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려

<高麗皇朝實錄>은 어디 갔을까 ?

설레임의 하루 2009. 6. 27. 13:41

*출처:다음카페-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心濟       http://cafe.daum.net/dobulwonin/GBuY/165

 

 

 

 

<高麗皇朝實錄>은 어디 갔을까?   

옛 문헌 곳곳에 실록에 관한 언급있어 세종 때 정리한 고려사·고려사절요만 남아 고려왕조실록은 존재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려왕조실록'은 있었다.

조선시대 세종부터 문종 대에 걸쳐 편찬된 '고려사' 집필을 진두지휘한 정인지는 서문에서 "야사를 참고하고 관부의 옛 장서를

들추어서 삼가 3년간의 노력 끝에 고려 일대의 역사를 완성하였다"고 밝혔다.

태조 왕건의 뿌리를 밝히면서 그 근거로 '태조실록(太祖實錄)'을 언급했다.

정인지가 언급한 '태조실록'은 조선 때처럼 바로 다음 임금 때 편찬된 게 아니고 덕종3년(1034년)에 정당문학 수국사 황주량이

36권으로 편찬한 '7대사적(七代事蹟)' 혹은 '7대 실록'의 첫 번째다.

'7대실록'의 편찬과 관련해서는 고려사 현종 4년(1013년) 9월 병진일 이부상서 참지정사 최항(崔沆), 감수국사 예부상서 김심언

(金審言), 수국사 예부시랑 주저(周佇), 내사사인 윤징고(尹徵古), 시어사 황주량(黃周亮), 최충(崔忠) 등을 모두 (실록)수찬관으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최항 김심언 주어 윤징고 등 4명은 실록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7대 실록 편찬 주역은 그래서황주량이 맡게 된다.

'고려사'에는 황주량(983~1046년)의 7대실록 편찬과 관련한 언급이 나온다.

'지난 시기에 거란군이 국도(國都)를 함락시키고 궁궐에 불을 질러 서적이 모두 잿더미가 됐다.

이 때 황주량은 왕의 명령에 의하여 각지를 방문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태조부터 목종에 이르기까지(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7대왕조의 사적을 수록한 36권의 책을 편찬하여 왕에게 바쳤다.' 고려왕조실록의 초석을 바로 황주량이 놓은 것이다.

'해동공자(海東孔子)' 최충(崔忠 984~1068년)은 '현종실록' 편찬을 주도해 현종시대에 대한 사관(史官)의 평을 자기가 직접 썼다.

현종 다음은 4년간 재위했던 덕종(德宗)다.

이제현의 평에 "실록을 상고하건대"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덕종실록도 편찬된 게 분명하다.

이후 왕위는 정종 문종으로 이어져 가는데 현종부터 문종까지 80여년을 이제현은 전성시대, 태평성세라고 평했다.

이때도 실록이 편찬되었을 것이다.

문종 이후 왕위는 맏아들 순종(順宗)에게 넘어가지만 몇 달만에 죽어 아우 선종(宣宗)이 왕위를 이어받는다.

'선종실록'은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에 언급이 나온다. 실록편찬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1094년(선종11년) 11월 선종이 죽고 선종의 맏아들이 헌종(獻宗)이 왕위를 잇는다.

헌종은 12세로 나이가 어려 숙부인 계림공 왕희에게 왕위를 빼앗긴다.

헌종실록이 편찬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조선 단종의 경우 '노산군일기'로 남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편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의 수양대군'이라 할 왕희가 바로 숙종(肅宗)이다. '숙종실록'의 편찬자는 명확하다.

 '고려사'를 편년체로 풀어 쓴 '고려사 절요' 인종편 인종2년(1124년) 3월 "상서 우복야 이덕우(李德羽)가 졸하였다.

이덕우는 문장(文章)을 자임하였는데 일찍이 '숙종실록'을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예종실록'은 그의 장자 인종이 즉위하자마자 중서 평장사 한안인(韓安仁)의 제언을 받아들여 곧바로 편찬작업에 들어간다.

1146년 인종이 24년 재위 끝에 사망하고 장남 의종(毅宗)이 왕위에 오른다.

그는 즉위한 직후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에게 '인종실록' 편찬을 명한다.

조선시대의 경우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 현종실록/현종개수실록, 숙종실록/숙종보궐정오, 경종실록/경종수정 실록처럼 후대에

정권을 장악한 당파에 따라 실록을 다시 쓰는 경우가 있었다.

고려는 '의종실록'이 다시 집필되는 곡절을 겪어야 했다.

명종14년 문극겸은 실록편찬의 책임을 맡은 수국사(修國史)가 되어 '의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임금을 죽인 것은 천하의 제일 큰

악이다'라고 직필했다가 무신들의 반발을 샀다.

그래서 중방(重房·무신 권력기관)에서는 무관 출신으로 문하시랑 평장사(종2품) 겸 병부판사(병조판서)로 있던 최세보(崔世輔)로

하여금 고쳐 쓰게 한다.

의종을 죽인 무신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 의종의 동생 명종(明宗)은 제19대 국왕으로 27년간 왕위에 머무른다.

무신들의 눈치나 살펴야 했던 왕이어서 그런지 그 후 무신정권이 계속된 신종(神宗·명종의 친동생), 희종(熙宗·신종의 아들), 강종

(康宗·명종의 아들) 때에도 편찬되지 못하다가 고종(高宗·강종의 아들) 때에 와서야 '명종실록'이 편찬된다.

명종실록 이후 신종 희종 강종의 실록은 원종8년 10월 편찬됐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온다.

"감수국사 이장용, 동수국사 류경(柳璥), 수찬관 김구(金坵), 허공(許珙)에게 명하여 신종 희종 강종 3대의 실록을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류경과 김구 등은 다시 충렬왕3년(1277년) '고종실록'을 편찬하게 된다.

이어 충선왕은 충선왕3년(1311년) 11월 "충경왕(忠敬王)실록을 편찬하라"는 평을 내린다.

충경왕은 몽골의 압력으로 원종(元宗)을 격하시킨 칭호이다.

원종에 이어 즉위한 충렬 충선 충숙 3대의 실록은 세월이 한참 지난 충목왕2년(1346년)10월 충목왕의 명에 따라 편찬됐다.

충혜 충목 충정 3명의 실록은 우왕11년(1385년) 임견미 등이 주관해서 편찬됐고 끝으로

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 등의 실록은 조선에 들어와 정도전 등이 주관해서 편찬했다. 이처럼 고려에도 조선 못지 않은 실록이 있었다. 

다만 고려실록은 조선 때 전부 없어졌고 지금 전하는 것은 세종 때 정리한 '고려사'와'고려사절요'뿐이다.

 

고려왕조실록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필경 임진왜란시 왜장들에 의해 탈취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이시간 어느 왜장 가문의 서고나 비밀 컬렉션에 수장되어 잠자고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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