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 이야기

패수(浿水)는 하남성 황하 접경이었다.(단재일보에서 운영자 글 소개)

설레임의 하루 2009. 8. 17. 02:22

*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心濟    http://cafe.daum.net/dobulwonin/GBuW/361

 

 

 

"패수(浿水)는 하남성 황하 부근에 있었다."
고구려와 번조선의 남쪽 경계인 '패수'의 위치가 밝혀졌다

 

필자는 우리 고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패수(浿水)가 강단사학계에서 일컫는 한반도 대동강이 아니라, 바로 현 하남성 제원(濟源)근방

황하 주변에 있었을 것이라고 1913년판 중국 군사지도를 보고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대부분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어떤 분은 하북성 청장하 인근이 아닐까 지적도 해주었고, 다른 분은 하남성 제원 근방에 있는 농수(籠水)와 추수(溴水)가 흐르는 

동쪽 좌우의 물줄기로서 황하에 이르는 물길을 일컬어 동패수 서패수일 가능성을 점친 적이 있다.

(참고로 이 의견들은 식민사학계에서 나온 의견이 아니라 민족사학계에서 나온 의견이다.) 

그런데 <금사 지리지 권5>를 보니 거란(요)나라를 패퇴시킨 금나라가 영유했던 지리명이 나오는데 임황(臨潢)이란 지역은 요사지리지

나 금사지리지에서 공히 중요한 전략요충지로 군사가 집결했던 지역으로 기술되고, 이 지역은 이미 대진국(발해)를 멸망시켰던 거란

(요)과 대진국(발해)의 대치 지역이기도 했다. 

산서 지역 묶음에 나오는 아래의 기술은 바로 산서성에 있는 태행산 주위 산서성 남부의 심수(沁水) 인근에 ‘패수(浿水)’가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

 

▲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 일대에 금사지리지의 패수와 관련된 지명들.

이 일대는 번조선과 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핵심강역이다.    

                                                                       © 편집부

 

1. 금사(金史) 지리지 권5
懷州,上,(회주)
宋河內郡防御,天會六年以與臨潢府懷州同、加「南」字,仍舊置沁南軍節度使,天德三年去「南」字。

皇統三年閏四月置黃沁河堤都大管勾司。大定五年置行元帥府。興定五年置招撫司。戶八萬六千七百五十六。

송나라 때 하내군 방어를 하였다. 천회 6년(1128년) 이후로 임황부 회주 지역이다.

덧붙여 심남군 절도사를 두었다. 천덕 3년(1151년) 남(南)자를 없앴다.

황통 3년(1144년) 윤4월에 황심하(황하와 심수)를 다스리는 뚝 관리사를 두었다.(생략)

縣四、鎮六: 河內倚。有太行陘、太行山、黃河、沁水、浿水。鎮四武德、柏鄉、萬善、清化。

修武有濁鹿城。鎮一承恩。山陽興定 四年以修武縣重泉村為山陽縣,隸輝州。武陟有太行山、天門山、

黃河、沁水。鎮一宋郭。

하내기(행정단위). 태행단층이 있고, 태행산, 황하, 심수, 패수가 있다. 무덕, 백향, 만선, 청화 등 4진을 두다.

수무현에 탁록성이 있다. 승은진이 있다.  흥정 4년 수무현 중천촌을 산양현으로 하여 휘주에 예속시키다.

무척현에 태행산이 있고 천문산, 황하, 심수, 송곽진이 있다.

孟州,上。(맹주 상)
宋濟源郡節度,天會六年降河陽府為孟州,置防御,守盟津。宣宗朝置經略司。戶四萬一千六百四十九。

縣四、鎮二:河陽倚。有嶺山、黃河、湛水、同水。鎮二谷羅、沇河。王屋有王屋山、天壇山、析城山、

黃河。濟源有太行山、孔山、濟水、澳水있다. 

왕옥에 왕옥산이 있으며 천단산, 석성산, 황하가 있다.

제원에 태행산, 공산, 제수, 오수, 심수가 있다. 온주에 황하, 위수가 흐른다.

京兆府路,(경조부로)
宋為永興軍路。皇統二年省並陝西六路為四,曰京兆,曰慶原,曰熙秦,曰鄜延。府一,領節鎮一,防御一,

刺郡四,縣三十六、鎮三十七。(이하생략).. 、沁水。溫有黃河、湋水。

송나라때 제원절도사를 두다. 천회6년 하양부를 내려 맹주로 하고, 맹진을 지키기 위해 방어사를 두다.

선종 때 경략사를 두다.

현4 진2 : 하양기에는, 영산, 황하, 담수, 동수, 진으로는 곡라진과 윤하진이 중요한 부분이 아니므로 번역을 생략한다. 다음엔

산서지역이 나온다.

 

 

▲  대청광여도에서 심수 주변을 확대한 지도. 

낙양 동쪽과 정주 사이에 니하(泥河)와 비슷한 글자( 汜水 )가 있다.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그 곳이 패수일 가능성이 크다. 

 
2. 요사(遼史) 권39 지리지

遼 河 出 東 北 山 口為 范 河 , 西 南 流 為 大 口 , 入 于 海 ; 東 梁 河 自 東 山 西 流 ,

與 渾 河 合 為 小 口 , 會 遼 河 入 于 海 , 又 名 太 子 河 , 亦 曰 大 梁 水 ; 渾 河 在 東 梁 、

范 河 之 間 ; 沙 河 出 東 南 山 西 北 流 ,徑 蓋 州 入 于 海 。

산의 동북에서 나오는 요하는 범하라 하고. 서남으로 흐르는 줄기를 대구라 하여 바다에 이른다.

동량하는 산의 동에서 서로 흘러 혼하와 합쳐져 소구를 이르고 요하와 만나 바다에 이른다.

태자하라 하기도 하고 대량수라고도 한다. 혼하는 동량하와 범수의 사이에 있다.

사하는 산의 동남방에서 나와 서북으로 흐른다. 개주를 들러 바다로 들어간다. 

有 蒲 河 ; 清 河 ; 浿 水 , 亦 曰 泥 河 , 又 曰 蓒 芋 濼 , 水 多 蓒 芋 之 草 ; 駐 蹕 山 ,

唐 太 宗 征 高 麗 ,駐 蹕其 巔 數 日 , 勒 石 紀 功 焉 , 俗 稱 手 山 , 山 巔 平 石 之 上 有 掌指 之 狀 , 泉 出 其 中 ,

取 之 不 竭 。 又 有 明 王 山 、 白 石 山

-- 亦 曰 橫 山 。 天 顯 十 三 年 , 改 南 京 為 東 京 , 府 曰 遼 陽 。

포하, 청하, 패수가 있는데 패수를 니하라고 한다. 한우락이라고도 한다.

물에 한우라는 풀이 많이 있어 불려진 이름이다.

주필산은 당태종이 고려를 칠 때 그곳에서 수일동안 머물며 필(고관이 통행할 때 일반인의 통행금지)하고 그 기념비를 세웠는데

수산이라고도 한다. 산꼭대기의 평석의 모양이 손가락을 닮았다.

그 산중에 샘이 나오는데 먹어도 마르지 않았다. (중략) 천조 13년 남경을 동경이라 고치고 요양부라 하였다.   

地理概貌:河流、泉涌 >范河 (중국인터넷www.jconline.cn/gk/second/dlgm0335.asp) 
范河 : 沁河支流。发源于晋城市郊区土河乡东土河村,向西南流经南河、范河等村注入沁河。长12.7公里,

流域面积18.3平方公里,河流落差大,河床宽约6~11米。为季节性河流

(범하는 심하의 지류이다. 길이 12.7키로 이하 번역 생략) 

즉 "浿水는 하남성에서 황하로 유입되는 河內지역과 沁水 주변에 있는 강이었던 것이다. "

 

 


<편집자 주> 패수는 우리 고대사의 강역을 밝히는데 아주 중요한 강이다.

한나라와 번조선이 한사군 전쟁을 벌일 때 자주 등장하며, 고구려의 남쪽 경계가 패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패수를 찾음으로서 고구려의 핵심강역이 산서성 남부였음이 명확히 입증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현 요녕성에 있는 지명인 요하, 태자하, 혼하 등은 원래 황하 주변 하남성에 있는
강이었으나, 중국의 역사왜곡

위한 지명조작에 의해 옮겨졌음도 밝혀졌다고 하겠다. 
 
아울러 요택에 살았다는 거란(요)의 위치도 하남성 근처이고, 거란과 공존했던 대진국의 위치도 하남성 황하 근처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하겠다.

엄청난 역사의 진실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것 같다.
 
여하튼 패수의 발견은 대한민국 민족사학계의 큰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