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근세조선

북관대첩비의 진실-임진왜란때 함경도는 동북 삼성지역이다.

설레임의 하루 2009. 5. 1. 02:28

*출처:다음카페-한국사랑  글쓴이-지성

 

 

 

 

 


높이 187센티,  1500자의 글을 담고있는 북관 대첩비.

 

6진 중에 경흥은 연해주이며 회령은
혜를렌강 일대를 말한다.
그러므로 만주 전체가 함경도 땅이자 동북부 간방 조선의 영역이다. 

 

북관대첩비의 진실-임진왜란때 함경도는 동북 삼성지역이다.

최근 북관대첩비가 10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북관지역의 승첩비를 일제시대에 관동군이  본국으로 가져와서 보관한 비문이며

최근반환운동이 결실을 맺어 다시 한국 땅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북관대첩비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은 놀라운 것이다.
 
함경도의 북관지역이 길림과 장춘일대를 말하며

임진왜란 당시 조선 8도 중에 하나인 함경도라는 사실이다.

북관대첩비를 가지고 간 동기는 다음과 같다.

만주국을 세운 일제 관동군이 러일 전쟁을 하다 함경도 길주에서 북관대첩비를 발견한 것이다.

이 비석을 발견하고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 발견 장소가 현 한반도 내에 있는 함경도 길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러일전쟁 당시에 만주국 전쟁터는 송화강 일대였으며 관동군이 활동한 지역의 중심이다.

일본이 만주에서 활동하는 군인을 관동군이라는 부르는 것은 만주 일대를 관동지방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원도 태백산맥 대관령을 중심으로 대관령의 동쪽을 관동지역이라 하고 대관령 서쪽을 관서지역이라 하는데

그것은 조작된 것이다. 

관동군이라고 한다면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활동하는 일본군이여야 한다.

그러나 만주에서 활동하는 군인을 관동군이라고 한 것은 이 일대가 관동지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으로 부터 간도반환 운동과 함께 러시아로 부터 연해주와 사할린 반환운동을 해야 한다.  
아직 국제법 상 법적 청구가 가능한 시점이다. 
 
이순신이 지켜낸 녹둔도가 사할린이며 우리는 녹둔도 회복운동을 해야 한다!

녹둔도가 두만강 하류의 작은 섬이 아니라 아무르 강 하류의 사할린섬이다.

이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정황으로 보면 절대 녹둔도가 될 수 없다.

여진족은 유라시아 일대를 주름잡은 유목족이며 훗날 금나라를 세우며 나중에 청나라로 발전하여 중국 대륙을 장악한

몽고제국이래로 가장 강력한 유목집단이다.

여진족은 몽고 초원과 만주일대를 주름잡은 유목족이다.

그런 민족이 가장 작은 척박한 한반도 함경도를 노리고 두만강을 노리겠는가!

만주일대는 화북평야로 한반도 보다 몇배 넓은 농경지와 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만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래서 절대로 한반도로 넘지 않으며 넘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 것도 고작 작은 땅인 두만강 하류 작은 땅을 노린단 말인가! 여진족이 그렇게 바보 집단인가!

드넓은 화북평야와 송화강과 아무르강 그리고 흑룡강의 농경지와 목축지를 버리고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한반도로 가서

그것도 아주 작은 섬 녹둔도를 노린단 말인가!


녹둔도는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한번만 읽어 보아도 안다.

세종실록지리지 내용 중에 중요한 것을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다.

조선 세종 때 6진(鎭)을 개척한 이래 여진족의 약탈을 막기 위하여 섬 안에 길이 1,246척의 토성을 쌓고 높이 6척의 목책을

둘러 병사들이 방비하는 가운데 농민들이 배를 타고 섬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농민들은 상주가 금지되었고, 춘경추수기에 한해서만 출입이 허가되었다.


여기서 녹둔도가 두만강 내에 섬이라면 성을 쌓고 군대가 상주하고 그리고 농사를 지을 땅 면적이 나오는가!

그것도 직경 2키로 안에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사할린 섬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녹둔도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역대 왕들은 자주 언급을 한다.

 

<세조는 함길도 도절제사인 양정과 도사 강효문에게 조산구자(造山口子) 녹둔도의 농민이 들에서 일할 때 야인들이 배를

타고 침입, 약탈할 것이 우려되므로 진장(鎭將)과 만호들에게 엄중히 방비하라는 밀유(密諭)를 내리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중종 9년(1514년)에는 봄철 농사를 지을 때면 조산보의 군민이 녹둔도로 들어감으로 本堡가 빌 정도라고 하고 있다. >라고 되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녹둔도는 사할린섬이다.

우리의 6진 최전방 연해주와 사할린은 반드시 찾아야 할 땅이다.

이순신의 젊은 시절 숨결이 묻어 있으며 우리 조상이 개척한 땅이다.

지금 사할린은 유전지대로 탈바꿈되어 황금의 땅이 되었다.

특히 사할린의 북쪽은 천연가스가 풍부하며, 1999년 7월부터는 원유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러시아의 보고로 통하는 지역이다.

간단한 도표가 제일 첫 그림에 사할린이 소개되어 있다.

사할린은 육지와 8km 정도로 떨어져 있으며 겨울철에는 바다가 얼어 걸어서 사할린까지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여진족인 겨울철에 말을 타고 섬에 침공이 가능하며 평상시에는 배로 침공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