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삶의 흔적

사라진 뮤대륙

설레임의 하루 2009. 7. 27. 21:31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 세종태왕        http://cafe.daum.net/mookto/GXxg/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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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버린 뮤 대륙(Continent of Mu)

1926년 가을, 전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 육군의 예비역 대령인 제임스 처치워드(James Churchward)가 "잃어버린 뮤 대륙
(The Lost Continent of Mu)"이라는 책에서 고고학자들도 들어 보지 못한 뮤 대륙의 실재를 주장한
것이다. 
그는 1868년부터 인도에 머무르면서 원주민들 사이에 전설로 내려오는 뮤 대륙에 대해 듣고
필사적으로 그 확인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인도의 옛날 사원에서 뮤 대륙에 관한 사실이 적힌 옛 점토판을
발견하여 그것을 해독했다.
그 결과, 원주민들 사이에 전승된 뮤 대륙이 상상의 땅이 아니라 실제로 태평양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대륙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이러한 확신이 서자, 뮤 대륙의 존재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기 위해 50년 동안이나 세계
각지를 떠돌았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방대한 자료와 사진들은 수집하였다.


 
아득한 옛날, 지금의 태평양이 있는 위치에 '뮤(Mu)'라는 광대한 대륙이 있었다.
그 동쪽 끝은 현재의 이스터 섬, 북쪽 끝은 하와이 제도, 서쪽 끝은 마리아나 제도, 그리고 남쪽
끝은 지금의 쿡 제도에 해당한다.
동서의 길이는 8,000km, 남북은 5,000km로 지금의 태평양 면적의 절반 크기다. 
이 뮤 대륙에 인류가 나타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5만 년 전의 일이다.
이곳에 살았던 인간은 매우 우수한 민족으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고 있었다.
 
 
뮤 대륙의 인구는 약 6천4백만 명이었고, 열 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민족 간에 차별은 없었고, 한 명의 왕 밑에 하나의 정부가 통치하고 있었다.
왕은 '라 뮤(Ra Mu)'라는 칭호를 갖고 제사장과 황제의 역할을 겸하게 된다. 
뮤 제국 국민은 우수한 학문과 문화를 가졌고 특히 건축술과 항해술이 고도로 발달해 이었다.
서쪽으로는 아시아, 유럽, 이집트와 교류했고, 동쪽으로는 북아메리카 중부에서 남아메리카
북부까지 진출하였고 지구상의 다른 국가들은 모두 뮤 제국의 식민지이거나 식민통치를 받는
나라였다. 


 
뮤 대륙에는 낮은 동산 이외에는 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는데, 땅 전체는 세 개의 좁은
해협에 의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종교와 과학, 문화의 중심지였던 일곱 개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로가 격자 모양을 이루며 도시와
마을을 연결하였고, 그 표면은 대리석으로 잘 포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석조 궁전과 신전, 호화로운 저택들이 관청을 에워싸고 있었다.
항구마다 세계 각지로 떠나는 배로 분주했으며, 세계 각지에서 진귀한 물건을 가득 싣고 온 수십
척의 배가 항구로 들어왔다. 태양을 숭배하고 세계를 지배했던 뮤 제국은 날로 번영했다.
왕권은 튼튼했으며, 모든 국민은 행복한 생활을 누렸다.


 
어느 날, 갑자기 땅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대지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신전에 몰려들어 태양신에게 기도하고 있을 때, 대지가 갈라지며 지옥의
불길 같은 거대한 불기둥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 첫 번째 대지진으로 뮤 대륙 남쪽 대부분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산보다 더 큰 해일이 대륙 남쪽을 강타하고, 용암이 들끓었다. 
 

뮤 대륙의 국민들이 일차 대지진의 공포를 잊고 폐허 위에 신전을 재건할 무렵, 다시 땅이 요동을
치고 바다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대지가 흔들렸다.
대륙의 중앙에 굉음이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뮤 대륙은 조각조각 갈라지며 바다 밑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태평양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거대한 뮤 대륙이 바다 속으로 잠기자, 커다란 해일이 지구를
덮쳤다. 지금으로부터 1만 2천 년 ~1만2천5백년 전, 지구가 생긴 이래 최초이자 최대의 문명을
건설했던 뮤 대륙은 이렇게 사라졌다.
 

얼핏 들으면 신화 같은 뮤 대륙에 관한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도의 낡은 힌두교
사원에서 입수한 두 개의 점토판 덕택이었다.
두 개의 점토판에는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도형과 기호 같은 것이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점토판에 새겨진 고대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데 전념했다.
해독은 군대에서의 암호 풀기와 같았다.
그는 2년 동안 점토판 해석에 매달렸고, 마침내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 점토판은 뮤 대륙의 건국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뮤 대륙은 왕성한 해상 활동을 했으며 인도와 이집트, 그리고 시나이 반도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처치워드는 인도의 고사원에서 입수한 점토판을 '나칼(Naacal) 비문'이라 명명하고, 자신의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또 다른 고대 점토판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멕시코의 광물학자 윌리엄 니벤이 고대의 석판을 수천장 수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멕시코 석판이 나칼 비문보다 1만 년 후에 아메리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처치워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뮤 대륙은 인류의 어머니 나라가 된다.
처치워드의 책이 세상에 나오자 고고학자나 지질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한마디로
몰아부쳤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다음의 몇 가지를 들었다. 우선 인도의 힌두교 사원에서
발견한 나칼 점토판의 해석이다.
다음으로 힌두교의 성전 '라마야나'에 '동방의 미지의 땅에서 미얀마로 온 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동방은 바로 태평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트로아노 고사본'은 유카탄 반도와 고대 마야족에 대한
기록인데, 여기에도 뮤 대륙이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인도나 미얀마, 이집트에서 발굴된 상형 문자는 모두 나칼 점토판에 새겨져 있는 뮤 제국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스터, 망가이아, 마리아나 제도 등 남태평양의 섬들에 남아 있는 온갖 유적에서 뮤 대륙의 자취가 
발견되고 있고, 유카탄 반도의 우슈말 사원 비문에 새겨진 '우리가 떠나온 서쪽 나라'라는 표현도
그 증거의 하나다. 멕시코시티 남쪽에 있는 피라미드의 비문에는 '어머니 나라의 붕괴를 기념해
세웠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럼 이 거대한 뮤 대륙은 왜 태평양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는가?
처치워드는, 그 비극적 함몰은 태평양을 관통하고 있는 특수한 지질층에 기인하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환태평양 화산대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가스층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스층은 지저의 화산 활동에 의해 땅 속에서 발생하는데, 이 가스는 매우 폭발하기 쉬운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지각을 형성하고 있는 화강암에 벌집과 같은 구멍을 뚫는다.
어떤 계기로 이 가스가 지상으로 빠져 나오면, 다음은 아주 불안정한 가스 동공이 생겨 간신히
지각을 지탱한다. 가스동공들은 각기 떨어져 있으면서 갈라진 틈새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만약 이 지탱하는 힘이 약해져 천장이 무너지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땅 속의 구멍은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리며 대함몰이 시작되는 것이다.
뮤 대륙 아래에 있던 이 가스층은 매우 얕아서, 지표면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처치워드는 뮤 대륙의 아래에 가스층이 있었다는 증거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현재 태평양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섬들 사이의 바다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이것은 수많은 가스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심하게 들쭉날쭉한 바다를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지금 남아 있는 섬들은 함몰된 대륙의 잔재라고 주장한다.
거대한 가스로 인한 함몰이라면, 남아 있는 섬을 비롯한 대륙의 모두가 엄청난 폭발력으로 날아가 
버렸거나 바다 속으로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그러한 섬들은 가스층 사이에 위치해 함몰을 면했을 가능성도 있다.
가스층이 서로 통해 있었다는 사실은 그러한 섬들의 화산 활동을 보면 분명해진다.
당연히 그러한 섬들에는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와 절벽이 많다.
현재도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많은 섬들은 대규모 화산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폴리네시아를 빼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지금의 과학 지식과 남아있는 자료로 뮤 대륙에 관한 사실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뮤 대륙은 아득한 옛날 우리 조상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풀리지 못할 수수께끼이다.

(자료: 뮤대륙의 비밀. 1997년, 제임스 처치워드 저, 박혜수 역, 문화사랑)

 
과학적인 필요성에 의해 나온 레무리아(뮤) 대륙
아래의 가설은 몇 가지 사실을 기반으로 한 레무리아 대륙설이 생겨나게 된 배경이다.

 
1. 1809년에 출생한 다윈은 1836년부터 남아메리카,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탐험하며
자신의 이론을 확립.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한다. 이로 인해 사회는 떠들썩하게 된다.

 
2. 1864년 필립 스크래터는 '마다가스카르의 포유류'라는 책을 발표하며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여우원숭이와 비슷한 종이 아프리카도, 중동도 아닌 인도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바탕으로 인도와 
아프리카 사이에 거대한 대륙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론을 발표한다.
마다가스카르는 그 대륙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륙의 이름을 Lemuria라 명명한다.
(여우원숭이의 이름이 lemur).

 
3. 이러한 레무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기존에 바다로부터 분리된 서로 다른 대륙에서 비슷한 종들이 
발견되는 것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이는 독일의 다윈의 진화론 신봉자였던 Ernst Haeckel에게 인류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에
대한 것을 설명 가능하게 한다.
인류 진화의 중요 고비를 연결시켜 줄 인류의 중간단계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바다에
가라앉은 대륙에 있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는다'로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 한때 과학계에서 어느 정도 타당하게 받아들여졌던 레무리아 대륙을 비롯한 잃어버린 대륙이
갑자기 힘을 잃은 것은 1915년 알프레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이 자리잡게 되면서 이다.
대륙이동설은 지금에서는 모두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이론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잃어버린 대륙 레무리아는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리게 된 것이다.

레무리아(뮤) 대륙의 신봉자  제임스 처치워드(James Churchward)

일각에서는 레무리아와 뮤에 대해서 같은 곳으로 생각하지만 제임스 처치워드의 경우에는 뮤
대륙의 존재를 조금 다르게 보았다.
필립 스크래터는 마다가스카르가 레무리아 대륙의 일부로 잃어버린 대륙이 아프리카와 인도
사이에 있었다고 보지만, 제임츠 처치워드의 경우는 뮤 대륙이 남아메리카와 인도 사이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증거로 하와이의 모든 섬이 뉴질랜드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하아이 전설로 설명하고 있으며 
남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의 뮤 대륙으로 부터 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