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려

[스크랩] ☞ 이승휴의<빈왕록>에서 고려개경은 난하 상류지역.( Kaesung was supposed to be located on upper stream area of the Ruan river)

설레임의 하루 2010. 9. 26. 01:43

이승휴는 고려국 京山府 加利縣 출생이다. 지금은 경산부 가리현이 어디인지 이승휴의 조상의 기록도 모른다했다.후에 그는 東州副使의 직을 역임했고...그러나 이승휴의 본 기록과 더불어 여정중에 그가 읊은 고시에서 소나무가 鬱鬱한 扶蘇와 같은 주변경관을 보고 황하지역에서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풍토병이 있었다는 借韻詩를 사행기에 써넣었는데 아마도 그가 살아온 자연환경이 그와 같은곳 아니었을까.. . 

 

그의 사행록을 보면 元이 고려를 제일로 대우한 기록이 보인다. 세조 쿠빌라이가 대도에 만여명을 접대할수있는 장조전이란 궁전을 짓고 각국의 조빙사절이 세조를 알현하는 순서를 정하는데 고려사신들을 중앙에 세우도록 한다든지 사신을 위하여 별도의 자리를 마련한다든지 하는 배려가 돋보이는데 이는 고려의 문화와 6차에 걸친 대몽항쟁을 거친 막강했던 군사력등에 대한 배려 그리고 과거 그들의 조상이었던 고구려의 후예로서 경외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원사의 기록을 보면 고려의 開京에서 元大都 까지 도보로 매우 빈번하게 사신과 임금이 드나드는데 매우 멀지않은 거리라는것은 많은곳에서 증명이 된다.걸어서 20여일 정도의 거리라면 원의 수도가 북경근방이라는 가정하에 그곳에서 400km거리내에서 찾아 보아야 될것이고 그곳은 바로 북경 근방에서 난하를 건너 멀지않은 지점에 있어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기록에 등장하는 大都城 鎭國寺와 高梁之墟,昊天寺 는 우리가 알고있는 대도(북경)와 전혀 다른지역인 山西省 臨汾과 大同으로 나온는 것이다.

 

그렇다면 大都가 중공사학자들이 말하는 하북성 북경이 아닌 산서성 임분근처이거나 아니면 진국사와 호천사는 북경부근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두 사찰 모두 五代와 北魏시대에 창건되었다 기록되어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왜 원대 이전에 산서성에 있던 유적지가 원의 상도 부근에 있어야 하게 되었는지 지명이동이 된것은 아닐까?

 

 

 

 

윗 사진과 같이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이승휴 보다 무려 600년후의 기록이지만 개경과 별로 떨어지지않은 한양에서 열하가 위치한 하북성 승덕까지 두달여 넘게 걸렸던 여정이었던 반면에 이승휴는 고려국 개경에서 출발하여 대도라고 이름지워진 북경근처가 승덕보다 수백킬로 더 먼 첫 사행지로서 정마철 초행으로 가는데도 한달반 밖에 걸리지 않았고 원에서 다녀오자 바로 고려 원종의 부고를 알리려 원나라에 다녀온 2차 방문은 왕복으로 해도 두달이 채안되니 고려 개경으로 부터 북경까지의 거리가 한양보다 훨씬 가까왔을것이라는 것이다. 

 

아래의 일정에서 역자의 지리설명은 역사전공자가 아닌 한학전공자로서의 설명이므로 단순참고 바랍니다. (하단에 운영자의 지명설명 참고하기 바랍니다)

 

 

 

1>浿江 - 浿水로 보인다.고려의 패수는 하북성 현 난하의 상류로 비정된다. 

 

2>금암면(金岩面)-1947년에 봉산군(鳳山郡)의 ..사리원시로 ·금암면(金岩面)·서봉면(西峯面)의 전체 리와 평산면(平山面)의 5개 리, ... 1904년에도 행정개편이 있었다 그 이전의 기록에는 金岩점 이란 지명이 있으며 조선초의 한 기행록에 금암은 양주 벽제에서 이틀 거리라는 기록이지만 패강은 예성강이 아니라 기존에 대동강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평안남도 대동강에서 역으로 하루만에 황해도 금암으로 갔다는 말은 어불성설.

 

3>分水嶺- 현 북경 동남방에 존재하는 고개이름 (1918년도 중국군사지도)

 

4遼 東京- 요녕성 조양으로 알려져 있으나 승덕에서 동쪽으로 멀지않은 지역이다, 결국 현 요녕성 조양은 지명 조작. (요사지리지,추리도상의 東京이 윗 내용과 같지않다) 요나라 동경은 바로 고조선 중심지역으로 고구려 평양성이며 발해의 중경이다. 

 

5>瀋州【 今承德縣治見遼志瀋州 明一統志漢遼東郡地渤海置瀋州遼東行部志瀋州在唐時嘗為高麗侵據李勣東征置安東都護府於平壤城實今之瀋州也唐季為大氏所有】- 역자는 심양이라 했으나 명일통지에는 하북 승덕. (요녕성 심양으로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6>神山縣- 設置於今河北省 平泉縣西南部者,自該縣西南之神山命名。屬澤州 (승덕시- 위키 중국판)

               본지명은 1918년도 군사지도상 상기 지역에 기록됨.  

 

 

1>황애봉-黄崖是指崖壁呈黄色,太阳一照,满眼金黄。若想看到万塔黄崖,需先走“凌空栈道”,栈道修在崖壁上,和三峡的古栈道有异曲同工之妙,只是下面没有滔滔的长江。潘家口水库位于燕山山脉东段,滦河中游,距京约190公里。 喜峰口水下长城,乃两山之间夹一关城,因水浅,关城已露出,共三道城关   http://www.52uyn.com/destinations/detail7661.html (군사지도에서 확인) 

 

 

 

 

1>高梁之墟- 西南过高梁邑西,黑水出黑山,西径杨城南,又西与巢山水会。《山海经》曰:牛首之山,劳水出焉,西流注干潏水(沙州의 휼수)。疑是水也。潏水,即巢山之水也。水源东南出巢山东谷,北径浮山东,又西北流与劳水合,乱流西北径高梁城北,西流入于汾水。汾水又南径高梁故城西,故高梁之墟也.(북위 역도원 수경주. 

 

지명추적;예상했던 하북성 근처와는 매우 틀린 현 山西省 임분시 근처.  

 

1)唐代长安太原驿路之山西境内驿站研讨晋州又东北沿汾水东岸行,经高粱城、洪洞县(今县 산서임분)、赵城县(今县-산서임분)、益昌驿6 、霍邑县(산서 곽현 今霍县)、霍山驿7、永清驿8、至长宁驿9,置汾水关(后更名长宁关,今为南关镇)、为晋汾二州分界处。...2)运城市 稷山县 清河镇 北阳城村 - 我爱我村网--全国最大的农村门户网站我爱我村首页 清河镇 上一村 下一村 设为首页 收藏本站...辖区文化古迹甚多,世界非物质文化遗产———阳城走兽,高粱城遗址,七级砖塔,八路军指挥部等。

 

2>镇国寺-正文 中国五代佛教寺院。在山西省平遥县城北15公里郝洞村。始建于五代北汉天会七年 (963),明代重修,清嘉庆间(1796~1820)又予补葺。现存寺内建筑多为明代重构,惟万佛殿及内塑像仍是五代遗物,虽经清嘉庆二十一年(1816)补葺,五代原状依然如故。1988年中华人民共和国国务院公布为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호동백과)

 

 3〉昊天寺- 西 大同  坪镇境内不仅有远近闻名的大同火山群,还有始建于北魏的昊天寺,距今已有1600多年的历史,是北方闻名的寺 院之一,在中国佛教史上占有重要地位,现代佛学教材中,就有昊天寺的有关课程记载。...www.dtx.gov.cn/html/lvyou/renwenziyuan

 

고량성 폐허는 분명히 산서지역의 분하가 흐르는 임분근처. 두 절도 고대로 산서에 위치한 고찰 .

고량지허를 중국사가들이 원대도라 우기는 북경근처로 비정한다면 이미 고려 이전에 산서의 지명이 하북으로 이동되었다는 증거가 될수있다. 이러한 디테일한 지명과 사찰 이름들은 지명이동의 증거가 될수있다. 

 

  

 

위 사진은 진성규역 ,zmanz고전선집,2009년판에서 스캔 .

 

심제 씀.

출처 : 잃어버린 역사,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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