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 출신의 주원장은 고려 귀족 청주 한씨의 노비출신으로 신분의 제약을 느껴 서해를 건너 지나대륙으로 이주하여 농민반란(홍건족의 난)을 주도하여 명나라 황제가 되었다. 주원장의 황후나 참모들이 모두 고려인들이였다.
▲ MBC'서프라이즈'방송화면 자료
청주 한씨 문정공파 족보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麗妃 明 太宗 永樂帝 西成府院君永恭愼夫人 明 宣宗宣德帝上 同昭惠王后 德宗大王 西原府院君確丁巳誕降 甲子昇遐..." 고려 귀족 청주 한씨 여비가 주원장의 부인으로 영락제를 낳았다는 족보 내용이다
지나대륙의 주인이 되는 황제 정도면 황제의 생가 정도는 널리 알려져야 상식이다. 그러나 주원장의 생가는 그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주원장이 지나대륙으로 이주해 온 고려인이기 때문이다. 주원장이 전라도 해남의 한영정집안의 머슴이었을 때 주인집 딸인 한여비와 눈이 맞아 지나국으로 도피하였거나 주원장이 지나국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은 후에 여비를 불러들인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아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나,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모친이며 주원장의 부인되는 여비를 낳은 문정공파 한씨의 족보에 고려 중엽에 왕후들(容信王后,容懿王后)를 배출한 고려 최고의 명문 대가다.
따라서 지나 사학계가 주원장의 황후 여비에 대해 공녀 운운함은 이미 앞에서도 기술한 바 홍건족의 민란이 일어나던 시기에 해당함으로 오히려 원나라에 공녀를 바쳤어야 했던 상황에 비하면 이미 명나라를 개국하기 전에 혼인을 하여 자식(영락제)을 낳던 연대상 혹은 조건상에서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민간 전설집에는 주원장이 지나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는 얘기가 적혀 있어 더욱 신빙성을 더했다. 주원장의 출생지로 회자되는 곳이 우리 나라의 전라남도 해남 마을로 전해져 내려 온다.
이성계 아버지는 고려 당대 유명한 풍수지리가 '유현'으로부터 천하 명당이 전라남도 해남 바닷가 어딘가에 천하제일의 명당이 있음을 알아 내고는 급히 찾아가 보았는데, 수영을 잘 하고 털이 많아 털복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주원장이라는 사람이 3년전에 자기 부모를 모신 후에 지나지역의 '안휘'라는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말년에 주원장의 유언에 의해 극비밀리에 해남에 묻혔다는 것이다. 해남 어딘가에 주원장의 무덤이 있으리라.실제로 지나국 화교들이 최고로 치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묘지라고 불리는 곳인 명효능이란 곳에는 터만 성대하게 궁궐같이 지어져 있을 뿐, 묘지가 없다.
해남에 전해 오는 털복숭이 바다수달의 아들 주원장 전설
전설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가 천하 명당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메다가 전라남도 해남에서 바닷가 어딘가에 천하제일의 명당이 있음을 알아 냈다.
그 곳에다 조상의 묘를 쓰게 되면 자신의 아들이 천자가 되는 천고제일의 명당이었다.
그러나 정작 관을 안착시킬 묘터는 찾지를 못하고 한달을 내리 보내다가 마침 해남 마을의 털복숭이 소년이 헤엄을 잘치고 해남 이곳 저곳 안가본데 없이 지리에 환하다 해서 그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다. 물론 명당을 찾는다는 목적은 숨기고 길안내를 부탁했다.
그렇게 또다시 한 달을 명당을 찾아헤멘 끝에 마침내 천하제일 명당의 위치를 발견해 냈다. 그 곳은 해남의 육지가 아닌 바다 한가운데의 바위섬에 위치해 있었다.
위치를 확인한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는 묘를 쓴뒤에 혹시나 털복숭이 소년이 그 묘자리를 훔칠까 봐 죽이려 했다. 그러나 길안내를 해준 뒤 그 털복숭이 소년은 온데 간데가 없었다. 묘터를 쓰고 난 뒤 털복숭이 소년을 죽여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며칠간을 그 소년을 찾아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하늘에 벼락이 치고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는 드디어 자신이 쓴 천하제일의 명당의 기운이 움직였다고 생각하고 크게 기뻐 했으나 그순간 저멀리 털복숭이 소년이 나타나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 나는 당신이 천하 명당을 찾아 이 곳에 온 것을 알고 있다.
나역시 오랫동안 이곳 어딘가에 천하제일 명당을 찾아 헤메고 있었는데 묘를 쓰는 정확한 위치와 시간을 몰랐던 것 뿐이다. 그런데 그대가 와서 마침내 묘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시간을 알게 되어 그 묘터에 나의 조상님의 묘를 썼다 그대는 묘의 위치를 알 게 해 주었으므로 그 옆에 그 보다는 못하지만 작은 나라의 왕이 되는 혈자리가 있기에 그곳에 당신 조상의 묘를 썼으니 그리 알라. 이제 나는 중원 대륙으로 간다. 그 곳에서 나는 나라를 세울 것이다." 하고 떠났다고 한다.
주원장의 출생지가 중국 어디에도 없고 출생지가 밝혀지지 않음은 주목할 만한 처사이다. 대개 황제가 태어난 땅이라면 지나대륙의 어딘가라면 그 마을 사람들은 난리가 난다. 황제가 출생한 곳이라 하여 자손대대로 자랑을 하기 마련인데 주원장의 출생지는 지나대륙에는 없다.
명나라의 통지 [대명일통지]에는 주원장이 이르기를 "짐의 조상은 조선인이다. 짐의 조상의 묘소가 조선에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고 하며, 주원장은 朱씨로서 주자의 후손, 신안 주씨일 가능성이 높다다. 그러니 주원장을 여러정황으로 살펴 보았을때 당시 漢族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신안 주씨의 족보-지나대륙 하남성 신안면(新安面)에서 태어난 주잠(朱潛)은 몽고의 침입을 피해 아들 주여경(朱餘慶)과 문하생 섭공제(葉公濟) 등 7명의 학사(學士)를 데리고 고려로 망명하였다.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중원의 주인이 된 원이 고려에도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안 대신 능성(綾城)을 본관으로 사용했다. 이후 아들 주여경, 손자 주열(朱悅), 증손자 주인장(朱印長), 주인원(朱印遠), 주인환(朱印還) 등 후손들이 능성(綾城)·웅주(熊州)·전주(全州) 등지에서 각각 갈려 나갔다.
그 후손들은 다시 능주(綾州)·나주(羅州)·전주(全州)·함흥(咸興) 등 87개의 본관을 가졌으나 1902년(고종 39) 종중의 합의로 주석면(朱錫冕)이 상소하여 여러 파의 주씨는 신안주씨(新安朱氏)로 통일됐다. 여수의 신안주씨는 능주파들이 임진왜란 때 입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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