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한일간에 역사 논란 임나지역의 의문을 풀었습니다.

설레임의 하루 2013. 2. 17. 20:50
*출처:다음카페-한국고대사  글쓴이-슬기비 2013.01.23.  http://cafe.daum.net/121315/CFmN/1003 

 

 

 

 

드디어 한일간에 역사 논란 임나지역의 의문을 풀었습니다.

是加羅國(Kara)、安羅國(Ara)、斯二岐國(Shiniki)、多羅國(Tara)、率麻國(Sotsuma)、古嵯國(Kosa)、子他國(Kota)、散半下國

(Sanhange)、乞飡國(Kotsusan)、稔禮國(Nimure)十國
중국측 임나 십국 영어자료 입니다


•자타국(子他國) 코타Kota

자료주소 http://www.seacitymaps.com/malaysia/kota_kinabalu_map.htm  말레이지아 코타 키나랄루

pulau gaya 뿔라우 가야

 

 


경악할 일은 가야의 여러 작은 나라를 지칭하는 가라국(加羅國) 안라국(安羅國) 다라국(多羅國) 고차국(古嵯國) 자타국(子他國) 산반하국(散半下國) 졸마국

(卒麻國) 걸찬국(乞飡國) 사이기국(斯二岐國) 염례국(稔禮國) 탁순(卓淳) 탁기탄(啄己呑) 등 12개 소국(小國)이름이 비자야왕과 타밀 출신 둘째 부인 야쇼다라

(Yashodhara) 왕비 사이에 낳은 12 자녀 이름과 일치한다. 영어로 표기하면 Kara, Anla, Tara, Kocha, Chata, Sanbanha, Cholma, Kolchan, Saigi, Yomrye,

Taksun, Takkitan이 된다. 가야지역 12개 소국의 이름이 비자야 왕의 자녀 이름과 일치한 것은 당시 가야인이 비자야 왕 이야기를 금과옥조로 삼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타밀족은 그후 기원 초기부터 1200년경에 이르는 기간에 드라비다족이... 9-13세기에는 말레이인이 세운 슈리비자야 왕국이 말레이 반도와 자바 섬

 

 

삼국사기의 가야(伽耶)와 일본서기가 말하는 가라加羅 는 다른 지명 입니다
일본서기에서 임나(任那)를 가라국(加羅國)을 포함하여 10국을 합해서 임나(任那)라고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 임나(任那)의 10개국을 세분해서 

•가라국(加羅國) 지금의 대만 (중국 고지도에도 입증)


•안라국(安羅國) 지금의 규슈, 고대 대마도와 규슈 지역을 말로국(末盧局)을 말하며 또는 말로호자는 왜국의 소국으로 본래 읍루인(邑婁人)이 모여 살던 곳이다.
•사이기국(斯二岐國) 임나 10국 중 사이기국의 위치는 일기국一岐國 대마도 밑의 있는 두개의 일기도壹岐島 이키 섬

 

•다라국(多羅國) 아마미 군도 추정,(일본자료:日本古代的令制國之)一이라 하는데 그곳에 시라군(始羅郡)이 있었으니 본래 남옥저南沃沮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한민족의 조상으로 분류되는 부여, 고구려, 옥저, 예(濊), 한(韓) 등에 대한 귀중한 기록들이 나온다.

 


•졸마국(卒麻國)Sotsuma 현재의 가고시마현 서부 위치 薩摩国 사쓰마나라Sotsuma率麻國 문무천황 3년 미나미(임나任那)규슈 일본측자료
•播磨国 日本古代的令制國之 http://www.kobe-np.co.jp/news/himeji/alacarte/201301/0005663064.shtml 일본측자료
•薩摩国 Sotsuma率麻國 綜合中國史料和日本史料 http://zh.wikipedia.org/wiki/%E4%BB%BB%E9%82%A3 중국측자료

 

일본 마麻의 고향 日本一の麻の郷 日本麻 鹿沼地区 졸본한기卒麻旱岐 가야의 여러 나라에서는 정치지배자를 "한기(旱岐)"라고 불렀다. 이 말은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칸(KHAN)이라는 뜻으로, 신라에서는 "간지(干支)"라고 불렀다.
http://d.hatena.ne.jp/carol20goldenhits/20110714/1310644365
천일창 신라국 왕자 天日槍は新羅国の王子といわれます。

日本の天皇の徳を慕って垂仁天皇三年(紀元前二七)舟に乗って播磨国宍粟邑(しさわのむら)にやって

 


1404년 무로마치(室町)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사신을 명에 보내 조공하자 명 황제는 요시미쓰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冊封)했다.
일본이 조공을 통해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자 명은 감합(勘合) 무역을 허락했다. 감합이란 조공하러 온 자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신표를 가리킨다.

이렇게 하여 15세기에는 견명선(遣明船)이라 불리는 일본 상선들이 명의 닝보(寧波)로 입항했고 생사와 비단, 도자기 등 중국 물자들이 들어왔다.

 

 

문인과 승려들도 왕래했다. 교린(交隣)의 상대국 조선과의 무역도 짭짤했다.

조선은 미곡과 목면 등 생필품뿐 아니라 고급 문화 상품인 불전과 대장경도 일본에 넘겨주었다.

특히 조선에서 들어간 다량의 목면木棉은 일본인日本人들의 의생활衣生活에 혁신革新을 가져왔다.

목면木棉이 없어 주로 마(麻)로 만든 옷을 입어야 했던 기존의 상황을 바꾸었던 것이다.

 

가야국(加耶國)과 가라국加羅國은 별개의나라
백제또는 신라가 가라국加羅國을남가라(南加羅) 관할통치
안라인(安羅人) : 지금의 큐슈지역을 말함 (구주국 존재)


산해경도 엔 대만은 가라국加羅國

http://bbs.godeyes.cn/upload/2006/05/27/192259.jpg

은 2천년전에 저술된 책으로 일반 독자들에게는 줄글로 많이 알려져있다. 하지만 의 진면목인 산해경도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은 최초로 그림이 삽입된 경전으로 원시古圖, 육조시대 張僧繇、송대 舒雅의 는 이미 실전되었지만 그림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고대의 전통은 명청 교체기에

제작되고 널리 전해진 에 남아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에 보이는 '임나가라(任那加羅)'는 이미 백제의 세력권에 들어간 임나가 백제를 지원하여 고구려와 싸웠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일본서기》에는 이 시기(4∼6세기)에 임나국사(任那國司) 일본부행군원수(日本府行軍元帥)가 임나를 지배하였다고 기술한 것은 '임나가라(任那加羅)'

는 지금의 대만을 말하는 것이다

          '임나가라(任那加羅)'는 지금의 대만 말한다

 

섬나(태국)

          남만南蠻:남쪽 오랑캐. 남쪽 지방의 다른 민족을 만(蠻)이라 불렀음. 주로 유구(琉球)•섬라(暹羅) 등을 의미함.

          남가라(南加羅), 땅이 협소하다고
          안라인(安羅人) : 지금의 큐슈지역을 말함 (구주국 존재)
          탁순(卓淳),은 상하 둘로갈라져 있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대마도가 틀림없다
신공황후가 7국을 평정한곳은 (신라가 관할했던 지금의 일본 소국들을 말함
탁순(卓淳대마도)에 모여 신라를 쳐서 파하고(신라가 관할했던 羅7지역말함, 비자화본(比自火本), 남가라(南加羅), 록국(國), 아라(安羅,규슈),
다라(多羅), 탁순(卓淳,대마도 상하 둘로갈라져 있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대마도가 틀림없다 ), 가라(加羅지금의 대만) 7국을 평정하였다.

 

         일본 학자들과 한국 학자들이 대만,가라국(加羅國)과 (경남 지역의가야국[伽倻國] 같은 선상에서 보기때문에 역사가 꼬임

「신공황후(神功皇后) 49년 황전별(荒田別) 록아별(鹿我別)을 장군으로 삼았다.

구저(久)들과 같이 군사를 정돈하여 탁순국(卓淳國)에 건너가서 장차 신라를 치려고 하였다.

때에 어떤 사람이 "군사가 적으면 신라를 깨칠 수 없다. 다시 사백(沙白)과 개로(蓋盧)를 보내어 군사를 증가할 것을 청하여라"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목라근자(木羅斤資)와 사사노궤(沙沙奴)[原註 이 두 사람은 성을 알수 없는 사람이다.

 

다만 목라근자는 백제의 장군이다]에 명하여 정병을 거느리고 사백(沙白)과 개로(蓋盧)와 함께 가게 하였다.

모두 탁순(卓淳)에 모여 신라를 쳐서 파하고 비자화본(比自火本), 남가라(南加羅), 록국(國), 아라(安羅), 다라(多羅), 탁순(卓淳), 가라(加羅) 7국을

평정하였다. 군사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古奚津)에 가서 남만(南蠻)의 침미다례(沈彌多禮)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신공황후군이 막강한 신라를 정복하고 7개국을 정벌하고 서쪽으로 돌아 남만南蠻(남쪽 오랑캐. 남쪽 지방의 다른 민족을 만(蠻)

이라 불렀음. 주로 유구(琉球)•섬라(暹羅) 등을 의미함.) 까지 친다는 것은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된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역사 학자들은

남만(南蠻)의 침미다례(沈彌多禮)를 찾아야만 한일 고대사의 열쇠가 풀린다.

일본서기의 기록은 경남 지역의가야국[伽倻國]는 전혀 무관한 곳이다 .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왜가 신라를 공격하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면서 가야와 왜를 싹 쓸어버린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왜가 바로 규슈지역이다.

당시 가야와 왜는 고구려입장에선 거의 같은 존재라고 할만큼 친연성이 깊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패한 가야인들이 도망한 곳이 바로 규슈지역이다.

그것은 유물로도 증명된다.

삼국시대의 고대(古代) 한일관계를 오늘날의 한일관계의 시각으로 보면 그건 잘못이다.

삼국시대에 우리가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어 있었던 것처럼 일본역시 수많은 많은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특히 5세기 야마토에 의해 통일하기 이전까지는 고대 일본은 규슈지역도 구마소(熊襲)지역과 야마토지역, 북규슈지역은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지금의 토오쿄 북쪽지역은 에미시지역으로 오랑캐지역으로 여겨졌다.

 

중국 고지도에는 쿠슈쪽 왜국과 현재 일본 고지도가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

< 천하고금대총편람도 >

숭실 대학교 박물관소장 에도 지금의 대만은 가라국加羅國이 나온다.

 

 


 

산해경도 지도에 분명히 지금의 대만은 가라국 지명이 나온다

중국 청나라 고지도 에도 가라국 나옴.

남제서 권 58 동남이전 동이 백제 가라국은 지금의 백제의분국 대만을 말한다.

학자들이 가야 지역에서 찾으려니 쉽게 답이 풀리지 않는다.

남제서가 말하는 가라국과 가야국은 분리해야 함.

가라국은 대만이였다,(강추!) 임나(任那) 위치는

가라가 중국 사서에서 최초이고 유일하게 항목으로 기록된 것이 남제서(南齊書)인데 한의 일부라 하였으니 "韓"의 위치에 의하여 가라의 위치가 결정될

수밖에 없으며 삼국지 후한서 동이(東夷)에서 "韓"은 북평, 태원의 고구려와 남월, 주애, 회계동야현, 이주, 단주의 왜 사이에 있었으니 한의 일부였던

가라의 위치 또한 그 사이에 있었을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가라가 있는 곳에 임나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한(韓)의 일부였던 가라(加羅)의 위치는 북평(北平)과 주애(朱崖) 사이에 있어야 한다.

한(韓)이 고구려의 북평(北平 : 阜平) 어양, 상곡, 태원(漁陽 上谷 太原)과 왜의 남월, 주애, 이주, 단주, 회계, 태(南越 朱崖 夷洲  洲 會稽 台)의 사이에

있어야 하는데 가라(加羅)도 한(韓)의 일종이니 당연히 그 사이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향고도님 중국 고지도

http://www.google.co.kr/imgres?q=%EB%8C%80%EB%A7%8C+%EA%B3%A0%EC%A7%80%EB%AA%

85&um=1&hl=ko&newwindow=1&biw=1280&bih=877&tbm=isch&tbnid=fvWgVKRf1RKu7M:&imgrefurl=http://blog.daum.net/_blog/tagArticleList.do

%3Fblogid%3D0BVH1%26tagName%3D%25EC%25A4%2591%25EA%25B5%25AD&docid=7hyFnqdLXnfSM&imgurl=http://

cfs5.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253Ffhandle253DMEJWSDFAZnM1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MzEuanBnLnRodW1i%

2526filename253D31.jpg&w=566&h=437&ei=2wTmTszsBamUiAeNyaC2BQ&zoom=1&iact=hc&vpx=191&vpy=156&dur=307&hovh=197&hovw=256&tx=

106&ty=158&sig=101869421685388248121&page=1&tbnh=155&tbnw=201&start=0&ndsp=21&ved=1t:429,r:0,s:0

월越,(베트남) 하이난 海南(해남)

 

 

중국 고지도 에는 남부지역에[扶餘]부여섬이 있고, 다음에 조그만 일본日本섬있다,

왜노倭奴는 분명히 분리되어 있다 [夫餘]북만주지역에 있는 부여夫餘[扶餘]부여,남부지역에 있는 부여 달리 표기되어 있다

모인毛人 일본어로 아이누인을 蝦夷(하이) 또는 毛人(모인)이라 써놓고 에비스(衣 比 須 ,エ ビ ス)라 읽는데, 이것은 아이누어로 ‘남자’를 뜻한다고 한다

모인(毛人)과 하이(蝦夷)

지금의 일본은 왜노倭奴와 모인毛人이 원주민 것이다

(창국昌國 은 대만) 옆에는 류구琉球(오키나와)

중국 고지도에서 보듯히 일본日本은 원래 조그만 섬에서 부터 시작된 이름왜노倭奴와 모인毛人이 원주민 살고 있던곳을 점령

[양직공도] 양직공도에 나오는 나라들

백제에 부속된 나라로 반파(叛波) 이하 9개국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주로

≪일본서기 日本書紀≫에 실려 있다.

 

 

 

일본 사학계의 초기 논리의 문제점은 임나일본부를 왜왕권의 외교기관이나 가야 제국을 통제·지배한 기관으로만 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서기』의 기록도 모순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서기』 킨메이(欽明) 2년, 5년조의 이른바 '임나 부흥 회의'를 보면, 백제왕이 '제왜신'과 가야 제국의 사자·대표를 소집하여 남가라·

금관가야의 부흥책에 관해 협의하고 있는데, 이 회의에서는

① 백제왕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점,

② '제왜신'이 왜왕권의 외교권을 체현(體現)하고 있지 않은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