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풍습

참글[한자]은 누가 만들었는가!

설레임의 하루 2009. 4. 12. 04:12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 소서노    http://cafe.daum.net/mookto/Gbc4/161

 

 

 

중국인들이 우리를 낮추어 부르는 동쪽 오랑캐인 東夷(동이)의 夷는 중국인들이 중간 시조로 받들고있는 하나라를 세운 시조,

즉 우임금의 이름이며,동이족의 우두머리인 神農(신농)이 삼황오제시대를 장식하는 첫 제왕이며, 창힐에게 명하여 한자를 만들었으며,

중국인 들이 시조로 추앙하는 黃帝(황제)는 신농의 사위였으며,실제 제왕의 자리에 앉지는 못했다.
신농 때 처음 만들어진 문자는 황제의 5세손인 계(啓)가 하나라를 세우고 제왕이 되면서 제위를 직계 아들에게 세습하게 하면서,

세월이 지나며 자기 직계 조상위주로 역사를 뒤바꾸고 만 것이다.
갑골 문자가 중국 문자 창조의 시초가 아니라. 혀재 요녕성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삼병명(三兵銘)에 새겨진 것은 1000년전 삼황오 시대에 새겨진 상고문자이니, 최초의 문자는 동이족의 시조인 신농때에 만들어 졌다한다.

이는 중국의 학자 낙빈기(본명은 장박군 1917~1994)가 평생을 연구한 "금문신고"라는 책을 통해 밝힌 것임.

- 한자(漢字) 한문(漢文)은 유구한 “동이족“의 글

한자 한문은 그 유래가 “은” 나라의 갑골문자이다.
은(殷)나라라 함은 신화와 전설의 시대 직후인 약 3천년전 동이겨레(東夷)를 말한다.
중국 동쪽 동아시아의 특이한 백두산 발해만 족을 동이겨레라 하고 한족(漢族)들은 “뚱이”라 부르며 중국 북쪽의 오랑캐요

“도둑놈”의 부족이라 낮추어 부르고 있다.
한족들은 자기 주변 모든 나라를 오랑캐라 불러온다.

그들은 도적(盜賊)을 화자(花子) 또는 뚱이(東夷)라고 불렀지만 공자, 맹자는 스스로의 조상이 동이족과 무관치 않으며 동이의 땅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으며 동이나라를 군자(君子)의 나라라고 예의와 범절에 밝은 나라라고 동경해 마지않았다.
앞서 말한 하나라(夏) 은나라(殷) 주나라(周)도 엄밀하게 말하면 동이족(東夷族)과 구별하기가 어렵다. 즉 연관성이 깊다.

또 요임금, 순임금도 동이족의 황제라는 설까지 있다. 옹기와 항아리를 굽던 황하 이북의 땅이 산동성(중국) 일대가 옛 동이족들의

본거지 즉 고토(故土)였던 것이며 발자취가 산재되어 있다.
남동(南東) 만주 지역 일대가 바이칼호수 부근에 동진(東進)해 왔던 알타이어(語)권의 부족들

-

엄밀하게 말하면 동이족들이 남동만주, 발해, 황하북쪽으로 이동(태양이 뜨는 쪽) 전선을 넓혔던 것이다.
또 중원대륙, 즉 중국 대륙의 선주민이 동이족이어서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이 아메리카, 인디언이었던 것을 떠 올려 연상해보면

어느 정도 가늠이 간다.
훗날에 굴러들어 온 한족(漢族)이 박혀 살고 있는 동이족을 뽑아 내 동이족 역사를 다듬어 자기들 잣대와 비위에 맞는 부분을 스스로의

역사, 문화, 문자(文字)로 재편한 것이 한족(漢族)의 본 모습이다.

북부여→고구려→백제의 이동노선이 토박이 동이족→발해의 민족통합과 이동노선상의 문화변천사,

즉 알타이어족의 행방(行方)이다.
중국의 사가(史家)이자 문자(文字) 학자인 “금문(金文)”을 전공한 “낙빈” 선생이 한문의 시원(始原)이 동이족에서 유래되었다고

실토했다.

남이 장군의 기개가 하늘을 찌른 시문인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가는데 모자랐다는 명시문은 바로 동이족의 기개를 그려 놓은 것이다.
중국 본토의 도시, 지명에 한반도의 도시 지명과 꼭 같은 곳이 여러 군데 나타나는 것도 한번 깊이 문화사적으로 추구해 볼만하다.

황제헌원군과 동이족의 시조(始祖)인 치우천황군과는 수십년간 피투성이가 되어 치열한 적수(敵手)로서 탁록전투에서 겨루어 불구

대천지 원수 이건만 치우천황을 중국은 지금 삼조당(三祖堂)에 모시고 자기들 조상이라고 위패를 들여 모시기 시작했다.
삼조당의 해괴한 역사변조 자체가 옛 쇼비니즘적 중화사상의 발로이자 마각(馬脚)이 들어난 실례(實例)이다.

고구려 역사 찾기에 덧 부쳐서 동이족의 조상 치우천황을 우리 동이복 후손들이 바로 모시는 일도 아울러 전개해야 된다.
의부(義父) - 의붓아버지 - 의 홍패를 떠메고 춤을 추는 <남의 성, 남의 조상>을 따르며 남의 글을 숭상하고 있는 얼간이

- 얼이 나간 사람 - 들이 우리나라에 많다. 제 정신은 없고 온통 남의 정신, 남의 장단에 춤을 추는 꼴이 되어 가고 있다.
근래 천자문(千字文)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만 얼추잡아 140여종이 넘는다는 것도 우리 겨레글인 갑골글의 변형인 한자(漢字)

 배우기의 열기(熱氣)를 알 수가 있다.

남의 글이라고 등한시 했던 것을 우리 위장에서 소화해 내는 몸짓이리라. 조상들이 마시고 피를 조성했던 바이칼 호수, 흑룡강 강물을

이 시점에서 다시 상기하자. “샤먼”이라고 백안시 하는 문화인류학, 종교애비의 갈래도 그 사실 아득한 사이베리아(시베리아) 

광야의 소나무 숲과 동토(凍土)의 풍습 즉 우리와 남이 아닌 풍습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
이런 저런 유구한 문화판도 위에서 문화의 큰 보자기를 짜내어 싸가지고 문화떡을 먹지 않는 한 그런 요소들이 내 것이 될 수가 없다.

지금 이 시점은 노일 전쟁 끝의 어수선한 초연냄새가 되살아나고 있는 시대이자 한족(漢族)의 정복왕 무제(武帝)가 그의 패권주의

복안(腹案)을 가지고서 동방의 동이족 문화사를 거두절미 했던 역사 날조 작업시대 상황과 80%가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경고하는

바이다.
독, 항아리 빚는 기술, 딱 나무로 한지를 걸러 만드는 기술, 8만대장경과 판짜기 기술, 큰 활을 능수능란하게 쏘는 궁술(弓術), 좁은

1mm 수준의 누비옷을 떠내는 섬세한 손 끝, 황토방 거주 풍습 이런 것이 우리들 유전자속에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우리들 유전자 속에는 어느새 켓첩이 아닌 고추장, 간장, 된장, 새우젓의 진액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서양세계의 표준말이자 글자의 근원이 라틴어 인 것처럼 아라비아 숫자가 아랍인들의 수리(數理)학 인 것처럼 이제 한문(漢文)은

백두산 민족이 “갑골문자”를 개량하여 밥먹듯 사용한 “뜻글”이니 만큼 이질감을 탈피하고 친근감으로 우리 고유문화의 큰 보자기에

싸서 우리의 유산으로 삼아야 된다

 

 - 19세기 말 동이족의 은허(殷墟)에서 거북 등딱지에 쓰인 서글이 대량 발견되니 이를 은허서글(殷墟書契)이라고 일컬케 되었으며

이 발굴로 인하여 중원대륙(中原大陸)이 동이의 서글문화권이었다는 사실과 아울러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고토(故土)이었음이 입증

(立證)된 것입니다.

書契(서글)’이 동이문자임을 주장하는 근거

1.(글→書)은 BC 3,800년 전 한웅천황 시대에 신지현덕에 의하여 초창되었다는 점.

2.중국이 시조로 받드는 황제헌원은 한웅천황 시대보다 약 1,200년 후인 BC 2,600년 경의 인물이며

치우천황시대에 헌원,항힐,대요 등이 삼천궁에 와서 자부선인으로부터 칠회제신의 달력과 삼황내문경을 배워갔다는 점.

3.전한(前漢)보자 약 300년 전인 춘추시대에 이미 공자(孔子)가 이 서글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으니 ‘한(漢)’나라 글자라고 할 수가

없다는점.

4.중국인은 ‘글’이라는 입성(入聲:‘ㄹ,ㅂ,ㄱ‘ 받침소리)을 발음하지 못한다는 점.

5.청(淸)나라 때에 만든 강희자전(康熙字典)에 실린 한자(漢字→서글)50,000자 중 중국어로 발음이
불가능하여 무음화(無音化)된

자(字)가약 30%가 된다는 점.

6.‘강희자전’은 청나라 강희 55념(서기 1716년)에 한림학자 30인이 종래의 모든 자전류를 망라하여
만든 한자자전의 집대성(集大成)

입니다.

급기야는 서기 1911년 손문(孫文)의 신해혁명 이후인 1918년 11월 23일에서야 한자 최초의 중어발음기호인 주음자모(注音字母)를 

만들어 쓰다가 그나마 대륙에서는 다시 영문발음법으로 재(再) 제정(制定:1958년)하여 쓰게 된 점.

7.‘강희자전’의 발음법(절운)은 우리민족의 현재 발음과 일치하고 있으니 서글(〓한자)은
우리 동이문자임이 분명한 점 등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의 도표에서 중국인들이 일개자(壹個字:한 글자)의 음(音)을 이음절(貳音節)이상으로도 발음하는 예를 보았으니 이제는

중국인들이 중국어를 표기할 문자가 없었으므로 부득이 우리 동이족이 창제한 ‘서글’을 가차(假借:빌려)하여 한어(漢語:중국어)를

표기하였다는 확신을 가지셨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