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상고사,홍산문화

4대 문명의 발상지는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설레임의 하루 2011. 12. 13. 05:26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오녀산 공중궁전 2011.05.12.  http://cafe.daum.net/mookto/GUJC/3508 

 

 

 

 

 

4대 문명의 발상지는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인류의 기원은 현재 학계에선 5000년 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허나 최근에 지속적으로 발견된느 유물이나 과거에 발견된 유물들의 지속적인 연구로 인해 인류의 기원이기원전 5000년 이상

10000년으로 거슬러 올라 갈것으로 말하고 있는 학자들이 많다

 

일본에서 오키나와 해저 피라미드를 연구하고 있는 교수 역시 자신의 홈페이지명을 기원전 10000년으로 만들었을 만큼 그학설이

받아 들여 지고 있는 것이다.

 

피라미드는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4000년전으로 정도로 측정된다.

하지만 이미 당시 이집트 인들은 전기를 를 사용하여 전구를 만들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피라미드 벽화에 잠수함, 헬기,

비행기들을 그려 놓을 정도로 유체 역학에 대한 지식을 뛰어 났으며 피라미드를 별의 모양을 보고 만들었듯이 천문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증명해준다 당연히 그 훨씬 이전부터 문명이 시작 되었으며 기원 4000년 당시에는 이미 문화가 정점에 달한 상황 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기원전 10000년에 대한 가설은 피라미드 뿐아니라 많은 곳에서 증거가 발굴 되고 있다

 

일단 문명의 4대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화문명등 4가지 문명에 대한 지속적 발굴 작업에서 인류의 기원을

앞당기는 단서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알다 시피 4대 문명에 대해서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미스테리를 가지고 있다

 

일단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만든 수메르 이들의 원래 이름은 수메르가 아니지만 고고학자들은 이들은 수메르라 지칭한다 이말의

뜻은 "머리가 검은 사람"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최근 많은 발견을 하였는데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토착민이 아니라 어디서인가 부터 이주 해온 사람들 이란는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를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한다

 

이들이 이주해왔다면 당연히 이들은 어딘가에서 선진문명을 발전시키로 그후 이주하여 지구라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는 기원전 3500년 이라 말하는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는 문명의 발상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로 이집트의 경우 피라미드를 노예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느 사람들이 많고 과거에 모든 영화들이 그렇게 그려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최근에 발견된 석판은 상식과는 전혀 다른 것을 전해주고 있다.

그 석판은 노예들이 집단거주 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고대의 주거 지역에서 발굴되었는데 그석판은 일종의 근무자들의 출근

기록이었다.

 

특이 사항의 노동자들의 결근이 상당히 많았으며 그 결근의 사유가 어이없다는 것이다.

출석부 해석결과 결근 사유는 친구 생일 파티 , 친구가 아파서 병문안 가야 하기 때문에 , 아이가 아파서 볼봐야 하기 때문에 ,

지금 생각해도  사소한 문제들은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노예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예였다고 한다면 노역장에서 죽을 정도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사소한 이유로 결근 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노예가 아니었고 자신들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업무를 하였거나 아니면 노동에 대한 댓가를 받고 일을 하였거나

미켈란젤로와 같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피라미드를 만드는 작업을 한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그만큼 완벽하고 거대한 예술품이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수메르는 이주해와서 문명을 세웠으며 이집트는 이미 고도의 발달한 문명을 기원전 4000년 전에 가지고 있었다.

그럼 인더스는 어떠 하였을까.

 

사실 인더스 문명은 쐐기문자가 아직도 해석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이 베일에 감추어져 있다.

허나 여기서 발견된 위대한 점은 그들의 치수 물을 다스리는 기술(그들은 이미 당시에 상하수도 시설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정치

제도 이다.

그들의 유물들을 아무리 조사해 보아도 정치권력이 한명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할수 없었으며 그들은 당시 부터 현재

보다 더욱 민주적인 의회정치를 펼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정확히 그들이 어떻게 정치를 시행하였으며 그정치 행태가 얼마나 안정적이였기에 그렇게 위대한 문명을 창조할 수 있었는지

고고학자들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 과제이다.

허나 중요한 것은 그들 역시 현대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위대한 기술과 매우 진보된 정치형태로 국민들을 지배 하였으며

그러면 풍요속에서 인더스 문명이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대의 미스테리를 가지고 있는 곳이 황하문명이다.

중국은 최근 요하 문명전이라는 대대적인 전시회를 열었다.

요하는 황하하고는 많이 떨어진 동북 삼성 지역에 있는 강이며 위치는 대략 한국의 북서 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전시회에서 중국이 말한는 것을 들으면 신기하다.

그들은 황하는 중국의 최초의 문명이 아니며 기원전 7000년 전 문명의 흔적을 요하에서 발견 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적봉시 홍산에서 엄첨난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기 때문에다.

이들의 말에 의하며 중국의 동북삼성 지역에서 문명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황하문명에 영향을 주고 고조선 등 우랄알타이계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에게도 문화가 전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적봉시에서는 수많은 유적들이 발굴되었고 탄소연대측정결과치는 기원전 7000년에서 그이상으로 계속 갱신되고 있다

 

중국은 이를 탐원공정이라 이름짓고 전세계문명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것을 강력하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전황으로 볼때 세계 문명의 발상지는 분명히 오류가 있는 것이 분명하고 이에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되야 할것이다

 

헌데 왜 많은 학자들은 기원전 10000년을 인류 기원에 시점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시점이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넘어가는 시점이기 때문이며 그때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채집생활을 하던

인류들은 이로인해 해안가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살수 있는 새로운 곳을 향하여 이동 할수 밖에 없었으며 당시 가장 살기 좋았던

강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그곳에서 문명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최기의 인류들은 해안가에서 사는 것을 선호 하였다.

당연한 것이 바다는 그들에게 무궁무진한 식량을 공급하는 창고 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해안생활은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런 가설의 증거는 지질학자들이 발견하였는데 그들은 지질을 분석한 결과 10000년 전에 전세계적으로 엄첨난 홍수가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여기서 생각할수 있는 것이 성경이나 한국의 부도지 코란등 많은 고대 서적들은 과거의 홍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니 이또한

10000년 설을 뒷받침 할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겠다.

 

일단 이러한 사실들로 인해 최소한 인류 문명의 발상지라로 세계사 책에 나와있는 곳들은 아마 수정을 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