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역사복원신문 글쓴이-성훈 컬럼니스트
중국대륙 한복판에 있는 광개토태왕의 지명 '영락진' (1/8부) | |||||||||||||
영락진은 고구리 장수왕 때 생긴 지명으로, 태왕릉으로 추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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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역사드라마 ‘광개토태왕’이 20% 좌우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드라마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광개토태왕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는 2007년 MBC에서 배용준이 주연한 ‘‘태왕사신기’가 30%가 넘는 최고의 시청률로 연말대상까지 수상한 적이 있다. 광개토태왕은 우리에게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복군주로 알려져 있다. 사학계에서는광개토태왕이 진출한 지역이 북경 근처까지였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있다. 10월 백제의 관미성을 20일 만에 함락시켰다. 즉 <삼국사기>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상당부분 누락된 기록이 많다는 의미인 것이다. 어떤 기록이 누락 되었고 또 실제 광개토태왕의 치적은 어떠한 것이 있었는지 추적해보기로 한다. 산서성 최남단 황하변에 있는 운성시 예성현(芮城縣)에 있는 소도시이다. 원래 이곳에는 영락궁(永樂宮)이라는 유적이 있었는데, 이 영락궁이 바로 광개토태왕과 관련 있는 궁궐로 보인다.
동아시아 역사상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쓴 황제는 고구리의 광개토태왕과 명나라 영락제 뿐이다. 그리고 영락진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시기를 추적해보면 분명 고구리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영락진이란 지명이 언제 생겼는지 그 연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산서성 영제현 동남 120리에 있다. <원화지> <환우기>에 모두 주나라가 영락현을 설치했고, 군으로 가지 않았다. <수지>에 영락군으로 된 것은 오기이다. 按《元和志》、《寰宇记》皆云后周置永乐县,不去置郡,隋志作永乐郡,盖字之误也。 북주 때 영락현을 창려군으로 다스렸다가, 북주 때 북평고성으로 옮겨 다스렸다. 수 문제 3년(583) 창려군을 파하고 영락현을 이역주로 변경했다가, 수양제 3년(607) 주를 파하고 상곡군으로 하고 영락현으로 거듭 다스렸다. 당 고조 4년(621) 영락현을 역주에 바꿔 속하게 했다. 천보 원년(742) 영락현을 만성현으로 처음 변경했다. 北周时永乐县徙治于北平故城,隋开皇三年(公元583年)罢昌黎郡,永乐县更隶易州,大业三年(公元607年)罢州为上谷郡, 仍辖永乐县。唐武德四年(公元621年)永乐县改属易州,天宝元年(公元742年)永乐县始更名满城县。
아들인 장수왕이 다스리던 시절이었다. 본격적으로 영락현이란 지명을 사용한 시기는 북주(557~581) 때인데 북주는 겨우 24년간 존재했던 나라이므로 행정구역을 개편할 정도의 나라가 아니었다. 즉 북주 때는 고구리 평원태왕 때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영락진이라는 지명은 명나라 영락제가 아니라 고구리 광개토태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광개토태왕의 능(陵)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삼국사기>에는 광개토태왕의 능이 어디인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남당 박창화선생의 <고구리사초.략>에는 광개토태왕의 능을 황산(黃山)에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황산(黃山)과 황성현(黃城縣)이 무슨 관련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北平郡)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창려는 갈석산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결정적 자료이다. 중국은 역사왜곡을 위해 산서성 최남단 황하변 영락진 즉 창려현이라는 지명을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현으로 옮겨놓아 마치 고대의 갈석산이 지금의 갈석산으로 보게 역사왜곡을 했다. 고대의 갈석산은 바로 산서성 최남단 황하변에 있는 지금의 중조산(中條山)인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 역사상 유명한 9 황제가 갈석산을 등정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인데, 그 9 황제들이란 바로 그 유명한 진시황과 한무제, 위무제(조조), 북주 문선제, 수양제, 당태종 등이다. 진시황은 이곳에 장성을 쌓고 등정했으며, 한무제는 한사군 설치 후 등정했고, 위무제(조조)는 오환족(고구리)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갈석산에 올라 시를 읊었으며, 수양제와 당태종은 요동(고구리) 정벌 때 갈석산을 올랐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말은 단군조선의 번조선과 고구리가 이곳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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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1/30 [14:41] 최종편집: ⓒ 역사복원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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