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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계백) 당항성으로 대륙백제의 진실 언급되려나?

설레임의 하루 2011. 10. 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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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계백) 당항성으로 대륙백제의 진실 언급되려나?

백제가 당항성을 점령하자 신라에서 당나라로 가는 길이 막혔다? 왜?
 
성훈 역사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1/10/18 [17:06]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가 지금의 충청.전라 지역에 있었다는 반도사관이 사실무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전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교수의 일식관측지 분석과 기상 등 여러가지가 있으며, 고구려가 백제사신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백제가 당항성을 점령하자 신라에서 당나라로 가는 길이 막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는 삼국을 현재의 한반도에 놓고서는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이다.
 
특히 백제 무왕과 의자왕 때의 기록이 가장 많은데, MBC 퓨전사극 "계백"에서 이러한 대륙백제의 내용이 언급될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1) 21대 개로왕 18년 “(위나라에서) 고구려 장수왕에게 명하여 위나라 사신의 일행을 호송하게 하였다. 사신일행이 고구려에 이르자 왕이 “옛날 여경(=개로왕)과 원수진 일이 있다.”하고 동(東)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하여 모두 되돌아왔다. 이에 조서를 고구려에 보내 엄히 책망하였다. 그 후 동래에서 배를 타고 바닷길로 향하게 하였으나 바람을 만나 표류하다가 도착하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해설) 위나라 사신이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에게 듣은 말을 적은 것인데 동(東)쪽으로 통과 못하게 해서 돌아왔다고 하는데, 만일 고구려의 도읍이 대동강 평양이라면 당연히 남(南)쪽이라고 기록해야 옳다. 그리고 이후 이용한 바닷길은 황해를 횡단한 것이 아니라, 바다같이 넓었던 황하(黃河)를 이용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위 문구로 보면 백제는 산서성에 있던 고구려의 동쪽이므로 하북성에 있었던 느낌이 든다. 

2) 22대 문주왕 2년(476) “3월 사신을 송(宋)나라에 보내어 조공하려 했으나 고구려가 길을 막아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해설) 참으로 이상한 기록이다. 만일 현재의 역사이론대로 백제가 충청도에 있고 고구려가 지금의 북한지역에 있었다면 고구려가 백제사신의 길을 일부러 막을 이유가 있었겠는가? 원래부터 막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기록이 남은 이유는 백제에서 송나라로 가는 길을 당시 고구려가 점령하고 있었다는 말과 같다. 즉 그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다. 

3) 24대 동성왕 6년(484) “가을 7월 사신을 남제(南濟)에 보내 조공하게 했으나 서해(西海) 중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만나 가지 못하였다.”
(해설) 서해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데 넓고 넓은 황해바다에서 고구려 군사를 만나 못 갔다는 말은 참으로 이상한 말이다. 여기서의 서해는 황하나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던 대야택(발해) 또는 백제의 서쪽을 흐르던 황하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27대 위덕왕 45년(598) “가을 9월 왕은 수나라에서 요동전역(遼東戰役)을 일으킨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표를 올려 향도(鄕導)가 되기를 청하였다.”
(해설) 수나라가 고구려 정벌을 하려고하니 백제가 길 안내를 하겠다고 자청한 기록으로, 이 기록의 의미는 현재의 교과서 이론대로라면 백제가 현재의 요녕성(서만주) 지역의 지리를 잘 안다는 말인데 그곳은 백제 땅이 되어본 적이 없다.  

▲ 국사교과서에 그려진 삼국의 지도는 일제의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만들어놓은 반도사관의 산물일 뿐이다.  이 지도로는< 삼국사기>의 길을 막는 기록이 성립되지 않는다.       © 역사복원신문


5) 30대 무왕 9년(608) “봄 3월 수나라 사신이 사신으로 왜(倭)로 가는데 우리 남쪽 길을 경유하였다.”
(해설) 대륙에 있던 수나라 사신이 섬나라 일본으로 가는데 배타고 직접 가면 되지 뭐 하러 백제에서 내려 육로인 남쪽 길을 경유하겠는가? 이 말은 백제의 남쪽이 수나라와 왜국 사이라는 말이다. 즉 백제와 왜국은 다 같이 대륙에 있었다는 말인 것이다.  

6) 무왕 3년(602) “수나라 육군이 요수를 건넜다. 왕은 군사를 국경에 배치하고 수를 돕는다고 외쳤으나 실상은 양단책(兩端策)을 쓰고 있었다.”
(해설) 이 말은 수나라가 요녕성(서만주)에 있는 요하를 건너자 백제가 돕겠다고 국경인 지금의 서울 근처에 군대를 배치했다는 말은 고구려의 남쪽을 협공하겠다고 위협한 것인지? 이 말은 수나라의 진군로와 백제의 국경이 멀지 않다는 말로 해석되어져야 할 것이다. 

7) 무왕 27년(626) “사신을 당에 보내어 명광개(明光鎧)를 바치고, 고구려가 길을 막고 상국에 내조(來朝)할 것을 용허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해설) 고구려가 당나라로 가는 백제 사신의 길을 막았다는 말은 예전에는 길이 있었다는 말이다. 즉 당나라와 백제 사이에 있는 땅을 당시 고구려가 임시로 점령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육로를 택한 것이지 지금의 반도사관대로라면 애당초 해로를 이용했을 것이다.  

8) 무왕 28년(627) “가을 왕은 신라가 빼앗아간 지역을 회복코자 크게 군사를 일으켜 웅진에 나와 주둔하자, 신라 진평왕이 이를 듣고 급히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사정을 알렸다. 왕이 그 사실을 듣고 중지하였다. 가을 8월 왕의 조카 복신을 당에 보내어 조공하니....
(해설) 백제가 신라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충청도 공주에 군대를 주둔시키자 신라가 이를 급히 당나라에 알렸고 백제가 이를 알고 중단했다는 것이 한 달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당나라 지원군이 백제까지 오려면 황해바다를 건너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며, 8월에 백제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냈기 때문이다. 지금의 반도사관이라면 이러한 일들이 한 달 안에 진행될 수가 없다.
 
▲ 당나라와 신라의 교통로인 당항성을 점령한 백제     © 역사복원신문

 
9) 31대 의자왕 3년(643) “겨울 11월 왕이 고구려와 화친하고 신라 당항성(黨項城)을 빼앗아 당에 입조하는 길을 막으려고 군사를 일으켜 쳤다. 신라 선덕여왕이 당에 사신을 보내어 지원을 요청하였다. 왕이 그 사실을 알고 군사를 철수시켰다.”
(해설) 백제가 신라의 당항성을 빼앗자 신라 사신이 당나라로 들어가는 길이 막혔다는 것은 현재의 반도사관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기록이다. 애당초 신라가 당나라로 가려면 황해바다 이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이 말은 당항성이 당나라와 신라 사이에 있다는 말로, 삼국이 대륙에 있지 않았다면 설명될 수 없는 기록인 것이다.

10) 당나라가 소정방을 보내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당나라 10만 대군이 배를 타고 황해바다를 횡단해서 왔다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인 것이다. 백제패망전쟁은 황하를 타고 내려온 당나라 군대가 하남성이나 산동성에 있던 백제를 멸망시킨 것으로 보인다. (백제 패망전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아래 글 참조바랍니다.)
(제목) 일제에 의해 조작된 백제왕도 '부여'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37§ion=sc8§ion2=
(제목) 소정방이 백제를 멸하러 '황해' 건넜나?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38§ion=sc8§ion2=

▲ 박창범교수가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니 삼국은 대륙에 있엇다.     © 역사복원신문



기사입력: 2011/10/18 [17:06]  최종편집: ⓒ 역사복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