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국민뉴스 논설위원칼럼
마한과 백제의 해상문명이 낳은 국가-일본 |
- 일본천황가는 왜 온조.구태.근초고대왕 등 백제왕들에게 제사를 지내나? |
윤복현 객원논설위원, 2011-12-15 오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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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3조선연방시대에는 마조선(마한)의 영토가 되었다.벼농사.토기문화 등 일본의 문명은 마한문명으로부터 출발한다.일본열도의 고대 유적유물은 대부분 지나대륙-한반도-일본열도 를 연결시켜 주었던 영산강지역을 중심으로 마한인들의 유적유물이다. 망명한 위만세력에게 먹히자, 단군조선유민세력이 한반도지역인 마조선 지역으로 밀려 오면서 토착마한세력이 대거 일본열도로 이주하게 된다. 해상권인 서남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한강지역의 십제를 통합한 백제가 마한연방을 복속하고 일본열도을 잇는 문화국가로 등장하자, 일본열도는 자연스럽게 백제담로가 되었고, 오사카을 비롯하여 일본열도는 거의 백제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백제지명들이 즐비한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근구수대왕의 아들(인덕천황)에게 천황자리를 맡겼고, 백제대왕의 자리를 신라귀족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침류대왕에게 물려 주고 일본열도로 건너와 일본천황에 오르게 되니 오사카 지역의 대형 고분인 응신천황릉이다. 왕인이다. 일본왕실의 요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한자를 보급하고 한자의 핵심부수만 빼서 문자를 개발하여 보급하니 현재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일본문자인 것이다. 일본인들은 왕인박사를 일본어의 아버지라 칭하고 있다. 일본지폐에 신공황후를 새겨서 일본을 대표하는 시왕모인양 떠 받들어 대는 것일까? 그것은 근초고대왕 시기에 단행한 마한.가야.신라를 정벌한 근구수대왕의 후비가 왜왕의 왕후로 왜여인 출신인 신공황후였기 때문이다. 가 정벌하여 백제에게 준 것 처럼 한반도와 인연을 단절한[일본서기]에 기록하여 혼란을 준 것이다. 당시 왜의 군사력으로는 마한.가야.신라를 정벌한 능력자체가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세워 362년에 응신천황이 되고 왜 여인인 야가하에히메를 취하여 신공황후로 삼고, 야가하에히메가 근구수대왕의 아들을 임신하니 인덕천황으로 태중에서 삼한왕, 즉 대마도왕으로 임명하고 5세에는 왜왕(인덕천황)으로 임명한다. 아들인 셈이다. 즉, 자신의 손자에게 보낸 예물이 칠지도인 것이다. 이렇게 일본열도는 백제의 담로지역이 된 것이다. 고구려의 침략에 맞서 고구려 남평양성(북한 평양성)에 달려가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고 마침내 백제대왕이 되었고, 혼인한 신라 이벌찬의 딸이였던 아이부인(왕후)으로부터 낳은 침류왕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383년에 다시 일본으로 가서 일본열도를 통일하고 세운 야마토 왕조의 개국시조로서 응신천황이 되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근구수대왕을 대신해서 섭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사에서 신공황후의 위상이 높아진 이유일 것이다. 일본열도에서 한반도로 건너와 왕위에 즉위한 동성대왕이나 무녕대왕이 그런 사례다. 백제 성왕의 경우에는 백제대왕과 함께 긴메이 천황이라 불리우는 일본왕을 겸직하기도 하였다. 미국 보스턴박물관 소장 낼름해 버리자, 이에 분노하여 전쟁을 지휘하기 위하여 전장터로 나가는 백제 성왕까지 매복하여 죽이고 시신을 경주 신작로에다 묻고 밟고 지나가게 다니자, 백제와 신라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리고 죽기 살기로 전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청나라 황실사서 [만주원류고]에도 기록되어 있다. 버리자, 위기를 느낀 신라는 당나라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신라관리들에게 당나라의 관복을 입히고 당나라 연호로 바꾸겠다면서 온갖 아부 충성을 다하고 제후국까지 자처하자, 이에 감동한 당태종과 고종이 골치덩이 고구려를 신라를 이용하여 정벌해야 겠다는 전략에서 결국 당나라 군대을 지원해 준 결과 나당연합군이 바다와 육지에서 백제를 포위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일본열도의 백제담로군이 지원하여 부흥전쟁까지 벌였으나 백강(금강) 하구 전투에서 바람이 나당수군에 유리하게 불어 백제라는 이름이 한반도에서 사라지게 되고,백제의 왕족과 귀족은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일본서기]까지 편찬하여 신라에 대한 적대감을 깊게 기록했다. 입은 갑옷양식이다. 즉, 마한.백제연방군의 갑옷이 기원인 것이다. 이어 졌고,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땅을 회복하겠다는 한반도침략전쟁을 노골화 했으니 조.일 전쟁이고 일제의 조선국권침탈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의 민족사 왜곡은 일본사가 한반도사의 줄기라는 역사적 진실을 감추기 위한 열등감에서 기인한다. 영역은 백제의 담로지역과 거의 유사함이 입증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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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5 오후 03:19:42 © kookminnews.com 윤복현 객원논설위원의 다른 기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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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복현 객원논설위원 : 1968년 전남 완도 출생
해(태양)=환.한(해머리땅)=간(지나지역)=칸(몽골)=안(중동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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