한국문화 자체가 중국문화에 예속된 하위문화로 인식되도록 이끌 여지가 있습니다. 고유어 이름을 사용하면 이러한 인식을 깨뜨리는데 일조할 수 있으며, 나아가 한류열풍과 함께 널리 알려지고 있는 한국문화에 중국 일본과 차별화 된, 한층 더 깊은 고유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남과 구분되는 '독창성' 자체가 경쟁력이 되는 21세기에서 더욱 앞서나갈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천 삼백여년동안 대대로 이어져온 중국식 이름과 성의 전통을 통째로 지워버리자는 말은 아닙니다. 좋든 싫든 전통은 전통이니까요.

족보는 족보대로 기록하며 유지하되, 족보상의 한자 이름과 호적상의 이름을 분리하여 우리 고유어 이름을 지어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황룡사 복원 논의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당대 최대급의 목탑이었던 황룡사를 복원해 교육관광자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하지만 황룡사를 현 황룡사 터에 복원하는것은 분명한 우리 역사와 전통의 훼손입니다. 하지만 터를 보존한 채로 다른곳에 이전복원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제가 제안하는것은 황룡사의 이전복원과 같은것입니다. 중국식 이름(황룡사터)은 족보에 두고 우리식 이름(황룡사)을 호적에 세우자는 것이죠.

 

뭐 이런 급진적인 제안에 바로 동의할 국민들은 많지 않겠지만, 앞으로 꾸준하게 논의되어 제 손자 세대에서는 적어도 고유어 이름이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선 제 자식 이름부터 고민해 봐야겠군요. '누르쇠 한슬기' 가 좋겠는데..ㅋㅋ

 

 

 

PS. 참, 위에 박정희의 고유이름을 다카기 마사오라고 표현한 것은 농담일 뿐입니다. 제 정치적 성향과는 관련 없음을 밝혀둡니다.

출처 : 진실되게 살자
글쓴이 : 한겨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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