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일본은 한반도의 후국(侯國)이다.

설레임의 하루 2013. 2. 28. 08:13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서울사나이 2013.02.27.  http://cafe.daum.net/mookto/GUJC/4727 

 

 

일본은 한반도의 후국(侯國)이다


일본어의 모어(母語)는 옛 한반도 언어

한편 하와이대학의 허드슨(Mark J.Hudson) 교수는 “일본어는 고대 야요이시대(BC400~AD300) 한반도인들이 사용하던 언어”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에 대해 비교언어학의 권위자인 일본인 시미즈 기요시(淸水記佳) 前 일본 구마모토(熊本)대학 교수와 한국인 박명미(朴明美)씨는 2003년 한글학회 창림 95돌 기념 연구발표대회에서 ‘한어 비교언어학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논문과 2004년 서울대에서 ‘한·일간 유전학·언어학·고고학적 자료에 의해 재구성’이라는 논문, 2004년 9월 ‘아나타(당신)는 한국인’(정신세계사)이라는 단행본 발행을 통해 “일본어의 모어(母語) 즉.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라고 규정했다.

시미즈 전 일본 구마모토(熊本)대학 교수는 만주에서 출생했으며, 아프리카 언어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아프리카연구소에서 18년 동안 재직했다. 이후 그는 1994년 구마모토대 언어학과에 부임했다.

 

시미즈 교수는 일본어 뿌리 찾기에 매료되면서 2002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연구에 몰입했다. 박병미씨는 한.일간 언어비교연구에 관심을 가졌던 서울 출생으로 일본 규슈산업대.시모노세키시립대학 한국어 강사로서 원래 이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박명미씨와 시미즈교수가 2002년 9월 공동 연구를 시작하며 세운 가설은 “일본어와 한국어는 자매 관계에 있으며, 양 언어가 거의 모두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는 것. 다시 말해 중국에서 차용한 한자어와 서양으로부터의 차용어를 제외한, 한국과 일본의 고유어가 거의 전부 같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비교언어학적 연구결과를 역사학 및 고고학적 연구와 접목시켜 볼 때 한반도인이 청동기시대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고대국가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어와 아프리카어가 같은 계통이고, 영어는 앵글로색슨족이 대륙에서 게르만어를 가지고 영국으로 이주한 것처럼 한민족 역시 일본열도로 이주하면서 언어도 고스란히 갖고 갔으며, 두 언어가 서기 500~600년까지 통역 없이도 서로 통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들은 한국어를 반도한어(半島韓語), 일본어를 열도한어(列島韓語)로 각각 규정했다.

이들은 인간의 한 언어는 보통 약5만 어(語) 이상의 어근(語根)을 가지고 있는데, 한·일 두 언어의 음운이 대응하는 일상 생활과 밀접한 기초어휘 약 5,000어나 찾아냈다. 그 중 1500개 어휘를 한글과 일본어를 로마자로 표기한 뒤 어근과 접사를 따로 구분하는 방식을 통해 어근의 유사성을 이 책에서 예로 제시했다.

 

이를테면 반도한어의 ‘산길.물길’은 경상도 사투리‘산질.물질’로 발음하듯이 일본에서는 山路를 sanji로, 阿蘇路는 asoji, 淡路는 awaji로 발음한다. ‘이야기’의 사투리 ‘이바구’는 이와쿠(iwaku), 가마솥- 釜(kam―a), 가마-窯(kam-a), 사라지다(sar-)-사루(sar―u), 구두(gud-u)-靴(kut-u), 노루(noru)-노로(noro), 갓(gas)-가사(kas-a), 무리(mur-i)-무레(mur-e), 아가(aga)-아카(aka), 위.우에(ue)-우에(ue), 하나(1.hana)-하나(端 hana), 후리다(hur-I-)-후루(huru), 꾸리다(ggur-i)-야리구리(yari-kuri), 논(non)-노(no), 아가리.아구(ag-)-아고(ag-o), 다물다(dam-u-r)-다마루(dam-a-r-u), 오들오들(떨다)-오도오도(o-do-o-do), 터벅터벅-토보토보(tobo-tobo), 홀리다(hor-ri)-호레루(hor-eru), 시(댁)(si)-시우토(시아버지.si-uto) 시우토메(시어머니,si-uto-me), (버선)볼(bor-)-보로(bor-o), 대두(dai-du)-다이두(dai-du), 나물(na-mur)-나(na),무르다(mur-)-무레루(mur-er-u), 병-비잉(biN), 고리(짝)(gori)-고리(kori), 다발(dab-a-r)-다바(dab-a), 마루(maru)-마루(maru 넓은마당)……

 

두 교수의 연구 결과에서 밝혀진 성과는 반도한어와 열도한어 사이에는 어근뿐만 아니라, 음운.형태.문법 구조 등 그 무엇을 비교하더라도 조직이 같으며 역사적으로는 열도한어는 반도 고(古)한어의 글자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전했다. 이 같은 성과는 한·일 양국의 언어학에 엄청난 혁명으로, 앞으로 양국 언어의 문법체계가 크게 달라질 것임은 물론, 한국어사전과 일본어사전도 영어나 독일어, 불어사전과 마찬가지로 어원이 실리고, 동아시아에서 본격적인 비교언어학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두 학자는 주장했다. 이 확인 작업은 5만 어의 어휘를 대상으로 진행 중이며, 인간의 디옥시리보헥산(DNA) 해독 작업에 시간이 걸렸듯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 작업도 완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언어를 통한 일본의 비밀을 밝힌 이들은 북규슈 지역에서 발굴되는 야요이인들의 인골 유전자(DNA)는 바로 현대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 고대 일본열도는 한반도인들이 건설한 국가였음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를 통해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실려있는 신화와 전설은 전부 고대 한국인들의 이야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이들은 밝혔다. 한편 이들은 “이를 통해 한국인과 일본인이 더욱 가까워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본고문서에서 발견된 각필


일본은 한반도의 후국(侯國)이다

 

1.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은 "나 자신과 관련해서는 옛 칸무(桓武) 50대 일왕의 생모 다카노노니이가사(高野新笠)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1984년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만찬 석상에서 "스이코(推古 33대 592~628년 재위)일왕 이전 일왕의 역사는 아직 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일왕 중에는 한국과 관련이 있는 분이 일본에 도래하여 그 혈통이 일왕의 역사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라고 하여 '살아있는 신'으로 존재했던 일왕 스스로 일본의 왕통이 한반도인이라고 밝혔다. 일왕의 말을 잘 살펴보면 역사의 진실이 보인다.

 

2.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는 <한반도를 경유한 아시아대륙인>에서 “인류학적 시작에서 고찰해 보면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족(移住族)들과 일본 원주족(原住族)의 비율은 대략 85%대 15% 정도”라고 주장했다. 또 “이주족들은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3.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시절 도요토미가 만들어 놓은 ‘코무덤(鼻塚)'이라는 너무나도 잔인한 명칭에 고민하다가 ‘귀무덤(耳塚)'이라 조작시켰던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하야시 라산(林羅山)은 '천손(天孫)들은 모두 대륙(한반도)에서 건너 온 인물이다' 라고 주장했다.

 

4. 前 동경대학교 명예교수였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는 “일본의 고대국가를 건설한 천황족(天皇族)은 대륙 및 한반도 방면으로부터 4~5세기에 일본 열도로 정복해 들어간 기마민족(騎馬民族)이다. 특히 미마키(美麻紀) 라는 별명을 가진 10대 스진왕(崇神王)은 가야에서 건너 온 황족이 틀림없으며 미마키란 스진왕이 살았던 옛 궁성의 이름인데 미마나(任那)를 일본 발음으로 미마키(みまき)라고 표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에가미 교수는 “일본서기의 강림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들이 일본땅 이즈모와 규슈에 내려와 원주민인 땅의 신들을 무찌르고 지배하였다’에서 하늘의 신들이란 임나(가야)에서 건너온 사람들 즉 임금의 땅에서 건너온 황족사람이다”라고 말했다.

 

5.우에다 마사키(上田正昭) 교토대 명예교수의 제자이면서, 2004년 교토시 역사박물관장과 교토산업대 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이노우에 미쓰오(井上滿郞)씨는 “2004년 경남 창녕군 송현동 고분에서 발굴된 금제 귀고리와 장신구 같은 유물들은 일본 나라(奈良)의 후지노키(藤ノ木)고분 출토 유물과 아주 흡사하다. 이것은 교토를 중심으로 한 일본 고대문화의 원천이 한반도 출신의 도래인들에게서 비롯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교토가 1천년 동안 일본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반도의 선진 문화에 있었다. 일본고대 문헌에 기록된 하타씨(秦氏)는 도래인들로서 교토 서쪽 가도노가와(葛野川) 일대에 농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하타씨가 씨족사찰로 만든 것이 고류지(廣隆寺)이다”라고 말했다.


주1) 광융사에는 한국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복사판이라는 일본국보 제1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광륭사 안내책자에는 ‘재목(材木)은 적송(赤松)이고 제작은 아스카 시대이지만 그 시대의 제작 기술로 어떻게 이처럼 인간적이고 또 인간의 순화(純化)된 모습이 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었을까’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 보면 일본 문자와 언어의 기원이 고대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히는 중요한 사항들이다. '역사조작' 카테고리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언어학적으로 살펴 본 일본은 분명 한반도인들이 건설한 한반도의 후국이다.


▲일본대반야경에서 발견된 각필 불상과 감옥에서 보낸 비밀문서의 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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