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마한과 백제의 해상문명이 낳은 국가-일본

설레임의 하루 2011. 12. 17. 01:58

*출처:국민뉴스  논설위원칼럼                                               

                                                        

 

 

 

 

마한과 백제의 해상문명이 낳은 국가-일본
- 일본천황가는 왜 온조.구태.근초고대왕 등 백제왕들에게 제사를 지내나?
윤복현 객원논설위원, 2011-12-15 오후   

나라와 민족간의 원한과 감정은 후대까지 이어지며 무수한 민중들이 전쟁에 끌려 가게

되고, 식민지 여성들은 군위안부로까지 끌려 가게 된다. 힘이 없는 나라의 설움이다.

나라가 힘이 없고, 권력이 부패하고 정치가 자주성을 상실하면 결국 식민지가 되고

국민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제 지나국과 일본을 낳은 단군조선족의나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두뇌가 우수하고 근면 성실하고 인내력이 강한 국민의 힘으로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당당히

할 말은 해야 할 위치가 된 것이다.

부모의 마음으로 정치를 하고 외교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나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부당성에 대해 당당히 할 말을 할

줄 알아야 하고, 국가부도직전에서 박정희가 경제개발비용을 일본으로부터 차용하면서

독도영유권을 포기하고 위안부 문제와 강제 노역자들에 대한 피해배상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다면 정부문서공개로 공식화하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하고, 일본정부에게는 군위안부

의 강제성 문제에 대해 사죄요구와 피해배상요구를 해야 하는 것이지, 쉬쉬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일본정부도 반인도적인 조선여성인들에 대한 강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시인하고 사죄하고 피해배상함으로써 도덕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로 세계 앞에 바로 서야

할 것이다.

 

 

[영상자료]한반도인들과 백제왕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지내는 일본천황가

북만주지역에서 사할린과 훗카이도를 건넌 백인계 수렵족 아이누족이 살았던 일본열도는

단군3조선연방시대에는 마조선(마한)의 영토가 되었다.벼농사.토기문화 등 일본의 문명은

마한문명으로부터 출발한다.일본열도의 고대 유적유물은 대부분 지나대륙-한반도-일본열도

를 연결시켜 주었던 영산강지역을 중심으로 마한인들의 유적유물이다.

그런데, 단군조선연방이 해체되고 요서지역에 해당하는 번조선(기자조선)이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세력에게 먹히자, 단군조선유민세력이 한반도지역인 마조선 지역으로 밀려

오면서 토착마한세력이 대거 일본열도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부여의 갈래로 요동지역에서 서해를 따라 웅진(공주)에 나라를 세우고 마한의

해상권인 서남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한강지역의 십제를 통합한 백제가 마한연방을

복속하고 일본열도을 잇는 문화국가로 등장하자, 일본열도는 자연스럽게 백제담로가

되었고, 오사카을 비롯하여 일본열도는 거의 백제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백제지명들이 즐비한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왜 일본천황가는 온조.구태.비류.근초고왕.성왕 등 백제대왕들에게 제사를 지내는가?

일본열도는 근초고대왕의 아들 근구수대왕이 태자시절에 일본열도를 점유하고 야마토왕조를 세우고 자신의 할아버지 근초고대왕에게 백제제후라는 명문을 새긴 칠지도를 받은

근구수대왕의 아들(인덕천황)에게 천황자리를 맡겼고, 백제대왕의 자리를 신라귀족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침류대왕에게 물려 주고 일본열도로 건너와 일본천황에 오르게 되니

오사카 지역의 대형 고분인 응신천황릉이다.

백제 제14대 근구수대왕은 375~384년간 재위기간 9년이고, 일본의 오진[應神(응신천황)은 백제인으로 390-400년간 제위한 인물로 백제 근구수대왕의 연대와 딱 맞아 떨어 진다.

오진大津신사의 기록: 特に百濟の貴須王の子孫と言われる葛井氏、船氏、津氏の三氏族が勢力を扶植していった。葛井氏は藤井寺市藤井寺の辛國神社、船氏は柏原市國分市場の國分神社、津氏は当社(=大津神社)とそれぞれ祖霊を祭っているようだが、明治以後であろうか素盞嗚尊や牛頭天王を祭る形になっている。



현재 일본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일본문자를 만든 인물은 전남 영암출신의 백제 박사

왕인이다. 일본왕실의 요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한자를 보급하고 한자의 핵심부수만

빼서 문자를 개발하여 보급하니 현재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일본문자인 것이다.

일본인들은 왕인박사를 일본어의 아버지라 칭하고 있다.

    

▲ 근구수대왕릉으로 추정되는 일본의 응신천황릉(오사카)

근구수대왕과 신공황후가 왜 일본인들에게 나란히 불상으로 섬김을 받고 있으며,

일본지폐에 신공황후를 새겨서 일본을 대표하는 시왕모인양 떠 받들어 대는 것일까?

그것은 근초고대왕 시기에 단행한 마한.가야.신라를 정벌한 근구수대왕의 후비가 왜왕의

왕후로 왜여인 출신인 신공황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초고대왕 시기에 실현한 마한.가야.신라정벌을 마치 당시 연대기에 맞추어 신공황후

가 정벌하여 백제에게 준 것 처럼 한반도와 인연을 단절한[일본서기]에 기록하여 혼란을

준 것이다. 당시 왜의 군사력으로는 마한.가야.신라를 정벌한 능력자체가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백제 근구수대왕은 태자 시절에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열도를 통일하고 야마토왕조를

세워 362년에 응신천황이 되고 왜 여인인 야가하에히메를 취하여 신공황후로 삼고,

야가하에히메가 근구수대왕의 아들을 임신하니 인덕천황으로 태중에서 삼한왕, 즉

대마도왕으로 임명하고 5세에는 왜왕(인덕천황)으로 임명한다.

근초고대왕 시기에 칠지도를 만들어서 보낸 대상은 바로 신공왕후가 낳은 근구수대왕의

아들인 셈이다. 즉, 자신의 손자에게 보낸 예물이 칠지도인 것이다.

이렇게 일본열도는 백제의 담로지역이 된 것이다.

근구수대왕은 태자시절에 마한의 영향권에 있던 일본열도를 통일하고 백제로 돌아 가서

고구려의 침략에 맞서 고구려 남평양성(북한 평양성)에 달려가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고 마침내 백제대왕이 되었고, 혼인한 신라 이벌찬의 딸이였던 아이부인(왕후)으로부터

낳은 침류왕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383년에 다시 일본으로 가서 일본열도를 통일하고 세운

야마토 왕조의 개국시조로서 응신천황이 되었다.



근구수대왕이 백제로 돌아가 백제대왕 직을 수행하고 있을 때 신공황후는 아마 아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근구수대왕을 대신해서 섭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사에서 신공황후의 위상이 높아진 이유일 것이다.



근구수(응신)천황 아들인 인덕천황릉

이후 백제대왕들이 태자시절에서 왕(천황)노릇하다가 백제의 왕위에 즉위하게 되니

일본열도에서 한반도로 건너와 왕위에 즉위한 동성대왕이나 무녕대왕이 그런 사례다.

백제 성왕의 경우에는 백제대왕과 함께 긴메이 천황이라 불리우는 일본왕을 겸직하기도

하였다.



일본국보. 호류사 백제 관음상(동양의 비너스)-백제 성왕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다.



  

대경(宜子孫獸帶鏡) 일본 인덕왕릉 출토, 수대경(獸帶鏡) 공주국립박물관 소장

미국 보스턴박물관 소장

그런데, 신라 진흥왕이란 자가 나제동맹을 파기하고 고구려와 야합하여 한강지역을

낼름해 버리자, 이에 분노하여 전쟁을 지휘하기 위하여 전장터로 나가는 백제 성왕까지

매복하여 죽이고 시신을 경주 신작로에다 묻고 밟고 지나가게 다니자, 백제와 신라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리고 죽기 살기로 전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청나라

황실사서 [만주원류고]에도 기록되어 있다. 

백제와 신라와의 전쟁이 최고조에 이르는 무왕과 의자왕 시기에 백제가 신라를 죽사발 내

버리자, 위기를 느낀 신라는 당나라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신라관리들에게 당나라의 관복을 

입히고 당나라 연호로 바꾸겠다면서 온갖 아부 충성을 다하고 제후국까지 자처하자, 이에

감동한 당태종과 고종이 골치덩이 고구려를 신라를 이용하여 정벌해야 겠다는 전략에서

결국 당나라 군대을 지원해 준 결과 나당연합군이 바다와 육지에서 백제를 포위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일본열도의 백제담로군이 지원하여 부흥전쟁까지 벌였으나 백강(금강)

하구 전투에서 바람이 나당수군에 유리하게 불어 백제라는 이름이 한반도에서 사라지게

되고,백제의 왕족과 귀족은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일본서기]까지

편찬하여 신라에 대한 적대감을 깊게 기록했다.

일본천황의 기원은 마한연방의 진(신)왕이다. 마한연방은 백제가 복속하여 백제연방이 되었고 부산.경남 등 가야도 백제연방국이였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를 자주 침략한 왜의 실체는 사실 백제연방에 속한 가야군대다.



가야인들의 갑옷이 바로 신라를 침략한 왜군(가야군)의 갑옷이며, 조.일 전쟁 때 일본군이

입은 갑옷양식이다. 즉, 마한.백제연방군의 갑옷이 기원인 것이다.



일본 고대 갑옷1=마한연방군의 갑옷



일본 고대 갑옷2=백제연방군의 갑옷

고구려가 백제연방군의 침략으로부터 신라을 구원한 이유는 이뻐서가 아니라, 백제연방으로 편입되는 것을 차단하고 백제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고구려 연방으로 편입시키기 위해서였다.그래서 장수태왕까지 100여년간 고구려가 신라왕들을 마음대로 교체할 만큼 속국으로 삼았고 신라는 광개토태왕에게 제사를 지내며 상국으로 삼았던 것이 경주 호우총에서 발견된 호태왕 제사용 청동솥이다. 신라의 스트레스가 바로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낀 샌드위치 상황에서 벗어나는 일이였고, 당나라의 힘을 빌린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백제멸망 후에 백제는 일본으로 다시 태어났고, 신라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후대로

이어 졌고,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땅을 회복하겠다는 한반도침략전쟁을 노골화 했으니

조.일 전쟁이고 일제의 조선국권침탈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의 민족사 왜곡은 일본사가 한반도사의 줄기라는 역사적 진실을 감추기 위한

열등감에서 기인한다.



위 지도자료가 증명하듯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미명아래 일제가 경영한 식민지

영역은 백제의 담로지역과 거의 유사함이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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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5 오후 03:19:42   © kookminnews.com
윤복현 객원논설위원의 다른 기사보기

윤복현 객원논설위원 : 1968년 전남 완도 출생

한신대 신학과 졸업

부천YMCA중.고등부 교사

육군3사단 백골부대 전역

한신대 신학대학원(실천신학) 졸업


(*논문:한민족의 하느님신앙과 종교다원적 상황의 선교적 과제)

개혁국민정당 비상대책위원

특허수호 진실규명 협의회 공동 대표

진실규명 국익수호 협의회 집행위원

역사.종교연구가 / 심리상담사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과 해(환.한)민족이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해(태양)=환.한(해머리땅)=간(지나지역)=칸(몽골)=안(중동지역)

 

2. 일본 천황제의 기원은.. .. 2011-12-16 오전 12:47:22
작성자 : 多勿 윤복현 추천 (4)   반대 (0)    수정   삭제 

천황(천제)은 본래 동아시아의 광대한 영역의 수 많은 제후국가들을 거느린 단군조선연방의 최고 제사장과 최고 통치자인 진조선의 단군임금을 의미한다. 마.번조선의 단군임금들은 천왕이라 했다.

그러나 단군3조선연방이 해체되고 위만에게 망하여 한반도로 망명한 기자조선(번조선)세력에 의해 다시 단군3조선연방을 모방한 남3한 연방이 마한연방의 직할국이 되는 목지국(충북 직산으로 추정/백제가 되는 부여세력의 남진으로 익산에서 영산강지역으로 천도)에서 만들어 졌고, 일본열도를 포함한 마한연방의 임금이 단군조선연방의 회복(다물=담로)을 꿈꾸는 천황이 되었던 것이다.

일본천황제의 기원은 이러한 단군조선연방과 마한연방의 천황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보의 승리님 백제의 해상강국은 뛰어난 항해술과 선박제조술을 바탕으로 고대 해상

항로를 개척하여 고인돌문명을 유럽까지 전파했던 한반도 서남해 해상세력이 아니면

탄생할 수 없는 나라죠. 백제의 꿈은 바로 마한의 해상항로를 회복하고 해상무역지역을

모두 회복하는 꿈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제향로에 새긴 봉황은 고대 한국인들의

새토템의 상징으로 마한의 꼬리 긴 닭을 의미하죠. 그것은 백제가 마한을 계승했다는

분명한 인식을 의미합니다.

22담로지역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열도, 지나 동남해안지역, 그리고 동남아 지역임이 고증적으로 밝혀졌습니다. 모두 고인돌 지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