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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5백년만에 '햇빛'/ 첫표지(영인)

설레임의 하루 2009. 3. 29. 11:45

출처:다음블로그-짱이와 팽이   글쓴이-운영자

 

 

 




경복궁 수정전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글주간 기념 특별전시에 소개된 것이다.
훈민정음해례본 원본을 영인한 영인본이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한글의 창제 동기 및 제작 원리를 밝혀주는 문헌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8월에 경북 안동군 와룡면 주하리 진성이씨 이한걸 집에서 그의

셋째 아들 이용준이 발견했다는 상식은 잘못이며, 실제는 같은 안동 지역 광산김씨 종택인 긍구당 소장본을 이용준이 훔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동 출신으로 현재 부산 동래여중에 재직 중인 박영진(41) 교사는 8일 발간된 한글학회 기관지인 '한글새소식' 제395호에 기고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 경위에 대한 재고'라는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글에서 박 교사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해례본 발견 경위에 석연찮은 대목이 더러 발견되고 있으며, 나아가 긍구당 종손 김대중씨의

증언을 토대로 "해례본은 진성이씨 후예인 이한걸 집안 소장품이 아니며, 애초에는 같은 안동군 와룡면 가야리 소재 긍구당

소장품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해례본이 간송 전형필에게 들어가게 된 경로에 대해 박 교사는 김대중 씨의 증언을 근거로 이용준이 빼돌려 간송에게 팔아먹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교사가 채록한 김대중 씨 증언에 의하면, 해례본을 빼돌린 이용준은 김씨에게는 고모부가 된다.

이 증언을 정리하면, 김대중 씨의 조부인 김응수(1880-1957)는 사위인 이용준을 매우 아껴, 사위가 긍구당에 올 때마다 마음껏

책방을 이용하게 했으며, 이를 기회로 이용준이 김매월당집(김시습 문집)과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을 빼돌렸다고 한다.

당시 이용준은 성균관대 전신인 경학원에서 수학하며, 문학가이며 국문학 연구자인 김태준에게서 강의를 듣고 있었다.

(김태준과 이용준은 모두 월북했다) 이에 이용준은 긍구당에서 빼낸 매월당집과 훈민정음 해례본을 김태준과 짜고서 전형필에게

팔아넘겼다는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로 박 교사는 간송미술관 소장 현존 훈민정음 서문과 발문 부분이 뜯겨진 사실을 들었다.

박 교사는 "긍구당 소장 모든 장서에는 책 첫 장에 그것이 긍구당 소장임을 나타내는 장서인(일종의 도서관

직인)을 찍어 놓았는데, 이용준은 해례본이 긍구당에서 빼낸 것임을 숨기기 위해 고의로 첫장을 뜯어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 교사는 훼손이 심한 훈민정음 원본 일부를 보존하기 위해 그 뒷면에 붙인 소위 배접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사는 다시 김대중 씨 증언을 근거로 "훈민정음을 배접하는데 사용된 종이는 김대중씨 증조모가 같은 안동 지역 도목에 사는

안사돈과 주고 받은 언문 편지라는 사실이 훈민정음 원래 소장처가 긍구당임을 밝혀주는 또 다른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훈민정음 배접지에 대해서는 마침 서울대 언어학과 김주원(49) 교수가 국어학회 기관지로 최근 발간된 '국어학' 45호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이 논문에서 문화재청(www.ocp.go.kr) 제공 해례본 실물사진 중 배접지에서 희미하게 확인되는 언문(한글)을 포토숍을

이용해 사진 속 글씨를 다시 뒤집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해독한 결과 그것이 중국 명대에 발간된 '십구사략'의 언해본인 '십수사략언해'

중 권 제1임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사용한 같은 방식을 연합뉴스가 적용해 본 결과, 박 교사 주장처럼 이 배접지가 여성이 사용한 언간(편지)일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힘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