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다음블로그-진실되게 살자 글쓴이-한겨레 2011.06.19 http://blog.daum.net/cosmicchung/718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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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의 출발점과 중국역사의 출발점 1. 한국의 역사는, 거쳐 나라의 시초를 한인(桓因)의 한국(桓國)으로 보았고 서기전7197년을 시작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전 한국시대를 63,182년이라 적고 있다. (모두 12족)의 시대를 거치고, 분거시대를 거쳐 천산(天山)을 거점으로 하여 유인씨(有因氏)를 거치고 한인씨(桓因氏)를 거쳐 태백의 한웅씨(桓雄氏)를 거치고 임검씨(壬儉氏)를 거치고 부루씨, 읍루씨에 이르고 있는데, 각 1,000년씩하여 황궁씨 이후 7,000년이라고 적고 있으므로 역산하면, 연대계산이 확실한 서기전3897년의 한웅씨 이전의 역사는 한인씨 1,000년, 유인씨 1,000년, 황궁씨 1,000년이 되어 서기전 약6897년이 되는데 이는 한단고기 삼성기의 기록인 서기전7197년과 비슷한 연대인 바, 한국시대가 3,301년이라는 기록이 정확하다고 보므로 서기전7197년에 황궁씨의 한국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된다. 배달나라가 서기전3897년부터 서기전2333년까지 1565년간의 역사가 있었으며,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238년까지 2096년간의 단군조선의 역사가 있었던 것이 된다. 그리고 전(前) 한국시대에 해당하는 63,182년을 계산하면 마고성의 시대는 서기전7197년이전의 63,182년이 되어 서기전70379년 부터 시작된 것이 된다. 제곡고신, 제지, 제요, 제순,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를 적고 있다. 세운 사람이다. 서기전3218년까지 16대 310년을 이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公孫氏)로부터 이어받아 중국의 실질적인 시조로 기록되고 있다. 배달나라 천황인 치우와 100여회의 전쟁을 치른 후 자부선인의 가르침을 받고 도를 얻어 신하가 되었으며 이후 약300년간 전쟁이 없었고, 제곡고신에 이르러 한차례 전쟁이 있었으며, 요임금에 이르러 전쟁이 잦아졌고 결국 요임금은 형 제지를 멸하고 구주의 땅을 함부로 나누어 서기전2357년에 당도를 세우면서 배달나라의 도를 배반하였고, 웅씨국(염제신농국의 후신)을 기습침범하여 비왕으로 섭정하던 단군왕검이 왕성을 잃자 무리를 이끌고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하여 나라를 정비하고 구족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이 되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였는데, 이후 유호씨와 그 아들 순 등 환부 권사 등 100여명을 파견하여 요임금을 깨우치도록 하였는데, 이후 요임금은 굴복하였고 순을 꾀어 목숨을 보존하고 나라를 보존하였다. 서기전2284년에 천자가 되었다. 2224년에 단군조선의 사자 유상의 군사와 협공하여 순을 죽이고 나라를 차지하였다. 한웅이 한인의 명을 받고 태백으로 가서 신시를 열고 개천할 당시에 반고(盤固)라는 자가 10간 12지의 신장을 이끌고 삼위산으로 가서 제견(諸 田犬)의 가한(可汗)이 되었다.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는 반고를 그들의 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반고는 한국시대 이후 배달나라의 제후국에 해당한다. 반고는 견족의 왕이라 할 수 있는데, 견족은 바로 한국의 구족 중의 하나이며, 고대중국의 하(夏) 은(殷)나라가 단군조선의 견이(田犬 夷)라고 부른 족속이다. 특히 인황씨의 나라는 9형제가 다스렸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9황64민과 일맥상통하는 기록이다. 천황씨, 지황씨, 인황씨의 연대는 상징적으로 각 18,000년씩 적고 있는데, 다 합하면 45,000년이 되는데, 배달나라 건국 때인 서기전3897년이전의 45,000년을 계산하면 서기전48897년경이 된다. 있었고, 수도는 마고성에서 시작되어 서기전7197년경부터는 천산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서기전3897년에 단국(檀國=박달나라= 배달나라)이 있었으며 수도는 태백 신시였고, 서기전2333년에 조선(朝鮮)이 있었고 수도는 아사달(阿斯達)이었다. 그이전의 염제신농국과 태호복희의 진제국과 그 이전의 유소, 수인, 반고의 시대는 배달나라 제후국의 역사인 것이다. 물론 황제헌원의 웅국도 배달나라의 제후국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황제헌원은 치우천왕에게 신하가 되었으며, 그후 300년간 전쟁이 없다가 제곡고신과 한차례 전쟁이 있었던 것에 불과하고, 요임금이 배달나라에서 이탈하려 전쟁을 일삼았으나 단군조선의 속국이 되었으며, 순임금은 직속 단군조선의 제후이며, 하나라 시조 우는 처음에는 단군조선의 후원을 얻어 나라를 차지하였는데, 곧 단군조선을 배반하여 자칭 하왕이라 하면서 독단을 차리고 항거하였으므로 , 실질적인 국가의 독립은 하나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후에도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단군조선에 조공하는 나라에 불과하였으며, 대대로 하은주를 둘러싼 단군조선의 제후국 (구이의 나라)의 견제를 받았고 진시황에 이르러 중국내륙의 구이(황이, 남이(풍이), 적이, 서이(백이))가 나라를 잃고 흩어졌다.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엄연한 사실이며, 진실이다. 배달나라 이전의 역사를 우리가 정립하여 놓지 않으면, 이전의 역사는 중국역사가 되어 버릴 위험성이 있으므로 천부삼인 (天符三印)의 역사를 확실하게 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천부삼인은 마고성 시대부터 시작되고 있다. 즉 마고성 시대의 황궁씨 시대로부터 단군왕검에 이르고 있으므로 천부삼인의 역사를 정립하면, 배달나라 이전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로 확실히 정립되는 것이다. 한웅은 서기전3897년경 한국말기에 일어난 호족과 웅족의 전쟁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천경, 신고, 전계로써 가르치기 위하여 개천을 하였던 것이므로, 이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은 서기전3897년 이전에 이미 한국(桓國)으로부터 전해져 온 것이 되는 것이다. 한웅은 천왕랑으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가르침을 닦고 수련하던 단체의 스승으로서 무리 3,000을 이끌고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실현하는 개천(開天)을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역대로 동이족들이 고대중국이라는 나라와 백성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호족(虎族)이며, 나중에 백이(白夷) 또는 서이(西夷)인 것이다. 그리하여 결정적인 고대중국의 백성의 근간은 주나라 시대의 서이(西夷)가 되며, 주나라는 황이, 풍이, 서이, 동이, 적이(赤夷)의 나라가 된다. 주나라의 동쪽에 해당하는 은나라는 황이, 풍이, 백이(=서이), 동이족의 나라이며, 하나라는 황이, 남이(藍夷), 백이의 나라이고, 순임금과 요임금은 황이, 풍이(風夷), 백이의 나라이다. 그리하여 고대중국은 황이(웅족), 백이(호족), 풍이(태호복희 후손), 남이(치우천왕의 후손), 동이(은나라 이후의 황이, 풍이, 남이), 서이(주나라 시대의 백이), 적이(남만)가 주축이 되는 나라가 된다. 백이, 풍이(남이), 적이로의 사이(四夷)로 이루어진 나라가 된다. (田 犬夷), 방이(方夷), 우이(于夷), 양이(陽夷), 현이(玄夷))의 나라이다. (황이, 남이(풍이))들의 분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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