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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황=천제/천제의 자식들(천제지자)=천자/연방국왕=천왕

설레임의 하루 2011. 10. 27. 19:44

 

환인.환웅.단군천황=천제/천제의 자식들(천제지자)=천자/연방국왕=천왕(마.번한)

 

후한시대 채옹이 그의 저서인 <독단>에서 말하였다.

 

“천자라 명칭은 부름이 동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풍속이 아비를 하늘이라 하고 어미를 땅이라 한다. 그러므로 천자라 하였다..천자가 정사를 살피는 곳을 조정(朝廷)이라 하고 관리들이 조정에 나아갈 때 입는 옷을 조복(朝服)이라 하며, 제후가 천자를 뵙는 일은 조근(朝覲)이라 하고, 제후의 신하가 천자를 뵙는 일은 조빙(朝聘)이라 하였으며,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일을 조공이라 하였다."

 

단군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지나 동북부와 동남부 전역이 다 단군조선의 직할 영토였다. 그리고 누천 년 동안 그 영토를 지키며 태평을 구가하였다. 반면 당시 요.순.우로 상징되는 지나국은 지금의 황하상류 지역에 웅거하고 있던 약하고 미개한 나라에 불과했다. 황하홍수도 다스리지 못하여 단군조선에 도움을 요청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나의 왕들은 해마다 태산에 올라가 단군조선의 천제가 계시는 동북쪽을 향해 예를 행하였다. 사당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묘(廟)’자는 바로 지나의 왕들이 집(广)을 짓고 조선(朝)을 향하여 제사를 지냈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이러한 글자를 알면 새삼 옛일을 다시 읽어낼 수 있으나 지금 사람들이 대개 그 글자를 한문(漢文)이라 하여 지나문자로만 알고 애써 배우려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그 글자가 우리의 원시 조상들이 만든 글자를 근본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무지의 소치이다.

 

“정의가 말하기를 제사 드리는 곳(태산)은 동방제후(번한) 경내의 명산대천이다(正義 曰 乃以秩望祭東方諸侯境內之名山大川也)”(중국 오제기 16). 염제신농.소호금천씨 등 배달국에서 나온 고대 한국인들이 제사를 지낸 이후로 지나인들의 성산이 되어 온 태산은 경치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순임금 시대(BC.2318년-BC.2218)의 요


“2월 동쪽을 순시하다 대종에 이르러 나무를 태워 산천에 제사지내고 동방군장을 찾아 뵙고 계절, 달, 날자를 맞추고 도량형을 같게 통일하였다.(歲二月東巡狩至於垈宗 柴望秩於山川 遂見東方君長 合時月正日 同律度量衡---)”

동쪽을 순수할 때 제사를 지내고 동후를 찾아 뵙다(東巡望秩肆覲東后)” (중국 書經 舜傳)

 “순임금은 사공(司空) 우(禹: 훗날 하나라 시조)를 파견하여(도산: 塗山: 안휘성 회하 동쪽 강변) 우리의 오행치수의 법을 배우게 하니 마침내 홍수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우를 낭야성(산동성 동남쪽 해안: 당시 밝한의 치소)에 두어서 이로서 구려분정의 뜻을 따르게 하였다.(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상)

 

●위에서 지나기록에서는 우리나라 이름을 감추고 “동방”의 나라로 기록하였고 그 임금을 동방제후들의 수장 즉 동방군장이라고만 하였다. 상고시대에 중국에는 군장이란 제도가 없었다. 그리고 동방군장이란 제후들의 우두머리이니 임금을 말한다. 동방이라 했으니 이는 당연히 단군조선을 의미하고 동방제후라 했으니 번한을 의미한다.동방제후를 찾아 뵙다함은 천자인 번한을 알현했다는 의미다. 단군조선을 총괄하여 다스리는 단군천황은 천제이고, 번한과 마한의 수 많은 제후들을 거느리는 번한과 마한은 천자.천왕였다. 당시 우나라 순은 수 많은 번한의 제후들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또 서경 순임금 전에서는 황제보다 아래인 “동후(東后)”라고 쓰고 있으나 “찾아뵙다(肆覲)”라는 존칭을 사용하고 있어서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의 국호와 임금을 감추기 위해 우리에 대한 기록을 매우 애매 모호하게 쓰고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경 주송(周訟)청묘지십(淸廟之什)편 호천유성명(昊天有成命)편에 호천유성명이후수지(昊天有成命二后受之: 하늘이 정하신 명이 있는데 문왕, 무왕 두 임금이 받으셨네)라  고 하고 “황하의 높은 산에 오르니 믿음직스러운 왕께서 오로지 높으신 임금이로다.(及河喬嶽允王維后)라고 하여 후(后)가 군(君)과 왕(王)의 칭호보다 높임말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에 순임금이 제사지낸 곳이 동방제후 즉 번한 땅인 산동성 태산이고 우사공이 홍수 때 치산치수를 위해 머무른 곳이 바로 산동성에 있는 낭야성 이었는데 낭야성은 그 당시 번한의 치소(총독부治所:서울)였다.


 

[환단고기-번한세가 상]
"9년 홍수를 당해 그 피해가 만백성에게 미치니 단군왕검 천황께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순의 간청에 큰아드님되시는 태자 부루를 파견하여 도울 것임을 순임금과 약속하시고 도산에서 만났다. 순임금은 사공인 우를 파견하여 우리의 오행치수의 법을 배우게 하니 마침내 홍수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우를 낭야성에 두어 번한의 통제하에 있는 구려분정의 뜻을 따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서경>에서 [동순하여 망제를 지내고 마침내 동후를 찾아 뵙다]라는 기록이다. 진국(진조선)은 천제의 아들(부루)이 다스리는 곳이다. 5년마다 단군천황께서 지역을 순찰하는데 '낭야성'에 한번씩 방문하신다. 제후 순은 이 때문에 단군천황에게 네번씩이나 조근하였다...갑술년에 태자 부루는 명을 받들어 도산으로 가는 길에 반달 동안 낭사에 머무르며 민정을 청문했다.우순도 역시 사악을 인솔하고 치수의 여러 일들을 부루태자에게 보고하였다. 번한은 태자의 명을 받고 나라에 크게 경당을 일으키고 아울러 삼신을 태산에서 제사지내도록 하였다. 이로부터 삼신을 받드는 옛 풍속은 회와 대지방의 사이에서 크게 행해지게 되었다.

 

태자는 도산에 이르러 일들을 주관했다. 곧 회합하여 번한을 통해서 우사공에게 고하여 가로대,[나는 북극 수정(단군천황)의 아들이니라. 그대의 왕(순)이 나에게 청하기를 물과 땅을 다스려서 백성들을 도와 이를 구하려 한다 했는데 3신상제(단군천황)는 내가 가서 돕는 것을 기꺼워 허락하시므로 내가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
 

초대 단군천황의 큰 아드님되시는 부루태자께서 황하의 홍수피해를 막아 달라는 우나라 왕 순의 요청을 받고 중원지역의 모든 단군조선의 제후들이 모인 도산회의에서 말하기를 "나는 북극 수정의 아들이니라!"했는데, 북극의 수정은 바로 광대한 영토를 가진 단군조선의 중심이 되는 단군천황을 의미한다.진리와 양심과 공의은 변하지 않는 북극성이다.

 

 

지나문명의 젖줄이 되는 홍산문명이 일어난 요서지역의 아사달(조양)에서 처음 나라를 여시면서 "하늘법과 사람의 마음은 결국 하나(진리와 양심)로 통한다."고 교시하셨던 단군천황도 그러한 중심점(본심본태양=양심)을 가지고 대덕성군의 통치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 초대 단군천황의 영정(김산호 화백)

[환단고기-번한세가 상]"단군왕검 천황께서 제요도당과 나란히 군림했다. 당나라 왕 요의 덕이 날로 쇠퇴하여 요의 제후들끼리 서로 땅을 다투는 일을 쉬지 않았다. 단군천황께서는 마침내 군대을 파견하여 주둔시키고 순과 함께 요의 당나라를 정벌할 것임을 약속하니 요임금이 마침내 힘이 딸려 순에 의지해 생명을 보전하고 순에게 왕위를 양위하였다."=단군조선의 제후 요왕은 단군조선의 정치.군사개입으로 단군조선인 순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나사에서 우나라(요.순)와 하나라(우)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였다

고대 지나사에는 3황5제(三皇五帝)시대가 있었는데 삼황으로는 염제신농, 태호복희, 황제헌원 등이다.

『환단고기』안에 들어 있는『삼성기』나 『태백일사』「신시본기」등에는 3황의 인물들이 모두 신시배달국 환웅천황시대의 후손으로 중원지역에 발달된 문화를 전파하고 정착한 것으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5제의 인물들도 역시 같은 계보를 지닌 것으로 나와 있다. 지나인들의 시조로 삼고 제사지내는 "3황5제는 모두 숙신(동북지역=만주)에서 나왔다"는 [산해경]의 기록이 그것이다.

지나사에서 태평시대에 해당한다는 요순시대에서 순 임금 또한 동이족으로 기록되어 있다.

『맹자(孟子)』 이루장구(離婁章句) 하편에, "순은 제풍에서 나고, 부하로 옮겼으며, 명조에서 졸하였는데, 동이의 땅이고, 순은 동이인이다."(舜生於諸風, 移於負荷, 卒於名條, 東夷之地, 舜東夷之人也) 라 하였고, 『환단고기』에는 순의 아버지 유소씨(有巢氏)가 단군조선의 신하로 기록되어 있다.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였던 우나라 왕 요가 단군조선의 명을 어기고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단군조선에서 반란진압책임자로 순의 아버지 유소씨를 파견하게 되는데, 이 때 유순도 따라 가게 된다. 그리고 유순을 우나라 왕으로 세우고, 산동지역 낭야성에서 번한(부단군)에게 정사를 보고하는 것을 전제로 중원지역을 다스리는 중국의 총독으로 임명하게 된다.



[지도]험독(창려)이 단군3조선 중 번조선의 단군이 거주하는 왕검성이다('한서지리서'기록내용).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되는 우나라와 하나라의 왕(순.우)이 단군천황이나 번한의 단군에게 정사를 보고했던 성이 낭야성이다. 우나라 순도 단군조선에서 독립하려는 과정에서 결국 패위당하여 우가 즉위하여 하나라를 열었고, 22대 색불루 단군천황시기에 은나라도 번조선지역을 침략하여 결국 단군조선연합군에게 격퇴당하고 굴복하였으며, 또 다시 침략하자 완전히 괴멸되어 직접 통치를 받았다.그 때 세워진 나라들이 바로 산서성지역에 세워진 여국, 산동.강소성지역에서 세워진 남국.서국 등이다.

즉, 단군조선은 번조선 직할지역(요서) 아래 지역인 회.대지역(산동.강소성)을 순임금을 총독으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였고, 단군천황께서 5년마다 지역순찰을 하는 과정에서 산동지방 낭야성을 반드시 방문하였다는데, 이에 대해 『서경(書經)』 虞書 舜傳을 보면,"2월, 동쪽으로 순수하여 대종에 이르러 시일을 협의하고 도량형을 맞추며 5례의 법을 닦고 다섯 가지 옥과 세가지 비단, 두가지 산짐승과 한가지 죽은 짐승의 예물을 정리하였고, 다섯 가지 제기는 제사가 끝난 뒤 되돌려 주었다."(歲二月,東巡守之于岱宗,協時月正日,同律度量衡,修五禮五玉三錦二生一死執如五器卒乃復) 고 하였다. 이는 당시 지나의 도량형도 단군조선의 도량형 기준에 따랐다는 기록을 말하고 있다.

 

"어아 어아, 우리들 조상님네 크신 은혜 높은 공덕, 배달나라 우리들 누구라도 잊지마세! 착한 마음 큰 활이고 나쁜 마음 과녁이라,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이니 활줄처럼 똑 같으며, 화살같은 한마음으로 똑같아라.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되어 과녁마다 뚫고지고, 끓는 마음 착한 마음 눈과 같은 악한 마음. 어아 어아,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 이라, 굳게 뭉친 같은 마음 배달나라 영광일세!천년 만년 크신 은덕, 한검(단군왕검 천황)이시여, 한검(단군왕검 천황)이시여."

 



▲ 2대 부루 단군천황의 영정(김산호 화백)

2대 부루 단군천황 시절에 3신1체 3성조(환인.환웅.환검)께 제사을 지낸 후에 백성들에게 부르게 했던 최초의 애국가가 [어아가」인데,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군사를 이끌고 출전할 때에 군사들에게 부르게 하여 민족적 기상을 높이고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순임금은 단군조선의 신하되는 유소의 아들이다
후한 채옹,"천자라는 이름은 동이(단군조선)에서 비롯되었다.."

 

 

 

http://www.kookminnews.com/news/service/article/refer.asp?P_Index=2483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윤복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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